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21
962화 어서방 안에 피어난 불꽃 (1)
의심할 여지 없이 진평평은 고수가 분명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전에 고수가 되었던 사람이었다. 과거 상수 태감 중 한 명이었던 진오상의 실력은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홍사상 내관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선두 대열에 설 만큼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평평이 고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천하가 혼란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북쪽 고수인 소은과 당당히 맞설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조정 대신들의 적의 가득한 시선을 받으면서 꿋꿋하게 지금의 어두침침한 감찰원을 세울 수 있었겠는가? 만약 진평평이 고수가 아니었다면 그가 어떻게 검은색 폭풍처럼 위력을 뽐내며 흑기들을 이끌고 대륙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일 수 있었으며, 천하를 놀라게 한 천 리 길 습격을 단행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라도 시간이 지나며 무뎌지는 법이었다. 시간과 늙음은 아무리 괴로워도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진평평도 이제 많이 노쇠해져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과거 소은을 생포해 경도로 데리고 오는 습격 계획을 실행하면서 중상을 입어 반신불수가 된 점이었다. 허리 부분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고,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이전에 쌓아 올린 수련이 경지는 절반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진평평의 이러한 과거는 경국 문무백관들과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는 역사였고, 가장 안타까워하거나 기뻐하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황궁에서 진평평을 생포해 경도로 데리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 관련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진 원장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섭중, 궁전, 요 태감과 이 일을 직접 책임진 대장 사비, 그리고 이 일과 관련된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하종위까지 모두들 경계하는 눈빛으로 진 원장의 몸을 수색하거나 그가 앉아 있는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를 살펴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평평이 혼자 힘으로는 일어설 수도 없는 불구자라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건 진평평이란 개인의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힘이 아니라 늙은 절름발이 노인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음모와 지략이었다. 사람들이 진평평을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이유는 그가 감찰원이란 강력한 권력 기관을 통제해 엄청난 일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진평평이 혼자 경도로 돌아왔을 때 감찰원은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엄격한 감시와 내부에 있는 몇몇 인물들의 강력한 협력 덕분에 감찰원은 이번 일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이에 황제 폐하 곁에 있는 중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두들 진평평이 야윈 손가락을 움직여 어두침침한 정방형 건물이 가진 힘을 동원할 수만 황궁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판단으로 인해 이들은 진평평이 어서방에서 폐하를 공격할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았다. 과거 진평평은 검은색 군마를 타고 전장을 누빈 고수였지만, 지금은 불구자였고 게다가 황제 폐하는 현재 천하제일 고수이니 진평평이 폐하를 공격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바퀴 달린 의자를 의심한 사람은 있었을까? 진 원장이 아주 오랜 세월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생활해 왔기에 사람들은 바퀴 달린 의자의 존재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심지어 진평평의 몸의 일부분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바퀴 달린 의자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습관이 무서운 이유는 사람들이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평평이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어서방에 들어갈 때 요 태감을 비롯한 안에 있는 어느 사람도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이번 일을 책임진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다.
마찬가지로 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까지 오랜 시간 격정적인 대화를 이어온 황제 폐하 역시 침착함을 회복하는 찰나의 순간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진평평이 황제 폐하 너머에 있는 어서방의 하얀 벽을 바라보며 ‘섭씨 아가씨’라는 호칭을 나지막이 중얼거렸을 때 황제 폐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진평평의 눈길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 바로 그때 진평평이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던 두 손을 움직였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유치하면서 귀여운 장난을 하고는 한다. 예를 들면 친구가 뒤에 엄격한 어른이나 무서운 스승이 있는 척을 해서 고개를 돌리게 만든 뒤 큰 소리를 내서 놀라게 하거나 주먹으로 뒤통수를 치고 도망가는 식의 장난말이다. 그러면 당한 사람은 욕을 한바탕 쏟아내면서 도망친 친구를 쫓아 달리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재미있게 쫓고 쫓으면서 웃곤 한다.
