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711
1052화 북으로 향하는 마음 (1)
“왜 그리 하면 안 되는 거죠?”
범한이 기침을 두어 번 가볍게 하고는 눈을 살짝 가느다랗게 뜨고 언빙운을 바라보았다.
“진 원장 대인뿐만 아니라 대인도 말씀하셨지요.”
언빙운이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감찰원은 공공의 기물이지 사적인 기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한데 어찌하여 나라의 공공의 기물을 이용해 사적인 걸 도모하시는 겁니까? 하여 저는 대인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범한의 눈동자에 살짝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차갑게 비꼬았다.
“감찰원이 공공의 기물이라 내가 사적으로 쓸 수 없다면…… 황제 폐하께서 그분의 뜻을 위해 감찰원을 동원하실 때 왜 대인은 용감히 나서서 그분은 비난하지 않는 겁니까?”
심장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것 같은 언빙운이 멍하니 범한을 바라보았다. 언빙운 입장에서는 소화해내기 힘든 말이었다. 이 세계의 모든 신하들에게 황제 폐하는 조정이자 경국 그 자체였으며, 또한 공공……. 아무튼 감찰원은 공공의 기물이니, 자연스레 황제 폐하 수중에 있는 칼인 거였다.
“대인이 직접 한 말이니 잊지 말아줘요. 감찰원은 공공의 기물이니, 황제 폐하의 사적인 기물이 아닌 겁니다. 용상에 앉아 있는 분도 결국에는 사람이에요. 하여 그분을 가지고 곧 천하의 뜻인 양 행동하지 말란 말입니다.”
범한이 언빙운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하면 공공의 기물은 자연스레 덕이 있는 자에게 가야겠지요. 맞습니다. 나는 절대 덕이 있는 자가 아닙니다. 한데 대인은 황제 폐하께서 덕이 있는 분이라 감히 말할 수 있나요?”
“한데 부자지간인 그분과 내가 그저 늙고 어린 염병할 것들에 불과하다면, 감찰원이란 공공의 기물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는 자명해진 겁니다.”
범한이 더는 언빙운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물병을 받쳐 들고 힘겹게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찬바람이 쌩쌩 돌게 말을 이어 갔다.
“이 감찰원은 섭경미가 설립했고, 진평평 대인께서 나에게 건네준 것입니다. 한데 황제께서 대체 뭘 믿고 빼앗아가신단 말입니까? 또한 대인이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이런 무료한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황제 폐하를 감찰하기 위한 기관이 감찰원인데 만약 황제 폐하의 특무 기관으로 변한 거라면, 대인은 감찰원 원장을 안 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범한이 물병을 내려놓고 더는 말할 가치도 없이 무료하다는 어투로 언빙운을 꾸짖었다.
* * *
죽음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언빙운의 마음속에서는 격한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언빙운은 범한이 진평평의 죽음에 상심해 용감하게 황제 폐하와 대립 면에 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범한에게는 황권의 선천적 존엄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니!
작은 언 공자 입장에서는 이처럼 대역무도한 반역적인 논조는 정말로 소화해내기 어려운 거였다. 이에 그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범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진 노원장에게 이런 건 배운 적도 없었으며, 범한도 이런 건 전혀 언급도 한 적 없어서였다. 감찰원이 황제 폐하를 감찰하기 위한 거였다고? 이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곁눈질로 언빙운의 표정을 살고 있던 범한에게서 순간 짙은 실망감이 마음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머니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진평평과 자신을 빼면 이 세상에서 그런 말을 받아들일 사람은 없는 거였다. 그건 심지어 저 멀리 담주에 가 계신 아버지도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단순이 범한이란 존재 때문에 경국 조정에서 점점 마음이 멀어진 거였으니까 말이다.
