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1
달라지기 시작하는 미래 (2)
잠이 오지 않아 밤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을 보며 정원을 걸어 다녔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사추도와 대결을 펼친 걸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부족한 점을 찾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재현되는 심상(心象).
마지막에 펼친 천무신검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유운검법에서는 많은 부족함이 보였다.
부드러움.
그 속에서 나오는 날카로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검술, 어찌 보면 금호장의 검은 무당의 검과 닮아 있었다.
무당의 검도 부드러움으로 능히 강함을 제압하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를 담고 있으니까.
‘아.’
전에 비각에서 읽었던 금호장의 역사가 떠올랐다.
금호장의 시조(始祖)는 무당파의 속가제자 출신으로 무당의 검을 본떠 유운검법을 창안했다고.
“무당의 검이라.”
무당의 검은 저번 삶에서 내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검이었다.
훗날 무당 제일 검이라 불리는 장휘봉이 펼친 태극검(太極劍)은 무당파의 철학을 극한까지 담은 검이었다.
태극검을 대성까지 펼치는 이는 능히 천하를 호령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장휘봉이 펼친 태극검은 마교 사마장 중 일인인 독마장의 목을 베었다.
그날 밤, 장휘봉의 무위를 찬양하는 이들이 연회를 열었고 장휘봉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너 검에 유가 더해지면 천하에 막을 자가 없을 텐데 왜 그리 강함에 집착하는 거야?
그 당시에는 내 검에 약점이 없는 줄 알았지만, 결국에 장휘봉이 말했던 대로 유함이 없는 것이 큰 약점이 되어 천마를 베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지.
스윽.
슬쩍 손을 바라봤다.
내가 회귀하고서 봤던 뽀얗고 예쁜 손이 아닌 곳곳에 상처와 굳은살이 자리잡혀 있었다.
회귀하고 검을 안 잡았던 날이 없었으니 손도 그에 맞게 변했다.
“… 아직 부족함이 많구나.”
그런데도 아직 부족했다.
천무신검의 강함은 천하제일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검이지만, 회귀하고 내가 고집했던 건 천무신검에 유함을 더한다는 거였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천무신검으로 무학의 끝을 보면 모든 약점이 사라질까?
저번 삶에서 비록 일순간이지만, 죽기 전에 검의 최고봉라는 이기어검의 경지에 올랐었다.
만약 그 경지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올라 익숙해진다면 천마의 목에 검 끝이 닿을 수 있는 건가.
아직 물음투성이였다.
내가 가려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휘릭.
내가 달이 비치는 연못은 잔잔한 물결을 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전각 위에서 신형이 쏘아지더니 내 뒤쪽으로 착지했다.
“무슨 일이냐.”
“삼 공자님, 장주께서 찾으십니다.”
“장주께서?”
나를?
*
“찾으셨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송우태는 의자에 앉아 나를 봤다.
송우태와 단둘이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심장이 뛰었고 슬쩍 눈을 마주치자 태산 같은 존재감을 내뿜었다.
‘젊은 시절도 대단하구나.’
지금 송우태의 나이는 마흔여섯이었다.
저번 삶에서 기억하는 송우태는 일흔의 노인이었지만, 금호장의 제일 앞에서 그들을 이끌며 전장을 호령하는 한 마리의 노호(老虎)였다.
늙은 호랑이가 아닌 젊은 호랑이의 송우태는 강맹한 기운을 내뿜으며 나에게 말했다.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잠이 오지 않아 달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무청산과 수산에서 있었던 일이 정녕 사실이더냐?”
“네?”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일이 있을 것 같으냐. 이쯤이면 무슨 말인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무청산에서 내가 수산에 갔다는 걸 암부가 봤으니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진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송우태에게 보고하는 이들이었으니까.
더구나 지금 송우태의 오른편에 서 있는 호법당주가 있으니 수산에 있던 일도 아는 것이겠지.
“어차피 소인이 말을 해도 믿지 않으실 테니 장주께서 들은 것만 믿으시면 되옵니다.”
“들은 것만 믿어라? 그러면 네가 수산에서 자객들의 우두머리를 죽였다는 것도 사실이렸다?”
“예, 그러하옵니다.”
이렇게 된 이상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송우태는 모든 걸 알고서 나를 부른 것이니까.
“…. 검술은 대체 언제 그런 성취를 이룬 것이더냐.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일류 수준에도 못 미치지 않았느냐.”
“서책을 보면서 성취를 얻었습니다. 유운검법은 끊임없이 정진하는 검,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는 게 다르지요.”
저번 삶의 기억이 특히 많은 도움이 됐다.
검의 최고봉에 올랐던 경험과 이 몸이 가진 풍부한 내공 덕분에 절정 경지에 오르는 게 빨랐다.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냐?”
당신의 인정을 받으려고? 아니 훗날에 이뤄질 혈겁을 막기 위해 수련을 한 것이다.
