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2
061화 황태후의 식견
장 공주의 말을 이해한 황후의 마음이 순간 철렁였다. 만약 백작가 서자가 장 공주의 딸과 혼인하게 된다면 황제는 그에게 황궁의 금고의 사업을 모두 넘겨줄 것이다. 그렇다면 백작가 범건은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호부를 서자인 범한은 황궁의 금고를 갖게 되는 셈이니 경국 돈줄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일에라도 정왕가와 사이가 좋은 백작가가 2 황자 쪽에 기울기라도 한다면 황태자는······. 황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내 아들이 못나기는 했지만 폐하의 유일한 적출인데. 폐하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벌이시는 거지?’
“걱정하지 마세요.”
황후의 생각을 이해한 장 공주가 위로했다.
“황후께서도 지난 2년간 감찰원에서 사람을 파견해 황궁의 금고를 관리하는 바람에 제가 처리하는 일이 준 걸 아시지 않습니까. 설사 범한이 신아와 혼인하더라도 황궁의 금고를 장악하지는 못할 겁니다.”
“저는 그저 사남 백작 범건이 무슨 방법으로 폐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그러자 장 공주가 웃었다.
“황후께서 유씨를 궁으로 부르지 않은 지도 오래되셨지요?”
황후가 정색하며 말했다.
“범건과 혼인해서 멍청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 보니 교활한 사람이더군요. 4년 전에 공주께서 담주에 있는 서자를 죽이자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가 결국 유씨만 곤란해지지 않았습니까. 아마 저희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그녀를 방패막이로 삼아서 일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원한을 품은들 어쩌겠습니까?”
장 공주가 싱긋 웃었다. 그녀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피부가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장 공주가 다시 말했다.
“설마 입을 함부로 놀리기야 하겠습니까?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서 아는데 유씨는 사소한 일에 끝까지 매달리는 사람이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겠지요.”
“말하고 보니 이상하군요. 황제 폐하께서는 어째서 4년 전에 황궁의 금고를 백작가에게 넘길 결정을 하신 걸까요? 만일 갑작스럽게 그런 결정만 내리지 않으셨다면 그런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었을 텐데.”
장 공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는 저와 황후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걸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황궁의 금고에서 빨리 손을 떼게 하려고 그런 결정을 하신 것이지요. 진 원장을 시켜 황궁의 금고를 감시하게 하고는 있지만 전체를 관리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문무백관들이야 단순하고 멍청해서 얼마든지 구워삶을 수 있는데, 진 원장만큼은 폐하에 대한 충심이 강한 데다가 워낙 일 처리가 빈틈이 없어 제 사람을 넣기가 쉽지 않네요.”
장 공주의 탄식에 황후가 걱정했다.
“신하가 폐하를 충심으로 섬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저희가 몰래 사람을 넣으려 하는 것도 폐하가 간신들에게 휘둘릴까 걱정돼서가 아닙니까. 진 원장의 충심은 확실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 공주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하지만 담주 살인 사건에 대한 감찰원의 조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폐하께서 엄명을 내리신 것 같아요.”
“그것 역시 당연한 일이지요. 당시 술에 취한 폐하가 신아를 수양딸로 삼으시며 백작가에 시집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궁에 있는 몇 명만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황후가 4년 전 일을 떠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담주에 자객이 갔으니 감찰원에서 치밀하게 조사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폐하께서 엄명을 내리신 것은 백작가 서자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외부로 발설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황후의 말에 장 공주가 겁을 냈다.
“감찰원에서 4년 동안 계속 조사를 하고 있으니 언젠가 진상을 알아낸다면······. 고향에 내려가 있는 진평평 원장이 경도로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던데 그냥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네요.”
황후가 냉담하게 말했다.
“4년 전에 진평평 원장이 궁에 들어와 폐하와 담소를 나눈 뒤 폐하가 뜻을 거두셨던 걸 잊으셨나요. 폐하가 다시 신아를 범한에게 시집보내겠다고 결정하시고 공주께 황궁의 금고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신 건 진평평 원장이 고향에 내려간 틈에 범건 대인이 폐하를 접견했기 때문이에요. 만약 진평평 원장이 경도에 있었다면 이번 혼사에도 영향을 끼쳤겠죠. 물론 그게 공주의 뜻과 일치할지, 아니면 재상 대인의 뜻과 일치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장 공주가 입꼬리를 올리며 넌지시 말했다.
