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703
1044화 창산의 눈, 검에 낀 성에 (7)
눈공은 공중을 헤치고 길고 긴 어도를 날아, 어대(御臺)와 부딪혔다. 이에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공이 폭파되었다. 그러자 눈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촥촥, 하는 소리를 내며 사방팔방으로 발사되어 온 태극전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다행히 대들보는 부서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식품은 모두 눈 조각을 맞아 부서져 잔해가 되어버렸다.
사람 형체로 보이는 것 여러 개도 동시에 발사되었다. 이에 왕 십삼랑과 해당타타가 잔해 위로 날아가 떨어져 미친 듯이 피를 쏟았다. 특히나 왕 십삼랑의 팔은 이미 피와 살점이 끔찍하게 엉겨 붙은 채 경맥까지 모두 끊어져 있었다.
마지막에 검 공격을 펼쳤던 그림자는 머릿밑으로 잔뜩 피를 흘리며 어대 앞에서 뻗어 있었다. 그런데 전혀 움직이지 않아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힘없이 쥐고 있는 칼에는 끝부분에 혈흔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하얀 검은 결국 황제 허벅다리에 있는 혈관까지는 손상시키지 못했다. 눈공으로 휩쓸려 들어간 상황에서도 그림자는 필살의 검 공격으로 황제의 살점을 파고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대전 밖에서 대전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천지가 진동하고 사방에서 바람이 불고 물건이 날리는 가운데 그림자는 검 끝을 흔들어도 보고 움직여도 봤지만 더 깊게 찌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황제 몸 밖으로 밀려나 헛수고한 게 되고 말았다.
그동안 황제는 바다처럼 많은 정기를 이용해 왕도의 뜻을 패도의 기세로 풀어냈었다. 공간 안에 있던 여러 사람을 모두 둥근 경계 속에 가두어 버렸고, 이로써 황제의 뜻이 곧 법인 그 영역 안에서 누구도 저항할 수 없게 만든 거였다.
밝은 황색의 형체는 어지러운 어대 위에서 그야말로 눈에 거슬리게 서 있었다. 황제 폐하는 여전히 곧게 서서 뒤쪽에 있는 부서진 용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의 낯빛은 창백했고 소매 밖으로 드러난 양손은 아주 살짝 떨고 있었다. 상처를 입은 거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자 천하무적이었다.
* * *
어대 앞에 죽은 물고기처럼 뻗어 있던 그림자가 갑자기 꿈틀하다니 그대로 홀연히 일어났다. 그리고 하얀색 옷을 바람에 나부끼며, 입에서는 피를 흘리며 황제의 목을 향해 독하게 검을 질렀다.
하지만 이번 찌르기는 허공으로 빠졌다. 그런데 이는 당연한 거였다. 그림자가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하며 한 마디 내뱉었다.
“물러서!”
그는 마지막 검 공격을 날리고는 뒤쪽으로 빠르게 후퇴하며 날아갔다. 첫 번째 검 공격으로 황제를 죽이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오늘은 더는 기회가 없는 거였다. 비록 그림자는 칼로 도륙된 진평평을 위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결국 자객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입궁해 공격을 펼친 네 사람 중 그림자의 눈빛이 가장 독했고 마음도 가장 평온했다. 그리고 첫 번째 공격에서 실패하자 곧장 뒤로 물러나 버린 거였다. 그러므로 그가 소리를 친 이유는 단 하나. 중상을 입은 젊은 고수 둘이 목숨을 걸고 황제 폐하를 공격하려 해 그게 걱정되어서였다.
짧은 외침이 터져 나오자 엉망진창이 된 태극전 내부에서 사람 형체 셋이 휘익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르고 태극전 밖으로 질주했다. 그중 부상 정도가 가장 덜했던 해당타타는 제일 뒤쪽에서 꽃무늬의 솜저고리를 활짝 펼쳤다. 그녀는 그렇게 꽃이 되어 태극전 안 어둠 속에서 피어났다.