“아닙니다.”
“그러면?”
“무예 수련이 재미있어서 그런 겁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자질을 지녔던 거구나. 과연 나의 아들이다.”
재능이 없을 때는 어디 주워온 아들처럼 대하더니 이제 절정의 경지에 오르니 아들 취급인가.
‘사람은 정말 겉만 봐선 모르는구나.’
저번 삶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던 이가 이토록 자기 자식에게 매정한 아비일 줄이야.
“십사 년입니다.”
“응?”
“십사 년 동안 전 단 한 번도 장주님의 아들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
송우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지 무능했던 송삼현을 그토록 무시한 것을.
“금호장의 삼남이라는 이름은 그저 허울뿐이고 전 한 번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아비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
“전 솔직히 장주님이 이리 갑자기 바뀌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명확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명확하게?”
“장주님이 필요한 건 아들입니까? 아니면 재능있는 무인입니까.”
앞으로 내가 할 일에 있어서 금호장의 이름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송우태와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됐다. 그리되면 이용당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난 밀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송우태는 두 눈이 커지고 당황해했다.
“… 내가 원하는 건 금호장을 중원 제일의 장원으로 만들 강인한 사람이다. 그게 내 아들이면 금상첨화지.”
처음에는 재능있는 무인이라는 걸 은유적으로 말한 것이고 마지막은 아들이라는 걸 은유적으로 명시했다.
그러니 송우태의 말을 조합하면 ‘재능있는 아들’이라는 거였다.
“무능했을 때는 거들떠보지 않으시더니 싹이 보이니 이제야 아들이라는 거네요?”
“….”
“전 계속 이런 관계가 좋습니다. 그러니 장주께서도 저에 관한 이 일을 잊어주십시오.”
내 나이가 아직 열넷이라 금호장을 뛰쳐나가지는 못한다.
어머니가 잘사는 걸 봐야 하니 더더욱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지만 만약 내 속박이 다 사라진다면 난 언제든지 이곳을 나갈 것이다.
“장주님의 삼남은 그때 독을 먹고 죽었습니다.”
그러니 난 당신의 아들로서 살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
정화부인이 기거하는 정화각은 붉은 꽃들이 만개하여 향긋한 내음이 가득했다.
청월각과 비교해 시녀들도 많았고 호위무사들의 수도 많았다.
정화각의 한 방에서는 정화부인과 집법당주 등평호, 금호표국의 일각주 영호청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장주께서 삼 공자를 따로 만났다고요?”
어젯밤, 송우태가 송삼현을 따로 만났다는 사실에 정화부인의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 한 식경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삼 공자가 집무실에서 나왔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암부를 모두 거리를 두게 하여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정화부인은 이러한 상황이 싫었다.
자신의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금호장의 모든 것을 지배해야 했는데 다른 여자의 배에서 태어난 송삼현은 눈엣가시였다.
“그때 독을 먹고 죽었어야 했거늘.”
“그 독을 먹고 살아날 줄은 몰랐습니다. 일부러 극독을 준비했는데도 그리 살아날 줄은···.”
“싹을 아예 잘라내야 하는데 그 싹이 결국 금호장이라는 곳에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집법당주님.”
“예. 말씀하시지요.”
“절대 그 아이에게 금호장의 한 조각도 들어가선 안 됩니다. 쫓아낼 구실을 마련하세요.”
“알겠습니다.”
두 달 전, 송삼현이 먹은 학령초도 정화부인이 사주한 것이었다.
그 일에는 정화부인의 손을 잡은 집법당주와 일각주를 비롯해 여러 이들이 연관되어 있었다.
“마님.”
“네?”
정화부인과 집법당주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일각주가 말했다.
“삼 공자가 장주님을 만난 부분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됩니다. 삼 공자가 태어나고 이리 독대한 것은 십사 년만에 처음입니다.”
“그렇지요.”
“제일 나쁜 상황은 장주님이 삼 공자를 아들로 인정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체 장주께서는 십사 년 동안 그리 외면하더니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연유로 십사 년 동안 무시한 삼 공자를 갑자기 이리 가깝게 불렀는지.
그 말을 들은 집법당주가 말했다.
“그것이 이번에 있던 일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이번 일이라면···. 정화원에서 있었던 왕세자 마마와 이현의 납치 사건이요? 삼 공자가 그 일에 관여가 되어 있나요?”
“네. 호법당에서 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집법당주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남김없이 했고 정화부인의 미간이 더 좁혀졌다.
“그 아이를 그대로 두면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해가 될 것이 분명해졌군요.”
“네, 그렇지요.”
“삼 공자가 금호장에서 세력을 쌓을 시간을 주면 안 됩니다.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지면 빠르게 내쫓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진정한 금호장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정화부인은 배다른 자식을 없애고자 했다.
다른 식물이 자랄 때, 잡초는 방해만 될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