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57
056화 난초 향기 같은
취선거는 가격이 매우 비쌌음에도 매일 사람들로 붐볐다. 거액을 줘서라도 사리리를 취하고 싶어 하는 얼간이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배가 호숫가에 정박해 있음에도 손님을 받지 않았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들이 입구를 막아서자 화를 내며 달려들려 했다. 다행히 충돌이 발행하기 전에 여주인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오늘 취선거는 전부 예약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취선거 전체를 예약하다니. 기다리던 사람들은 마지못해 돌아서며 취선거 전체를 예약한 사람은 아마 집안을 말아먹을 놈일 거라고 욕했다.
범한은 탁자에 놓인 정교한 간식과 옆에서 아름다운 손으로 건네주는 술을 마시며 스스로 집안을 말아먹을 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남 백작이 경국의 재정을 관리하는 만큼 백작가는 경국의 재정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등자경이 오늘 백작가에서 가져온 은전은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적은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범한은 속이 쓰렸다. 더구나 사남 백작이 나랏돈을 사용해 기생집을 빌린 걸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불안했다.
사실 범한이 이렇게 좌불안석하는 이유는 그가 품고 있는 여자 때문이었다.
사리리는 버들잎처럼 가늘고 긴 속눈썹 아래 검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요염함을 뽐냈다. 가장 치명적인 풍만한 몸은 안고 있으니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사리리는 범한의 가슴이 갈수록 빨리 뛰자 처음 기생집에 찾아온 풋내기일 거라 생각하며 몰래 웃었다. 그러고는 가느다란 손으로 술을 따라 범한에게 먹여 주었다.
배가 천천히 강가에서 벗어나자 사리리가 범한의 곁을 떠났다.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사리리가 옆자리로 이동하자 범한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여자를 접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이런 자극을 받으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난처한 표정으로 숨을 고르는 범한을 사리리가 특이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돈과 권력을 가진 귀족가 자제들은 대부분 열서너 살 무렵이면 집안 여종들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범한같이 순진한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그녀는 범한이 담주에서 성장하면서 여종인 동아와 혼인할 상상을 했고 이후에는 사사와 같이 살 준비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경도로 불려 왔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멍하니 범한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던 사리리가 순간 얼굴을 붉히고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앞에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놓았다.
범한은 두 번의 삶을 살면서도 기생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긴장도 하고 경험도 없어서 사리리가 말이 없는 게 경국 기생들이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라 생각하고는 자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왼손으로 은근슬쩍 사리리의 허리를 감쌀 뿐이었다.
순간 조용한 선실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한편 다른 선실은 분위기가 왁자지껄했다. 등자경이 심복 몇 명과 함께 술을 마시자 옆에 있던 여주인이 기생이 필요한지 물었다. 등자경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심복들을 무시한 채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범한 옆을 지킨 며칠 동안 자신의 능력을 보일 기회가 없었고 오늘도 기회를 얻기 힘들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흥청망청 놀면서 본분을 잊을 수는 없었다.
등자경의 단호한 태도에 여주인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어쨌든 돈은 이미 받았으니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대신 여주인이 옆에 앉아 다정하게 웃으며 말동무를 해주었다. 취선거 여주인의 이름은 사릉이었다.
그녀도 사리리와 마찬가지로 가짜 성을 쓰고 있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취선거 여주인이 된 그녀는 항상 우아함을 잃지 않았으며 일 처리도 대담하고 깔끔했다. 술을 몇 잔 들이켠 그녀가 등자경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물었다.
“풍채가 좋으신데 어느 가문 사람이신가요?”
그녀의 말에 등자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 예약할 때 범씨 가문 공자님의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사릉이 아름답게 웃었다.
“경도에서 범씨는 다섯 명문가 중 하나라서 분가한 집안만 10여 개가 넘을뿐더러 가장 부유한 집안도 서너 곳은 되잖아요.”
등자경이 껄껄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사릉이 은근슬쩍 떠보았다.
“이렇게 큰돈을 쓰시는 걸 보니······ 혹시 범 시랑 쪽이신가요?”
망루를 둘러보던 등자경이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릉이 화들짝 놀라 감탄하며 말했다.
“사남 백작의 자제분이시군요.”
사릉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뒤쪽 선실에서 사리리와 있는 젊은 공자는 최근 손님들이 자주 언급하는 사남 백작의 서자인 게 틀림없었다.
‘서자에게 이렇게 많은 은전을 내주는 집안도 있나?’
사릉이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자신이 처음 손님을 맞이했을 때 선배 언니들이 해 주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기생집 단골손님인 사남 백작 범건이 혼인한 뒤에도 기생집을 자기 집 드나들듯 해서 보다 못한 어사가 그의 품행에 대한 상소를 올렸는데, 어려서부터 그와 친했던 폐하가 눈감아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20년이 지난 뒤 사남 백작의 아들이 똑같이 기생집에서 돈을 물 쓰듯이 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더구나 기생집에 처음 왔음에도 가장 인기 있는 기생을 단박에 알아보는 걸 보면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다.
그렇게 등자경과 함께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강가에서 갑자기 붉은색 초롱이 밝혀지더니 이쪽을 향해 뭐라 외치는 사람이 보였다. 상대방이 뭐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사릉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가 빠른 등자경은 단박에 정왕가의 호위병임을 알아채고는 배를 호숫가에 붙여 사람을 맞이하라고 말했다.
배에 오른 정왕 세자가 뒤쪽 선실로 들어갔다. 화들짝 놀란 사릉은 세자를 초대해 놓고도 선실 안에서 노느라 나오지 않는 범한이 참으로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세자의 호위병과 등자경은 서로를 잘 알았기에 거리낌 없이 술잔을 주고받았다.
