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04
땅이 아무리 넓어도 하늘에는 닿지 못하거늘 (3)
늦은 밤, 야영을 하던 송삼현을 습격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스무 명의 자객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자객이 나무에 기대며 송삼현을 봤다.
“쿨럭.”
내상을 입어 피를 한 번 토하더니 송삼현에게 말했다.
“이거 하나만 명심하시오.”
“….”
“우리가 그대의 걸음을 온전히 다 막아낼 순 없을 것이오.”
송삼현의 경지를 보면 흑사회에서 그를 막을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자객이 말하려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허나, 그대도 우리 모두를 막아낼 순 없을 것임을 명심하는 게 좋을 거요.”
송삼현이 말을 하는 자객에게 다가갔다.
손에 들린 청월은 달빛을 머금으며 더 빛을 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요. 혼자서 수천에 이르는 우리를 상대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곧 깨닫게 될 터이니.”
촤아아아아악!
끝까지 말을 하던 흑의인의 목은 땅에 툭 하고 떨어졌다.
송삼현은 청월에 비치는 달빛을 보며 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곤 허공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피 비린내.’
익숙했다.
저번 삶에서 매일 같이 맡았던 냄새들과.
*
보름 후.
백의검룡 송삼현.
시간이 흐르며 그 이름은 하북 일대를 넘어 중원 곳곳에 퍼졌다.
“그냥 화풀이하는 거 아니야? 백의검룡이랑 흑사회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모두가 알고 있잖아.”
송삼현이 흑사회의 함정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는 중원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저지르는 일은 단순한 복수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기루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하는 말에 다른 곳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이가 있었다.
“헛소문! 백의검룡 대협이 하시는 일은 옳은 것뿐이지 않소! 흑도들을 많이 죽였다고 그게 잘못된 거요?”
그는 비문상단주 벽이천이었다.
“비문 상단주가 아니시오.”
“그대들은 백의검룡 대협이 하북에서 왜구를 몰아내는 것을 벌써 잊으신 거요? 그리고 흑사회의 방파인 흑해도문이 어떻게 해안을 짓밟았는지도 벌써 잊으신 거요?”
송삼현이 흑해도문을 멸문시키며 하북 해안가는 더 이상 왜구가 출몰하지 않았다.
해안의 안전이 확보되자 왜구를 피해 피난을 갔던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와 마을을 재건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작정 살육하는 것과 뭐가 다르오? 분명히 그들 중에는 갱생하고 싶은 자들도 있을 것인데!”
“사람을 죽이던 자들이 갱생?! 만약 백의검룡 대협께서 철룡문을 없애주지 않았다면? 그대들은 그 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또 어딘가 한 군데 부러졌을 거요!”
“비문 상단주 말이 과하시오!”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줄은 알기는 하시오? 단순한 복수심? 아니오! 그분은 흑사회에게 더 이상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하려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시는 거란 말이오!”
벽이천의 말에 기루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이 집중했다.
“술맛이 떨어졌소.”
스윽.
“내가 먹은 술값과 부순 의자값이니 받으시오.”
전낭에 담긴 은자를 관리하는 무사에게 주고선 술에 취한 남성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백의검룡께서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사셨으면 좋겠소. 알아주지도 않은 자들을 위해 왜 목숨을 건단 말이오.”
벽이천이 말을 하고 기루를 떠나자 서 있던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했고 아까 백의검룡을 욕하던 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흥! 그렇다고 그자가 살육을 저지른다는 게 사라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러자 아까까지 조용히 술을 먹던 일행들이 발끈했다.
“용 씨! 당신은 철룡방에게 자식이 팔려 간 곳도 아직 모르지 않나!”
“…. 갑자기 그 말을 왜 하는가! 난 그저 죽은 그들이 불쌍해서!”
“불쌍하다고? 그들도 선행을 했으니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 강하방의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긴 했어. 한데 그들이 왜 정파가 아닌 사파가 된 건지는 다들 알지 않은가!”
