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06
947화 밤바람을 타고 들리는 바퀴 달린 의자 소리 (1)
어두운 밤 달주를 횃불이 포위했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빛이 반짝였지만, 아래는 불빛으로 가득해서 백주대낮처럼 밝았다. 감찰원의 전임 원장이자 경국 황제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종이자 가장 가까운 신하인 진평평이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관도 양옆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경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 표정에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고, 국화 모양의 주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마치 황토 평원 위를 빗물이 천 년 동안 쓸어 만들어진 경이로운 풍경을 볼 때처럼 위엄이 느껴졌다.
마른 고목처럼 늙고 야윈 두 손으로 진평평이 양털 담요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가 무릎 위에 덮고 있는 양털 담요는 항상 부드럽게 편안해서 진평평은 매번 쓰다듬을 때마다 주제에 맞지 않는 복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평평은 궁정 태감의 입을 통해서 달주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감찰원 부하의 보호를 받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도망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다.
‘고달이라고?’
진평평에게 이 이름은 익숙하지도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은 이름이었다. 고달은 범한이 데리고 다닌 호위 중 한 명이었으니 말이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조정이 체포 명령을 내린 도망자를 바라보는 진평평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감찰원은 고달이 살아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진평평이 속으로 한숨을 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범한은 위풍당당한 호위 우두머리까지도 자기 목숨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거야. 세상일에 무관심해 보이는 안지에게 이런 마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진평평이 방금 전 혼잣말로 말했듯이 모든 게 교묘한 우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지만, 우연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정해진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일 뿐이었다.
오늘 감찰원의 검은색 마차 서른 대가 자연스럽게 달주를 지날 때 달주의 성 밖에서 조정에서 도망자를 체포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또 아주 공교롭게도 도망자는 과거 범한의 심복이었던 사람이었다.
우연인 듯 보이지만, 달주성 밖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에는 다른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하 대인이 도망자를 찾아냈구먼. 정말 대단하네.”
진평평이 마른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뒤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늙은 종이 그의 바퀴 달린 의자를 밀며 사람들 사이를 걸어갔다.
바퀴 달린 의자가 관도 지면을 누르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오도독 오도록’ 하는 소리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궁정 태감 하칠간은 황궁 안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성격이 음침하고 무뚝뚝해서 황궁 귀인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았고, 이에 지금까지도 중요한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궁 안에서 수십 년 동안 버티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상황에 따라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진평평이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된 그가 두 명의 태감과 형부 13관아 고수들에게 포위를 느슨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하칠간은 진 원장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오늘 진 원장을 만나게 된 이상 순조롭게 도망자를 잡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미 관직에서 물러난 진 원장이 별 볼 일 없는 도망자 한 사람 때문에 폐하의 명령을 거역하는 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쨌든 진 원장은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두 가지 일을 놓치고 있었다. 하나는 진평평이 고달이 범한의 심복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거였다. 범한은 다른 사람이 자기 사람을 공격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고, 황궁에서 보낸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 번째는 진평평이 복잡한 감정에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진평평은 의식이 혼미한 도망자 고달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못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감찰원의 응급처치 실력이 훌륭한 덕분에 고달은 마침내 피바다 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차렸다. 그가 심각한 중상을 입은 건 모두 아내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살을 깊이 찌르는 칼날들을 그는 몸뚱이와 팔로 막아내었다.
막 깨어난 고달은 눈부신 불빛에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그의 눈에 바로 앞에 있는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와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고달은 진 원장을 몇 번 만나보지 않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고, 더욱이 진 원장의 지금과 같은 살짝 근심 어린 복잡한 눈동자를 본 적이 있었다.
벙어리 아내는 남편이 깨어난 걸 보고는 기뻐하면서 아이를 안고 남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주변에 감찰원 관리들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시했다. 일반 평민 신분인 고달의 아내는 지금 상황이 얼마나 미묘한 상황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사람을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상황이 크게 변화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시작은 진평평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 주변 상황을 살펴보던 고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진평평이 작은 범 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려 한다면 하종위가 이 일을 계기로 범한을 수렁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진평평까지도 난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달이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면서 결연한 눈빛을 짓더니 순식간에 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태양혈을 공격했다.
먼저 도망을 치려 한 건 아내와 아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경국의 강력한 국가 기관 앞에서도 그는 끈질기게 살아남으려 했다. 도저히 살아남을 방법이 없을 때까지 버티고 버텨서 살아남으려 했다.
그리고 지금 자살하려는 이유는 자신이 살아 있으면 진평평,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진평평이 작은 범 대인을 보호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진평평은 그런 그를 보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흥미롭다는 눈빛을 짓다가 세상일을 모두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퍽’ 소리와 함께 고달 옆을 줄곧 지키고 있던 감찰원 관리가 가볍게 자살하려는 고달의 행동을 막았다. 그가 고달을 바라보며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간신히 3년 동안 목숨을 부지하면서 귀한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까지 두게 되었는데 어찌 이리 급히 죽으려 하시는 겁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고달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힘들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관리의 얼굴은 그가 생각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다만 감찰원 관리의 말투와 장난기 어린 눈동자를 본 고달은 즉시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챘다.
