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16
흑사회 (5)
하북성 동북의 끝에 있는 ‘난하림’.
굽이치는 난하강 줄기를 따라 나무들이 자리 잡은 곳으로 예로부터 이민족들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군사님.”
어느덧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는 하늘, 그 아래서 난하림을 가로지르며 신형을 날리는 한충건과 흑매가 있었다.
“왜 그러느냐.”
“… 준화에 용천회주님을 보냈다곤 하지만 백의검룡을 쉽게 막아내진 못할 겁니다.”
“용천회주는 독수비단을 먹고 현경에 올랐다. 그런 경지에 오른 자가 백의검룡을 막지 못한다? 너는 내 편이냐, 아니면 백의검룡의 편이냐.”
“전 당연히 흑사회의 사람이지요.”
한충건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흑매를 바라봤다.
“나도 용천회주가 백의검룡을 온전히 이긴다고 보진 않는다.”
“….”
“허나 현경의 경지에 오르고 귀혼편이라는 신물까지 있으니, 해볼 만하지.”
다시 경공을 펼치며 숲길을 뚫고 난하림을 빠져나오자 한충건의 시야에 산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저곳은 준화가 있는 곳이 아니냐.”
“예. 그렇습니다.”
곧 산에서 흑의인이 신형을 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넝마가 된 옷, 팔 하나가 떨어져 피를 뚝뚝 흘리던 그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이 거칠었다. 그리고 한충건을 발견하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구, 군사 어른!”
“무슨 일이냐! 준화에서 일이 터진 것이냐!”
“그것이···. 쿨럭!”
피를 토하며 쓰러진 흑의인은 미처 말을 하지 못하고 숨이 멎었다.
꽉.
한충건은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인지 직접 가봐야겠다.”
“안 됩니다! 군사님은 속히 난하강에 합류하셔야 합니다. 회주님이 기다리실 겁니다.”
흑사회는 난하강에 최종 전선을 만들었다.
본산과 가장 가까운 곳.
만일 뚫리면 흑사회까지는 한 걸음이니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요충지였다.
당장 그곳에 가서 송삼현을 비롯해 무림맹과 일전을 벌일 준비를 마쳐야 했다.
“제가 가서 직접 본 뒤에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라!”
한충건의 말을 듣고서 흑매는 신형을 날려 준화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흑매는 경공에 특화되어 있어 난하림을 나와 산 하나를 넘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준화는 예전에 봤던 모습과 확연히 달라졌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궁’ 하늘에서 요상한 소리가 들리자 시선이 그리로 갔다.
“백의검룡.”
하늘에서는 벼락이 떨어졌다.
*
“너는···. 너는!”
혁련서권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송삼현을 노려봤다. 오른팔이 땅에 떨어지면서 피가 바닥을 적셨으나 눈에 담긴 살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더 할 게 남아있습니까?”
혁련서권의 무학은 ‘권(拳)’, 양팔이 없는 지금, 혁련서권은 자신의 무학을 다 펼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공을 운용했다.
스르르르르륵.
주위를 머금은 광대한 내공.
남은 내공을 모조리 쏟아붓는 거였다.
“으아아아아아!”
혁련서권은 땅을 박차며 송삼현에게 신형을 날렸다.
‘동귀어진(同歸於盡).’
혁련서권은 이것을 노리는 거였다.
으득.
치아까지 부서질 정도로 힘을 낸 혁련서권은 송삼현의 품에서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설마.’
점차 역행하는 기운, 선천진기(先天眞氣)까지 끌어쓰는 거였다. 이걸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같이 죽자.”
콰아아아아앙!
내공의 폭발.
그 폭발에서도 송삼현은 손으로 기막을 치고 혁련서권의 기를 통제하는 신묘한 모습을 보였다.
“… 이것으로도 안 되는 건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천진기까지 끌어쓰며 동귀어진을 선택했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혁련서권이 이겼겠지만, 송삼현은 그 이상의 존재였다.
털썩.
몸 안에 모든 기운을 쓴 혁련서권의 무릎은 꿇려졌고 힘이 빠져 앞으로 고꾸라졌다.
귀혼편이 매섭게 휘날리며 날아왔지만, 송삼현은 검집으로 귀혼편을 휘감았다.
귀혼편의 본능.
‘강자존.’
이 신물은 주인이 죽지 않아도 스스로 주인을 선택할 수 있었다.
