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72
1013화 다시 온 겨울 (1)
북제 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국사가 임종 전에 진평평의 수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이해가 되는군. 범한과 그 황제의 사이가 틀어질지 말지는 진평평의 마지막 선택에 달려 있었던 거야.”
“짐은 진평평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원한을 품으면 그런 짓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아마 과거 그 여인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
사리리가 천천히 그녀 옆으로 걸어와서는 근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손에 든 작은 난로를 건네주며 물었다.
“자격이 있는 세 사람 중에는 범한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그녀는 이전 경국 친왕의 손녀로 지금은 북제 황궁에서 북제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 하고 있는 의 귀비였다. 그녀와 북제 황제 사이의 관계는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보다 더 친밀했다. 그녀들은 동반자였고 어렸을 때부터 같이 성장한 동료였으며, 서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아까 북제 황제는 진평평의 죽은 뒤에 천하에 씨를 뿌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세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이 세 명에 범한이 포함되어 있다면…….
“범한은 당연히 자격이 있지.”
북제 황제가 살짝 뜨거운 난로를 쓰다듬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좋은 모친을 두고 있고 자신에게도 냉정하기에 지금의 세력을 가질 수 있는 거겠지…… 그의 힘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동이성 안에 좋은 것들이 숨겨져 있을 테니까.”
“최소한 지금 경제는 그를 제거하지 않고 굴복시키고 싶어 하고 있어. 왜냐하면 범한이 굴복시키는 게 제거하는 것보다 경국으로서는 훨씬 이득이거든.”
북제 황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점만 봐도 범한이 쥐고 있는 힘이 경제도 두려워할 만큼 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날씨가 추우니 이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조심스럽게 황제의 안색을 살피며 이 말을 하는 사리리의 눈길이 자신도 모르게 외투로 감싸져 있는 황제의 복부 쪽으로 향했다.
총명하고 민감한 황제는 사리리의 시선을 곧장 알아채고는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이를 악물고 화를 참았다.
황제의 표정 변화를 바라보던 사리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작은 범 대인이 지금 폐하의 상황을 안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범한은 무정하고 대단한 힘을 가지고는 있지만…… 뼛속까지 썩어빠진 선비야.”
북제 황제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이 야박하게 남쪽에 있는 그 남자를 비판하며 냉소를 지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저지른 일도 보면 얼마나 유치하고 멍청한지! 그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여전히 경국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헛된 기대를 하면서 죽는 사람을 최대한 줄일 생각만 하고 있어. 이번 일이 이런 지경이 이른 이유는…… 그가 경제가 너무 얕게 봤기 때문이야. 경제가 대종사가 아니었더라도 그런 자잘한 방법으로 용상을 흔드는 게 가능했을 것 같나?”
“죽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생각이란 말인가.”
북제 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뭐라 말하려 하는 사리리의 말은 듣지 않은 채 눈발이 날리는 문 앞을 떠나며 말했다.
“이번에 짐이 그를 돕지 않았다면, 동이성과 연경 대영은 정면으로 부딪쳤을 거야. 양쪽 중 누가 이기든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가 경도 안에서 계속 부유한 한량인 척 연기하며 살 수 있었을까?”
“폐하, 정말로 그를 도와서 동이성을 지키기 위해 이 일을 하신 겁니까?”
사리리가 눈을 살짝 들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북제 황제가 순간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사리리가 자신의 진짜 마음을 알아챌 줄 몰랐다는 듯이 잠시 침묵하던 북제 황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짐은 북제의 군주이다. 어찌 남자 하나 때문에 북제 군사들을 다치게 하겠느냐……. 짐이 그를 도운 것은 짐의 북제를 위해서이다. 경국이 혼란스럽지 않으면 북제가 너무 많은 압박을 받게 될 테니까. 게다가 경제는 줄곧 북벌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상삼호 장군이 남쪽을 지키면서 상황을 탐색을 하고 중심을 장악해 준비를 해둬야 앞으로 일에 수월하게 대비를 할 수 있다.”
“다만 상삼호 장군이 살짝 걱정입니다.”
사리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말을 사실 후궁의 황비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지만, 사리리는 단순한 귀비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북제 황제의 곁에 머무르며 대화를 나눈 그녀는 이미 나라의 큰일을 의논할 수 있는 지략가가 되어 있었다.
“외부 적이 너무 강하지 않느냐. 비록 상삼호는 짐이 과거 범한과 손을 잡고 소은을 죽인 일에 원한을 품고 있지만…….”
북제 황제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계속했다.
“경국은 하루아침에 북벌에 관한 생각을 접지 않을 것이니 상삼호도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천하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짐이 그러하듯이 상삼호도 그러할 것이야.”
“다만 작은 범 대인이 지금 경도에서 힘든 상황에 부닥쳐 있습니다. 만일 경국 조정에서 이번에 상삼호 장군의 출병이…… 동이성 쪽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챈다면…….”
