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25
966화 손가락 하나와 감찰원의 굴복 (3)
조용하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시끄러워졌다.
그때 언빙운이 등이 굽은 늙은 태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늙은 태감이 몸을 떨면서 마주 인사하고는 2백여 명 정도 되는 감찰원 관리들 앞으로 걸어가 목을 가다듬은 뒤 천천히 감찰원 전임 원장인 진평평이 모반을 저질러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말에 현장 분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감찰원 관리들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태감의 말을 듣는 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의심과 분노는 갈수록 짙어졌고, 긴장되는 분위기에 압도된 것인지 늙은 태감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정주군과 금군이 혼합된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장군도 주변 상황을 주시하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2백 명의 감찰원 관리들은 무력이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서류 업무로 전환되기 전에 과거 어떤 무서운 임무를 맡았던 사람들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종추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감찰원 최고 추격자로 불리는 왕계년도 이 건물에서 몇 년 동안 문서 담당 관리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여기 있는 2백 명의 감찰원 관리들이 정말 반항하려 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3처 관리들은 손에 아무런 무기도 쥐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이 독약을 휴대하지 않고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치솟는 분노를 못 이기고 갑자기 사방에 독약을 뿌려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대평원의 분위기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갈수록 긴장되었다. 겨우 교지 낭독을 끝낸 태감이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찰원 관리들은 비록 의심과 놀람과 분노로 머릿속이 가득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용감무쌍하고 질서정연한 감찰원 관리들은 상사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이상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사의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이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을 때까지 한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맨 앞에 서 있는 언빙운에게로 향했다. 왜냐하면 지금 감찰원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가 바로 언빙운이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눈동자 안에 의심과 분로로 가득했지만, 여전히 언빙운이 입을 열고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잠시 가만히 있던 언빙운은 감찰원 관리들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감찰원 입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 * *
태의와 태감 몇 명이 들어오더니 뒤에 들것을 들고 들어오는 수십 명의 대내 시위들이 보였다. 이윽고 백발이 산발이 된 노쇠한 노인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들것 위에 있는 그는 피는 그친 상태였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감찰원의 옛 주인이자 암흑의 황제라 불리는 진평평이 자신이 세운 감찰원으로 들어왔다. 그가 평소 가장 좋아했던 장소인 대평원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평상시 들리던 익숙한 바퀴 달린 의자의 바퀴 소리가 오늘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들것 위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초가을 대평원의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놀고 있었지만, 진평평은 눈을 떠서 그곳을 바라보지 않았다.
언빙운이 나무 작대기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가오는 들것을 바라보았다. 뒷짐을 지고 있는 그의 양손이 살짝 떨리더니 금방 가라앉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황제 폐하가 진평평을 감찰원으로 보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황제 폐하는 곧 죽을 진평평을 능지처참해서 감찰원 관리들의 마음을 자극할 생각이었다.
황제 폐하는 감찰원이 진정한 주인이 자신인지 아니면 진평평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만약 무정하고 냉혈한 황제 폐하가 감찰원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대군을 동원해 감찰원 정방형 건물을 장악하고 천하에 무수히 많이 흩어져 있는 지점들을 공격할 거였다. 황제 폐하는 잔혹한 방법을 동원해서 감찰원 관리 모두를 철저히 숙청하고 이 세상에 감찰원이 존재했다는 어떠한 흔적도 남겨두지 않을 거였다.
황제 폐하의 두 눈은 감찰원 내부 관리들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감찰원 관리들의 마음속 깊이 박혀 있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과 감찰원 안에서 숭고한 지위에 있는 진평평에 대한 충성심이 충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들것이 천천히 이동했다. 태의들의 응급조치에 진평평은 피를 많이 흘렸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황제 폐하가 그에게 쉽고 편안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는 죽을 수 없었다. 들것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감찰원 관리들의 시선도 이동했다. 들것에 누워 있는 진평평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에는 슬픔, 흥분, 절망, 분노 등 온갖 다양한 감정들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들것 위에는 그들 모두가 우러러 모시는 노인이 누워 있었다. 기운 없이 들것에 누워 내일 있을 참혹할 말로는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에 결국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며 땅에 엎드렸다.
“원장 대인!”
“진 원장 대인!”
모든 감찰원 관리들이 땅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비록 교지에는 진 원장이 황제를 시해하려 한 용서 받지 못할 대죄를 저지른 죄인이라 나와 있었지만, 감찰원 관리들은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이 소리치며 일어나자 감찰원 관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일어나서는 들것에 달려들었다.
공중에서 몇 가닥의 차가운 빛이 번쩍이고 묵직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란 때문에 하늘도 놀란 건지 서늘한 가을바람이 훅하고 불어왔다.
가을바람이 걷히고 먼지가 가라앉을 무렵 감찰원 관리 네 명이 공격을 받아 땅에 쓰러졌다.
동시에 군대 쪽 고수들이 진평평 주변에 있는 궁정 고수들과 함께 상황을 수습했다.
차가운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언빙운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만약 다시 반항한다면 잡아 가둔 뒤 감찰원 조례에 따라 처리할 겁니다.”
