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13
흑사회 (2)
“팔 값을 받으러 오셨다고 하셨지요?”
회의가 끝나고 전각 지붕에 올라 풍천림(風靑林)을 바라보는 혁련서권 옆으로 수룡방주가 다가왔다.
“왔는가?”
“회주님의 참전은 한 군사님께서 명하신 건가요?”
“내가 요구했다. 그놈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
“왼팔인가요?”
“왼팔, 오른팔, 두 개다.”
송삼현에게 잃은 건 왼쪽 팔만이 아니었다.
‘서문가후.’
오른팔마저 그곳에 놓고 왔으니 받을 값은 곱절이었다.
“오른팔이라면 서문가후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 흑사오룡방에 지룡방주에 가려진 실세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자네였는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수룡방주는 죽은 천뇌도 인정할 만큼 머리 회전이 빠른 자였다.
“자네가 생각하기엔 여기서 우리가 백의검룡을 막을 확률이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그 말에 수룡방주는 전부터 생각한 확률을 말했다.
“없습니다.”
“막지 못한다?”
“예.”
혁련서권의 눈빛에는 약간의 살기가 담겼다.
“어째서?”
“백의검룡의 무공은 저희가 예상하는 것 이상이니까요.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약간은 지체시킬 수 있겠으나 온전히 막아내진 못할 겁니다.”
“그러면 여기 모인 수천의 결사대가 백의검룡에게 다 죽는다?”
“아마도요?”
“…. 너는 그 입에서 그 말이 그리 쉽게 나오느냐?”
한충건의 대리 역할로 이 결사대의 머리 역할을 맡은 셈인데 그런 자가 싸우기도 전부터 질 거라는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러니 재미있는 거 아닙니까?”
“재미?”
“손에 닿지 않을 만큼 아득한 경지에 오른 고수를 제 계략으로 몰락시키는 것만큼 짜릿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수룡방주는 웃음을 지었으나 혁력서권은 그 웃음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서문가후가 전에 했던 말이 사실이었군.’
용천회가 몰락하기 전, 흑사회와 왕성히 교류할 때, 서문가후가 수룡방주에 대해 한 말이 떠올랐다.
‘수룡방주 서영은 천뇌가 흑사회 군사부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자입니다. 만약 이 자와 엮이는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회주님의 사람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못 만든다면?’
‘죽여야지요. 장차 용천회의 계획에 후한이 될 자입니다.’
자기 오른팔이었던 서문가후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자라고 칭했던 수룡방주 서영.
“어디 한 번 너의 생각을 말해보거라.”
혁력서권은 그의 머리를 빌려 송삼현의 목을 움켜쥐고자 했다.
*
준화는 십수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였으나 흑사회 입장에선 요새 중의 요새였다.
사람이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경사로 된 돌산, 쌍룡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어 지나가려면 열에 아홉은 성문을 통과해야 했다.
스스스스슥.
개방에서 파견한 정보원들이 각 성문에 대한 정보를 죽간(竹簡)에 기록했다.
[동문, 흑사회 지화부, 영일부, 마흔 명 확인.]
[서문, 흑사회 비암문, 스무 명 포착.]
[북문, 흑사회 창일부, 흑수철문, 서른여섯 명 확인.]
[쌍룡골, 불특정 다수, 정확한 인원 파악 안 됨.]
송삼현과 개방주, 고태권은 언덕 위에 서서 멀리 있는 준화를 바라봤다. 그 뒤에는 팽 남매를 비롯해 마훈과 선무정도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경계가 대단하군.”
“저들도 흑사회 본산까지 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저들의 포위망을 돌아서 가기엔 시일이 이틀 가까이 지체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나도 안다. 반대쪽에서 마교가 침입했으니, 서둘러 저 벌레들을 처리해야겠지.”
개방원들은 사방으로 퍼져서 정보를 수집해 매 시각 개방주에게 보고했다.
“흐음.”
