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06
땅이 아무리 넓어도 하늘에는 닿지 못하거늘 (5)
“그건 이쪽으로! 옆에 사람 치지 않게 조심하고!”
“어! 한 씨! 저기 봐봐! 또 누가 오나 본데?”
“금호장 다음은 누구지···? 하북 팽가다!”
다음 날, 하북 팽가의 행렬도 역현에 도착했다.
하북 팽가 소가주 팽도형과 그의 여동생 팽유화가 이끄는 하북 팽가의 ‘구호대(求護隊)’였다. 그리고 행렬 가운데 유독 위엄을 풍기는 이가 있었다.
‘하북 팽가주 팽가룡.’
그는 천하 십 도라고 불리며 도로서는 천하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이거 팽 가주님께서도 오셨군요.”
제갈귀호가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올리자 팽가룡도 황급히 말에서 내려 예를 올렸다.
“하북에서 일어난 일에 무림맹이 도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갈귀호와 인사를 한 팽가룡의 시선은 그 옆에 있는 송삼현을 향했다.
“그대가 백의검룡이오?”
“송가 삼현이 하북 팽가주님을 뵙습니다.”
“만나서 반갑소.”
팽가룡은 원체 진지한 사람이라 나이가 어린 후학이라고 쉽게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대우할 후학이라면 더욱 대우를 해주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스윽.
제갈귀호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권지례를 했고 송삼현은 화들짝 놀라며 포권지례를 올렸다.
“그대에게도 감사하오, 지난 하북 황화부 왜구를 격퇴해준 것과 이번 화마 속에서 양민들을 구해주어 고맙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게 작금의 강호가 아니오.”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셔서 마저 인사를 하시지요.”
“총 군사님,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오랜만에 팽 가주님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기쁠 따름이지요.”
팽가룡과 제갈귀호가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팽도형과 팽유화와 인사를 했다.
“아버지가 포권을 취하셔서 놀랐지?”
“네···. 저 같은 후학에게 이렇게까지 예를 갖추실 줄은 몰랐습니다.”
팽 남매와는 무림맹에서 연이 있었기에 편히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너는 항상 내 예상을 넘는 일을 하는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홀로 흑사회와 일전을 벌인다면서 팽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안 했느냐?”
흑사회가 있는 난하 산맥.
하북 팽가의 영향력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긴 하지만 팽가가 능히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 무모한 싸움이니 불필요한 희생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섭섭하구나, 이제 효우의 처남이 됐으면 나에게도 벗과도 같은 인연인데.”
“송구합니다.”
“아니다. 네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이건 그냥 내 투정이라 생각해주면 고맙겠구나.”
팽도형이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자 팽유화가 중간에 중재했다.
“오라버니, 대협을 그만 귀찮게 하시지요. 모시고 온 의원님들을 도와 구호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내가 잠시 깜박했구나.”
의원이라는 말에 송삼현은 팽도형의 손목을 잡았다.
“소가주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
“… 이 자는?”
송삼현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온 팽도형의 미간은 누워있는 사람을 보곤 좁혀졌다. 옆에 있던 팽유화도 마찬가지였다.
병상에 누워있는 자는 무림 공적 북검 마훈이었다.
“벽력탄에 휘말렸습니다. 이 자의 치료를 팽가의 의원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곳에 의원은 없느냐?”
“의원은 있습니다. 마을 의원이 계속 상처를 돌봐주고 있지만, 내상을 다루는 것은 미숙해서요.”
이곳의 의원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만 하지 내공으로 인한 내상 치료는 하지 못했다.
허나 팽가의 의원이라면 매일 무인들을 치료하니 마훈을 치료할 방도가 있을 거라는 게 송삼현의 생각이었다.
“알겠다. 그리하마.”
“오라버니, 아무리 대협의 부탁이라고 하지만 이 자는 무림 공적이 아닙니까. 도와줬다가 아버지의 진노가 떨어질까 우려스럽습니다.”
팽유화가 살짝 경계했으나 팽도형은 송삼현을 보며 웃었다.