꽃봉오리가 사라진 순간 9등급 상의 강자 셋은 태극전 안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황제 폐하는 조용히 어대에 서 있기만 할 뿐 이상하게도 그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조금 전 극강의 영역에서 나온 세 강자는 회복되기 힘든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대전 안까지 도망 온 이상 수성용 쇠뇌의 공격권 끝에 와 있는 거였다. 그러니 황제는 공격에 나섰다면 분명 이 세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벌린 채 목 쪽에서 전해져 오는 한기와 통증을 느끼며 가슴 쪽 벌어진 피부에서 밝은 황색 용포로 스며 나온 피와 허벅다리에 생긴 상처나 바라보았다.
세 곳의 통증이 머리로 선명하게 전달되자 강력한 황제 폐하도 살짝 당황했다.
‘짐은 오랫동안 상처란 걸 입어보지 않았는데!’
3년 전 대동산에서 고하, 사고검과 대결할 때 황제는 평생 연마한 거대한 정기와 최상의 정신적 기세만 소모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짐이 저 젊은이들에게 부상을 입었다고?’
황제가 왼손을 뻗어 가슴팍을 문질러 보았다. 핏물이 새하얀 손에 묻어 있어 그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밀려드는 피로감을 억누르지 못하고 처음으로 자문해 보았다.
‘설마 짐이 늙은 건가?’
황제의 눈동자에 누가 봐도 섬뜩한 한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황제는 오늘 자신을 공격한 네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안지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 없었다. 저 녀석이 뜻밖에도 오늘 몸에서 검의 기운을 뽑아낸 건, 역시나 타고난 근면함 덕분이었다. 그림자의 경우는 줄곧 늙은 개를 쫓아다니며 항상 황제가 있는 공간에 숨어 있던 존재이고, 천하제일의 자객이니 그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다.
고하와 사고검이 남긴 마지막 제자에 대해서도 황제는 알고 있었다. 비록 해당타타를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북제 성녀를 보는 순간 범한과 관계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옛날에 범한에게 이 여인을 들이라고 권하려 한 적 있어서였다. 한편 왕 십삼랑은…… 과거 대동산에서의 일로 마음속에 각인이 되어 있던 지라 황제는 그를 꽤 좋게 보고 있었다.
그림자를 뺀 출중한 세 젊은이는 훗날 천하에서 대단한 인물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오늘 모두 경국 황제를 공격하는 데 나서서 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장렬하게 패한 거였다. 이에 황제는 기분은 나빠도 살의까지 일지는 않은 거였다.
고요한 태극전에서 황제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서 불안한 기색이 보이는 체내 패도의 정기를 천천히 가다듬었다. 그리고 냉담한 얼굴과 유난히 싸늘한 두 눈동자로 범한 일행이 여는 데 성공한 정면에 있는 황궁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는 범한 일행이 어떻게 금군과 호위병의 감시를 뚫고 황궁 문을 열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뼛속에 박힌 가시들이, 자신이 늙었음을 젊은 패기로 일깨워준 적들이 이렇게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데도 걱정하지 않았다.
“모두 죽이거라!”
황제가 마치 일상적인 일에 대해 말하듯 차분한 음성으로 명을 내렸다. 애당초 황궁에서 도망칠 구멍을 마련해 놓고 있던 젊은 강자들의 생사를 황제는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냉혹하게 결정해 버렸다. 그런 후 이제 막 대전 문 앞으로 온 요 태감으로부터 깨끗한 새 용포를 받아들고 환복하기 시작했다.
