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599
940화 필사적으로 싸우다 (1)
고달의 눈동자가 살짝 수축한 채로 앞에 있는 태감을 주시했다. 황족을 암암리에 호위하기를 여러 해. 그는 눈앞에 있는 궁정 고수에 대해 알고 있던 터라 순간 ‘설마 요 태감도 달주에?’라고 생각한 거였다.
고달이 깊이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요 태감이 친히 왔다 하더라도 그는 두렵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궁에서는 자신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는 뜻이니, 자신이 분명 무시무시한 곤란에 직면하게 될 것임은 알 수 있었다.
태감이 가볍게 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리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요 태감께서는 안 오셨다. 이건 조정의 일이다. 하여 내가 하 대학사의 명으로 일을 하고 있지.”
고달이 그를 쓱 바라보고는 경계하며 뒤로 반 발자국 물러났다. 그리고 주변을 쓱 훑은 후 잡고 있던 아내를 더 꽉 쥐었다. 태감의 말을 통해 고달은 알 수 있었다. 조정에서는 자신이 죽었다고 믿지 않고, 더 나아가 줄곧 암암리에 자신을 찾고 있던 거였다.
그 사이 태감 둘이 성문 옆 그림자에서 걸어 나왔다.
고달이 우두머리로 보이는 태감을 주시하며 말했다.
“너는 내 적수가 아니다.”
궁정 고수 3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특히 제일 앞에 있는 자는 지금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복잡했다. 그들은 이번에 형부 13관아의 명수들을 따라 달주 부근에서 일을 하던 중 하 대학사가 3년 전 대동산에서 도망간 자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게 된 거였다. 그런데 그게 호위 고달이었다니. 태감들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형부 관원들은 이미 사방에서 포위를 마쳤다. 고달의 칼에 다친 사람을 제외해도 수십 명은 족히 되었다. 현 상황을 보니, 고달은 날개가 있다 해도 날아갈 수 없을 터였다.
태감이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앞서 고달과 서로 손을 마주쳤을 때 내경(內勁: 내공을 의미)의 반발력으로 그는 이미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에 고달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자연스레 기피와 감탄의 빛이 살짝 섞여 있었다.
“정말로 살아 있었다니. 진짜 생각지도 못한 일이군. 그동안 줄곧 행방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말이야.”
태감의 눈빛은 살짝 혼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납고 차가웠다.
“오늘 운이 좋아 너와 마주쳤으니, 더는 도망갈 생각 말거라.”
말을 마친 태감은 변검(變臉)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냉혹한 낯빛으로 변해 있었다.
고달은 일찌감치 궁정 고수들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그냥 차분히 지켜보고 있다가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나를 살려둔다면, 너희들은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대가를 치르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다.”
태감이 고달 옆에 있는 아름다운 아낙을 쓱 보고는 괴이한 웃음을 지었다.
“너나 감당하지 못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니라.”
“투항하거라. 자신에게 더는 살길이 없다는 걸 알지 않느냐. 무엇하러 옆에 있는 사람까지 연루시키려 그러느냐?”
태감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석양은 이미 산 아래로 내려가 무력한 노을빛만 일부 남겨 놓은 상태였다. 이에 온 성에 어둠이 내려앉아 어두컴컴하니 사람 형체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고달 눈에 갈등, 비애가 비추었다. 그가 한동안 침묵한 후 느긋하게 말했다.
“만약 너희들에게 잡힌다면, 나에게는 활로가 없을 터. 그렇다고 설마 이 여인에게는 활로가 있을까?”
태감이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꾸했다.
“성인이라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네 가슴팍에 있는 아이의 생사도 황궁에서 결정할 사항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목숨 걸고 싸우면 안 되는 것인가?”
“너희들은 지금 죽을 필요 없고, 며칠 더 살 수 있어서다. 아이의 경우도, 어쩌면 젊은 대인께서 알게 되시면 너 대신 살려주시겠지.”
태감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후 고달을 잠시 바라보았다.
젊은 대인? 고달의 눈에 망연자실함이 스쳤다.