“이번 혼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황후께도 좋은 것 아닌가요? 어쨌든 2 황자가 세력을 얻을 위험이 줄어들잖아요.”
황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두 아이의 혼인일 뿐인데 이뤄지건 안 이뤄지건 황실과는 별로 관계가 없죠. 황태후께서도 저보고 두 아이의 혼사에 신경을 쓰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리할 생각입니다.”
그 말에 장 공주는 안색을 바꾸면서도 여전히 미소 지었다.
“황후의 말도 일리가 있네요. 어미인 저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겠어요. 비록 범한이 서출이기는 하지만 재능도 있는 것 같고 혼인으로 신아의 병세가 나아질 수도 있을 테니.”
이후에도 경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두 여인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방금 했던 이야기는 모두 잊은 것 같았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길 원치 않았다. 범한을 죽여서 이번 혼사를 막을 수 있다면 백작가의 세력도 줄이고 2 황자의 지지 기반도 흔들 수 있으니 재상의 근심도 덜어지는 셈이었다. 더구나 심약한 장 공주가 황궁의 금고를 관리하며 자신의 사람들에게 은전을 제공해 주는 일도 편해질 것이다. 한 사람만 죽인다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황실의 권력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경도는 4년 전 담주와는 상황이 달랐다. 아무리 황실 사람이라도 지켜보는 눈이 많은 경도에서 중신의 아들을 암살하는 건 불가능했다. 더욱이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그런 일을 벌인다면 의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더구나 유씨를 다시 방패막이로 쓸 수도 없었다.
* * *
침전으로 들어간 황태후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부드럽게 빗겨 주는 사람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왜 저렇게 멍청한 딸을 낳은 걸까?”
그러자 뒤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하지만 황태후께서는 장 공주를 가장 아끼시지 않습니까. 애초에 황상이 그렇게 하시지만 않았다면 재상 대인이 몰래 하는 일들을 도울 수도 없었겠지요.”
황태후가 한숨을 쉬었다.
“임약보가 나를 배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게다가 나는 그가 무서워. 자네가 보기에는 황상이 신아를 백작가 서자에게 시집보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세상을 볼 줄 아는 자네가 말해 보게.”
뒤에 있는 사람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군주께서 혼인할 나이가 되었고 몸도 좋지 않으시니 백작가에 시집을 보내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핵심은 혼사가 아니라 폐하께서 하신 말씀에 있지요. 황실의 재산을 성이 다른 사람이 관리하게 하려는 건 아마도······ 황후와 장 공주가 너무 가깝게 지내시는 데다가 황태자도 마뜩잖으니 장 공주의 권력을 빼앗아 이황······.”
뒤에 있던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황태후를 몇십 년 동안 모셔 왔지만 자신이 이 일에 지나치게 참견했다는 생각에 말하기가 겁이 났다.
황태후가 잠시 생각하다 마치 국화꽃처럼 얼굴의 주름을 펴며 말했다.
“나랏일을 폐하께 맡기고 나는 황실이나, 다스려야지 이 일은 내가 관여할 게 아닌 것 같네.”
뒤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 * *
“이번 일은 네가 어리석게 행동한 거다.”
사남 백작 범건이 서재에서 아들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범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꾸중을 피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해명하지 않고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바보도 아니면서 곽보곤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던 것이냐. 정말 때리고 싶었다면 허점을 드러내지 말았어야지. 왜 네가 누구인지 말한 거야?”
범한이 난처한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 하자 사남 백작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곽보곤에게 네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으면 혐의를 받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홧김에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범한은 유씨 부인이 자신이 낮에 했던 말을 아버지에게 전했을 거라 짐작하며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아들의 맑은 미소를 바라보던 범건이 화를 가라앉히고 한숨 쉬었다.
“말해 봐라. 왜 이런 소란을 일으킨 거냐?”
범한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첫 번째는 어젯밤에 정왕 세자와 술을 마시며 친해진다면 폭행 사건에 휘말려도 정왕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 해결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말을 하면서 범한이 슬쩍 사남 백작의 안색을 살피고는 화난 것 같지 않자 이어서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곽보곤이 저를 너무 업신여기길래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남 백작이 냉소를 지었다.