사리리의 미간이 근심하는 기색이 스치는 게 분명 범한의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까 봐 걱정하는 거였다. 상경성 안에는 범한과 관련이 있는 여자가 세명 있었다. 그중에 해당타타는 멀리 초원에 가 있었고, 황궁에 있는 황제 폐하는 권모술수에 뛰어나고 무정하고 냉혹한 성격이라 범한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리리는 때로는 더없이 상냥하고 때로는 더 없이 차가워지는 남자가 걱정되었다.
“짐은 남쪽에 있는 그 사람이 우리가 이번에 남하한 이유를 알아챌 거란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 일은 원래 오래 숨길 수 없는 일이지 않으냐. 경국 조정과 동이성 사이의 진짜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을 거야.”
북제 황제가 냉정하게 말했다.
“연경에 있는 왕지곤이 분명 맨 처음 알아챘겠지만…… 알아챘다고 해서 걱정할 게 뭐가 있느냐? 물론 범한이 북제와 결탁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경국 조정은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엄벌을 내리려 하겠지.”
이 말을 들은 사리리가 탄식하며 물었다.
“폐하께서는 범한이 궁지에 몰려 상경성으로 도망쳐 올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고려해 두고 결정하신 거군요…… 하지만 범한이 궁지에 몰려 북제로 오고 싶어 한들 그런 상황에서 살아서 올 수 있을까요?”
차가운 눈보라에 뺨이 붉게 상기된 북제 황제가 침착하게 말했다.
“만약 그가 살았지만 오지 않는다면, 짐에게나 자네에게나 그가 죽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타타는 이 일을 모를 겁니다.”
사리리가 고개를 들고 걱정어린 표정을 말하자 북제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량로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서 초원에 있는 작은 사고와 연락하는 게 쉽지 않네.”
북제 황제가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 발끝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황제가 갑자기 오른손을 들더니 그 자리에서 멈췄다. 허공에 들린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이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싶어 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에는 하지 않았다.
살짝 떨리는 손끝에서 결국 여성의 풍모가 느껴졌다.
“폐하, 군보가 도착하여 대신들이 합란정(合闌亭)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궁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늙은 태감이 쉰 목소리로 급히 말했다. 지금 경국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남쪽의 군사 상황은 아주 긴박했다. 그래서 수시로 날아드는 군보의 내용을 파악하게 제때 알맞은 결정을 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처럼 나라의 안전을 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었지만,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북제 백성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북제 백성들은 북제 군대가 이전과는 달리 먼저 나서서 경국 영토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늙은 태감의 말에 생각에 잠겨 있던 북제 황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동자에서 살짝 보이던 부드럽고 온화한 눈빛은 이미 사라졌고, 차갑고 냉정한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리리가 재빨리 그녀의 검은색 외투 허리 부분에 금옥대를 매어 주었다. 궁전 밖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에는 제왕의 풍모가 충분히 드러났다. 깊은 궁전을 나오니 랑도 대인과 하도인이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 *
경력 10년 동이성이 명의상 경국에 귀속되면서 천하의 대세에는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초가을 경도에서 비가 내리던 날 이런 대세는 다시 변화했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는 범한이 처음부터 이 모든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계산했던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동이성이 실질적으로 그와 1 황자의 통제 아래 있는 건 분명했다.
사고검이 유언을 한 그 순간에 그의 가장 큰 역할이 발휘되었다. 검려 열세 명의 제자 중에서 동이성 성주가 된 운지란을 제외한 열두 명의 제자와 그들 밑에 있는 고수들까지 모두 범한의 부하가 된 것이다. 게다가 경국 1 황자가 1만 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동이성에 왔고, 진평평이 범한에게 남긴 흑기 4천 명도 동이성에 모였다. 이로써 동이성은 범한과 1 황자의 협력이 틀어지지만 않는다면 독자적인 세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방면에서 보든 범한과 1 황자 사이의 신뢰와 협력은 쉽게 틀어질 수가 없었다. 이것은 3년 전 경도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사고검이 바랐던 데로 그가 죽은 뒤에도 동이성은 여전히 독립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분명 저세상에 가 있는 대종사 사고검의 영혼도 만족하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동이성이 자체적으로 가진 힘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경력 10년 늦가을에 북제 군대가 갑작스럽게 추위를 무릅쓰고 경국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경국 영토 안에까지 침범해 진행한 공격으로 북제 조정은 적지 않은 병력와 군량을 소비해야 했지다. 하지만, 이 영문 모를 전투는 상삼호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보잘것없는 주성을 얻는 걸로 끝났다. 그러니 겉으로만 보면 북제가 상당한 손실을 본 셈이었다.
그리고 북제는 이어서 전 지역에 자원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큰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경국 역시 전력을 다해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년 봄에는 천하 전체를 뒤집을 만한 큰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런 상황 덕분에 동이성과 범한은 앞으로 반년 동안은 경국과 충돌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인 척하는 북제 황제는 사라리 앞에서 자신의 진짜 마음을 숨긴 채 모든 건 북제 조정과 백성들을 이익을 위해 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녀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이번에 한 일은 사실 경국에 있는 그 남자를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수년 동안 상황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반복해왔다. 그런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녀는 결국에 그와 사랑에 빠졌고, 이제는 그는 그녀의 유일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