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33
974화 쉴 틈이 없는 영웅을 비웃다 (5)
공중에 있던 범한이 1 황자가 파견한 장수를 발로 차 말에서 떨어뜨린 후 대오 안에서 최고 좋은 말을 빼앗아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머리카락 사이에서 깨끗한 철침을 꺼내 전투마 목에 찔러 넣고는 손가락을 튕겨 전투마 입에 마황환 하나를 넣었다. 흑기가 말을 자극해 힘을 증진 시킬 때 동원하는 방법인데, 범한이 이 과정을 진기할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펼친 것이었다.
말 위에 서 있던 범한이 끄응 소리를 내자 준마가 쏜살처럼 질주해 대오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국도 위의 작은 점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이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모두들 작은 공작 어르신의 강력한 무공 실력에 깜짝 놀라는 동시에 궁금증이 일었다.
‘저 앞쪽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작은 공작 어르신께서 이리도 다급히 가시는 거야?!’
명령을 받은 목풍아도 이번 명령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우리가 다시 동이성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지?’
그가 무의식적으로 마차 칸 쪽을 쓱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계년조 최고 등급 요패를 차고 있던 낯선 관원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감찰원에서 전기적인 인물인 왕계년 대인이었다.
목풍아는 그의 입을 통해 경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나무판을 끌어내고 열었을 때 보이는 거라곤…… 체력을 소진한 왕계년 대인이 혼절해 있는 모습뿐이었다.
달주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고작 이틀 걸렸다니. 이건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왕계년은 해낸 것이었다.
깜짝 놀라 슬쩍 두려운 시선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목풍아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작은 범 대인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은연중에 지금 이건 이어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는 중이거나, 어쩌면 죽음의 신과 달리기 경주 중인 거라 추측했다.
* * *
얼음장 같은 강력한 가을바람이 칼날처럼 ‘휭-’ 하는 소리를 내며 범한의 얼굴을 스쳤다. 그의 눈동자에 있던 싸늘한 불길은 이미 씻겨 나간 지 오래였고, 이제는 누가 봐도 두려울 정도로 범한은 평정심을 찾은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경도의 늙은 절름발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시간이었고, 오로지 시간뿐이었다. 모든 게 완벽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달주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건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또한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알고 있는 건 오로지 늙은 절름발이가 경도로 돌아간다면, 분명 과거의 일 때문에 죽게 된다는 거였다.
그러니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필요한 건 여전히 시간이었고, 오로지 시간뿐이었다. 이에 범한의 마음은 산불이 타들아 가는 것처럼 초조했고, 모래시계 속 고운 모래가 시시각각 떨어지며 심장을 건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범한이 타고 있는 말은 구름 위를 달리 듯, 번개라도 된 듯한 기세로 내달렸다. 약물에 자극을 받은 말은 최고 속도를 유지하며 산림 사이로 난 국도 위를 내달렸다. 산을 뚫고, 안개를 헤치고, 밤새 계곡 물을 건너고, 어지럽게 달빛을 맞으며 곧장 연경으로 향했다.
꼬박 하룻밤 동안 범한은 말에서 내리지도, 말의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물주머니로 말에게 수분 보충을 해주는 것 말고는 다른 군더더기 동작은 하지 않았다. 관새(關塞)와 산악(山岳)을 뚫고 먼 길을 달려 경도까지 가야 했으니, 범한에게는 시간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필요했다.
막 동이 틀 무렵, 웅장한 연경성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밤새도록 달려 경국 국경 안으로 돌아간 거였다. 범한은 이미 사력을 다하고 있었고, 이에 그의 속도는 누가 봐도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목에 의병이 매복해 있었지만, 그들은 내달리는 범한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저 길 위에서 피어나는 흙먼지만 바라보며, 검은색의 기마병이 홀로 미친 듯이 내달리는 장면만 지켜볼 뿐이었다.
범한에게는 매 순간이 소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연경성으로 들어갈 리는 없었다. 연경 쪽에서 황제 아버지와 관련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를 떠나, 그가 그와 같은 위험을 감수할 리도, 더욱이 시간 낭비를 할 리도 없었다.
그래서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범한은 말 등자에 다리 하나를 건 후 품에서 령전을 꺼내 손바닥으로 정기를 약간 흘려보내고는 곧장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불꽃이 거대한 연경성의 새벽하늘을 갈랐다. 그러자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초승달이 빛을 잃고, 이제 막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새벽 해는 잠시 떴다 사라지는 불꽃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연경성 사람의 대부분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필경 북제와 동이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주요 관문이었다. 이에 성을 수비하는 사병들은 재빨리 반응했다. 그들은 불꽃을 보는 즉시 성 각루에 있는 북과 징을 울려 경보를 발령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성 위쪽에 군사들이 집결해 병기를 움켜쥐고 저 멀리에서 빠르게 내달려오고 있는 전투마와 그 위에 있는 사람을 주시했다.
거대한 연경성으로 달려오고 있던 범한에게 성 위 사병이 들고 있는 병기에서 반사된 새벽빛이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그는 표정 변화도, 그리고 심적인 동요도 없었다. 대신 있는 힘껏 말고삐를 잡아당겨 질주 중인 말의 방향을 억지로 튼 후 연경성의 오래되고 튼튼한 성벽을 따라 내달리다가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성 위에서 지키고 있던 사병들은 눈과 입을 떡 벌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할뿐이었다.
