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90
831화 천자의 벼락같은 경고와 범한이 잃어버린 패 (1)
황제 폐하가 가장 믿고 총애하는 범한을 이따금 자극하는 이유는 그가 너무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황제와 신하, 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본분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경도에서 반란이 평정된 뒤 범한이 조정을 위해 큰 공을 세우거나 황제가 폐하가 후한 상을 내릴 때면 황제 폐하는 이런 일을 대충 언급하고 넘어가서 범한에게 자신이 처한 위치를 깨닫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범한을 자극할 도구로 하종위를 비롯한 관리들을 이용했다. 하지만 범한을 진짜 놀라게 만드는 벼락같은 말은 두 사람만 있을 때 쳤는데, 주로 범한이 남몰래 해온 일들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 2년 동안 황제 폐하는 상점 하명기의 내막, 하서비와 강남 수채의 관계, 범사철이 북쪽에서 밀수를 진행하고 있는 일, 불충한 마음을 품고 있는 허무재의 정체, 왕 십삼랑이 범한에게 의탁하는 이유 등등 범한이 해온 일들을 예상치 못한 순간이 벼락처럼 내뱉으며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범한은 매번 벼락같은 말들을 들을 때면 간담이 서늘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폐하 앞에서는 어떤 비밀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동안 저지른 일들이 만약 모두 까발려진다면 자신의 목이 베이게 될 테니 말이다.
물론 범한도 황제 폐하가 자신에게 벼락같은 말로 경고하는 이유는 일깨워주기 위함이지 자신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매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용상에 앉아 있는 대종사 황제는 한 번의 탄식만으로도 자신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범한은 평범한 신하가 아니었다. 그는 천하 누구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방법으로 황제 폐하의 분노에 대응했다. 염치를 모르는 성격인 그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해야 할 일은 계속 추진해 나간 것이다. 황제가 그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왜냐하면, 초상전장은 범한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감찰원의 경비와 큰 강 제방 수리하는 데 필요한 은전을 운반하는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임완아가 항주회에서 추진하는 여러 선행과 가족과 진원의 호화로운 생활도 모두 초상전장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범한을 가장 걱정하게 만드는 일은 초상전장에 북제 젊은 황제의 몇 백만 냥의 은전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일이 알려진다면 범한이 아무리 효자 행세를 하며 애걸복걸해도 나라를 팔아먹으려 했다는 죄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범한은 몇 줄기의 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3년 전 어떤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명씨 집안을 굴복시키면서 초상전장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범한은 황제 폐하가 분명 이 일을 의심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호부에서 그처럼 많은 은전을 동원하는 게 불가능한 만큼 황제 폐하는 분명 초상전장의 은전이 어디서 왔는지를 의심하게 될 거였다.
범한이 이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아주 많은 준비를 했고, 이미 북쪽 장부가 말끔히 정리된 것도 확인했다. 그래서 이전에 황제 폐하가 초상전장의 돈이 어디서 왔는지 물었을 때 범한은 당시 천하를 가장 떠들썩하게 했던 소문을 이용해 대충 얼버무렸다.
바로 천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것처럼 초상전장의 신비한 지분은 당시 북제 금의위 지휘사였던 섭중이 수십 년간 비축한 비밀 재산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황제 폐하가 초상전장에 관해 말하기 전에 살짝 언빙운과 혼인한 지 채 3개월도 안 된 심 낭자를 언급한 이유는 자연히 범한에게 심씨 집안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초상전장이 반출되는 걸 원치 않으니 심 낭자를 계속 통제하라고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범한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다시 두 줄기 흘렀다. 지금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막 시작하려는 때로 날씨도 덥지 않았고, 아직 어서방 안 화로에 불을 켜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두꺼운 관복을 입고 있는 탓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범한이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히 물었다.
“폐하, 뭘 받고 싶으신 것입니까?”
황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황제는 지금처럼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때 범한이 속임수를 써서 빠져나가려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황제는 지금 범한이 쿵쿵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서량로에서 북제 밀정들을 마구잡이로 죽였다고 북제 젊은 황제가 앙심을 품은 것인가? 그래서 과거 비밀 협정을 파기하고 황제 폐하의 손을 빌려 나를 죽이려는 거야? 설마 북제 쪽에서 그렇게 할 정도로 나를 미워하고 있다고? 큰 대가를 치르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제거하려 한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범한은 겁에 질려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의 이마에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북제의 젊은 괴물은 대위 천자의 검도 미련 없이 포기하는 사람인만큼 어쩌면 전장까지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다.
온갖 생각에 잠겨 있던 범한이 곁눈질로 황제 폐하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도는 걸 확인하고는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황제 폐하가 정말 일의 내막을 알고 자신을 굴복시키려 하는 거였다면 그의 말에 불쾌한 기색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에 안심한 범한이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마른기침을 하고는 조심히 말했다.
“초상전장 시작 때 사용된 은전은······ 사실 심씨 집안의 비밀 재산이 아니라······ 소신의 개인 재산에서 나온 것입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대답이었다.
만약 일반 관리가 이 말을 들었다면 분명 범한에게 후안무치한 놈이라며 크게 화를 냈을 것이다.
