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01
가서 전하거라, 내가 찾아가겠다고 (2)
혼례가 열리기 전날, 저자에 다녀온 뒤에 방에서 등불을 켜 놓은 채, 서책을 읽었다.
‘마침 오는군.’
자시가 되자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기척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묵는 방 창가로 신형이 하나 들어왔다.
“왔는가.”
들어오자마자 포권지례를 올리는 이는 무조였다.
“부르셨습니까. 주인이시여.”
“급히 불러서 미안하다. 행색을 보니 서찰을 받고선 쉬지 않고 왔나 보군.”
입고 있는 면 옷이 해져 있었다.
“절 부르신 연유는 흑사회 때문이지요?”
“그걸 어떻게 알지? 난 무무에게 그냥 자네가 속히 이리로 오는 것만 전했는데?”
“전서구로 무무가 자세한 것을 보고했고 주인을 만나러 오기 전, 다른 이들에게 흑살단에 대해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들은 다섯 해 전부터 흑사회에서 키운 살수들이더군요.”
무조는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모든 방향을 살피고 온 거였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주인의 누이를 노렸으니흑사회가 꾸민 것을 알게 된 주인께서 흑사회를 노릴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지요.”
“그렇다.”
“하고자 하시는 일을 앞당기실 생각이시군요.”
전에 무조에게 넌지시 말했던 게 있었다.
‘흑사회 멸문.’
“더 이상 저것들의 패악질을 견딜 수가 없다.”
내 말을 들은 무조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서신이었다.
“주인께서 그리 명하실 것 같아 그동안 모은 흑사회의 자료를 중요한 부분만 취합해서 가져왔습니다.”
“…. 언제나 한 수 앞을 내다보는군.”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주인께서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본분이니까요.”
무조가 준 서신을 펼쳐 정보를 살펴봤다.
정보량이 상당히 많았다. 처음부터 읽어보는데.
‘무조의 정보력이 대단한 건 알았지만, 이건···. 진짜 미쳤군.’
흑사회가 지금 진행 중인 일부터 연관된 세부적인 문파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 문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제는 어떤 것을 먹었고 잠은 몇 시에 자는지, 경계근무를 하는 시각이나 교대 시간, 그 경로 등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응?’
그때 눈에 띈 곳.
저번 삶에서도 얼핏 들어서 아는 이름이었다.
‘산영파(山影派).’
하북 남쪽 끝자락, ‘소궁산’에 있는 문파로 겉으로는 일반적인 문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벽력탄의 재료를 운반하는 곳.’
벽력탄 재료를 운반하는 곳은 세 곳이 있었다.
그중 한 군데가 산영파였고 그들은 인근 양민들도 약탈하며 산적처럼 사는 이들이었다.
“산영파를 비롯해 흑사회와 연관된 문파를 모조리 조사해 보고하라.”
스윽.
내 말을 듣고선 다시 품에 손을 넣는데 설마.
“여기 있습니다. 그리 말씀하실 것 같아 산영파와 그곳의 문주 산악검객(山惡劍客)의 정보가 기록된 문서입니다.”
…. 난 이제 이 사람이 무서워질 거 같다.
*
다음날, 남궁세가에선 예정대로 남궁효우와 송연화의 혼례연이 열렸다.
남궁세가 장원에는 중원 곳곳에서 온 객들이 모였고 강호 명숙들도 참석한 터라 호위들도 많았다.
송삼현은 백의로 된 무복이 아닌 금호장이 준비한 옷을 입었고 옆은 천하봉선과 사월향이 앉아 있었다.
“대협께서 화려한 옷을 입으시니 뭔가 적응이 안 되네요.”
“저도 어색해 죽겠습니다. 그런데 천하봉선님은 태상가주님께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태상가주님의 손님이 아닌 대협의 손님으로 온 것이니 대협의 곁에 있는 것이 맞지요.”
담소를 나누고 있자 몇몇 사람들이 천하봉선을 알아보곤 다가왔다.
천하봉선의 얼굴은 강호 명숙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한 번쯤은 천하봉선의 의술에 신세를 졌으니 그들은 천하봉선을 찾아와 예를 갖췄다.
“천하봉선님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동방신검님과 해운일도님이시군요. 다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동방신검(東方迅劍) 손우문.
강동 지방에서 쾌검으로 이름을 날린 자.
해운일도(海雲一刀) 공손월
하북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고수였다.
두 사람은 천하 백 대 고수에 반열에 있는 자들로 남궁상룡과 같은 배분의 무림인들이었다.