‘만약 작은 범 대인께서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지금 달주 성문 앞에서 포위당한 상태란 걸 아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그리고 내 품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아신다면 어찌 해주실까? 나는 군주기만죄를 저질렀으니 당연히 죄를 면할 길은 없겠지. 하나 품 안의 아이는 분명 작은 범 대인께서 살려주실 수도 있겠지?’
둘러싸고 있는 형부 관원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검객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 눈빛에는 공포가 실려 있었다. 앞서 성문에서 일전을 치를 때 불과 숨 몇 번 쉬는 사이 동료 6명이 저 검 아래 참담하게 죽어서였다.
그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처를 데리고 있는 검객이 말로만 듣던 호위임을 알고 있었다. 소문으로는 대동산에서 사고검이 호위들을 깔끔하게 없애버렸다고 했는데.
이미 포위를 마쳤는데 왜 바로 달려들어 저자를 토막내놓지 않는 걸까? 모두들 불안한 나머지 이런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들도 알다시피, 하종위 대학사가 이번 극비 조사에서 최종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건 저들 궁정 고수 셋이었다. 그러니 저들이 공격 않고 기다리는 이상 자신들도 일단은 차분하게 있는 게 상책이었다.
어쩌면 고달이 계속 몸부림치고 머뭇거리는 걸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고달과 이야기를 나누던 궁정 고수의 낯빛이 차분해지더니 그가 엄하게 꾸짖기 시작했다.
“너는 원래 황가 호위인데 어찌 대동산에서 군왕을 호위하지 않고 도망간 것이냐. 그것은 반역이다! 썩 무릎을 꿇지 못할까! 설마 계속 반역을 저지를 셈이냐?”
고달의 낯빛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대동산에서 사고검이 하늘을 날며 검으로 습격을 해왔을 때의 장면이 다시 눈앞에 선하게 떠올라서였다. 그때 꼭대기로 올라가는 긴 계단에서 동료들의 사지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산속 바위 사이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렸었다.
그는 호위 통령으로 백여 명에 달하는 호위 중 최고의 실력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라고 주입받고 자란 터라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꼬박 3년 동안 범한을 따라다니다가 눈이 트이고 말았다. 제일 중요한 건 그의 성정과 인생관이 범한으로부터 너무 많이 영향을 받았다는 거였다.
범한은 늘 따스했다. 하지만 평소 자잘한 것들에 대해 말할 때면 자기 주변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여운을 남기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고달은 유사 이래 전투 시 도망 친 첫 번째 호위가 된 거였다.
궁정 고수가 대동산 일을 언급한 건 그의 전의를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얗게 질렸던 고달의 얼굴은 금세 차츰 정상 낯빛으로 돌아와 어느새 싸늘한 기운을 뿜으며 상대를 노려보기에 이르렀다.
“군왕을 호위하지 않고 도망갔다고?”
대동산에서 도망가기로 결심했을 때, 고달은 내적 갈등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3년 동안 경국 민간을 떠돌면서 그때 한밤중에 했던 생각과 주워들은 자잘한 소식들 때문에 그때의 일에 대해 수도 없이 많이 생각해보았었다.
고달이 화를 내며 칼을 내리치듯 싸늘하고 날카롭게 말했다.
“대체 내가 황제 폐하를 버린 것이더냐, 아니면 황제 폐하께서 나를 버린 것이더냐?! 대동산에서 백 명의 호위가 적의 손에 전멸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사고검의 살의를 소모시키기 위해서였고!”
고달은 분노해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리고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나는 호위다. 나는 내 목숨을 걸고 황제 폐하의 안위를 지키려 했다. 하나 그런 개같은 이유로 헛되이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 죽게 된 거, 제대로 죽어야겠다!”
고달이 칼자루를 잡고 있는 손에 서서히 힘을 주며 아내를 자기 옆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리고 황궁 고수를 노려보며 매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는 단지 동료들처럼 헛되이, 멍청하게 죽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게 뭐 잘못되었다고 이러느냐!”