초상전장은 처음 시작될 때 수백만 냥의 은전을 자본으로 사용했는데, 어느 집안에서 이처럼 많은 개인 재산을 가질 수 있단 있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황제 폐하는 이 말을 듣자 모든 게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과연 그러했군. 오 선생이 언제 너에게 돈을 건네준 것이냐?”
범한이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대답했다.
“강남에 내려가기 전에 오죽 아저씨는 제가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아셨습니다.”
범한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 선생도 무모하구나. 그렇게 많은 은전을 너처럼 젊은 사람에게 주려 하다니.”
범한이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며 황제 폐하가 자신의 추측한 것처럼 과거 섭가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범한의 얼굴에 드리운 기괴한 미소는 또 다른 말을 황제 폐하에게 하는 듯 보였다.
마치 황제 폐하가 이 돈을 탐내는 눈빛을 보이는 걸 비난하고 황제 폐하에게 자신이 강남 황실 금고를 통해 수백만 냥의 은전을 벌어다 주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거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
범한의 이런 표정을 알아챈 황제 폐하가 작은 목소리로 욕을 몇 마디 하며 억지로 분노를 참은 뒤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황실 금고는 네 모친이 남긴 것인데, 설마 짐이 그 수백만 냥의 은전을 탐낼 거라 생각하느냐? 다만 네 모친이 네게 남긴 것이니 함부로 사용하지 말도록 해라.”
범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초상전장의 돈을 사용하는 용도를 설명했다. 황제 폐하도 범한이 말하는 내용을 이미 상세히 알고 있었지만, 범한이 조목조목 설명을 해주자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지금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주었으니 앞으로는 오래된 장부를 하나하나 들춰보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황제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에 쓴다니 다행이구나. 신아는 유능한 사람이니 집안에만 가둬두려 하지 말 거라. 바쁘지 않을 때는 입궁에 짐을 보러 올 수도 있지 않으냐.”
황제의 말을 들은 범한이 속으로 자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아내를 집안에 가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임완아가 입궁을 하지 않는 이유는 범씨 집안일을 관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데다가 경도 반란을 계기로 황제 외삼촌에게 불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서쪽의 일은 네가 아주 잘 처리했더구나.”
황제 폐하가 몸을 일으키다가 문득 생각난 듯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물었다.
“오 선생이 어디 갔는지 아느냐?”
“아저씨가 어디로 가셨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범한이 재빨리 일어나며 대답했다.
“2년 전에 한 번 만난 게 전부입니다.”
“종적 감추는 걸 너무 좋아한다니까. 섭 아저씨의 기질이라도 배운 건가?”
황제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하고는 손을 내저어 범한에게 그만 가보라는 표시를 했다.
* * *
어서방 문이 마침내 열리고 범한이 평온한 얼굴로 나왔다. 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요 태감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자 요 태감이 재빨리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폐하의 기분은 어떠하십니까?”
요 태감의 물음에 안색이 어둡던 범한이 재빨리 햇빛처럼 찬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매번 입궁해 황제 폐하를 보는 게 힘들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에다가 대종사 황제의 권위감까지 더해지니 정말이지 견디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오늘처럼 간담이 서늘한 일을 겪을 때면 기분이 더욱더 안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황제가 오죽의 행방을 물었을 때 범한은 마음속에서 샘솟는 반감을 숨기기 힘들었다. 지금 다른 나라에 있던 대종사 중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명은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섭류운의 존재는 이제 경국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원래부터 하늘 위를 떠도는 구름처럼 한가롭게 천하를 떠도는 걸 좋아한 섭류운은 대동산에서 경제가 계획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아마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였다.
그러니 비록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행동했지만 지금 황제 폐하가 오죽의 행방을 묻는다는 건 오죽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범한은 그 이유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었다.
태극전의 늘씬하게 뻗은 처마를 따라 걸어가던 범한의 안색이 점점 평온해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어서방에서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처음에 황제의 벼락같은 말을 들었을 때는 놀라 허둥지둥했었지만, 이제는 자유자재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범한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전보다 훨씬 많이 성장하게 된 것이었다.
태극전 앞에 서서 구름을 품은 용의 모습이 새겨진 돌계단을 바라보던 범한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자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았다.
황제가 지금 알고 있는 일은 범한이 들켜도 무서워할 게 없는 일이었다. 비록 황제의 벼락같은 경고가 무서웠지만, 범한의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깨부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아주 많은 일들을 황제에게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다. 예를 들면 초상 전장이나 경여당 대행수 몇 명이 사망한 일이나 오죽 아저씨의 진짜 행방이나 동이성이 통제하는 작은 나라에서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 작업장과 같은 일들 말이다.
범한이 황제에게 감추고 있는 진실은 이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황제는 그의 몸 안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다른 영혼이 들어 있는 사실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자신과 똑같이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이 이 세계에 출현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천하에서 불가능한 게 없다는 경제도 이런 사실들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것들은 범한이 가진 비장의 패가 되었다. 더욱이 황제 폐하는 범한이 가진 가장 중요한 패인 상자와 오죽 아저씨가 이미 그를 떠났으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