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82
823화 성문 앞에서 말을 몰고 질주하는 낭자
지난 2년 동안 줄곧 창주에 머무르며 정북 진영을 이끈 사비 장군은 명장 상삼호와 대치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비록 약간의 손실을 보기는 했지만, 사비 장군은 조급하게 이기려 한다기보다는 상황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갔다.
등자월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과거 사비 장군은 줄곧 연경 대영에서 왕 대도독의 부하로 있었기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년 전에 정북 진영에 오게 되면서 점차 사람들이 알게 되었지요. 비록 지난 2년 동안 창주 남북에서 큰 전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상삼호의 위협에도 당황하지 않은 점을 볼 때 사비 장군은 겉은 외유내강 유형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유내강이라고?”
범한이 동의할 수 없다는 말투로 되물었다.
“만약 정말 외유내강에 능력이 출중한 사람일 뿐이라면 폐하께서 어째서 2년 전에 그에게 이런 중요한 임무를 맡기셨겠는가.”
등자월은 제사 대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뭔지 단박에 알아챘다.
경력 7년 가을에 대동산 사건과 경도 반란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너무 정신이 없어 연소을이 창주 부근에 있는 정북 진영을 주인 없이 방치했다는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고, 그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도 망각해 버렸다.
하지만 범한은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는 대동산에서 포위되어 있었을 때 이미 밀지를 연경에 보내 북제가 혼란을 틈타 남침하는 걸 막을 수 있도록 연경 대영이 창주에 있는 정북 진영을 접수하도록 했다.
이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임무였다. 연소을이 죽고, 그가 이끌던 친위병 수천 명은 포로가 되었으니 만일 아주 유능한 고위 장군이 정북 진영을 지키지 않는다면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당시 폐하는 이처럼 막중한 임무를 맡을 고위 장군으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비 장군을 선택했다.
당시 사비 장군이 정북 진영의 군심을 안정시킨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범한은 감찰원 제사인 만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사비 장군이 폐하의 명을 받아 관련자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전설과도 같은 능력을 발휘했을 거라 보았다.
대장 사비는 십여 명의 친위병만 이끌고 창주에 있는 정북 진영으로 들어가 손에든 황제의 칙명만으로 손쉽게 정북 진영의 군심을 안정시켰다. 도대체 사비 장군은 담이 얼마나 크고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 사람이기에 연소을이 수년간 관리해온 정북 진영의 십만 대군을 순식간에 온순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이처럼 중요한 일을 완벽하게 성공시킨 사람을 단순하게 외유내강한 사람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범한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고 마음속에는 검을 그림자가 드리우는 게 느껴졌다.
황제 폐하가 1 황자에게 북벌 임무를 맡길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사비처럼 대단한 인물을 전선에 있게 하지 않고 경도로 불러 수비 통령을 맡긴다는 건 의외였다. 이건 도대체 누구를 경계하기 위한 조치인 걸까?
이전에 황태자가 남조 사신으로 갔을 때 범한은 만일 장 공주 쪽의 세력이 눈처럼 녹아 사라지게 되면 황제 폐하가 그가 가진 권력을 빼앗을 거라고 걱정했다. 물론 그가 그보다 더 걱정한 일은 황제 폐하가 조정의 원로들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할 거라는 거였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감찰원의 권력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황제 폐하의 총애는 이전과 같았고, 조정이나 민간에서 그를 건들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범한이 가장 걱정했던 조정 원로들의 경우 경도 반란을 통해 귀중한 깨우침을 얻은 덕분에 폐하가 움직이기 전에 알아서 무대에서 내려갔다.
아버지 범건은 이미 호부 상서 자리에서 물러난 뒤 담주로 돌아가 조용히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진평평은 아직 감찰원 원장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더는 일에 관여하지는 않고 원무를 모두 범한과 언빙운에게 넘긴 상태였다.
더구나 진평평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은 건 사직을 청했음에도 그를 놓아주기 싫은 폐하가 윤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두가 평화롭게 무대에서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오주에 있는 범한이 장인어른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비참한 상황에 부닥쳐야 했다.
전임 재상인 임약보는 경도 반란이 일어나자 상황을 잘못 예측했고, 이에 조정에 숨겨 두었던 자신의 세력을 모두 사위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이 일로 자신이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죽은 줄만 알았던 황제 폐하가 무사히 경도로 돌아오면서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상황이 물거품으로만 끝났으면 나았을 거였다. 황제 폐하는 전임 재상 임약보의 온순하지 못한 모습을 경계하며, 지난 2년 동안 그의 사람들은 가차 없이 처단했다. 물론 잔인한 방법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임약보가 경도에 남겨둔 세력은 전부 흔적도 없이 제거되었다.
범한도 장인어른의 세력이 처참히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편 오주에서 잔뜩 겁에 질린 임약보는 연달아 암암리에 폐하에게 상소를 올려 아량을 베풀어 달라 간청했다.
다행스럽게도 황제 폐하는 범한과 임완아의 체면을 생각해서 임약보를 계속 추궁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세 명의 조정 원로들은 황제 폐하가 바람대로 정치 무대에서 물러났고, 경도 조정은 새로운 틀에서 견고한 균형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비 장군이 경도로 돌아온다는 건 뭘 의미하는 것일까?