“두 번째 이유도 일리는 있다만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혼인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냐. 너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면 황실에서 혼사를 중단할 것이라 생각하고는 그런 짓을 벌인 게지.”
범한은 속마음을 간파당하자 당황했다.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사남 백작이 다시 말했다.
“내가 너에게 어리석게 행동했다고 말한 것은 정왕가를 이 일에 끌어들였기 때문이야. 상서가는 황태자 편에 있고 정왕 세자는 2 황자 편에 있어. 너는 정왕 세자를 끌어들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이 일로 백작가가 2 황자 편에 섰다고 의심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범한이 놀란 척 연기했다.
“경국 사람들 모두가 아버지와 정왕의 사이가 좋은 걸 알고 있고 누이도 유가 군주와 우정이 두터우니 두 집안의 관계가 친밀하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설마 아버지께서는······?”
“너희 할머니가 폐하의 유모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그러니 당연히 정왕도 할머니가 키우셨지. 그때 폐하는 다른 일로 바쁘셔서 내가 정왕과 같이 놀아 드렸기 때문에 우리와 정왕가의 사이가 좋은 거야.”
그러고는 범건이 한숨 쉬며 계속 말했다.
“하지만 사적인 우애는 사적인 우애일 뿐이다. 공과 사는 구분을 해야지. 황궁에서의 일을 신하인 우리가 참견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 황태자가 여전히 황태자인 이상 우리 백작가는 황태자에게 충성할 거야.”
아버지의 말을 듣던 범한이 웃었다.
“황태자가 황태자가 아니라면 어쩌실 겁니까?”
범한의 대역무도한 말에도 범건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가 범한을 혼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그건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폐하께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먼저 방향을 정하는 건 잘못된 방법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범한은 마침내 곽보곤을 때려서 얻고 싶었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백작가는 황태자의 편에도 2 황자의 편에도 서지 않고 단지······ 폐하께 충성할 뿐이군요.”
“그렇지. 섣불리 패를 드러내지 않으면 파벌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가장 강한 사람 편에 선다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지. 지금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폐하시다.”
“만일 폐하께서 서거하신다면요?”
충성심에 불타는 사남 백작을 보며 범한이 물었다. 그러자 사남 백작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시고 나보다도 젊으시단다. 그 이후의 일은 젊은 너희가 해결할 일이지.”
그러고는 한참 말이 없던 사남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공당에서 네가 구속되지 않은 이유를 아느냐. 우리 백작가와 상서가가 오늘 조정에서 얼마나 치열한 암투를 벌였는지 아느냐. 대리사, 형부, 이부까지 두 가문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상서가는 심지어 감찰원까지 찾아갔어. 만약 진평평 원장이 자리에 있었다면 너는 오늘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
“진평평 원장이요?”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범한도 진평평이 장막 뒤 권력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가와 감찰원의 사이가 좋은데 왜 자신이 구속됐을 거라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진평평 원장이 있었으면 왜 제가 돌아오지 못했을 거란 겁니까?”
“그건 진평평 원장이 장 공주의 딸과 네가 혼인하는 걸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너를 급히 경도로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진평평 원장이 고향에 내려갔기 때문이야. 만일 내가 그 틈에 폐하를 직접 뵙지 못했다면 이번 혼사도 이루어지지 못했겠지. 물론 혼사를 급히 서두르는 건 네 정혼자의 병 때문이기도 하다만.”
범한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사남 백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비개 대인은 제 스승이시고 아버지는 진 원장과 각별한 사이신데 왜 제 혼인을 반대하는 겁니까?”
“밖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와 진 원장의 사이는 그렇게 깊지 않아. 그건 오해야. 더구나 진 원장이 혼인을 반대하는 것은 어떤 일에 관한 생각이 나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와는 전혀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이지.”
“어떤 일에 관한 생각입니까?”
범한이 아버지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동안 고민하던 사남 백작은 아들에게 일부 사실은 알려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폐하는 황태자를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아. 하지만 황후와 장 공주는 사이가 돈독하지. 황궁의 금고의 은전 출입을 관리해 돈을 쉽게 융통할 수 있는 장 공주가 황후와 친한 걸 폐하께서는 걱정하고 계신다.”
사남 백작의 말에 범한이 화들짝 놀랐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동궁의 동태를 걱정하시는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