* * *
그림자가 제일 빨리 후퇴했다. 그는 손으로 눈을 파내 정신을 잃고 눈 속에 파묻혀 있는 범한부터 꺼냈다. 그리고 끄응 소리와 함께 몸 안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려는 걸 일단 막고는 새처럼 기이하게 황궁 문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의 뒤에서는 왕 십삼랑이 이상한 자세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꽃무늬 솜옷을 벗어버리고 하얀색 홑옷을 입고 있는 해당타타는 맨 뒤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네 사람은 모두 정도는 달라도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래서 황궁 담벼락을 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곧바로 황궁 문으로 향했다. 태극전 정문은 황성 내에서도 방비가 가장 삼엄한 곳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그림자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쪽을 택했다. 이는 범한의 명 때문도, 더욱이 그가 동이성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검려에 가장 많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 북제가 은닉해놓은 패가 동원되어 황성 한 각루에 있는 수성용 쇠뇌가 낮은 소리를 내며 울렸었다. 이에 황성 금군과 호위병들은 그제야 황궁에 자객이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태극전 밖 눈밭에서 벌어진 결전은 너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이에 강자 4인의 형체가 황궁 문을 향해 내달릴 때, 금군 내 일부 고수는 이제야 황성 각루를 향해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황궁 문 쪽에 남아 있던 금군은 막 진열을 가다듬고 성글게 그물을 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배치된 그물은 하늘에서 나타난 검 빛에 갈가리 찢어져 버렸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싸늘한 검 빛이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황궁 문 쪽에 있던 금군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었고, 이에 여기저기에서 사지가 잘려 나가고, 피가 튀고, 비명소리가 크게 났다.
동이성 검려의 제자들이 온 거였다. 열세 명의 제자 중 범한이 소문무와 하서비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한 이들 및 동이성의 군심을 잠재우기 위해 남겨 둔 이들을 뺀 나머지가, 즉 9등급 검객 넷이 온 거였다.
동이성의 9등급 검객이 어떻게 경국 황궁으로 잠입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검려 제자들의 살의는 천하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9등급 경지에 있는 자들이 암살에 가담했으니, 온 천하에서 감찰원 그림자가 이끄는 6처를 빼면 그 누구도 이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이에 반응이 느린 금군들이 순식간에 살해당하며 큰 혼란이 일었고, 육중한 황궁 문이 열리며 작은 틈이 생겼다. 그러자 금군 장수들과 교대 근무 중인 호위병이 분노에 차 소리나 지르는 가운데 검려 제자 넷이 황궁 문 앞으로 난 깊은 동굴 같은 길을 통제했다. 이들은 작게 길을 내며 태극전 방향에서 도망 나오는 범한 일행이 유령처럼 빠져나가 새하얗고 넓은 황성 앞 광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범한은 황제 폐하의 손가락 공격에 집게손가락이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체내에 있는 강하고 사나운 패도의 정기도 공격을 당한 상태였다. 만약 체내 경맥이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경국 황제와 같은 성질의 정기를 연마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범한은 대동산 같았던 육중한 손가락 공격에 그대로 폭발해버렸을 것이다.
이에 살아남기는 했어도 범한은 경맥에 무수히 많은 구멍이 생긴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빨갛게 달구어진 무수히 많은 가는 철사가 몸 안에서 돌아다니기라도 하듯 속에서 계속 치이익치이익, 하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참기 힘든 통증까지 머릿속까지 파고들자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에 따라 범한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하지만 범한은 그대로 혼절해 버릴 수는 없었다. 아직 황궁에서 살아서 도망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에 범한은 흐릿하기는 해도 검려 제자들이 사납게 검의를 뿜어내는 걸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고통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계획에 검려 제자들은 없었다. 이 혼탁한 물에 검려를 끌어들일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아서였다.
그림자는 감찰원의 오래된 신하이고, 해당타타는 범한의 여인이고, 왕 십삼랑은 범한의 친구이다. 그러니 오늘 입궁해 암살에 동원한 세 사람은 모두 범한과 사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이번 대결은 필경 황제와의 일전이었으므로, 범한이 이들의 도움을 받는 걸 황제가 용인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거였다. 하지만 범한은 동이성, 심지어는 북제의 힘까지 끌어온 것이었으므로 일이 더 골치 아프게 흘러갈 수도 있는 거였다.
하지만 더 골치 아픈 일은 지금 황궁 밖이 조용하다는 거였다. 새하얗게 변한 황성 앞 광장은 조용하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검려 제자 넷 역시 신기루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범한을 포함한 네 사람이 황성 밖 광장에 깔린 눈을 밟는 순간, 세상에 들리는 건 이들의 발소리뿐이었다. 이에 황성 밖은 더욱 적막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