그러자 고달의 말을 받아치는 궁정 고수의 음성도 날카롭게 떨리는 음성으로 변해 버렸다. 달주성 성문 근처에서 호위로부터 대역무도한 말을 듣게 된 게 너무 의외인 듯했다. 궁정 고수가 분노에 차 날카롭게 꾸짖었다.
“군왕이 신하에게 죽으라 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 호위의 몸으로 이리 대역무도한 말을 하다니. 그야말로 구제불능이구나!”
“대역무도한 일은 이미 하였는데, 말 한 번 더 한 게 뭐 그리 대수더냐!”
이 순간 고달은 온몸이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황제 폐하를 향한 원망을 쏟아낸 거였다. 그렇다. 호위는 황가가 키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졸개이자 싸움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미 독립적이고 자주적 위치에 선 고달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마음대로 죽고 싶은 거였다!
고달이 아내를 업고 끈을 두르고는 양손으로 있는 힘껏 끈을 동여맸다. 그가 이와 같은 동작을 할 때 성문 쪽에서 공격에 나서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바짝 긴장한 채 궁정 고수가 입을 열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오늘 항명하면 작은 범 대인께 누가 된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이냐?”
궁정 고수가 양손을 천천히 떨며 기를 모으고 있다가 느닷없이 고달의 심적 허점을 찌르는 말을 던졌다.
고달이 싸늘하게 웃었다.
“범한 따위가 뭐라고. 누가 되라면 되라지. 천자 가문에 어디 좋은 사람이 있다고 그러느냐?!”
궁정 고수의 낯빛이 살짝 변했다. 마치 고달이 이런 말을 할 줄 예상 못한 듯했다. 그리고 ‘설마 상대방은 정말로 작은 범 대인에게 아무런 정과 의리도 없는 걸까?’라며 의심했다.
물론 당연히 그런 건 아니었다. 궁정 고수가 요 태감의 명으로 자신을 잡으러 온 게 아니라고 말했을 때 고달은 이번 일이 무언가 수상쩍었다.
그리고 하 대학사란 이름을 듣는 순간 상대방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즉각적으로 알아차려 버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 대학사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차린 거였다.
조정이든 민간이든 경국 조정에서 작은 범 대인이 하 대학사를 찍어 누르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었다. 하 대학사는 황제 폐하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작은 범 대인과 맞서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두 세력은 물과 불의 만남이었으나 줄곧 황제 폐하의 압박으로 아직까지 폭발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작은 범 대인의 능력과 실력 앞에서 하종위 따위는 그분을 격퇴할 만한 방법을 전혀 찾아내지 못할 거란 걸 고달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작은 범 대인은 자체적으로 아무런 결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뜻밖에도 대동산에서 도망쳐 살아남은 자신이 범한 대인의 결점이 되고 만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종위는 그저 고달이나 왕계년을 잡고 싶어 할 뿐, 두 사람을 모두 잡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고달을 잡기만 한다면, 범한의 허점 하나를 잡은 것과 같아서였다. 비록 범한은 고달이 그 허점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고달이 아내의 몸을 위쪽으로 밀어 올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갈수록 살의가 짙어지는 눈으로 궁정 고수를 주시했다. 만약 지금 이 상태로 조정에 생포된다면, 하종위가 작은 범 대인에게 대응하는 용으로 자신을 이용한다면, 어떤 위해가 초래될까?
고달은 범한을 오랫동안 따랐기 때문에 그에 대해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작은 범 대인은 냉혹하고 무정해 보여도 실은 잘못을 잘 감싸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주변인의 잘못을 감싸주는 건 진 노원장과는 구별되는 점이었다. 범한은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진실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니 조정에서 자신을 생포한다면, 어쩌면 작은 범 대인은 금기를 깨고서라도 자신을 구하려 들 수 있었다.
고달은 작은 범 대인이 자기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투항 않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결정했다. 차라리 달주성 성문 앞에서 죽을지언정 잡히지는 않겠노라, 며칠 더 살겠다고 그분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업고 있는 아내와 가슴팍에 있는 아이에게는 몹쓸 짓이긴 하지만 말이다.
고달의 눈에 절망, 깊은 양심의 가책이 잠시 스치더니 그가 칼을 꽉 쥐고 포효하고는 앞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