한편 뒤쪽 선실로 들어간 정왕 세자가 놀란 표정을 짓는 범한을 보고 말했다.
“사리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꼭꼭 숨어서 뭘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범한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세자 이홍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네놈 때문에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왔다고 말할 줄 알고?’
정왕 세자는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
“담주에서 자라 경도의 규칙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원래 집에서 식사한 뒤에 나와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기생집에 가는 걸 야경을 감상한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범한은 그런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세자와 건배를 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서로 죽이 잘 맞았다. 황가 사람임에도 거만하지 않은 정왕 세자와 일반 귀족과 다르게 소탈한 범한은 스스럼없이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술잔이 몇 차례 오가면서 서로 가까워지자 세자가 담주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했다. 범한이 평범한 일상에서 겪었던 일들을 몇 가지 말해 주었다.
분위기는 점차 화기애애해졌지만 선실 안에서 유일한 여자인 사리리는 누구의 시중을 들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비록 배를 통째로 빌린 것은 범한이었지만 신분상으로는 정왕 세자가 훨씬 높았다. 그래서 그녀는 만일 범한이 자신에게 세자의 시중을 들라고 말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왕 세자가 그런 사리리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기생집을 항상 드나들었기에 멀리서 사리리를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리리를 보자 마음이 약해진 정왕 세자는 범한 옆에서 시중을 들라고 말했다.
이에 여주인 사릉이 눈치껏 가장 어리고 인기가 좋은 원몽을 불러 들여보냈다. 두 기생이 각자 탁자 왼쪽과 오른쪽이 앉아 세자와 범한의 시중을 들었다.
점점 술기운이 오르고 밤이 깊어지자 정왕 세자와 범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밤하늘 밝은 달을 감상하던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각자 기생을 데리고 선실로 들어갔다.
* * *
붉은 초가 비단처럼 아름다운 사리리의 눈을 비췄다. 범한의 품에 안긴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의 손바닥을 긁었다.
범한이 침착하게 소매에서 자신이 만든 환약을 꺼내더니 가볍게 부스러뜨렸다. 곧이어 마취 약의 난초 향기가 선실에 그윽하게 퍼지자 사리리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정신을 잃었다.
놀잇배가 강가에 멈추자 정왕 세자가 뱃전에 서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야경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을 바라봤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원몽이 물었다.
“범 공자는 뭘 하러 간 거지요?”
세자가 원몽의 차가운 코를 톡톡 건드렸다.
“내 앞에서 순진한 척하는 건가?”
그러자 원몽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범 공자가 뭘 하러 가든 세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군요.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사리리 언니가 걱정이에요.”
“내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는 건 그가 총명하다는 의미이지.”
정왕 세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방패막이로 쓰려고 나를 데려오기는 했지만 나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피하지 않는 거야.”
그러더니 원몽에게 물었다.
“범 공자가 사리리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나?”
정왕 세자를 잘 아는 원몽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저는 범 공자가 사리리 언니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리리 언니를 버려 두고 다른 일을 하러 가서 조금 놀랐어요.”
원몽이 어린 기생답지 않게 입을 가려 웃으며 말했다.
“그래, 범 공자가 다시 취선거에 올지도 모르니 사리리와 자주 교류하도록 해.”
정왕 세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 알겠어요.”
원몽은 지시에 고분고분 답하면서도 세자가 범한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궁금했다.
정왕 세자가 원몽의 옷 안에 손을 넣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범 공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니?”
“호부 시랑 범건 대인이 애지중지하는 서자잖아요.”
맑고 투명한 눈동자로 세자를 바라보며 대답하는 원몽의 목소리는 새끼 고양의 울음소리 같았다.
“저희도 세자께서 경국의 돈과 식량을 장악하고 싶어 하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정왕 세자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야심은 없어. 그저 단순히 범 공자가 좋은 사람이라서 교제하는 것뿐이야.”
이 말의 일부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정왕 세자는 백작가와 재상가가 몰래 추진하는 혼사를 알고 있었다. 이것은 범한이란 젊은 청년이 훗날 황가 배후에 있는 거대한 상업을 관리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2 황자가 황태자와 황위를 두고 경쟁할 때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었다.
* * *
오늘 곽보곤은 시 모임에서 망신을 당해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에 밤에 술집에 가서 기분 전환을 하고 돌아가던 그는 집 안에서 고지식한 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하니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그가 내일 황태자와 뭘 하고 놀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가마가 멈춰 서더니 땅에 떨어졌다.
가마가 갑자기 기울어지자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던 곽보곤은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그가 아픈 머리를 감싸며 크게 소리쳤다.
“쓸모없는 놈들, 가마도 제대로 들지 못해!”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밖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당황한 곽보곤이 가마에서 허둥지둥 기어 나왔다.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니 집에 갈 때 항상 지나는 외양간 거리였다.
바로 그때 복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세 남자가 가마를 둘러쌌다. 호위병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땅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도적 떼를 만났다고 생각한 곽보곤은 겁에 질려서는 경도 치안이 언제부터 이렇게 나빠졌나 생각했다. 그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하는 놈들이냐? 원하는 게 뭐야?”
밤이 깊은 뒤라 인적이 드문 외양간 거리에 행인이 나타날 리 만무했다.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오지 않을 걸 안 곽보곤이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범한이고 당신을 때릴 거요.”
놀란 곽보곤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뭘 보기도 전에 마대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순식간에 시선이 가려진 그는 사악하게 웃고 있는 범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마대 속 상쾌한 향기가 술기운에 혼미했던 곽보곤의 머리를 맑게 깨어나게 했다. 인정사정없이 발길질을 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이 또렷해지다니 가혹한 일이었다. 곧이어 무자비한 발길질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