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07
땅이 아무리 넓어도 하늘에는 닿지 못하거늘 (6)
“급보입니다!”
흑사회 본산, 한충건이 집무실 의자에 앉아 서찰을 보고 있는데 흑의인 한 명이 급보라며 급히 들어왔다.
“급보?”
한충건은 들어온 흑의인의 장포 오른쪽 자락에 새겨진 문양을 봤다.
‘甲’
“너는 백의검룡의 동태를 살피는 첩보대원이 아니냐.”
“첩보 갑조원 양융입니다! 갑조장이 속히 군사님께 알려야 한다고 하여 이리 왔습니다.”
“그래 보고할 게 무엇이냐?”
“흑염방주가 역현에 화계를 저질러 역현이 화마에 휩싸였다고 하옵니다!”
그 말을 들은 한충건은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뭐라? 화계를 저질러?”
화계는 자신이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
흑염방주를 비롯한 방파에게 명한 것은 천라지망을 펼쳐서 송삼현의 걸음을 늦추라는 것이 전부였다.
“… 그것이 흑염방주가 군사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시도했다고 합니다.”
쾅!
“그 미친 늙은이가!”
한충건이 내리친 책상은 반으로 갈라졌다.
‘화계를 저지르다니! 그렇게 되면 무림맹이 개입할 거라는 걸 몰랐단 말이냐! 이러면 무림맹이 개입할 명분만 주는 꼴이거늘!’
머리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허나 무림맹이 개입할 거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흑염방주는?”
“백의검룡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화계로 인한 피해는 얼마나 되느냐?”
“역현의 마을 전체가 휘말리긴 했으나 인명피해는 없다고 하옵니다.”
“백의검룡은 어찌하고 있느냐?”
“역현에서 마을 재건을 돕고 있습니다. 금호장에서 구호물품을 보냈고 무림맹과 하북 팽가는 직접 현장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백의검룡은 적어도 닷새 안에 마을을 떠날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역현 주위에 포위망을 물리지 마라. 백의검룡의 행선지가 난하 산맥인 만큼 철저하게 동태를 살펴야 할 것이야.”
“존명!”
보고를 마친 흑의인은 급히 방에서 나갔고 홀로 방에 남은 한충건은 읽던 서찰을 내려놓고 창가로 가 웅장하게 펼쳐진 산맥을 바라봤다.
‘무림맹이 개입하고 하북 팽가와 손을 잡는다면···. 사태가 더 안 좋게 흘러가는군.’
한 달을 버텨 천월신교가 개입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계책도 무림맹이 개입한다면 흐지부지될 것이 뻔했다.
아직 천월신교가 오기까지는 이레라는 시간이 남은 상황.
한충건은 머리를 굴려 계책을 생각했다.
송삼현의 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출 계책을.
*
사흘 뒤, 객잔 뒤에 있는 공터.
연무장 크기의 공터에서 마훈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를 했다.
그 옆은 송삼현이 나무에 기대어 지켜보고 있었다.
‘내공량이 일 갑자 반이라 나를 만나기 전에도 기연이 있었군. 하긴 그러니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거겠지.’
운기를 마치더니 송삼현이 준 혈삼을 입에 넣어 씹었다. 몇 번 씹자 혈삼의 향이 주변으로 퍼졌고 혈삼에서 나오는 화기가 마훈의 몸을 휘감았다.
‘뜨겁다.’
혈삼은 오래된 것일수록 화기가 컸다.
마훈은 화기를 억누르며 혈삼의 기운을 천천히 몸 곳곳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뚝.
화기로 인해 온몸에서 땀이 흐르며 바닥에 비처럼 쏟아졌고 마훈의 곁에 있던 명검 ‘운하’가 공명음을 냈다.
“…. 운하가 한기를 머금은 검이라더니, 내 예상이 맞았군.”
광천혈마의 무덤에서 얻은 명검 운하가 한기를 내뿜으며 마훈의 몸 곳곳으로 퍼지는 화기를 억눌러줬다.
이것으로 혈삼의 기운을 온전히 얻을 수만 있다면 마훈은 늘 넘지 못한 초절정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스르르르륵.
일각이 지나며 마훈의 몸을 휘감던 화기는 어느덧 운하가 내뿜는 한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몸 안으로 갈무리되기 시작했다.
.
.
.
운기를 하기 위해 눈을 감았던 마훈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히 객잔 뒤, 작은 공터에 있었는데 지금은 숲 한가운데였다.
빼곡한 나무로 가득한 숲속, 새와 벌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조차 안 가게 했다.
“이게 대체.”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태산검법을 처음 배웠을 때, 잠깐 맡았던 숲 내음이 코를 통해 머리까지 전해졌다.