혁련서권은 귀혼편이 송삼현에게 가는 것을 보곤 몸을 뒤집어 하늘을 보고 누웠다.
“나의 천하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져 형태가 보이지 않는구나.”
전 무림맹주일 때부터 품어왔던 야욕.
중원 무림을 손에 넣고 싶었다. 허나 그것은 현 무림맹주 구창룡이 나오며 막혔고 용천회를 세우며 다시 정상에 오르려고 했지만, 그 길을 완전히 끊어버린 건 구창룡이 아닌 눈앞에 있는 송삼현이었다.
“애초에 회주님이 바라는 천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그게 왜! 무엇이 잘못됐다고! 왜 하늘은 내가 아닌 너를 선택하신 거냐!”
“방식의 차이지요. 회주님의 대의에는 명분이 없습니다.”
명분이 아닌 그저 욕심이었다.
더 많이 가지겠다는 욕심으로 지금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 거였다.
“네가 가진 것은 욕심이 아니고?”
“….”
“그냥 세상의 이치는 이거 하나다. 이기는 자의 욕심이 명분이 되는 것, 내가 졌으니 내 욕심은 그저 욕심이 되는 것이고 네가 이겼으니 네 욕심이 명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만 가십시오.”
혁련서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여라. 숨이 곧 멎을 것 같구나.”
스윽.
검을 들고 내리치려는 그때.
살아남은 흑의인들이 쏟아졌다.
“어떻게든 팔 하나라도 가져갈 각오로 간다!”
“수룡방주가 얘기한 대로!”
“사방을 둘러싼다!”
겁먹은 자들도 있었지만, 흑의인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각자의 무기를 품에서 꺼내며 절초를 펼치며 송삼현에게 어떻게든 상처를 입히려고 했다.
탓.
송삼현은 그것들을 피한 뒤, 어기충소로 하늘로 도약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땅.
흑의인들의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 꽤 많은 수의 흑의인들이 있었다.
‘방파의 우두머리들.’
그들은 죽지 않았다.
스르르르르륵.
검에 무수히 많은 내공을 실었다. 조금 전 준화를 휩쓸었던 소용돌이가 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흑의인들은 경악했고 수룡방주 서영은 바들바들 떨었다.
‘이, 이건.’
뚝.
뚝.
비가 떨어지는 환영.
‘인식을 비틀었다. 그것도 여기 있는 모두의 인식을!’
그 말은 이곳에 있는 흑의인들 모두가 송삼현의 기운에 압도됐다는 거였다.
“멈추지 마라! 한 번에 들어간다! 선두는 검악문이! 왼쪽은 창악문! 각자 위치를 잊지 말고 백의검룡을 하늘에서 떨어트려라!”
흑백노귀를 비롯해 악행을 저지른 악귀들이 일제히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절초들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을 봤다.
뚝.
허공으로 도약하는 흑백노귀의 뺨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렇게 환영을 보는 이들에게 먹구름 사이에서 떨어지는 검이 보였다. 그것도 하늘을 빼곡하게 뒤덮일 만큼 수많은 검들이.
‘천무 10식 검해(劍海).’
천무신검의 절초.
환영처럼 떨어지던 빗줄기들은 검으로 바뀌었고 무수히 많은 검이 땅에 꽂혔다. 흑백노귀를 비롯해 악귀들이 펼친 절초는 검에 뚫려서 사라졌다.
파파파파파파파팟!
흑의인들은 검우(劍雨)속에 갇혀 도망치지 못했다.
검해는 파도처럼 땅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지역을 휩쓸었다.
“이건···.”
수룡방주 서영은 방파 우두머리들도 모조리 검격에 꿰뚫려 죽는 것을 보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런 것을 인간이 어찌 막는단 말이냐.”
푹.
수룡방주 서영의 몸도 검격이 떨어지며 뚫렸다.
숨을 쉬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검우는 곧 멎었다. 그리고 검해의 초식이 휩쓴 곳에는 살아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이게···. 진짜 현경의 경지에 오른 자의 모습이구나.”
커다란 파도가 휩쓸어 모든 것을 앗아간 모습, 혁련서권은 몸이 반으로 나뉜 상태에서 본 풍경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
멀리서 숨어있던 개방주 취하걸과 고태권, 팽도형 일행이 걸어오다가 홀로 서 있는 송삼현을 보며 말했다.
“…. 저놈은 사람이 맞는 거지?”
취하걸의 말에 고태권은 섣부르게 대답하지 못했다.