사비 장군처럼 유능한 사람을 천하통일을 위한 전쟁에 사용하지 않고 황제 폐하의 곁으로 불러들이는 건 누구를 경계하기 위한 것일까?
‘설마 나를 겨냥하는 것인가?’
마음이 암담해진 범한은 더는 이 문제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등자월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는 경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필요가 없네.”
그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했다.
“자네의 귀에 무슨 소식이 들려오든 어떤 사실을 알게 되든 절대 관여하려 하지 말게나······. 자네가 감찰원 관리이고, 폐하의 신하라는 것만 기억하게. 내가 자네를 서량로에 남겨두는 것은 경국의 무수한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이네. 자네가 이 일을 잘 처리해 준다면 모든 게 괜찮을 거야.”
등자월은 계년조에 두 번째로 들어간 사람으로 왕계년이 직접 발탁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는 왕계년을 제외하면 범한의 가장 중요한 심복이었다.
몇 년 동안은 북제 상경에서 4처 상주 북제 총 두목 임무를 수행한 그는 제사 대인이 자신을 발탁해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해하고 있었다. 이에 지금 제사 대인이 불길한 말을 하자 그는 얼굴 가득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찰원에서 4처 북제 첩보망 총 두목을 맡은 언빙운, 왕계년, 등자월은 모두 범한의 가장 유능한 심복이었다. 그러니 만약 왕계년처럼 뜻밖의 상황에 부닥치지 않는다면 감찰원에서 가장 잘나가는 관리가 될 것이었다.
범한이 등자월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서량로의 일을 아주 중요하니 자네가 잘 처리해야 하네. 경도로 돌아온 뒤 4처 수령 자리를 자네가 먼저 겸했으니 다른 일곱 처도 지원을 받으면 비교적 수월할 거네. 하지만 나머지 관할 구역에 대해서는 잠시 관여하지 말고 언빙운에게 맡기게나.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가?”
“이해했습니다.”
등자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인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민족들이 우리 영토에 한 발자국도 들어와서는 안 되네.”
범한이 그를 빤히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남겨두는 이유와 가장 신임하는 자네를 서량로에 최소 2년 동안이나 있게 하려는 이유가 뭔지 자네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 그러니 나를 실망하게 하지 말게나.”
자신의 어깨에 짓누르는 막중한 임무를 실감한 등자월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더니 말했다.
“반드시 대인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범한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도 등자월은 감개가 무량한 심정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제사 대인을 따른 지 어느덧 5년이 된 그는 상대방이 지금처럼 진지하게 임무를 지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범한의 모습이 위엄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제 겨우 스무 살 초반의 젊은 청년인 제사 대인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안정적으로 일을 지시하고 처리하는 점이었다. 그러한 제사 대인의 모습은 마치 조정에서 수십 년 동안 있으면서 온갖 영예와 시련을 겪은 원로대신과 같았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송지선령과 관련해서는 어찌해야 할지······.”
송지선령은 해당이라는 사실이 언젠가는 세상이 알려지게 되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범한을 제외하고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등자월뿐이었다. 어떻게 할지를 묻는 등자월의 질문에도 범한은 생각이 잠긴 표정을 지은 채 오랜 시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 *
수십일 뒤 흠차 범한의 마차가 경도 밖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3일 전에 범한이 의장이나 이런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없애라고 지시를 해둬서 요란스러운 장면은 펼쳐지지 않았다. 이번에 황제의 명령을 받아 서량로를 순시한 건 진짜 임무를 가리기 위한 연극에 불과했다.
게다가 은밀하게 진행한 계획은 신중히 처리해야 하는 일인데다가 경도 안에 골치 아픈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범한은 남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지나치게 끄는 흠차 의장을 잽싸게 없앤 뒤 감찰원 4처 마차로 바꿔 탔다.
감찰원 통행 문서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성문사 관병들은 범한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마차 행렬은 서성문 밖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범한이 마차 창문을 가린 발을 살짝 들어 올리고는 밖에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경도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늠름하게 말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가던 섭령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섭령아는 이미 정주에 도착했을 것이니 아마도 설 명절 전에는 왕 십삼랑이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을 거였다.
다만 섭령아와 함께 올지는 알 수 없었다. 범한이 얼굴에 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과거 봄날 섭령아가 옅은 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머리에 흰 사슴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밝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난데없이 회색 그림자가 돌진해오더니 범한이 타고 있는 마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 회색 그림자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하마터면 감찰원 마차를 끌고 있는 말들이 놀라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다.
감찰원 6처 검수들이 무의식적으로 쇠막대기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주변 상황을 살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언제든지 공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쏜살같이 지나간 회색 그림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범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탄 여자가 지나갔을 뿐인데 뭘 그리 긴장하느냐고 생각했다. 다만 말을 탄 여자가 성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의 안전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차림새를 봤을 때 말에 탄 여자는 분명 어느 귀족 집안 아가씨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행동이 너무 오만하고 제멋대로였다.
범한이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고 성문을 향해 돌진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돌진해 오는 바람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농민들이 바닥에 넘어지자 범한이 심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원인은 많고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말에 탄 귀족 아가씨가 섭령아처럼 치마를 입고, 섭령아처럼 흰 사슴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범한이 옆에 있는 목풍아에게 말했다.
“어느 집안 낭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행실이 가관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