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568
909화 실수
사실 당시에 하종위가 범무구를 받아준 건 머릿속에 계산이 빠르게 섰기 때문이었다. 범무구는 자신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고 당시 경도와 강호에 잘 알려진 여덟 가문의 장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범무구가 감찰원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2 황자의 심복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하종위가 범무구를 자신의 사람으로 받아들인 이유에는 범무구 자신의 능력 외에 중요한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하나는 범무구가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어 범한에게 맞서려 한다는 거였고, 둘째는 2 황자가 남긴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3년 전에 2 황자가 자살을 하면서 그가 조정에 뻗은 힘은 일찌감치 황제와 범한에 의해 와해하였다. 하지만 조정의 하층 관리 중에는 여전히 본심을 숨기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인의 복수를 할 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 다시 광명을 찾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종위는 이 사람들이 필요했고, 이 사람들도 하 대학사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하종위가 직접 나서서 이런 세력을 모을 수는 없었다. 그가 황제 폐하 앞에서 결백하게 행동하려면 범무구가 나서줘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종위는 밧줄 하나에 의지해 양쪽 모두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인 상황에서 무척이나 위험하게 밧줄 위를 걷고 있는 셈이었다.
범무구가 서재를 떠나고 얼마 뒤 먼저 서재를 나갔던 하종위의 먼 친척이 조심스럽게 돌아왔다.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은 상대방의 눈을 통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종위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계년과 고달의 행방을 조사하는 데 2 황자가 남긴 사람들은 동원하지 말게.”
그 사람이 공손하게 예를 갖춰 인사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까 대인과 범 선생이 한 대화를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종위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 일들은 범 선생이 모르게 하는 게 낫지.”
범무구가 모르게 하는 게 나은 일들은 아주 많았다. 방금 범무구는 하종위와 상의하면서 범한을 넘어뜨리려면 반드시 살아 있는 왕계년과 고달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하종위가 과거 2 황자가 남긴 힘만 이용해서는 겹겹이 드리운 감찰원의 안개를 뚫고 진짜 실마리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범무구는 하종위에게 직접 황제에게 말해 의심하도록 만들어서 궁정이 조사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하종위에게는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황제 폐하에게 받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 폐하는 진평평을 누구보다도 신뢰했고, 범한을 무척이나 총애했지만, 감찰원이 가진 힘이 너무 컸다. 그래서 외부에서 제어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기에, 궁정의 밀정을 감찰원에 심어두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 진평평과 범한 역시 잘 알고 있었지만, 황제 폐하 앞에서 이 일을 거론할 수가 없어서 알아서 조심할 뿐이었다.
도찰원이 감찰원과 대적하는 와중에 궁정에서 감찰원 안에 심어둔 밀정들이 3년 동안 요 태감의 손을 거처 천천히 하종위에게 들어왔다. 이로써 하종위는 어둠보다 더 어두운 힘을 가지게 되었고, 이걸 먼 친척에게 맡아서 관리하게 했다.
하종위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외부에서부터 조사하도록 하게. 감찰원이 왕계년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면 분명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뭘 조사하는지 알게 하지는 말게나.”
“만약 폐하가 대인이 조사하는 걸 알고 물으시면 어찌합니까?”
“폐하는 이런 작은 일에는 신경 쓰지 않으시네.”
하종위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계속 말했다.
“조사한 뒤에 성상께 보고해 결정을 청해야지.”
물론 하종위는 황제 폐하와 범한의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무언가를 찾아도 직접 황제 폐하에게 보고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힘들게 조사한 결과를 황제 폐하에게 은밀히 보고해 폐하가 범한이 사적으로 협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떠들썩하게 폭로할 생각이었다.
하 대인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챈 그 사람은 여러 말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서재는 다시 침묵 속에 빠졌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하종위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동은 없었지만 몇 명의 개인 고문은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문들은 후원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고, 특히 여기 서재에는 그의 심복을 제외한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다. 그는 만일 자신이 범무구를 믿을 수 있다면 이번 일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범무구를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모사의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를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하종위는 항상 모사들을 가장 의심했다. 오래전에 임약보를 무너뜨리고 출세한 그는 사실 전임 재상을 무너뜨리는 일에 자신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건 폐하의 뜻에 따라 진행된 일인데다가 재상에게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한 사람은 재상 저택에 있던 소탈하고 기품이 넘치던 모사 원굉도였다.
당시 오백안의 아내를 데리고 여기 옛 어사 저택에 머물렀을 때 하종위는 장 공주의 명령에 따라 재상 저택에 모사로 있던 원굉도와 접촉을 했었다.
그는 원굉도란 이름의 모사가 재상을 무너뜨리는 일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칼을 휘둘렀는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몇 년이 흐린 뒤 드러난 진실을 알게 된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원굉도는 사실 감찰원 사람이었다.
감찰원.