언빙운이 고개를 들고 차분하게 범한을 바라보며 바로 결정을 내리려 했다. 경국의 이익을 위해, 그가 평생 생명을 걸고 분투해 온 목표를 위해, 언빙운은 범한이 그 많은 비밀과 역량을 가지고 적국에 투신하도록 놔둘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지금 범한을 잡아서 황궁으로 보낸다면, 언빙운도 알다시피 그는 분명 오늘 안에 죽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도 범한은 언빙운이 결정을 내리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바로 이때 살짝 피로에 싸인 조금 나이 든 담담한 음성이 가짜 산 그림자 속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밤이 깊었는데 더 말해 무얼 하겠느냐. 집안 아낙들이 들어봤자 좋을 게 뭐 있다고!”
부친의 음성에 몸이 굳어버린 언빙운이 정말 힘겹게 몸을 돌려세웠다. 그는 소맷자락 안에 있던 양 주먹을 꽉 쥐고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께서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범한이 저택에 숨어 있다는 걸 주변에서 알게 된다면,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공격에 나서야만 했다. 그런데 하필 자신이 결정을 내리려 할 때 아버지께서 일부러 나타나 한 마디 하셨다는 건, 당연히 자신을 향해 가장 강력한 경고를 날리신 거였다.
만약 언약해가 돕지 않았다면, 중상을 입어 경맥이 엉망이 된 범한이 어떻게 이 가짜 산에 있는 밀실로 숨어들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몸에 천을 감은 상태로 있었을 것이며, 옆에 음식이며 깨끗한 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언빙운은 부친 대인께서 온화하게 평소처럼 말씀하셨어도 부자의 정을 가지고 자신을 위협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결정이 범한에게 불리하다면, 그렇다면 이 집안은…… 어쩌면 여기서 끝나게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범한이 어둠속에 있는 언약해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그가 과거 4처 수뇌였던 노 대인을 향해 곤란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만하시고, 일단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이어 범한은 언빙운을 향해 냉랭하게 말했다.
“내가 한 말이 분명 귀에 들어가지 않겠지요. 감찰원 갑각(甲閣)에 내가 정왕부에서 가져다 놓은 문서가 몇 봉투 있으니 시간이 있을 때 가서 봐요.”
담담하게 말하는 걸 보니 범한은 언빙운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 단정한 것 같았다. 언빙운은 아무 대꾸 없이 눈만 꼭 감고 있다가 한참 후 가짜 산을 떠나 자기 거처 쪽으로 향했다. 언빙운이 조용히 자리를 떠난 건 어쩌면 어떤 집념이 무너져 내려서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떠나가는 뒷모습이 조금 생기 없어 보인 것일 수 있었다.
“가짜 산 쪽으로는 누가 오지 않을 터이니 염려 마시지요.”
언약해가 가짜 산 아래로 내려가 온화하게 웃었다.
“조금 전 감찰원에 대해서는 지당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여 저 아이가 좀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범한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선생께서 몸소 가르쳐주시는 편이 더 낫군요. 선생께서 자신의 머리를 걸고 제 머리를 보호해주셔서…… 모두 다 경국을 위해서겠지요. 언빙운도 선생의 생사를 가지고 자신의 신조를 증명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다 가치 있는 것이니, 분명 아드님도 천천히 생각이 트일 것입니다.”
* * *
언씨 부자를 빼면 그 누구도 범한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경도 내 추격과 수색 작업은 여전히 활발했고 조금도 느슨해질 기미가 없었다. 이에 경국 조정에서 무수히 많은 거리와 민가를 한 차례 수색했는데도 중상을 입어 움직이기 힘든 범한은 유령처럼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감찰원도 조정에서 내린 명에 따라 각 방면에서 정보 처리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추격과 수색 일은 군측과 궁정이 주체가 되고 감찰원은 협조만 하는 중이었다. 그 결과 감찰원은 그다지 바쁘지 않았고, 현 감찰원 원장 언빙운도 섭중과 요 태감처럼 너무 바쁘고 긴장감의 연속이라 잠도 못 자는 날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에 그는 천하 대도 옆에 있는 정방형의 음삼한 건물 안에서 진지하게 책 읽는 모습이나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언빙운은 그날 밤 범한에게 들은 대로 갑각에 숨겨져 있는 서신과 문서를 가져다 진지하게 읽어 보았다. 그리고 꼬박 사흘 밤낮을 읽고 난 후에야 이것이 섭경미와 황제 폐하 간에 오간 서한과 상주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글 안에는 경국 장래에 관한 구상이 매우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구상은 너무 과감, 아니, 너무 대역무도하다고 말하는 편이 맞는 표현이었다.