저벅.
한 걸음을 내딛자 숲속에서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나무들이 검으로 변했다.
‘검?’
그 검은 곧 이기어검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더니 마훈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푹.
.
.
.
다시 눈을 뜨자 방금까지 나무로 가득했던 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공터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다시 공터구나.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처음 느껴본 감각.
숲에 있다가 갑자기 연무장이라니.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마훈에게 송삼현이 다가갔다.
“화경에 올랐구나.”
화경.
몇 년을 수련해도 오르지 못했던 벽을 드디어 넘어선 거였다.
마훈은 주먹을 쥐었다가 핀 뒤, 몸 안을 훑으며 상태를 살폈고 확신했다. 초절정의 벽을 넘어 화경에 도달했다는 걸.
“…. 다 주군께서 주신 혈삼 덕분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환골탈태를 이미 했구나?”
“초절정에 오르기 전에 귀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보통 화경을 넘어올 때, 하는 것이 환골탈태가 아니더냐. 무슨 기연이 있었길래···.”
더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 더 안 물으십니까?”
송삼현이 더 안 묻고 걸음을 돌리자 오히려 마훈이 당황했다.
“됐다. 누구나 가슴에 비밀 하나씩은 있지 않으냐, 그러니 굳이 말할 필요 없다.”
*
역현을 떠나기 전날 밤, 팽도형과 가볍게 차를 한 잔 마시고 쉬려는데 멀리서부터 인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나만 느낀 게 아닌지 방문이 열리며 마훈과 선무정이 들어왔다.
“주군! 물러서시지요!”
흑색 장포를 걸친 신형 하나가 창가로 올라왔고 마훈은 그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뒤는 무무가 붕대를 풀어 언제라도 붙잡을 준비를 했다.
“누구냐, 복면을 벗어라.”
흑의인은 싸우려는 게 아니었다. 싸우려는 거였다면 조금 더 은밀하게 접근하지, 이리 기척을 대놓고 오진 않을 테니까.
난 마훈에게 검을 내리라고 한 후에 한 걸음 다가갔다.
“혼자서 온 거라면 싸우러 온 것은 아닐 테고 그대는 누구요?”
창가에 선 이는 복면까지 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흑사회로 오해하기 딱 좋은 복장이었다.
스르르르르륵.
흑의인이 말을 하지 않자 뒤에 있던 무무가 붕대를 풀며 단숨에 목을 조르려고 했으나 손을 들어 막았다.
“무무야, 잠시 뒤로 물러나거라.”
혼자서 이곳에 온 거라면 어차피 싸울 의지는 없다는 거니 굳이 위협을 가할 필요도 없었다.
“그대는 흑사회요?”
내 물음에 흑의인은 복면을 벗으며 대답했다.
“그딴 놈들과 엮지 마십시오. 저는 흑천오방의 지하에 있던 비급서를 가지러 왔으니 비급서와 혈삼을 내어주시지요.”
흑천오방에서 가지고 나온 천월신궁의 비급서를 원하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내 눈앞에 나타난 이는 훗날 천월궁귀로 불리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대가 흑천오방에서 비급서와 영약을 가져가기로 약조한 사람이군.”
“알았으면 그만 내어주시지요. 원래 제 물건이었습니다.”
“지금은 내 소유요.”
“그러실 거면 저에게 왜 서신을 보내셨습니까?”
“어떤 자인지 보고 싶어서 그리했소.”
“… 저를 아십니까?”
“모르오.”
훗날 천월궁귀가 되어 은밀히 정파의 뒤를 도와줬던 존재.
나 또한 몇 번 도움을 받았기에 어찌 생겼는지 보고 싶었으나 절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번 삶에서는 얼굴을 몰랐으나 이제는 알게 됐다.
‘이리 생겼군.’
작은 체구와 상처가 많은 얼굴.
싸움 경험이 많아 보였다. 천월궁귀를 살피던 난 품에 넣어뒀던 천월신궁의 비급서와 작은 나무함을 꺼냈다.
“혈삼은 이미 사라졌고 이건 혈옥단이오.”
“…. 혈옥단이라, 이게 정녕 존재하던 것이오?”
“광천혈마의 무덤에서 가져왔으니 당연하지.”
혈옥단은 사파와 마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귀한 영약으로 취급받았다.
“사특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 정순한 무공을 익힌 자들이 복용했다간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독약이오. 허나 그대처럼 마공을 익힌 자들이라면 효능이 있을 거요.”
천월궁귀가 받으려고 하자 난 손을 살짝 뺐다.