무수히 많은 독기 서린 눈동자들이 일제히 언빙운에게 향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언빙운의 몸은 벌써 만신창이가 되었을 거였다. 언빙운은 안색이 살짝 창백하기는 했지만, 입고 있는 옷소매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고, 표정도 당당해 보였다. 그가 감찰원 부하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을 잡아 가두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모두 자신의 사명을 기억하십시오. 경국의 신하인 본분을 잊고 모반이라도 하려는 것입니까?”
마침 옆에 서 있던 하종위가 나지막이 말했다.
“가장 좋은 건 현장에서 죽여서 겁을 주는 겁니다.”
“언제부터 대인이 제 일에 참견하셨습니까?”
언빙운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 묻고는 고개를 돌렸다.
언빙운의 한기 서린 말은 하종위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있었지만, 감찰원 관리들의 마음 속에 일렁이고 있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땅에 쓰러져 있던 감찰원 관리들이 천천히 일어나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언빙운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들은 잠시 뒤 다시 들것에 달려들 거였다.
감찰원 안에 상황은 이미 매우 위급해져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던 언빙운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진평평에 대한 감찰원 관리들의 지고지순한 충성심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 * *
바로 그때 창백한 손가락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진 가운데 감찰원 관리들의 눈동자가 들것에서 뻗어 나온 창백한 손가락에 고정되었다. 손가락이 조금 떨리더니 감찰원 관리들이라면 모두가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는 수신호를 그어 보였다.
“대기해라!”
2처 관원 한 명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상심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며 두 무릎을 땅에 꿇었다.
“대기해라!”
“대기해라!”
창백한 손가락을 가볍게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무슨 마술이라도 일어난 건지 감찰원 안에서 연이어 ‘대기해라’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여기서 대기하라는 말은 침묵, 인내, 기다림,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포기를 의미했다.
대기하라는 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원래 자리에서 서서 기다리라는 의미였다.
이에 원래 자리에 멈춰 선 감찰원 관리들이 감정이 복 받친 목소리로 ‘대기하라’라는 말을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마치 거대한 산이 땅에 부딪히는 것처럼 힘겹게 무릎을 꿇은 이들은 들것에 누운 노인이 천천히 자신들 눈앞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든 궁정 고수와 태감, 군대 정예병들이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종위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언빙운의 몸은 살짝 휘청거렸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통제할 수 없었던 감찰원 관리들의 분노를 창백한 손가락이 단번에 아무런 반항 없이 잠재워 버렸다. 그야말로 강력한 권위…… 아니, 신앙이라 할 수 있었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은 언빙운은 황권과 진 원장의 대결은 감찰원 관리들의 굴복으로 결국 끝이 났지만, 사실은 진 원장의 승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들것은 천천히 모두의 앞을 지나 감찰원 큰 감옥 방향으로 향했다.
핏기가 사라져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종위는 순간 붙잡혀 있는 네 명의 감찰원 관리를 바라봤다.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감찰원이 두렵지 않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싶어서인지 그가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감찰원은…… 과연 명령을 목숨처럼 중시하는 집단이군요. 다만 실력은 본관이 상상했던 것보다는 약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언빙운이 고개를 돌려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잠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뻔뻔스럽게 일을 여기까지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만일 진 원장께서 손가락을 들어 명령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저와 대인은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하종위를 내버려 둔 채 들것을 든 황궁 시위들을 따라 쓸쓸히 감찰원 큰 감옥을 향해 걸어갔다.
* * *
감찰원 내부가 배반과 굴복, 좌절로 혼란에 휩싸여 있었을 때 경도 안은 수상한 억압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오늘 소조회는 당연히 열릴 수 없었다. 각 부와 사에서는 관례대로 업무를 진행했지만, 황궁에서 들려온 경천동지할 소식에 이미 경국 관리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두가 정무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관아 안에서 몰래 수군거리며 사담을 나누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가끔씩 아주 가까운 관리들과 구석으로 가서 서로가 파악한 소식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황제 폐하가 공격을 받았다. 극악무도한 반역을 저지른 반역자가 진 원장 대인이다. 모두들 이 소식에 놀랐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모든 게 사실로 밝혀지자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도 문관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감찰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과연 조정이 효과적으로 감찰원을 통제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소식들이 이어서 전해졌다. 최소한 지금 상황에서는 관리들이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질 위험은 없어 보였다. 새벽에 엄청난 사건이 터진 뒤 각 부 상서들과 국공들, 그리고 문하중서 안에 몇몇 대학사들은 가장 먼저 황궁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몇 시진이 지난 뒤 이들은 다시 황궁에서 나와 조정의 일들을 새롭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만 호 대학사만은 여전히 황궁 안에 머물고 있었다.
오늘 경국 조정에 가장 중요한 일인 진평평의 반역 사건의 심리를 진행하기 위해서 각 부 관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문관들이 처음으로 감찰원의 시선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심리를 진행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감찰원의 감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각 부의 관아들이 속 시원하게 기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황제 폐하가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만큼 심리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