“무림 공적의 신분이라도 삼현이의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내 벗의 처남이 아닌가!”
“….”
“하 의원께서 봐주시오.”
하 의원은 팽가의 수석 의원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는 손을 뻗어 마훈의 진맥을 살피더니 몇 군데 시침하기 시작했다.
“내상이 심하긴 하오나, 손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온전히 회복하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릴 겁니다.”
“내공으로 다스리는 방법은 안 됩니까?”
“날뛰는 기운을 침으로 누르긴 했으나 내공으로 다스리기엔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 가능은 하단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송삼현은 하 의원의 말을 듣고 마훈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스르르르륵.
내공을 안으로 흘려보내 살폈고 벽력탄의 여파로 입은 내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확실히 시침 후라서 그런지 처음 살폈던 때보다 나아졌다.
마구잡이로 날뛰던 기운이 많이 진정된 상태였다.
더 안으로 내공을 흘려보내자 기해혈을 중심으로 내공이 온몸으로 퍼져나가야 했는데 기해혈에 기운이 뭉쳐있는 게 감지됐다.
‘처음에는 날뛰는 기운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다.’
스르르르르륵.
송삼현이 마훈의 몸 안으로 내공을 흘려보내자 하 의원을 비롯해 팽 남매도 놀라운 눈으로 쳐다봤다.
‘집중하자.’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다.
다른 이의 몸에 내공을 흘려보내 그것을 통제하는 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바늘에 실을 꿰듯 치밀한 통제가 필요했고 송삼현은 마훈의 막혀있는 혈로 조심스레 기운을 보냈다.
‘여기다.’
콱!
내공으로 막혀있던 기운을 밀어내 혈을 뚫었다. 그리고 이다음이 중요했다. 마훈의 몸 안에 퍼진 자신의 내공을 갈무리하는 일이었다.
스르르르륵.
신중히 내공을 모두 갈무리했다.
“… 됐다.”
기운을 갈무리한 뒤, 안색을 살피자 마훈의 혈색이 좋아졌고 숨소리도 괜찮아졌다.
“아, 아니 이게 어찌···.”
하 의원은 황급히 다시 진맥하더니 놀랐다.
“정말 내공을 흘려 직접 다스리셨군요.”
“의원님의 시침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전에는 기운이 날뛰어서 시도도 하지 못했거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내공 통제력이라니···. 가히 천하인들이 말하던 대로 천하 십 대의 반열에 오르신 고수답습니다.”
그 뒤로 하 의원의 보살핌으로 마훈의 상태는 호전되어갔다.
*
늦은 밤, 송삼현은 제갈귀호, 팽가룡과 마을 한 편에 마련된 정자에서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곧장 난하 산맥으로 갈 것이냐?”
“그럴 생각입니다.”
“그렇구나, 가는 길에 무림맹 무사들이 너를 따르도록 지시를 해뒀다.”
“예?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혼자보다는 도움이 될 거다. 황룡대를 내어주마.”
황룡대(黃龍隊).
무림맹의 공격대로 초절정 고수 한 명과 절정 고수 다섯 명으로 이뤄진 대.
이들은 적화대나 묵호대보다 조금 더 위험한 임무를 전담하는 이들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수들이었다.
“황룡대주는 들라.”
드르르륵.
제갈귀호의 말에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이는 금빛 무복을 입은 황룡대주 고태권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군사님.”
“오면서 이른 대로 넌 이대로 삼현이를 따르거라.”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룡대에겐 무림맹의 패도 있으니 네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도움이 될 거다.”
제갈귀호의 말에 송삼현은 황룡대주를 쳐다봤다.
“저를 따르셔도 되겠습니까?”
무림맹 황룡대주.
무림맹의 대주급들은 무림맹의 맹주나 군사의 명 말곤 듣지 않는 자들이었다.
“물론입니다. 백의검룡 대협의 검이 되어 흑사회 무리들을 척결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황룡대주 고태권은 천하 백 대 고수의 반열에 든 고수였다. 이런 자가 도움을 준다면 앞으로 일이 더 수월하게 풀릴 공산이 컸다.
