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65
1006화 경도에서 한량으로 사는 법 (1)
범한의 수업의 내용은 사실 아주 간단했다. 북제 대학자 장묵한 선생이 일평생의 노력을 쏟아 편집한 ‘자사경집(子史經集)’은 경국에 온 뒤 담박서국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은 태학에서 수년간 노력을 쏟아부어 정리를 진행했다. 이로써 마차 한 권을 가득 채웠던 책들이 전부 명백하게 정리되었다. 범한은 이러한 서적들의 내용을 비교적 잘 알고 있었고, 고서들을 다루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에 강연 주제로 삼았다.
물론 범한의 강연 방식은 다른 강연들과는 달랐다. 그는 매번 교사들을 배정해 청심지 앞에서 강연하게 했다. 교사들이 차분하게 주요 내용을 강연하면, 마지막에 그가 직접 앞으로 나와 계단 아래 있는 학생들과 토론을 했다. 이 토론에는 상당히 불경스러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태학 밖으로는 절대 전해지지 않았다.
범한은 지금 아무런 관직도 가지지 못한 한량이었지만, 태학 학생들은 여전히 그를 우러러봤고 최소한의 특권은 가지고 있었다.
가을이 한층 더 짙어져서 쾌청한 하늘과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수업을 마친 범한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학생을 보이지 않은 채 계단을 내려왔다. 학생이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튀기며 계속 반박을 하자 그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일찌감치 자네들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자사경집의 전체적인 내용을 외우고 있네. 하지만 자네가 경전에 담긴 대의를 말해달라 끈질기게 요구해도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어떤 일을 하든 정당한 명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도 이해하지만, 천하에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그건 그저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하네.”
“우리 경국이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서 천하를 정복하려는 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그 학생이 십여 명의 친한 동료들을 데리고 끈질기게 범한을 따라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오늘 강의 내용은 과거 북위가 세워지던 시절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에 범한은 역사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전쟁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관해 다루었다. 학생들과 함께 토론을 이어가던 범한은 전쟁의 정의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며, 또 천하에서 이 문제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단정을 지었다.
마차에 오른 범한은 아직도 씩씩거리며 쫓아오는 학생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곧장 태학을 떠났다. 마차는 조용하면서 열기가 넘치는 태학에서 벗어나 가을 풍경이 만연한 경도 거리로 들어섰다. 범한이 마차 발을 걷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미소로 가려도 눈가에 드리운 우울한 기색은 감춰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부귀한 한량으로 생활한 건 조정과 황궁에 보여주기 위한 표면적인 모습에 불과했다. 범한의 마음속에는 줄곧 유유자적한 겉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격렬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마음속에 불꽃을 품고 있다는 게 드러나지 않도록 잘 숨겼다. 그가 이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억누르는 이유는 지금 상황을 바꿀 기회를 좀처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경도로 돌아온 이후 범한은 한 번도 감찰원을 찾지 않았다. 게다가 계년조 요원들을 전부 경도 밖으로 보낸 뒤에는 1처와 연락하는 것도 아주 많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한의 정보 통로가 막힌 건 아니었다. 그는 한 달의 시간이면 황제 아버지가 언빙운을 압박해 감찰원 안에 불안 요소들을 억제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처럼 인원을 대폭 조정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대대적인 숙청이 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강남 쪽에서도 절대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모든 징조가 범한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봉건사회에서 황권의 통제력과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평평과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관리해 온 감찰원은 황권의 위력 앞에서 힘없이 굴복해 버리고 말았다.
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와 황제 아버지 사이의 문제는 겉보기에는 마치 감찰원이나 황실 금고, 경도에 국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천하와 관련이 있었다. 모든 경국의 조정 관리들과 민간 백성들, 심지어 호 대학사와 언빙운까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들은 황제 폐하가 범한에게 이런 처벌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사실 범한은 모든 관직과 권력을 빼앗긴 채 경도 안에서 갇혀 한량으로 살아갔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천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범한은 생기 없이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무엇 때문에 이런 사람을 사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그와 황제 아버지뿐이었다.
만약 범한 한 사람만 놓고 본다면 황제는 그보다 훨씬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는 아주 작은 힘만 사용해서 범한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처절하게 짓밟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경도 밖에, 심지어 경국 국경 밖에까지 범한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영향력은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고 거만한 황제 폐하라도 무시할 수 없는 거였다.
그래서 황제 폐하는 범한이 경도 안에서 갇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생기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 뒤 느리지만 확실하게 경도 밖에 뻗어 있는 범한의 영향력을 제거하려 했다. 그리고 동시에 범한이 경국 국경 밖에 뻗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잘라내려 했다.
황제 폐하는 범한을 죽일 때 생길 파장을 경국 조정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했다. 그러니 범한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여서 경국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기전까지는 황제 폐하는 그를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었다. 황제 폐하는 범한을 죽여서 동이성과 서량로에 혼란이 생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황제 폐하가 정말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그때는 범한의 생사는 죽든 살든 더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였다.