강하방처럼 선행을 하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 악명을 떨치던 그들의 본질을 잊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무림에서 죄를 저지른 이들이었다.
겁간.
살육.
불과 몇 년 전까지 이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이들이었다.
“난 말이오, 적어도 뒤에서 욕하는 건 그만두겠소.”
“나도요!”
“나도!”
“적어도 백의검룡 대협 덕분에 사는 것이 더 좋아지는 건 사실이 아니오.”
그렇게 사람들은 술에 취한 남성 주위를 피했다.
기루를 휘저어놓은 벽이천은 기루에서 나와 말에 올랐다.
기루에서 멀어지자 옆에서 말을 타고 조용히 따라오던 총관 유야가 물었다.
“…. 사람들의 시선이 이러면 백의검룡 대협이 많이 힘드시겠네요.”
“그럴 거다. 그때도 지금도 양민들만을 생각하시는 분이거늘···. 양민들은 그런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헛된 소문만을 믿는구나.”
하북 해안에서 같이 검을 휘두르던 때가 떠올랐다.
욕심 없이 그저 양민들을 지키기 위해 휘두른 올곧은 검.
그 호쾌했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깊숙이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만일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진다면 백의검룡 대협도 힘드실 거다.’
말의 고삐를 바짝 쥐었다.
“가자, 미력한 힘이지만, 내가 백의검룡 대협의 길에 도움이 되어 드려야겠다.”
*
하북성 보정 역현.
이곳은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보정강 덕분에 예로부터 상업이 발달됐다. 그리고 하북 해안가와 인접해 사람들로 끊이지 않아 거리는 성황(盛況)을 이뤘다.
“백의검룡이다!”
그 거리에 들어간 송삼현 일행은 역시나 시선을 끌었다. 말을 타고 가는데 선무정이 전음으로 말했다.
[주군, 옷을 바꿀 생각은 없으신가요? 백의라서 더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흑영마를 타고 지나가면서 묵을 곳을 찾는데 한 객잔 앞에서 남성과 가족들이 송삼현의 앞을 막아섰다.
‘또 인가.’
여느 마을에서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으나.
“대협, 묵으실 곳을 찾으신다면 저희 ‘수월 객잔’을 찾아주시지요.”
이번에는 달랐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옳은 일을 하시는 분이신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 그러면 하루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객잔 마구간에 말을 묶어두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남성은 송삼현을 이 층 방으로 안내해줬다.
“쉬고 계시면 먼저 요기하실 걸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 문이 닫히며 선무정, 마훈과 같이 차를 한잔하는데.
타닷. 타닷.
누군가 방으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를 보니 어린아이로군.’
역시나 예상대로 문을 연 아이는 객잔 주인의 아들이었다.
“정말 백의검룡 대협이세요?”
“그래.”
“제 이름은 강아현이에요. 저도 나중에 꼭 대협처럼 멋진 무림인이 되는 게 소원입니다!”
“… 그러하냐?”
“예! 큰 아버지가 하북 황화부에서 왜구 때문에 피난을 가셨거든요. 근데 대협 덕분에 다시 황화부에 객잔을 열 수 있다고 엄청나게 좋아하셨어요! 저도 대협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수월 객잔의 가족들은 하북 해안에서 피해를 받던 이들의 친척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구원해준 송삼현에게 이리 호의를 보이는 거였다.
“고맙구나.”
“아니에요! 혹시 나중에 제 검술도 봐줄 수 있어요? 석 달 전부터 요 앞에 유동 검문에 다니고 있거든요!”
“시간이 나면 그리해주마.”
“약조하신 겁니다!”
드르르륵.
“아현아, 대협께서 피곤하시니, 어서 내려가거서 어머니 좀 돕거라.”
“예, 아버지!”
강아현이 나가고 객잔 주인은 식탁에 음식을 올려준 뒤,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왜, 왜 이러십니까!”
