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579
920화 신묘, 개미, 책자
“음……. 예전에 소은을 북제로 데려갔을 때 자네 어머니와 오죽이 신묘에서 온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되었을 텐데. 설마 신묘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이야? 그 신인지 귀신인지가 사는 곳이 어지 생겼는지 안 궁금했던 게야?”
사고검이 두 눈을 부릅뜨고 범한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은 마치 범한의 진짜 생각을 알아챈 것 같기도 하고 또 그에게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범한은 살짝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사고검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혹시라도 기회가 생기면 가보고 싶기는 합니다. 하나 일단은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입니다. 한데 대인의…… 말씀을 듣고 보니, 많이 궁금하신가 봅니다?!”
사고검은 인간계 절정의 고수였고, 오죽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신묘가 지닌 힘의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이에 하늘을 떠다닌다는 신묘에 대해 그는 세간의 필부필부처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심이나 설설 기는 태도를 지니지는 않았다.
사고검은 대종사이니, 실력만 놓고 보면 신묘와 대등하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묘에 대해 말하는 그의 어투에서는 공손함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담담하게 무시하는 태도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다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대종사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뿐이었다. 특히나 임종을 앞두고 있는 대종사라 세상의 모든 일에 담담했지만, 그래도 유독 신묘에 관해서만큼은 호기심과 엿보고 싶은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필경 이 세상에서 신묘에 가본 건 소은과 고하 둘 뿐이고, 더군다나 이 두 노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어쩌면 섭경미와 오죽도 신묘에서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섭경미는 이미 죽고 없고, 오죽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더는 물어볼 수 없는 노릇 아니던가.
하늘 밖에 있는 신묘의 비밀은 이 세계에서는 여전히 최대 비밀이었다. 그래서 범한을 바라보고 있는 사고검의 눈빛은 차분한 가운데 한 줄기 이채가 숨어 있었다. 현재 신묘의 소재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젊은이란 걸 사고검은 알고 있던 거였다.
“소은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오죽 아저씨는 줄곧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지요. 그 점은 대인께서도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범한이 부드럽게 말을 이어 갔다.
“신묘는 북극 쪽에 있습니다. 북제 천관을 지나간 후 설원으로 덥힌 동토를 지나 수개월 동안 대낮에도 밤이 이어지는 곳까지 가야 합니다. 운이 좋으면 웅장하고 조용하고 위엄이 서린 흑청색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신묘라 했습니다.”
사고검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드디어 신묘의 위치를 알게 된 거였으니 소원을 이룬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차분해져야 맞는 건데, 두툼한 이불 아래에 있는 그의 자그마한 몸은 은근히 슬퍼하는 기운을 발산했다.
“북극 땅, 종일 햇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니. 설마 그곳은 저세상에 있는 저승인 것인가?”
말라붙은 오래된 우물 같았던 그의 눈동자에서 서서히 잔주름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과연 이 세상이 아니었구나. 가보고 싶구나. 가보고 싶어.”
“네…….”
범한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리고 이불 위로 삐져나와 있는 말라붙은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서 점점 어떤 광채가 도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신묘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고 임종을 앞둔 대종사에게 갑자기 집념 같은 게 생긴 간기?
범한은 백야니, 극야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 세계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골치 아프게 주저리주저리 말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이왕 사고검이 신묘가 인간 세상이 아니길 바라고 있으니, 어쩌면 그러한 인식 체계를 갖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에게 그와 같은 세계관을 간직하도록 해주고 싶어서였다.
“……가보고 싶어.”
사고검이 찬탄을 내뱉고는 말을 이어 갔다.
“예전에 대동산 일이 순조롭게 끝나면 세상을 떠돌며 신묘를 찾아가려 했었지.”
“사람이라면 미지의 것에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지요.”
범한도 그와 같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고검이 눈꺼풀을 살짝 가느다랗게 떴다. 그런 후 싸늘한 검처럼 천장을 찌르듯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저 내가 지니고 있는 검으로 그 오래된 사당을 부숴버릴 수 있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신묘를 부숴버리다니!
놀란 마음을 수습한 범한은 이내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사고검이 그 하늘 밖에 있는 사당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소은과 고하처럼 누구나 지닌 미지를 향한 탐구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대종사는 신묘에 도전하고 싶어서였다니!
칼 한 자루 등에 메고 느긋하게 설원으로 나아간 후 청산을 지나 큰 문으로 들어가 하늘에 있는 사당에 검을 겨누고 구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처단하려 했던 거라니!
어떻게 이렇게나 호방할 수 있는 거지? 만약 대동산에서의 일이 정말로 고하와 사고검의 계획대로 천하 3자구도로 확정되었다면, 이 세계에 싫증을 느낀 사고검은 어쩌면 천도(天道)에 도전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천도는 이 세계에서 쓰는 대명사로, 자연스레 신묘를 가리키는 거였다.
사고검이 신묘에 검을 겨누는 장면이 눈에 선하자, 침착했던 범한도 마음이 살짝 동요되었다. 하지만 그도 알다시피, 이 모든 건 이미 대동산에서 황제 아버지가 펼친 왕도의 일격으로 끝난 거였다. 사고검의 일생도 끝나 신묘로 가 그곳에 검을 겨누지도 못하게 된 거였다.
“신묘에 갈 건가?”
사고검이 느닷없이 범한의 눈을 주시하며 물었다.
“저는 신묘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악감정 같은 것도 없습니다.”