개방주는 고태권과 나란히 앉아서 보고가 올라온 죽간을 살폈고 송삼현은 언덕 위에서 준화를 내려다봤다.
“내부에 잠입시킨 이들이 있으니 그들을 통해 조용히 지나가는 방도가 제일 나을 거다.”
“저도 그게 제일 좋은 방도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는 게 제일 상책이지요.”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던 송삼현은 준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네가 생각한 다른 방도가 있느냐?”
취하걸의 말에 눈에 내공을 집중하고 준화를 면밀히 살폈다.
‘용아문(勇牙門)’
‘창악문(槍惡門)’
‘검악문(劍惡門)’
‘만천문(萬川門)’
‘흑사오룡방’ 등 여러 방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적어도 수천 명은 모인 형세라 섣부르게 들어가선 안 됐다.
내부 잠입으로 조용히 지나갈 공산이 있다곤 하지만 만약 발각되면 단번에 포위가 될 수 있으니까.
‘나 하나는 충분히 지킬 수 있지만, 자칫 이들이 휘말릴 공산이 크다.’
그러면 답은 하나.
“저 혼자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우회해서 내부에 잠입한 이들과 합류해 빠져나가세요.”
혼자서 가는 거였다.
고태권은 송삼현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예? 저곳은 흑도의 소굴입니다! 굳이 호랑이 입 안에 머리를 들이밀곤 격전을 벌일 필요까지는!”
“그래! 삼현아, 같이 가자.”
“오라버니 말처럼 대협께서 위험에 노출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고태권과 마찬가지로 팽 남매도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들을 보며 송삼현은 입을 열었다.
“이들을 지나쳐서 가는 방법이 제일 좋겠지요.”
“…”
“하지만 그다음은요?”
“예?”
“이들을 살려두면 흑사회가 사라지더라도 악행을 하는 세력은 또다시 뿌리를 내릴 겁니다. 전 그걸 뿌리째 뽑고 싶습니다.”
이곳까지 천라지망을 피해오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주변 사람들을 휘말리지 않고 최대한 안전하게 오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그 틀을 벗을 때였다.
이들을 살려둔다면 흑사회가 사라지더라도 어디선가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씨앗이 될 수 있기에 제거를 해야 했다.
“여기서 저들을 없애면 흑사회 전력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
“… 저희 때문이군요.”
고태권의 말에 개방주는 턱을 쓸었다.
“네 놈의 싸움에 우리가 휘말릴까 봐 그러는 거구나.”
정곡을 찔렸다.
“하긴 현경의 경지에 오른 녀석이 지금껏 싸워온 걸 보면 너무 살살하는 거 같긴 했다.”
“제가 현경에 오른 건 어찌 아셨습니까?”
“이놈아! 내가 명색의 개방주다! 그런 것도 모를까.”
현경에 올랐다는 말에 모두가 입을 벌리며 놀랐고 개방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차피 준화에는 사는 양민들도 없으니···. 너의 뜻대로 한다. 어디 마음껏 날뛰어보거라.”
고태권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송삼현이 지금껏 자신들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도.’
주화입마에 빠진 사휘도와 싸울 때도 무언가 달랐다. 그동안 절정과 초절정 고수들만 상대하는 바람에 송삼현의 진면목을 알 수 없던 거였다.
‘우리 때문에 일부러 힘을 억누른 채, 싸우고 계셨구나.’
꽉.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송삼현에게 화난 게 아니라 자신의 무능 때문에 화가 난 거였다.
어떻게든 옆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도움보다는 민폐를 끼친 형국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송삼현이 말했다.
“황룡대주님.”
“예.”
“대주님이 아니었다면 이리 빨리 이곳에 도착하지 못했을 겁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들 덕분에 무리해서 야영을 하지 않아도 됐고 무림맹과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 전혀 민폐가 아니었다.
“예, 예! 부디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태권은 포권지례를 했고 송삼현은 마주보며 포권을 한 뒤에 준화를 바라보며 도약했다.
탓.
어기충소(御氣衝溯).