“대협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대협 덕분에 제 형님 가족이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대협께서 하시는 일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저처럼 좋게 보는 이도 많으니 마음 약해지지 마십시오.”
“…. 고맙습니다, 정말 힘이 되는 말이네요.”
*
마을의 등불이 꺼지며 모두가 잠에 든 시각.
언덕 위에서 마을 내려다보는 수많은 시선이 있었다.
수백 명의 흑의인, 그리고 한 사람이 걸어오자 수백 명의 흑의인들은 일제히 포권지례를 올렸다.
“방주님을 뵙습니다!”
“저곳인가? 백의검룡이 묵고 있는 곳이?”
흑염방주 배육호, 올해 육십이 된 그는 구척이 넘는 커다란 풍채에 사자의 갈기처럼 뻗은 흰 머리카락, 수염 때문에 마치 사자가 사람으로 변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수월 객잔에서 묵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흐음.”
“어떤 식으로 접근하실 생각이십니까? 전에 말했던 대로 함정을 파놓는 기습입니까?”
시간이 지나며 흑사회가 송삼현을 습격하는 방법은 다양해졌다.
그러나 누구도 송삼현에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흑염방주는 유심히 마을의 구조를 살피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계(火計)다.”
“화계요? 마을에 불을 놓자는 말씀이신가요?”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매한가지라면 뭐라도 하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이 하자는 것은 화계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송삼현을 잡고자 하는 일이라곤 해도 마을 하나를 불태운다는 것은 관과 무림맹이 나설 건수를 주게 된다.
“아, 아무리 그래도 마을을 통째로 불태운다는 건!”
“백의검룡이 있는 마을이 불태워져 모조리 죽었다면 다른 마을에서는 어떻겠느냐?”
“….”
“백의검룡이 설 자리를 빼앗는 거다.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더라도 혼자서 조직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
흑염방주는 한 수 앞을 봤다.
단순히 화계로 죽이겠다는 것이 아닌 송삼현이 화계에서 살아남아도 그를 도와줬던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지는 걸 노린 거였다.
그러면 자연스레 중원에서 송삼현이 설 자리는 더더욱 사라지게 되니까.
“… 무림맹에서 나설 명분을 주는 걸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본회의 군사님이 허락하신 일입니까?”
“허락? 내가 어디 허락을 구하는 것을 봤느냐? 그 새파랗게 어린놈의 말보다 흑사회의 위엄이 먼저다! 백의검룡 때문에 흑사회의 이름이 바닥에 곤두박질 치지 않았느냐!”
흑염방주는 누구보다 흑사회에 속한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흑사회가 송삼현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자 분노했다.
“불을 놓아라!”
그 분노는 곧이어 역현 마을을 통째로 불태웠다. 마을 곳곳에 기름을 뿌리고 그 위에 불을 놓았다.
화르르르르륵.
어둠이 뒤덮인 세상.
그 세상이 순식간에 퍼진 화마로 인해 아침처럼 밝아졌다.
“끄아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천지를 울렸고 마을은 불길에 삼켜져 서서히 사라져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송삼현은 불길에 휩싸인 객잔에서 황급히 나왔다.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 그리고 사각에 숨어있던 자객이 단도를 빼 들어 송삼현에게 신형을 날렸다.
“어딜!”
눈치를 채고 달려든 자객의 목을 잡고 비틀었으나 자객은 품에 벽력탄을 품고 있었다. 이건 자폭을 하려는 거였고 송삼현은 황급히 손을 뻗었다. 손을 뻗은 곳엔 객잔 주인의 가족들이 있었다.
‘… 안 된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손을 뻗어서 막으려고 했으나 객잔 주인 가족은 벽력탄에 휘말렸다. 송삼현은 가까스로 방어를 했으나 객잔 주인의 가족들은 폭발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화마(火魔)에 휩싸인 마을에 일갈이 울려 퍼졌다.
- “앞으로 백의검룡을 도와준다면 누구라도! 흑사회의 분노를 사게 될 것임을 명심하거라! 역현이 그 본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