잠시후.
혼례식이 진행됐다.
남궁세가와 금호장의 가족들이 제일 앞에 앉았고 뒤이어 남궁효우가 오른쪽에서 송연화가 왼쪽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들어왔다.
오오오오오오!
붉은 옷으로 치장한 송연화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와.”
“미색이 저리 곱다니, 선남선녀라 그런지 더 보기 좋군.”
짝짝짝짝짝!
“중원 제일 무가(武家)와 중원 제일 재가(財家)의 합이라···. 강호의 정세는 이제 이 두 가문을 중심으로 흐르겠구나.”
찾아온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혼례가 끝났다.
뒤이어 열린 혼례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며 교분을 쌓았다. 송삼현은 빠지려고 했으나 잠깐 얼굴이라도 내밀라는 남궁상룡의 말에 차를 마시며 억지로 앉아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당수향이 아마파 여승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대협.”
“당 소저와 아미파 여스님들이시군요.”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누군가가 송삼현에게 다가왔다.
“백의검룡 대협.”
화산파에서 온 유산해였다.
“산화검을 뵙습니다.”
꽉.
“그때,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검존께서 대협께 꼭 사죄를 청하라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화산파 도사님들이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전 더 큰 일이 났을 겁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산해는 두 손으로 송삼현의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미안해했고 송삼현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뒤에 있던 화산파 제자들도 포권지례를 올렸다.
‘모두 거기서 봤던 이들이군. 그리고.’
송삼현이 본 곳에는.
“화산파 일대제자 무철, 백의검룡 대협을 뵙습니다.”
무철이 있었다.
저번 삶에서 수하였던 자가.
무철이라는 이름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웅성거렸고 아미파 주영약이 놀라며 말했다.
“매화일검(梅花一劍)!”
“저분이 매화일검이라고? 매화검존님의 제자?”
“장차 화산의 기둥이 될 분이라고 들었는데 이곳에서 뵐 줄이야. 듣던 대로 풍채가 예사롭지 않군.”
“매화일검도 매화일검이지만, 백의검룡께서 더 대단하시지, 홀로 문파 하나를 상대하시는 분이시잖아.”
곧이어 송삼현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포권지례를 하며 화산파보다 송삼현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백의검룡’
이 별호의 영향력은 이제 중원 전체에 퍼지고도 남았으니까.
“백의검룡 대협!”
“송 대협!”
“흑천오방의 일은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광동 지방으로 오시면 꼭 운문 상단을 찾아주십시오!”
협을 행하며 점점 높아진 이름, 그렇기에 송삼현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주목받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떠날 날이 됐다.
*
“떠난다고?”
“이미 이곳에서 열흘 이상은 머물렀으니 슬슬 길을 떠날 시기지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궁상룡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그 곁에는 송우태를 비롯해 남궁수천, 남궁효우, 남궁유유도 있었다.
“이리 간다니 아쉽구나, 조금 더 검을 나눠보고 싶었는데.”
“일을 끝마치면 올 터이니 그때 마음껏 나누시지요.”
“그거 좋구나. 그러면 곧장 하북으로 갈 참이더냐?”
“예, 이미 벗들을 그곳으로 보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으니 저도 어서 가봐야지요.”
혼례가 끝나자마자 선무정과 마훈, 그리고 무조를 하북 형태로 보내놨다.
그 말을 들은 남궁상룡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네가 말한 길은 그 어떤 길보다 힘든 길이 될 것이다. 각오는 했느냐?”
“그 각오는 두 해 전, 금호장을 나설 때부터 했습니다.”
송삼현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중원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금호장의 반푼이.’
그 시절부터 현재 이곳까지 이르기까지 힘든 시련을 겪었다는 걸 남궁상룡을 비롯해 이 방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송우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송삼현을 보며 말했다.
“부디 몸 조심하고 다음에 보자꾸나.”
더는 길게 할 말은 없었다.
“예, 장주님.”
이어서 남궁상룡을 비롯해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린 후, 방에서 나왔다.
남궁효우가 뒤따라 나오며 같이 걸어간 곳에는 송연화가 있었다.
“삼현아.”
“네, 누님.”
“다치지 말라는 말은 더는 하지 않으마.”
“…”
“저자에서 말했던 네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마.”
“감사합니다, 누님. 서찰을 보내겠습니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세요.”
