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743
1084화 해 질 녘 (2)
위화가 몸을 살짝 떨었다. 이제야 그는 황제 폐하께서 아주 아주 오래전에 이미 상삼호 장군과 흉금을 털어놓고 모든 이야기를 끝내두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긴급한 상황에서도 황제 폐하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제 조정 안에서 누구도 멀리 남쪽에 있는 상삼호 장군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러다가 만약 상삼호 장군이 정말 다른 마음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자네 전쟁터에서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진두지휘할 수 있는가?”
다른 걱정을 하고 있는 위화에게 북제 황제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소신, 군사 일은 알지 못합니다.”
“짐도 할 줄 모르네. 전쟁은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맡겨야 하네. 짐은 상삼호 장군에게 맡기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맡길 것이네.”
북제 황제가 침착하게 말했다.
“남쪽 7군의 군대 업무와 민간 업무를 맡는 관리들은 오늘부터 모두 상삼호 장군의 명령을 따르도록 한다. 나라의 모든 힘을 모아서 상삼호 장군이 적군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니 이러한 조서를 담은 내용을 조금 있다가 각지에 보내도록 하라.”
위화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명령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멍하니 앞에 있는 젊은 황제 폐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위화는 두근대던 심장이 차분해지면서, 마음도 이상할 만큼 침착하고 확고해졌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소리쳤다.
“소신,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을 이행하기 위해 위화가 황궁을 떠났다. 북제 황제는 방금 나라 전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권력을 상삼호에게 준다는 명령을 내린 거였다. 어쩌면 북제 황제는 이 명령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중차대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북제 황제는 전례 없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덤덤한 모습이었다. 궁전 밖에 얇게 쌓인 눈을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에는 두려움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두 알고 있는 듯 침착한 모습이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경국 군대의 막강한 전두력에 두려워했지만, 북제 황제는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제 황제에게는 상삼호가 있기 때문이었다. 북제 황제는 어느 황제보다도 더 치밀하게 상삼호의 능력을 활용했다.
물론 북제 황제가 이처럼 차분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양국 사이의 거대한 전쟁은 결국 국력 싸움이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북제 조정이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남쪽 침략자들이 얼마나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든 북제가 수개월 안에 멸망하는 일을 벌어질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북제 황제는 젊지만, 남쪽의 황제는 이미 늙어가고 있었다. 이에 북제 황제는 경제를 상대로 소모전을 벌여 최대한 시간을 끌 생각이었지만, 경제는 오랜 시간을 허비하는 걸 원치 않을 거였다.
의미심장한 눈빛을 짓고 있던 북제 황제의 머릿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떠올렸다.
‘만약 경제가 정말 짐과 소모전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어째서 남쪽이 이토록 조용할 수 있단 말인가? 경제는 정말 상삼호 장군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동이성을 걱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그 사람은 이미 경도에 도착했겠지?’
그때 주발이 살짝 움직이더니 꽃무늬 저고리를 입은 여자가 황태후를 부축하며 나왔다. 온화한 눈빛으로 북제 황제를 바라보는 황태후는 속으로 엄청나게 흡족해하고 있었다.
‘내 아들이, 아니 내 딸이 이렇게나 훌륭하게 자랐으니 더 무슨 바람이 있겠는가?’
북제 황제가 몸을 돌려 꽃무늬 저고리를 입은 해당타타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작은 사고가 신묘에서 하늘의 장군이나 병사를 가지고 왔으면, 짐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것 아닙니까?”
해당타타가 아무 말 없이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 폐하는 신묘의 힘을 빌릴 수 있기를 바라셨지. 나와 왕 십삼랑이 신묘 부순 걸 아신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이전에 범한이 작은 사고에게 이 세상은 그들의 것이면서 우리의 것이이며, 결국에는…… 우리 것이 될 거라고 말했다고 했지.”
북제 황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줄곧 그가 이런 자신만만한 소리를 한 이유가 뭔지 알지 못했네. 하지만 남쪽이 위험한 상황이 되자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네.”