“그냥 주기는 그렇고 조건이 있소.”
“… 그게 뭡니까?”
“내 수하가 되겠소?”
“백의검룡 송삼현, 이 이름은 운남의 끝자락 마교 본산의 천산 산맥까지 알려졌습니다, 허나 마교도인 제가 곁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대협의 이름에 흠집이 갈 겁니다.”
씩.
“하나 모르는 게 있군.”
“….”
“난 이미 무림 공적과도 연을 맺어서 말이오.”
검을 거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던 마훈을 가리키며 말하자 천월궁귀의 입은 다물어졌다.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
특히 정파와 마교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왔기에 마교도가 나타났다고 하면 척살 대상이었다.
허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천월궁귀는 훗날 은밀히 정파를 도와주는 협객이 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내 마음에 들면 그뿐이지.
“그대가 마교를 나온 이유는 단순히 강해지고 싶어서만은 아닐 거요. 마교도들이 배우는 마공은 금방 강해지고 싶은 자들에겐 매력적이니.”
“….”
“마교는 중원진출이라는 야욕에 억지로 명분을 끼워 넣는 족속들이오.”
“….”
“그러니 그대가 마교를 나온 이유는 하나겠지, 그들이 하는 일이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번 삶에서 천월궁귀에 대해 어느 정도 들었기에 왜 마교를 나왔고 천월신궁을 배워 정파를 도왔는지 대략적인 것은 알고 있었다.
협의지심.
정도를 걷고 싶었으나 사고에 휘말려 마교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 그 환경에서 스스로 벽을 허물고 나와 천월궁귀가 된 것이었다.
“내 제안은 어찌하겠소?”
손을 내밀었다.
허나 천월궁귀는 내 손을 바로 잡지 않았다.
마훈처럼 망설이는 거였다. 내 손을 잡으면 나에게 피해를 줄 거라고.
‘이런 사람들이라면 믿을 만하지.’
자신의 안위가 아닌 남의 안위를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말하시오.”
“대협께서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리 무모한 일을 하시는 겁니까? 대협 정도의 무위라면 아무것도 안 하고도 모든 이들에게 대우받으며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천월궁귀가 하는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대우받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저번 삶에서 천마의 손에 죽고 회귀하며 결심한 목표.
그 목표는 시간이 흘러도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짙어졌다.
“혈겁이 일어나기 전에 그걸 막는 것이 내 목적이요. 무고한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내 말을 들은 천월궁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내 눈을 보더니 말했다.
“대답은 조금 미뤄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리하시오.”
스윽.
천월신궁의 비급서와 나무함에 담긴 혈옥단을 줬다.
“그대가 내 수하가 되든 안 되든 마교를 나와 중원으로 온 그대가 옳은 일을 하길 바라오.”
어차피 천월신궁도 천월신교의 궁귀가 만든 비급서라 정순한 무공이 아니기에 혈옥단과 흡수하기엔 안성맞춤일 거다.
혈삼 보다도 더욱.
*
역현을 떠나는 날, 송삼현은 말에 오르기 전에 제갈귀호와 팽가룡에게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를 했다.
“하북 일대의 무림맹 지부에 전서구를 보냈으니 네가 마을에 갈 때마다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정보가 필요하면 개방의 손도 빌리거라. 개방주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놨으니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사님은 무림맹으로 돌아가시나요?”
“그래야지, 지금 운남 쪽에 마교도들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흑사회를 견제하면서 천월신교의 동태를 살피며 대응할 생각이다.”
많은 도움을 받고 떠나려는 그때, 역현 마을 사람들도 배웅을 나왔다.
“대협.”
인파 사이에서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리고 노인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대협을 감싼 소문에 저희도 모르게 무례를 범했습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저도 마을에 화계를 일어난 책임이 있으니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시지요.”
노인을 부축해서 일으켜주자 다른 남성이 말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저희를 위해 이리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디 다음에 다시 역현을 찾아주십시오. 그때는 성대하게 대협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역현으로 처음 들어올 때, 사람들이 몰래 수군거리는 것이 사라졌다.
그들은 웃으며 송삼현을 보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송삼현의 앞에는 길잡이가 되어줄 하북 팽가가 그리고 양옆은 황룡대가 서며 출발했다.
제갈귀호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송삼현의 뒷모습을 보며 옆에 있는 팽가룡에게 말했다.
“이 일이 좋게 끝나던 안 좋게 끝나던 백의검룡의 별호와 이름 석 자는 중원 역사에 굵직하게 남겠군요.”
팽가룡도 마찬가지로 송삼현의 뒤를 봤다.
“그러겠지요. 백의검룡이 걷는 길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위험한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