이런 유치한 장난을 천하제일 강자인 경제에게 사용하겠다는 진평평의 생각은 아주 절묘하고 기발하면서…… 효과적이었다. 진평평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 순간 황제 폐하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고하와 사고검이 죽고 섭류운은 바다로 나가 적수가 사라진 탓에 황제 폐하의 경계심이 흐트러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황제 폐하는 무의식적으로 진평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대륙에서 유일한 대종사이자 강력한 권력을 가진 황제 폐하를 공격해 다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범한, 해당, 왕 십삼랑, 운지란, 랑도 심지어 그림자까지. 여섯 명의 9품 절대 강자들이 동시에 어서방에 등장해 경제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날린다고 하더라도 황제 폐하를 털끝만큼도 건들 수 없을 거였다.
하지만 황제 폐하가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없는 눈처럼 하얀 벽을 바라본 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시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진평평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를 쥐고 있던 양손이…… 손잡이 내부를 꽉 쥐고 팔뚝을 뒤로 잔뜩 움츠러트리는 게 보였다.
‘탁’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퀴 달린 의자의 반질반질한 검은색 손잡이가 양쪽으로 젖혀지면서 용수철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이어서 양쪽에서 갑자기 두 개의 구멍이 튀어나오더니 거의 동시에 울린 커다란 굉음과 함께 강력한 위력이 경제를 덮쳤다.
‘펑!’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깔끔하고 냉정한 동작이었다. 수십 년 동안 쓰다 담았던 바퀴 달린 손잡이에 숨겨져 있던 무기를 작동한 진평평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무수한 쇳조각과 쇠 구슬이 강력한 화약과 함께 분출되어 엄청난 위력을 뽐내며 경제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에서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두 개의 눈부신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 * *
이 세상에서 황제 폐하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를 다치게 할 물건이 없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 황제와 진평평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검은색 상자가 황제에게 상당한 위협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평평이 수십 년 동안 앉아 있었던 바퀴 달린 의자에 검은색 상자 안에 담긴 물건과 비슷한 물건에 숨겨져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오늘 진평평은 수십 년 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비장의 무기를 작동시켰다.
진평평이 사용하는 바퀴 달린 의자는 수십 년 전에 황실 금고와 감찰원 3처에서 심혈을 기울에 만든 것이었고, 그 안에는 긴 세월 축적된 분노가 담긴 무기가 숨겨져 있었다. 게다기 이 무기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여자가 진평평을 위해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다.
당시 진평평이 불구가 되자 그의 안전을 걱정한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극비리에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의 바퀴와 등받이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교체되었지만, 손잡이만큼은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진평평의 습관적인 동작을 알고 있었다. 그가 너무 만져서 반들반들 윤기 나는 손잡이를 쓰다듬는 걸 좋아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범한처럼 가까운 사람들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 조용할 때 진 원장 대인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손잡이를 두드리기면 그 안에서 속이 텅 빈 대나무를 두드릴 때처럼 ‘둥둥’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나무가 상징하는 절개, 기골, 기세를 진평평은 가지고 있었다.
* * *
두 개의 불꽃이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 앞에서 폭발했다.
거대한 소리가 거의 동시에 두 번 울린 뒤 무수히 많은 쇠 구슬과 쇳가루가 화약과 함께 황제의 몸을 향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툭툭’ 거센 빗줄기가 마른 모래사장을 때리거나 우박이 땅에 구멍을 만들고 무수히 많은 잎사귀를 떨어뜨릴 때 나는 것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탄내와 함께 어서방 안에 자욱하게 깔린 연기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더니 점차 낮은 평상에 앉아 있는 황제의 몸이 드러났다.
경제는 대종사였다. 하지만 대종사라고 해서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육신은 평범한 사람들의 육신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신과 같은 반응을 할 수는 없었다.
진평평이 바퀴 달린 의자의 방아쇠를 당겼을 때 그는 경제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 앞부분에서 발사된 산탄은 공간 절반을 덮어버릴 만큼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신선처럼 아주 짧은 시간에 움직일 수 있는 경제라 할지라도 귀신처럼 빠르고 강력한 산탄의 살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경제는 몸을 피하려 하지 않고 낮은 평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변에 벽은 이미 부서져서 곰보 자국처럼 움푹움푹 패여 있었다. 부서진 회백색 벽돌 조각이 후두득 하고 떨어지자 파손된 벽의 표면은 반쯤 허공에 걸려 있었고, 경제가 앉아 있는 낮은 평상도 절반 정도가 부서져 있었으며, 그의 앞에 놓여 있던 탁자는 산산조각이 나서 나무 부스러기로 변해 있었다.