‘… 이 정도셨구나.’
그동안 자신들과 동행하면서 싸운 것은 새 발의 피라는 걸 느꼈다.
주변 일대를 없애버릴 만큼 압도적인 무학, 고태권은 조용히 송삼현이 있는 곳을 향해 포권지례를 올렸다.
“진정한 무신(武神)이시구나.”
시야를 가린 먼지바람을 뚫고 송삼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취하걸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말을 잃었고 취하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놈은 사람이 맞느냐?”
주변 일대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한 무학, 그것을 본 이들은 송삼현이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라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
개방주 취하걸의 말에 송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지요.”
“이런 걸 보면 넌 사람이 아니라 신선 같구나.”
취하걸은 송삼현을 뚫어져라 봤다.
“… 왜 그리 보십니까?”
“그 나이에 이런 경지에 올랐다는 게 신기해서 그런다. 반로환동(返老還童)을 한 고수도 아니고···. 아니다 아무리 반로환동을 했다고 해도 이런 무학을 가질 순 없지.”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
“방주님!”
멀리서 후줄근한 거지 한 명이 손에 서찰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무림맹에서 방주님께 보낸 서신입니다!”
“무림맹에서?”
취하걸은 서신을 받아 읽었다.
“무림맹은 선발대가 먼저 사천성 달주에 도착해 진을 꾸리고 이틀 뒤, 맹주님이 이끄시는 후발대가 합류해 마교와 일전을 벌인다고 한다. 그리고 금호장이 이 모든 것의 후방 보급을 책임지고 있다고 하는구나.”
“병력이 두 갈래로 분산이 됐군요. 이곳과 서쪽.”
“그래, 속히 이곳의 상황을 정리하고 서쪽으로 가야 한다. 흑사회보다 마교놈들이 더 위협적인 존재들이니까.”
“난하강의 상황은요?”
“흑사회주를 비롯해 흑사회의 모든 녀석들이 방벽을 세워 우리가 도강하지 못하게 막을 준비를 하고 있다. 첩자로 보낸 녀석들은 발각되어 이미 죽어버렸다.”
흑사회 본산으로 가기 위해선 무조건 난하강을 넘어야 했다.
“난하강이 격전지가 될 거다.”
준화를 지나서 있는 황우산을 넘으면 큰 산이 없이 평야가 대부분이었다. 난하강은 바로 그 평야 한 가운데에 있었다.
어디 숨을 곳도 없고 완전히 노출된 곳, 그렇기에 많은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태권은 가만히 있다가 반으로 갈라진 용천회주의 시신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용천회주가 현경에 올랐다면 흑사회주도 마찬가지겠군요.”
“아마도 그럴 거다. 흑사회주도 무공에 미친 늙은이라, 용천회주보다 더 강할 거다.”
독수비단이 개량되어 부작용을 낮췄다면 무조건 흑사회주도 복용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흑사회주의 경지도 용천회주와 비슷하거나 그 위를 웃돌게 분명해졌다.
송삼현은 가만히 용천회주의 시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귀혼편과 같은 신물이 흑사회주에게 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 뒤, 송삼현은 운기조식을 한 뒤에 떠날 채비를 했고 선무정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건 뭡니까? 아까부터 뱀처럼 꿈틀거리던데요?”
선무정의 물음에 검집에 감긴 귀혼편을 모두에게 보였다.
“이건!”
가장 놀란 건 취하걸이었다.
“귀혼편이 아니냐!”
귀혼편이라고 하자 모든 사람이 놀랐다. 신물 중의 신물이라고 불리는 것이기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용천회주가 갖고 있던 겁니다. 이제는 제 소유지요.”
“허허허허···. 귀신이 깃들었다고 불리는 귀혼편이라니.”
선무정이 슬쩍 만져보려고 했는데 귀혼편은 날을 세우며 만지지 못하게 했다.
“오오오오오.”
“신물들은 자기 주인이 아니면 접촉도 못 하게 한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게야.”
다들 귀혼편을 보며 감탄했다. 그렇게 싸웠으면서도 흠집도 생기지 않은 귀혼편.
‘앞으로의 행보에 이게 많은 도움이 되겠지.’
흑사회 전력을 절반으로 줄이고 용천회주까지 죽인 지금.
걸음을 늦출 필요는 없었다. 흑사회가 이 상황을 수습하기 전에 치고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았기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속히 난하강으로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