“나는 돌아가서 흑사회를 본격적으로 압박하겠다. 그들을 상대로 제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거지.”
전쟁을 일으킨다는 말에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송삼현은 전쟁을 막기 위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했다. 제갈귀호는 송삼현의 표정을 보곤 찻잔에 차를 따랐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 너는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너 혼자서 움직였겠지.”
“….”
“하지만 너도 겪지 않았더냐, 흑사회는 순전히 너만을 노리지 않는다. 그 녀석들이 발악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너로 국한된 것이 아닌 죄 없는 양민들에게까지 화마처럼 퍼질 수 있다.”
송삼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갈귀호의 말처럼 흑사회가 궁지에 몰린다면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만약.
최악의 상황으로 가면 이러한 화계는 우스울 만큼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날 수 있었다.
“맹을 믿거라, 네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은 우리가 책임질 것이니, 넌 곧장 나아가거라.”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차만 마시던 팽가룡이 입을 열었다.
“팽가도 백의검룡께 도움을 주겠소. 도형이와 유화가 대협을 따라갈 거요. 하북 일대의 지리는 팽가만큼 잘 아는 이들은 없으니 그 녀석들과 길잡이들을 데려가시오. 조금 더 빨리 목적지까지 당도할 수 있을 것이오.”
“위험한 길이 될 수 있는데도···.”
“원래 위험한 일을 경험하면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난 내 자식들을 그리 약하게 키우지 않았으니 분명 도움이 될 일이 있을 거요. 그리고 난.”
씨익.
“오히려 대협의 곁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길 원하오.”
하북을 주름잡는 팽가룡의 말에 제갈귀호가 웃으며 말했다.
“가주님, 삼현이는 제 손녀와 혼인시킬 겁니다.”
“허허허허허! 사람 앞날은 모르는 법이지요.”
농담을 주고받던 제갈귀호는 찻잔을 들어 그 안에 달을 담았다.
“이제부터 너의 행보는 모든 이들이 집중할 것이니 망설이지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거라.”
*
무림맹, 금호장, 하북 팽가.
세 세력이 모인 역현은 화마의 상처에서 새로운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다음 날, 마훈이 눈을 떴다.
“주군.”
“괜찮으냐?”
“예, 몸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걸 받거라.”
스윽.
내가 마훈에게 건네준 것은 흑천오방을 궤멸시키고 흑천오방주의 밀실에서 가져온 혈삼이었다.
“그것을 복용하거라, 내상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거다.”
혈삼을 받은 마훈은 화들짝 놀랐다.
“어, 어찌 이리 귀한 것을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주군께서 복용하십시오!”
“너는 누가 뭐라 해도 내 오른팔이 아니더냐.”
“….”
“내 곁을 지킬 사람은 너와 무정이 밖에 없다. 그러니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거라.”
“… 예!”
마훈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북검이라고 불리며 무림 공적인 신분이지만, 함께 지내보니 마음은 한없이 여렸다.
혈삼을 전해준 뒤, 방을 나가려는데 다른 이들이 다가오더니 마훈의 방문을 열었다.
“아! 백의검룡 대협도 계셨군요.”
“의원님이 아니십니까?”
팽가의 의원이 보기 전까지 마훈의 상처를 돌봐주던 마을의 의원이었다.
“마훈님이 깨어났다고 들어서 가족들과 같이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의원의 가족은 마훈이 화마의 잔해에서 구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와 마훈에게 달려갔다.
“… 아저씨! 고마워요!”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더니 마훈을 보기 위해 역현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저도 나중에 아저씨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림 공적으로 쫓기던 나날들.
마훈은 그동안 쫓기면서 살았기에 느껴보지 못했을 거다.
협을 걷는 이들이 느끼는 기분을.
“뭐 하느냐. 아이들 팔 떨어지겠다.”
울컥한 감정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마훈은 활짝 웃으며 아이들이 건네주는 꽃과 먹을거리를 받으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