독(毒)과 같은 글귀 때문에 종이를 쥐고 있는 언빙운의 손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언빙운은 감히 세세히 읽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이에 감찰원 설립 기원에 관한 글만 진지하게 배독(拜讀)해 보았다. 감찰원이 범한의 모친인 섭씨 아가씨가 손수 만든 관아인 건 잘 알고 있어서였다.
세상에 왜 감찰원이 있어야 하는가?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 문서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마 감찰원 설립 취지가 경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황제 폐하 때문이었다고? 그렇다면 왜 이 종이에서는 용좌에 계신 그분과 장래에 용좌에 앉을 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거지?
그런데 언빙운이 적극적으로나 수동적으로 보고 안 보고를 떠나 이 별 볼 일 없는 문자들은 마귀처럼 그의 심장을 파고들어 그를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리고 언방운은 점차 그날 밤 아버지께서 자신을 위협하고 범한을 저택에 숨긴 일은 완전히 잘못한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국에 제대로 유해한 결정을 내린 거란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
언빙운이 밀실 창가로 다가가 해질녘의 황성 한 자락을 바라보다가 눈을 살짝 가느다랗게 떴다. 붉은 노을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였다. 언빙운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책상 한 귀퉁이에서 검은 천을 집어 들고 책상에서 벗겨냈다. 그런 후 황궁의 풍경이 안 보이게 해야 안심이 되는 사람처럼 검은 천으로 꼼꼼히 유리창을 가려버렸다.
황궁에 있는 황제는 그날 자객에게 중상을 입었는데도 다행히 붕어하지는 않았다. 다만 때때로 혼절했다가 때때로 깨어나기를 반복해 오늘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강하고 사나웠던 황제는 가끔씩 깨어날 때마다 냉정하고 냉랭하게 범한을 잡아들이란 명을 내렸고, 그를 반드시 경국 강토 안에 묶어두라 했다. 한편 북제와 동이성 자객에 관해서는, 그러니까 운 좋게 살아남은 자객에 대해서는 조정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언빙운이 검은 천의 한쪽 끝을 열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휘황찬란한 황성을 바라보며 다른 일을 생각했다. 범한을 체포하거나 범한의 주검을 찾는 것 말고 궁정 쪽에서 조용히 같은 물건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황제 폐하께는 그 물건이 범한보다 더 중요해 보이던데, 그게 대체 뭘까?
* * *
가끔씩 눈발이 날리다 멎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황궁 앞 광장에서는 더는 며칠 전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눈과 섞여 있던 핏물이 일찌감치 깨끗이 닦여 나가 지금은 깨끗한 청석판만 드러나 있어서였다. 물론 하늘 가득 날았던 화살의 흔적도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황성의 붉은 담벼락 꼭대기에 있는 푸른 벽돌과 사방의 청석판에 생긴 끔찍한 깊은 구멍만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날아온 무시무시한 공격이 누군가의 억측이 아닌 정말로 일어난 일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외투를 걸친 범약약이 황성 아래로 난 깊고 그윽한 황궁 문 앞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금군과 호위병이 입궁 요패를 검사할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 대학사가 문하 중서에서 자객에게 당한 후 온 경도는 전시 상태처럼 경비가 삼엄해졌다.
하지만 조정을 정말로 공포로 몰아넣은 건, 범약약도 알다시피, 황제가 자객에게 공격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직까지 일부에 의해 통제되어 민간으로까지는 일려지지 않은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