범한은 전생에 종교의 후안무치한 행동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었다. 그래서 비교를 해봤을 때, 경국이란 세계의 신묘는 저 멀리 구천(九天) 밖에 있어 인간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으니, 범한에게는 이러한 품격은 비교적 받아 들일만 했다. 더군다나 신비한 느낌까지 있어 확실히 자신에게는 대단한 저항감 같은 건 없었다.
“신묘가 인간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사고검이 미소 지은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하면 네 어머니는 어찌 이곳까지 온 걸까? 또 이 천하는 어떻게 변하게 된 걸까? 왜 경국 황제가 지금의 경국 황제가 된 거지? 어쩌면 저 높은 곳에 있는 신묘 속 사람은 정말로 싸늘하게 모든 걸 방관만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한데 이 거대한 대륙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우리인데, 왜 저들에게 우리의 삶을 지켜보도록 해야 하는 거지?”
“진짜 기분 나빠진다고.”
“여러 해 전에 커다란 푸른 나무 아래에서 개미가 이사하는 걸 보고, 또 개미들이 싸우는 걸 보고 있던 걸 생각하게 만든단 말이지.”
사고검이 싸늘하게 말을 이어 갔다.
“하나 나는 개미가 아니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싫다고.”
범한이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대꾸했다.
“만약 훗날 어느 날 말입니다. 제가 신묘로 가게 된다면 대인의 유골을 등에 업고 가겠습니다.”
사고검이 두 눈을 감고 말했다.
“네 녀석 말 중에 진짜였던 건 지금껏 거의 없었단 말이야.”
대종사의 말투가 순간 아이처럼 변해 있자 범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저는 대인과 같은 천하 살신도 아닙니다. 또한 신을 도륙할 용기와 실력도 없지요. 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신묘로 가서 자기 파멸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살짝 머뭇거리다가 범한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 갔다.
“물론, 장래 일을 아는 사람은 없겠죠? 그런데도 만약 어느 날 말입니다, 제가 대인의 유골을 신묘 돌계단 위에 뿌려 신선의 발을 다치게 한다면 그 역시 대인의 바람을 이뤄준 셈이지요.”
사고검이 대답했다.
“나를 화장할 때 불을 너무 세게 잡지 말거라. 내 몸에는 원래 뼈 자체가 얼마 없어. 만약 다 가루가 되어 버린다면 남는 게 없지 않니. 그래도 큰 뼈마디는 남겨둬야지!”
그러자 범한이 대꾸했다.
“확실히 주의해야 할 문제이긴 하군요.”
생과 사 사이의 큰 공포가 공포에 잠식당하자, 사고검과 범한은 오히려 웃으며 뒷일, 유골, 불길 세기, 매장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편하게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범한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기고 말았다.
노을이 거의 절반 정도 내려올 무렵, 해풍이 성으로 불어와 천리를 어루만진 후 곧장 오두막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이에 검려 내 조용한 방 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검갱 안에서도 천만 자루의 검이 동시에 몸을 떨며 딩당, 하는 소리를 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였다.
사고검이 매우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빛은 범한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벽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미 생의 말기에 접어들어 흡혈도 할 수 없고 날아갈 수도 없는, 집착으로 백치가 된 다리가 긴 모기나 바라보며 그는 다시 길고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범한이 그의 곁에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몸을 구부렸다. 그런 후 사고검 귓가에 대고 십가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십가촌은 북제와 동이성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훗날 제대로 성장을 하려면 검려의 강력한 지원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십가촌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동이성에게 큰 이익을 안겨다 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범한의 생각과 달리, 섭가가 동이성에서 두 번째 전쟁터를 열거란 소식을 듣고도 사고검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벽 한쪽 구석만 바라보며, 자기 사후에 동이성이 어찌 변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순간 범한은 사고검의 임종 직전 마음과 관련해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사고검은 범한에게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가르쳐준 적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사고검이 갑자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베개 아래에 작은 책자가 있다. 고하가 죽기 전에 청산에서 나에게 보내준 거지. 자네에게 주라고 말이야. 책 위에 있는 게 뭔지 나는 알지 못해. 그러니 자네가 알아서 이해했으면 좋겠군.”
범한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책에 대체 무엇이 쓰여 있기에 두 대종사가 죽기 전에 이리 진지하게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였다.
범한이 한동안 사고검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다 침대 머리 쪽으로 몸을 살짝 이동한 후 대종사가 베고 있는 배게 밑으로 손을 뻗었다. 이 동작은 대단히 천천히 이루어졌다. 그래서 범한은 손등으로 배게 속을 채우고 있는 보리 껍질과 배게 위로 무기력하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닿았다. 이에 범한의 손가락은 그것을 다시 한번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거친 천에 싸여 있는 작은 책자였다.
손을 거둬들이며 책을 꺼내온 범한은 곧장 천을 풀어 젖혀보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책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예측과 맞혀보려 했다. 이건 고하 국사의 유품으로 사고검의 손을 통해 엄숙하게 자신에게 건네진 것이니…… 분명 희귀한 보물이겠지. 더군다나 얇은 책자이니, 분명 책 안에 쓰여 있는 내용이 진정한 보물일 것이었다.
사고검은 범한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벽 한쪽 구석만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범한이 자기 곁에 없는 것처럼, 그리고 앞서 범한이 자신의 뒤통수 쪽으로 손을 뻗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결국 범한은 강렬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고검 앞에서 천을 열어 안에 있는 내용을 보았다. 그런데, 상상과는 달랐다. 사고검이 한 말과도 달랐다. 안에 든 건 한 권으로 된 작은 책자가 아니었다.
두 권으로 된 작은 책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