* * *
익숙한 길을 따라 마차가 포월루에 도착하자 범한이 마차에서 내려 양손을 뒷짐 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뒤편 수호에 있는 장원으로 걸어가던 범한은 뒤에 골목 어귀에서 사람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가는 걸 보면서도 못 본 척했다.
범한을 감시하는 사람은 고행자였다. 어디서 온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고, 어둠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행자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고행자들은 여색을 멀리해야 하는 탓에 범한이 포월루에 들어가면 미행을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살짝 서늘한 미풍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가운데 범한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그가 갈수록 아름답고 요염해지는 기생집 사장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무슨 신곡을 들려줄 건가?”
석청아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이제 시를 쓰지 않으시니, 더 들려드릴 좋은 노래도 없습니다.”
범한이 포월루를 인수한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석청아는 조금도 나이 든 티가 나지 않았다. 범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궁정에서 사람을 보내 감시를 하지 않아도 부유한 한량이 된 작은 범 대인이 포월루 기생들과 노는 걸 가장 즐긴다는 건 경도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부유한 한량. 이게 지금 범한의 진짜 명성이었다. 비록 모든 관직과 권력을 빼앗겼어도 돈은 넘칠만큼 많았으니 말이다. 누구도 범씨 집안 안에 얼마나 많은 금은보화가 쌓여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범씨 집안의 사업인 포월루는 이미 경국의 강력한 국력과 감찰원의 도움을 받아 천하 절대 대다수의 기생집을 합병한 상태였다. 범한이 세운 규정과 계획에 따라 포월루는 이미 천하 곳곳에 퍼져 있었다. 그러니 범한이 기생집 사업으로 천하를 통일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포월루의 명의상 사장인 사천립과 상문은 지금 동이성 쪽에 사업을 개척하고 있었다. 게다가 북제 상경성에 진출하는 계획도 모두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어 두 사람은 어디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두 사람의 배후에 범한이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 * *
낮은 평상에 누운 범한이 두 기생이 해주는 안마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정말 전형적인 부유한 한량의 모습이었지만, 사실 그는 머릿속에서는 재빨리 주판을 굴리고 있었다. 포월루는 범씨 집안의 개인 사업이었고, 조정은 개인 재산까지 건들 정도로 몰인정하지 않았다. 황궁은 범씨 집안의 체면을 전부 깎고 싶지는 않았기에 범한에게 이 안락한 보금자리를 남겨 주어 그를 위로했다. 아무래도 이 시대 사람들은 기생집이 정보 수집에 뛰어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년 전에 범사철과 3 황자가 난폭하고 잔악무도한 방법까지 사용하며 마음대로 장사를 하던 포월루는 이제 범한의 비장의 패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소문무를 내쫓으면서 조정에서 무슨 핑계를 대었다고?”
방안이 조용한 가운데 눈을 살짝 감고 있는 범한이 나지막이 물었다. 소문무는 범한이 가장 신임하는 심복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또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이기도 했기에 멋대로 직무에서 이탈할 수 없어 그동안 경도에서 일어나는 일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조정은 직접 민북 3대 작업장에 교지를 보내 소문무를 강제로 경도로 데리고 왔다. 이 일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었지만, 포월루의 존재 덕분에 범한은 경도 안에 누구보다 일찍 이 일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둔 상태라서 범한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거나 화내지 않았다. 다만 민북으로 보내진 계년조 요원이 소문무에게 제대로 말을 전해줬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는 성격이 밝고 재미있는 소문무가 바보같이 정면으로 조정에 대항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워낙에 촉박한 탓에 소문무가 황실 금고 안에 충분한 조치를 해놓지 못했을까 봐 걱정되었다.
황실 금고는 범한의 두 번째 비장의 패였다. 황제 폐하가 황실 금고 전운사를 접수했다고 해서 조정이 범한이 황실 금고에 미치는 영향력을 전부 제거할 수는 없었다. 이 영향력을 모두 제거하려면 범한의 목을 자르는 수밖에는 없는데, 그건 경국 조정에도 너무 큰 타격이었기 때문이다.
황실 금고를 생각하던 범한은 자연스럽게 동이성 북쪽에서 강력한 군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십가촌이 떠올랐다. 이어서 3대 작업장과 황궁 안에서 각각 황실 금고 공예 과정 및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 부분을 준비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범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어졌다. 그가 소매 안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량로 쪽의 경우 등자월은 조정의 빼곡한 그물망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지금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등자월이 죽었다는 소식이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는 데 범한은 무척 안도했다. 다만 그쪽 4처 관리들이 과연 우두머리를 잃은 상황에서 감찰원 경도 본부에서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홍역청이 받은 지령은 초원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찾은 뒤 다시 정주성과 청주성 안에 있는 힘과 연락을 하라는 거였다. 범한은 이 모든 일이 늦지 않게 제때 이뤄지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