해당타타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가 강남에 있을 때 우리는 막 떠오르는 아침 태양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경제는…… 저무는 태양이지.”
북제 황제가 자신의 판단을 믿기 힘든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북제 황제의 침착한 얼굴은 위장이었다. 그는 상삼호에게 나라의 힘을 떼어 준 것으로 경제의 천하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잠시라도 멈추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술과 용병술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상삼호가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줄곧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침묵하고 있던 황태후가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저무는 태양인 나는 손녀나 안아주러 가야겠네.”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하던 북제 황궁에서 마침내 웃음소리가 들렸다. 북제 황제가 해당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짐과 함께 홍두반을 보러 가지.”
* * *
경국 경도 황궁의 서쪽 하늘에 석양이 드리웠다. 이곳은 아직 날씨가 따뜻한 편이었다. 핏물처럼 붉은 석양이 황궁의 붉은 담장과 황금색 유리 기와를 비추었다.
얼굴이 초췌한 경국 황제 폐하가 태극전 앞에 놓인 긴 의자 위에 누워 손가락으로 천천히 하얀색 뚱뚱한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었다. 이 뚱뚱한 고양이는 강대한 군왕의 손길이 좋은 듯 나른하게 누워서는 몸을 살짝 돌려 부드러운 배가 경제의 손끝에 닿도록 했다.
이 뚱뚱한 흰색 고양이는 경국 황제 폐하의 손끝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석양 아래에 선 고위 장군 한 명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 폐하의 바로 옆에 서 있는 고위 장군이 아무 말 없이 황제 폐하의 손 아래 있는 흰색 고양이와 나무 의자 뒤쪽에서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속으로 모든 게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 마리의 고양이는 각각 털 색깔이 노란색, 검은색, 흰색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엄청 뚱뚱하고 게을렀다. 게다가 이 고양이들은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품종의 고양이었다. 이에 고위 장군은 속으로 지금껏 황궁에서 동물을 기른 적이 없었는데, 어디서 갑자기 고양이 나타나 황제 폐하의 이쁨을 받게 된 걸까 생각했다.
물론 고위 장군은 겉으로 이런 생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눈앞에서 두 살 남짓의 어린아이가 죽는다고 해도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싸우기만 하는 장수는 아니었기에 입궁을 하기 전에 이미 충분히 경도 안 상황에 대해 알아본 상태였다.
황제 폐하 곁에서 뒹굴고 있는 세 마리의 뚱뚱한 고양이들은 범씨 집안에 있는 신 군주가 새끼 때부터 걸러 온 것들이었다. 언제 신 군주가 이 고양이들을 황궁으로 데려와 황제 폐하 곁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황제 폐하는 이 고양이들을 지금까지고 곁에 두고 있었다.
단지 평범한 고양이 세 마리일 뿐이었지만, 고위 장군의 눈에는 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감히 그걸 물을 수 없었고, 딱히 물을 곳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석양에 비친 구름을 바라보고 있던 경제가 시선을 돌려 고위 장군을 향해 물었다.
“북제 어린놈은 자네들을 상대로 연극을 하고 있는 거다. 조정에서 추밀원이 참모를 많이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지 않았던가? 설마 그들 모두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것이냐?”
이 고위 장군은 겉모습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젊은 사람처럼 차갑고 또렷했지만, 얼굴은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하던 고위 장군이 솔직하게 말했다.
“전쟁터에서는 적에게 원칙으로 맞서되 임기응변을 부려야 승리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상삼호가 얼마나 교활한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폐하께서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경국 기병들은 목숨을 바쳐 폐하의 기대에 보답할 것입니다. 그러니 병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폐하께서 독단적으로 결정하시면 될 일이지 추밀원이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아닙니다.”
고위 장군의 말은 아첨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아첨하는 신하였다면 경제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사실 이 고위 장군은 항상 진심으로 황제 폐하의 군사적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기에 황제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었다.