고달이 마른 입술을 살짝 움직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귀신을 본 듯한 눈빛으로 감찰원 관리를 바라보던 그가 한참 뒤에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자네도…… 살아 있었군.”
감찰원 관리가 살며시 웃으며 그의 몸을 두른 붕대를 꽉 조이고는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살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원장께서 여기 계시니 대인의 생사는 대인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진평평은 살짝 피곤한 듯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고, 마차 양옆에는 진원 여자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수줍어하거나 겁내 하는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고 그저 웃고 떠드는 목소리만 점점 커졌다.
진 원장이 실눈을 뜨고 고달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는 대단한 인물이 아니야.”
고달이 화들짝 놀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 원장을 바라봤다.
진평평이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술을 움직여 말을 했다.
“자네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네. 그래도 자네는 사는 게 가장 좋겠군.”
고달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감찰원 관리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형부 고수들과 하칠간을 포함한 궁정 태감 세 명까지 모두 진평평의 말에 교묘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감지했다. 호위 고달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본분을 저버리고 도망친 대역죄인이었고, 이에 하 대학사가 많은 시간을 들여 남몰래 조사한 끝에 마침내 행적을 알아내 잡아내었다. 그런데 감찰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진평평은 고달을 잡을 필요도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말했다.
하칠간이 조용히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달주 지주 대인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진평평에게 공손히 인사한 뒤 성에 들어가 쉬라고 청했다.
조정 관리들은 특수 기관인 감찰원을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진평평이나 범한이나 조정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는 인물들이었으므로 경국 문관들은 알맞은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달주 지주 대인에게 진 원장에게 가까워질 기회이자 훗날 소공야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니 관리로서 그는 조금의 실수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조정에서 도망자를 체포하기 위해 궁정과 형부 사람을 보낸 일 같은 건 관심 없는 일이었다.
진평평은 달주 지주 대인을 무시한 채 고달을 계속 주시하며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진평평은 고달이 갑자기 등장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종위가 암암리에 고달과 왕계년을 조사해 온 일을 감찰원에 감출 수는 있었어도 황제 폐하까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황제 폐하가 진평평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시기에 맞춰 꾸민 일이었다. 도대체 황제 폐하는 무슨 이유에서 이런 계획을 꾸민 것일까?
바로 하나의 이유, 하나의 핑계, 하나의 질문을 위해서였다.
경도에 있는 경제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진평평에게 묻고 있었다. 도망자의 보잘것없는 목숨을 이용해 진평평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황제는 진평평에게 충성할 줄만 아는 검은 개가 맞는지 아니면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움직이는 권신인지를 묻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움직이는 권신의 끝이 좋을 리 없었다. 전임 재상 임약보처럼 말이다. 깨끗하게 자리에서 물러난 임약보는 오주에서 숨어 있으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황제 폐하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진평평은 평범한 신하가 아니었기에 이런 점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황제 폐하가 자신이 황제 폐하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할 뿐이라는 걸 알았다.
진평평이 갑자기 웃었다. 약간은 기괴한 웃음이었다. 밤바람에 흔들리는 불빛 아래 보이는 진평평의 웃음은 현공 사당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국화꽃처럼 차가운 바람을 두려워하거나 속세에 연연하지 않은 채 활짝 만개한 모습이었다.
“고달의 상처를 치료해 주게.”
그가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경도 조정에서 도망자를 체포하라고 보낸 수십 명의 사람과 달주의 수백 명의 아속과 군사들은 진평평이 이 일에 개입하려 한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서른 대의 검은색 마차 안에 타고 있는 감찰원 검수와 밀정들을 대적할 힘이 없었기에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모두들 겁에 질린 눈알을 굴리며 어둠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힘을 떠올렸다.
만약 진평평이 고달을 보호하려 한다면 아마도 황제 폐하는 그의 체면을 봐줄 거였다. 하칠간과 십삼 관아 고수들은 무척이나 난처해하면서도 감히 진평평 앞에서 반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반대해도 효과도 없을뿐더러 반대를 할 능력도 없었다. 하칠간은 목구멍이 마르면서 쓴물이 올라왔다. 궁정에 의해서 하 대학사에게 보내진 그는 1년 동안 경국 조정과 관아를 떠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고달을 체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순간 하칠간의 머릿속에 일이 실패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도로 돌아가 주관과 수령 태감에게 진 원장이 개입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 * *
아름다운 목소리로 재잘대는 진원의 미녀들이 마침내 돌아왔다.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횃불에 둘러싸인 사람을 바라봤다. 그녀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고, 진 원장에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진원 안에서 생활할 때나 경도 반란이 일어나 추격전을 벌였을 때나 오늘 진 원장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항상 감찰원 사람들이 그녀들을 곁에서 보호했고, 어느 곳에서 온 관리이든 그녀들에게 최대한 예의 있게 행동했다.
그녀들은 민간에서 가난을 이기지 못해 팔렸다가 진평평이 다시 사 와서 보살펴주는 고아들이었다. 갈 곳 없는 이들은 꾸미고 노래 부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몰랐지만, 진평평은 이들을 보살펴주고 보호해 주고 싶어 했다. 바로 이런 진평평의 이상한 취미로 인해 진원의 미녀들은 온실 속 화초로 자랐다.
만약 진평평이 이 산에서 쓰러진다면 온실 속 화초들은 분명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