하종위는 이 일만 생각할 때면 마음에 한기가 들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감찰원의 힘이 두려웠다. 비록 지금 감찰원 내부 몇몇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되었음에도 감찰원을 알면 알수록 그의 마음속 두려움은 커졌다. 그는 자신의 집안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감찰원 1처의 첩자가 아닐까 두려워했고, 뚱뚱한 나이 많은 여종이 감찰원의 자객이 아닐까 두려워했으며, 매일 3처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독약을 타서 서서히 죽이려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는 심지어 2 황자 밑에서 있던 모사 범무구까지 두려워했다. 그가 원굉도처럼 감찰원 사람은 아닐지 의심했고, 어느 날 등 뒤에서 자신에게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날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범한을 해치고 싶어 하는 하종위는 그래서 범한이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했다. 몇 년 동안 조정에서 모두에게 존경을 받으면서도 그는 집에 돌아오면 불안감에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 속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신의 집 안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혹시 감찰원에서 보낸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그래서 하씨 집안에는 종이 많지 않았다. 그는 최소한의 종만 집에 뒀고, 부릴 사람이 필요한 부득이한 경우에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자기 고향에 있는 집안 친척들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 행동들은 오히려 그의 청렴한 명성을 더욱 드높여 줬다.
가끔 하종위는 이런 긴장되는 상황이 견디기 버거울 때면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어야 했기에 미칠 수 없었다. 게다가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는 마침내 어렴풋하지만, 눈을 자극하는 빛줄기를 발견한 상황이었다.
문을 열고 나온 그가 홀로 복도를 걸어갔다. 안색은 밝았고, 마음도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다만 가끔씩 그 여자를 떠오를 때면 눈동자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보였다.
* * *
사람들은 하 대학사가 심리적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가 곧 미쳐버릴 지경에 처해 있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다만 손씨 집안 생일잔치가 끝나고 며칠 뒤 조정 문무백관들뿐만 아니라 소문에 민감한 서생과 백성들까지 모두 하 대학사가 철저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제 폐하는 분명하게 뜻을 밝히지는 않으며 하종위에게 알아서 경도 부윤의 일을 처리하게 했다. 이는 분명 이 일을 계기로 조정에서 하 대학사의 권위와 입지를 세워주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동이성에서 돌아온 작은 범 대인이 손씨 집안 생일잔치에서 술을 마시고 황궁에 입궁해 한바탕 입씨름을 벌이고, 태학에 한번 방문하자 하 대학사는 직접 자신이 뻗은 손을 거두었다.
이 일로 인해서 하 대학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지만, 누구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이번에 상대한 적수는 조정의 6부 고위 관리나 권세 높은 귀족 자제들이 아니라 범한이었기 때문이다.
범한은 자신이 하기로 결정한 일은 반드시 해내고 마는 사람이라는 건 천하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황제 폐하는 자신의 사생아 아들을 다룰 뾰족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더구나 별것도 아닌 경도 부윤 때문에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사생아 아들과 사이가 틀어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호부에서 장부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늙은 관리가 난처해하며 경도부를 떠났고, 이부와 형부에서 조용하게 진행되던 조사도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온 엄청난 압력에 중지되었다. 문하중서 호 대학사는 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하종위가 있는 앞에서 관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몇 마디를 했다.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상당히 무거웠다.
경도 안의 상황이 분명해진 셈이었다.
시간은 이미 청명 사월절이 지나 봄 풍경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편한 복장을 한 범한이 말 위에 앉아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동쪽을 가리키며 배웅하러 나온 관리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종위와 한 차례 부딪치고 황제 폐하와 입씨름을 벌이면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범한은 최소한 자신이 가진 세력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폐하는 당분간 그의 힘을 가혹하게 뺏으려 하지는 않을 거였다. 그래서 범한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다시 먼 길을 가서 동이성의 약 냄새 풀풀 풍기는 검려 안에서 골치 아픈 일들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배웅을 나온 관리들은 인사말을 하고 아첨하는 말들을 한껏 늘어놓은 뒤 하종위의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범한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에서 내린 뒤 준비된 자신의 검은색 마차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주변은 조용해졌고, 마차 안에는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언빙운이 범한을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동이성에서 변란이 일어날 조짐이 생겨도 제가 진압하러 가지 않아도 됩니까?”
“이번에는 흑기를 데리고 들어갈 겁니다.”
범한의 미간 사이에 옅은 근심이 보였다.
“며칠 뒤 원장 대인이 고향으로 돌아가시면 대인이 저를 대신해서 이곳을 관리하셔야 합니다. 만약 대인까지도 저를 따라 동이성으로 가버리면 경도 안에서 감찰원 업무를 처리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눈치가 빠른 언빙운은 범한의 미간에 근심이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직접 묻지는 않았다.
“하종위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으니 도찰원도 한동안은 조용할 겁니다.”
“하종위를 얕보지 마십시오.”
범한이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배웅을 나온 관리들은 하나 같이 제 앞에서 하종위를 험담했습니다. 하지만 저들 중에서 하종위의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까? 관리의 지위는 폐하의 한마디에 따라 결정되는 겁니다. 폐하께서 하종위를 계속 총애하시는 이상 그는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범한이 문득 생각난 듯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게다가 그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은 범한이 계속 설명했다.
“저는 그동안 하종위가 좁은 틀 속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과 달리 의외의 일을 벌이고 있더군요.”
언빙운이 범한을 따라 웃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범무구가 하종위 저택에 있는 걸 알아냈습니다. 정말 하종위와 맞설 생각이시라면 폐하께 이 사실을 알리셔야 합니다.”
범한이 잠시 침묵한 뒤 고개를 저었다.
“범무구의 선택은 정말 의외입니다. 그때 경도를 떠나던 모습을 보면 분명 겁이 많고 죽길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2 황자가 죽자 용기를 내서 경도로 돌아와서는 복수할 계획을 세우다니요.”
그가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가 얼굴을 들고 감탄했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하려고 하다니. 범무구의 이런 고풍스러운 행동이 참 마음에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