송삼현이 하늘에 점처럼 사라졌고 그것을 지켜보던 취하걸은 돌 위에 앉아 술병의 뚜껑을 열었다.
“어디 현경에 오른 녀석의 싸움이나 구경해볼까.”
*
“응?”
준화의 서문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흑의인 한 명은 하품을 하며 정면을 보고 있다가 어디선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뭐지?’
하늘에 구름처럼 떠 있는 점이 점점 가까워졌다.
“저, 저게 뭐냐!”
푸른 연기가 용의 형상이 되어 준화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쐐애애애애액.
쿠우우우웅!
푸른 용이 내려온 곳은 움푹 구덩이가 파였고 먼지바람이 일렁였다.
“포위!”
“각자 위치를 사수해라!”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그 주위를 흑사회 무사들이 신속하게 포위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이중 삼중으로 포위를 했고 그 앞은 각 방파의 우두머리들이 섰다.
“허···.”
흑백노귀는 현장을 보고 놀랐다.
“이건 마치 하늘에서 별이라도 떨어진 것 같군.”
화산의 분화구처럼 파인 땅, 시야를 방해하는 먼지는 풍천도귀가 도풍으로 날렸다.
먼지가 걷히자 백의에 푸른 검을 든 송삼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
구덩이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는 송삼현의 모습은 가히 도깨비 같았다.
“으으으으.”
흑의인들 몇몇은 검을 잡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들이 아무런 행동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자 송삼현이 말했다.
“뭣들 하는 거요? 다들 내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있는 건 아니고, 나를 죽이려고 온 사람들이 왜 구경만 하고 있소?”
송삼현의 말에도 내공이 담겨 있어 그들의 몸은 움찔거렸다.
‘끄윽, 이게 무슨···!’
스르르르르륵.
푸른 연기 형태의 내공이 사방으로 퍼졌다.
“수, 숨이!”
농도가 짙은 내공이 그들의 몸을 속박했고 숨통마저 조였다.
허나 천 명이 넘는 모든 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기에 도망치려는 사람이 있었다.
“어딜 가오?”
도망치려는 무인의 뒤통수를 잡고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땅이 파였고 마을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물은 파도처럼 흑사회 무인들을 쓸고 지나갔다.
단 일격.
주위에 있던 흑사회 무사 수십 명이 그 일격에 휘말려 의식을 잃었다.
스르르르르륵.
그들을 통제했던 푸른 연기는 청월로 옮겨갔다.
검을 휘감은 연기, 그 연기를 보고 수룡방주는 신속하게 벽력탄을 가진 부대에게 공격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를 받은 부대는 송삼현에게 벽력탄을 보냈으나 송삼현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천무 1식 개벽.’
송삼현의 검은 커다란 마을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땅부터 시작되어 하늘에 닿은 검격.
검격에 날아오던 벽력탄은 허공에서 모조리 폭발하며 사라졌고 검격이 지나간 곳에는 무수히 많은 흑사회 무인들의 시체가 널브러졌다.
검격에 당한 자들보다 벽력탄의 폭발에 휘말린 이들이 훨씬 많았다.
“물러서지 마라! 연막을 터트리고! 거리를 벌려 밀집된 상황을 피해라!”
수룡방주 서영이 침착하게 진두지휘를 했으나 흑사회의 무사들은 송삼현이 내뿜는 기세에 압도되어 다리가 굳어버렸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저런 괴물을 어떻게 막으라고! 그냥 우리보고 죽으라는 거잖아!’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었어!’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목전에 뒀다. 그리고 그때 송삼현의 기운을 뚫고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무식한 검은 여전하구나. 내 팔을 벤 것처럼.”
그 말이 들려온 곳으로 송삼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랜만입니다.”
용천회주 혁련서권, 그가 송삼현의 앞에 나타났다.
“남은 팔을 주러 왔습니까?”
“무슨 소리, 내 팔 값으로 네 목을 가지러 왔다.”
“아, 팔이 아닌 목을 주러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