곧이어 소슬하면서도 빽빽이 들어찬 말발굽 소리가 우레와 같이 울리기 시작했다. 연경성 밖 임시 주둔지에서 달려오는 소리였다. 범한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 때 이들 검은색 갑옷을 입은 500명의 기마병은 출격 준비를 마치고 주둔지에서 사선 방향으로 빠져나왔다. 이들은 연경성 동쪽 성문 밖에서 범한과 합류하기로 한, 그러니까 범한이 오기만을 경국 국경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500명의 흑기였다. 그리고 새벽에 감찰원에서 쏘아 올린 것 같은 긴급 원령인 령전을 보고는 최단 시간 안에 달려 나와 범한을 맞은 거였다.
범한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검은색의 큰 물결과 한 곳에서 합류했다. 그러자 범한의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검은 구름 같은 것이 기세 좋게 휩쓸고 지나가는 장면만 보였다.
그 어떤 명령도, 말도 없었다. 범한은 주저하지 않고 밤새 자신을 태우고 달린 전투마에서 몸을 날려 옆에 있는 흑기 부통령의 말로 옮겨 탔다. 물론, 부통령도 일찌감치 자기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빈 전투마에 옮겨 탄 상태였다.
말을 바꿔 타는 작업은 극히 빠른 속도로 군더더기 없이 이루어졌다. 흑기의 마상술은 천하무쌍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명불허전인 거였다. 그런데 흑기 장수들은 원장 대인의 냉담하지만 초조해하는 얼굴을 보고도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큰일이 났기 때문이란 걸 자연스레 알아차린 거였다. 이에 흑기 장수들은 입을 꾹 다물고 화살의 머리가 된 범한을 따라 동쪽 평원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질주했다.
순간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밤새 범한을 태우고 달린 전투마가 힘이 소진되어 입에 흰 거품을 물고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으로 고꾸라지더니 사지를 늘어트린 채 죽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500명에 달하는 흑기는 전투마와 먼지만 남겨두고 연경성 아래쪽 평원으로 사라져 버렸다.
연경성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을 떡 하니 벌린 채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들은 흑기의 위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광경을 직접 보자 압도되어 오랫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특히나 혼자서 나타났던 기마병이 대체 누구인지를 제일 궁금했다.
연경 대사 왕지곤은 새벽에 일이 터진 걸 안 후 근심이 어린 눈으로 전군을 향해 경계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연경성에서 북제와 동이성으로 향하는 변경 봉쇄에 나섰을 때, 왕지곤에게 의문과 놀라움을 안겨준 흑기와 그들을 이끌고 미친 듯이 달린 작은 공작 어르신은 이미 연경성 근처를 벗어나 경도로 돌아가는 길로 접어든 후였다.
* * *
범한과 흑기는 각 주를 지나갈 때 방해물을 만나면 그대로 뚫고 지나갔고 주군(州郡)의 그 어떤 관원과도 말을 나누지도 않았다. 경국에서 군대가 이동할 때 지켜야 하는 모든 법률 규정도 지금 그들에게는 다 헛소리였다. 강력한 흑기 500은 범한의 통솔 하에 최대 속도로 경도로 나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흑기 500명은 미친 듯이 질주하느라 셀 수도 없이 많은 관원과 백성을 놀라게 하고, 또 경국 역사에 길이 남을 이야기 거리를 남겼다.
천 리를 이동해 습격하는 능력은 흑기가 천하제일이었다. 그리고 이 굳센 저승의 대오는 오로지 경국과 황제 폐하의 이익을 위해 국경 밖에서 용맹히 돌격에 나섰었다. 하지만 경력 10년, 흑기는 급습을 위해 경국의 옥토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도 밖 역참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커먼 철로 이루어진 까만 구름 같은 기마병 대오가 먼지를 일으키며 휙휙 지나가며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경도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흑기 정중앙에 들어가 있던 범한은 지쳐 제일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수일 동안 밤에 자지도 않고 음식도 먹지 않은 채 피곤해도 오로지 물만 마시며 버틴 탓이었다. 하지만 눈과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한기가 온 몸의 근육을 자극하며 그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서둘러 돌아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기다려줘요.”
범한의 검은색 관복에는 뽀얗게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얼굴도 온통 누런 흙먼지였다. 이에 눈썹에도 흙먼지가 들러붙어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런데 범한의 두 눈동자만큼은 누가 봐도 놀랄 만큼 반짝이고 있었다.
어제 한바탕 비가 내린 탓에 검은 기마병들은 이상하리만치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능력 있는 흑기라고는 해도 경국 중심지를 종횡무진해 대대적으로 급습을 펼치는 것이다 보니, 범한보다 뒤쳐져 낙오한 이도 있었다.
범한도 자신의 강력한 기운을 모두 폭발시키지 않았다면 이러한 무시무시한 속도를 견뎌내지 못했다.
한편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전투마는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 더 약을 써봤지만 말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범한은 이미 흑기 내에서 전투마를 열 번이나 갈아탄 터라 그에게는 더는 갈아탈 말이 없었다. 이에 국도를 지나가는 상인 대열에게서 서른 필의 말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범한 곁에 남은 흑기는 스물 몇 명 정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대오로도 경도의 외곽 땅 전체는 벌벌 떨었다. 이들이 막아낼 수 없는 군대처럼 경국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서였다.
경도 근처로 온 흑기는 곧바로 정양문을 향해 나아갔다. 이때 경도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모든 방어 역량은 최고 등급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3성문사의 사병 및 경도 수비의 기마병은 경도 밖 상황을 엄숙하게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수십 기의 흑기는 경도 수비사가 어떤 조치를 취할 새도 주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내달려 이내 정양문 아래까지 와 버렸다.
정양문으로부터 약 50장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범한이 얼굴에 묻은 빗물을 훔쳤다. 그리고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정양문 위에 있는 장수를 향해 매섭게 소리쳤다.
“문을 열게! 나는 범한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