“북제가 다시 뒤로 물러났더군. 아무래도 남경 쪽까지 퇴각해서 시간을 벌 생각이겠지……. 그 어린놈은 짐과 시간을 끌고 싶은 거다.”
경제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상삼호가 핵심 지역을 장악한 걸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하지만 대세는 이미 정해져 있다. 성가신 못을 뽑아 없앤다면, 누가 감히 짐의 대군이 북상하는 걸 막을 수 있겠는가?”
“소신이 보기에 북쪽 군대를 이끌 장수가 필요합니다.”
경제가 눈을 감았다. 핏물처럼 붉은 석양이 그의 마른 양 볼을 덮었다.
“왕지곤이 십여 년 동안 북벌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상삼호를 뽑아 제거하려면 반드시 동이성 경내를 지나야 하는데, 왕 대도독이 과연 그리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짐이 아직 교지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아마 왕 대도독은 4천 명의 흑기와 첫째가 거느리고 있는 1만여 명의 병력이 무서워 주저할 것이야.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른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경제가 두 눈을 뜨고 젊은 고위 장군을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는 초원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추밀원 일을 잘 알지 못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매일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다니. 아들로서……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냐!”
어쩌다 화제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음이 서늘해진 고위 장군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대답했다.
경제가 그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짐이 네 놈을 북쪽으로 보내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말 거라. 네 놈은 북쪽에 박힌 못을 뽑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이번에 초원에 가서 많이 단련되기는 했다만, 교활하게 행동하면서 참고 인내할 줄 아는 능력은 아직도 부족하다……. 네 놈은 상삼호의 적수가 될 수 없어.”
그 말에 고위 장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섭완,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나.”
그 모습을 본 경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초원 오랑캐들은 중원 사람들처럼 교활하지 못하다. 초원 깊숙이 들어가 선우 왕정을 추격한 네 용기와 기량은 칭찬할만한 일이지. 하지만 선우 왕정이 재빨리 북만의 기병 7천 명과 연락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느냐? 눈과 얼음뿐인 초원에서 만일 선우 왕정 군대와 7천 명의 북만 기병이 힘을 합쳐 너를 쫓았다면, 과연 네가 초원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 것 같으냐?”
그렇다. 지금 경제 옆에 서 있는 젊은 고위 장군은 바로 섭완이었다. 추밀원 정사 섭중의 아들이자 뛰어난 장수로 이름을 날린 그는 지금 경국 조정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청주 대첩을 승리로 이끈 섭완은 이후 4천 명의 경국 정예 기병을 이끌고 선우 왕정의 남은 병사들을 추격하며 초원에서 악명을 떨쳤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초원에서 살아서 돌아왔다. 비록 4천 명의 기병 중 8백 명만 살아서 돌아왔지만, 그는 이 일로 경국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공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경제의 날카로운 지적에 젊은 명장인 섭완은 마음이 뜨끔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참 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의문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개월 동안 거센 추격을 받으면서도 선우 속필달 왕정의 병사들은 어째서 7천 명의 북만 기병들과 재빨리 연락하지 못했던 것일까?’
마음이 살짝 서늘해진 섭완이 황제 폐하를 바라봤다. 점점 노쇠한 기색이 짙어지는 황제 폐하의 얼굴에서 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범한은 해당타타를 데리고 신묘에 가면서도 초원 일을 처리하는 걸 잊지 않았다.”
경제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무공은 항상 시 밖에 있듯이 승패 역시 항상 전쟁터 밖에 있는 법이다. 네가 언젠가 이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짐은 북벌 전체를 책임질 장군으로 너를 임명할 것이다.”
황제 옆에 선 섭완은 마음이 무거워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천하의 승패는 사실 전쟁터 밖에 있다. 1년 안에 범한이 죽는다면 짐이 승리를 하게 될 것이고, 만약 짐이 죽는다면…… 이 천하에서 짐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승리하게 되겠지.”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을 마친 황제 폐하가 뚱뚱한 흰색 고양이를 들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아주 정성스럽게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