송삼현은 품에서 청철 비녀를 꺼내 송연화에게 건네줬다. 그리곤 남궁상룡에게 받은 흑영마에 올라 남궁세가를 나섰다.
뚝.
뚝.
곧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
하북성 형태 청아현의 남쪽.
그곳에는 수풀이 우거진 소궁산이 있었다.
이런 말이 있을 만큼 이곳의 산적들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관의 추적을 피하며 약탈을 일삼기로 유명했다.
달이 구름에 걸린 늦은 밤, 산영파의 앞에는 산적처럼 생긴 이들이 토끼를 구워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크으, 어제는 진짜 재밌지 않았나?”
“문주님 덕분에 재미 좀 봤지. 어제 난 은자 두 냥이나 빼앗았다네.”
“두 냥씩이나? 그거 부럽구만.”
그때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두 사람은 토끼를 먹다가 말고 검을 빼 들었다.
“웬 놈이냐!”
가까워지는 발소리,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곧 피범벅이 된 무사의 몰골이 보였다.
공포에 사로잡힌 눈빛.
바들바들 떨리는 몸.
온몸에 피칠갑을 한 그는 무사들을 보며 손을 뻗었다.
“사, 살려주!!”
촤아아아악!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순식간에 몸에서 목이 떨어졌다.
두 명은 놀라서 검을 들긴 했으나 검을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스윽.
어둠 속에서 신형이 나타나며 앞에 있던 무사의 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누, 누구란 말이냐! 이 야밤에 습격을 한 자가!”
뒤에 있던 무사가 인상착의를 봤다.
백의.
검집에서 꺼내진 청색 날의 검.
그는 백의검룡 송삼현이었다.
“배, 백의검룡입니다! 백의검룡이 나타났습니다!”
“백의검룡? 당장! 문주께 아뢰거라!”
촤아아아악!
“굳이 알리러 갈 필요 없다. 내가 찾으러 온 것이니 내가 찾아가마.”
콰아아아앙!
나무 문이 부서지며 들어간 곳에는 감시조들이 보고했는지 그새 많은 흑도들이 모여 있었다.
“찾으러 갈 필요 없이 다 모였구나.”
푹.
왼손에 든 검집을 땅에 꽂았다. 그리곤 송삼현의 신형이 아른거렸다.
“어, 어서 달려들어! 사방에서 다 찌르란 말이다!”
오합지졸처럼 달려드는 이들의 검에 당할 송삼현이 아니었다.
그들의 검은 송삼현의 잔상만을 건드렸고 송삼현은 어느새 사라진 후였다.
탓.
한 번의 도약.
그 도약으로 송삼현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산영파 문주, 산안검객의 옆에 도달했다.
“… 이, 이게 무스···.”
산악검객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청월은 빛났다.
촤아아아악!
산악검객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초절정 무인의 목이 떨어진 것은 단 한 순간이었다.
산악검객의 목을 보자 산영파의 무사들은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이질 못했다.
스르르르륵.
푸른 연기가 송삼현의 주위를 일렁였고 곧 그것이 몸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자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도깨비다! 저건 백의검룡의 모습을 한 도깨비가 분명해!”
“도망쳐! 어서!”
급히 일어나 산영파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그 앞은.
콰아아아아앙!
“어딜 가느냐, 아직 주군의 허락도 나오지 않았거늘.”
마훈이 지키고 있었다. 마훈은 송삼현을 봤고 송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탓!
송삼현의 검과 마훈의 검.
그 두 사람의 검으로 산영파 산적들은 무참히 죽어갔고 뒤이어 선무정이 산영파의 전각을 불태웠다.
화르르르륵.
불타는 산영파의 전각.
송삼현은 일부러 죽이지 않고 살려둔 마지막 생존자의 목에 검을 겨눴다.
바들바들.
생존자는 몸을 떨며 바지춤이 축축해졌다.
“울지 마라, 넌 지금 죽이진 않는다.”
“저, 정말입니까!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 길로 곧장 흑사회로 가서 회주에게 전하거라.”
“회, 회주님께요? 저 같은 말단이 뵐 수 있는 분이 아닌데요···.”
스윽.
“그러면 죽겠느냐?”
“아, 아닙니다! 제가 반드시 대협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하문하시지요!”
넙죽 엎드린 무사에게 송삼현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가서 전하거라, 너희들이 오지 않아도 내가 곧 찾아가겠다고.”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에 생존자는 침을 꿀꺽 삼켰고 송삼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너희들의 모든 것을 걸고서 어디 한번 막아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