황제 폐하가 입고 있는 용포에도 아주 많은 구멍과 찢긴 자국들이 보였는데, 모두 궤적이나 형태가 달랐지만, 한결같이 구멍 가에 살짝 탄 흔적이 있었다.
황제 폐하는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찻잔을 쥐고 있었다. 살짝 굽은 왼손 집게손가락과 살짝 치켜 올라간 엄지손가락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푸른 청와 찻잔을 쥐고 있었다.
찻잔은 조금의 흠집도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천자의 얼굴에도 상처 하나 없었다.
모든 일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발생했다. 황제 폐하가 온몸에서 정기를 뿜어내자 ‘쌩’하는 바람 소리가 나더니 그가 쥐고 있는 푸른 청와 찻잔이 ‘윙’하고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 * *
두 번의 총소리가 울린 뒤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는 강력한 반동에 미끄러지듯 뒤로 밀려났다. 바퀴가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어서방 지면과 마찰해 불꽃이 튀었고, 결국에는 어서방 벽과 부딪치면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진평평의 표정은 무덤덤했고, 두 눈동자는 살짝 수축되어 있었다. 그때 움직일 새도 없이 그의 눈앞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푸른색 무언가가 보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날아온 찻잔이 못처럼 진평평의 야윈 가슴에 박혔다. 갈비뼈가 몇 개나 부서졌는지 알 수 없었다.
부서진 사기 조각들이 바늘처럼 진평평의 몸을 파고들었고, 평범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검붉은 피가 진평평의 입술 사이에서 분출되어 가슴 자락을 적셨다. 이어서 공기 중에서 형태도 성질도 없는 웅장한 정기가 세차게 위로 치솟더니 찰나의 순간에 그의 체내에 잔존에 있는 3경과 6맥을 제압하고, 그의 모든 근육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순간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어진 진평평은 자신이 살아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더욱 공포스러운 점은 공기 중에 자욱하게 퍼진 난폭한 왕도의 정기가 가진 위력이었다. 왕도의 정기는 그의 옷섶 사이로 파고들어 그의 체내 안으로 신속하게 침투해서는 그의 경맥을 따라 사방으로 퍼져서 이전에 복용했던 맹독을 천천히 몰아냈다.
공중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진평평의 마른 몸을 꽉 움켜쥐고는 바퀴 달린 의자에서 그를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진평평이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은 상당히 기괴해 보였다.
진평평의 백발 머리카락은 이미 산발이 되어 그의 이마 앞에 제멋대로 나부끼면서 주름 가득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옷은 찢어져 얼기설기 뒤엉켜 있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순식간에 통제되어 죽음의 끝자락에까지 몰려 있었다.
하지만 절름발이 노인의 눈동자는 차분하고, 냉정한 게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애석함과 경멸하는 기색 말고 다른 감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호수처럼 침착하고 고요한 모습이었다.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어서방 안에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가 아주 느리고 무거운 걸음으로 부서진 지면을 밟으며 그를 향해 걸어왔다.
황제의 비어 있는 오른손에서 무수한 강력한 정기가 공기를 부수며 분출되어 진평평의 마른 몸을 공중에서 움켜쥐고 있었다.
황제의 냉담한 눈동자는 극도의 분노에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황제의 양손이 살짝 떨렸고, 위는 전부 붉은 피와 공포스러운 상처들로 가득했다.
황제의 용포에 난 작은 구멍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는 그의 옷을 적시고 상처 주변에 묻어 있는 쇳가루와 잔여 화약 가루들을 쓸고 내려갔다. 용포는 이미 검은색으로 그을려 있었다.
황제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푸른 돌도 관통할 수 있는 쇠 구슬이 몸 안에 박혀 있었음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청와 찻잔의 파편이 박힌 진평평의 몸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진평평의 체내에 피는 많지 않을 거였다. 피가 흐르는 속도는 느렸지만,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검은색 감찰원 관복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