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
달라지기 시작하는 미래 (3)
그날이 지나고 며칠 후, 송우태는 청월각으로 찾아왔다.
지난번에 내가 아들로서 살아가기 싫다는 걸 은유적으로 말했는데도 이곳을 찾아올 정도면 나와 관계 개선을 하고 싶은 거 같았다.
“… 오랜만이오.”
“네, 가가.”
어색해하는 송우태에게 어머니는 정중하게 예를 갖췄고 우리는 나란히 정좌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동안 내가 뜸해 많이 서운했겠소.”
“가가가 하시는 일이니 어떤 것인들 이유가 있던 것이겠지요.”
“그리 말해주시니 내가 더 할 말이 없구려.”
송우태는 손짓을 했고 밖에 있던 무사 한 명이 자그마한 상자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금빛으로 된 비녀가 있었다.
“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약소하지만, 선물을 준비했소.”
송우태에게 좋은 감정은 없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미소를 짓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니었어요.
그냥 이렇게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이리 행복해하시는 분이거늘.
어떻게 당신은 이런 분을 십사 년 동안 독수공방을 하게 만든 겁니까.
“이번에 금호무회가 열리는 건 알고 있지?”
송우태는 다시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예, 그걸 보려고 중원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며칠 후면 여러 무인이 비무를 펼쳐 자신의 무위를 증명하려고 할 터.
여기서 우승해 금호장의 상급 무사가 되든가 아니면 금호무회를 보러온 고관대작에게 잘 보여 연줄이 닿아 높은 품삯을 받으며 호위무사가 될 수 있으니 연줄이 없는 무인들에겐 기회의 장이었다.
“너도 와서 보거라.”
그 말에 어머니를 비롯해 나도 화들짝 놀랐다.
기억에 따르면 나는 단 한 번도 금호무회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많은 무인이 모여 각각의 무공을 펼칠 것이다. 그것을 보며 공부하여 더 성장할 발판을 만들 거라.”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감격했지만, 난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가 웃는다면 그거면 됐다.
*
금호무회가 열리기 전까지 난 계속해서 무예 수련에 힘썼다.
손이 저리도록 검을 휘두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저번 삶에 싸운 녀석들과 비무를 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여전히 강하구나.’
소검마의 환영을 상대로 삼백 여합까지는 버텼지만, 열에 아홉번은 패배했다.
절정의 중간에 이르렀지만, 아직 초절정의 끝에 있는 고수를 상대하는 건 무리인 것이지.
그날 밤도 잠이 오지 않아 연못 옆에 돌에 앉아 가만히 달을 응시했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고 소월이에게 만두를 쪄달라고 한 것이 온 것 같아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엔 군주마마가 시녀와 같이 오고 있었다.
“군주마마를 뵈옵니다.”
“예는 됐구나. 이곳의 풍경이 예뻐 달구경을 하러 왔는데 옆에서 봐도 괜찮겠느냐?”
“그리하시지요.”
군주마마가 옆에 있는 돌에 앉았고 시녀는 다과를 가져와 군주마마의 옆에 들고 서 있었다.
“우향아, 그리 있으면 다리가 아플 테니 너도 이리 와서 앉거라.”
“제가 어찌 감히 군주마마와 합석하겠습니까. 전 이게 편하니 부디 신경 쓰지 마시옵서서.”
“명이니라.”
우향은 어쩔 수 없이 군주마마의 옆에 앉았다.
“내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이리 왔느니라.”
“어떤 말씀을?”
“이야기를 들었다. 내 아우 석용이가 납치됐을 때, 그대도 구용으로 가 추적에 도움을 주었다고.”
“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사옵니다.”
금호장에 입이 이리도 가벼운 사람들이 있었다니.
군주마마가 알 정도면 높은 직급의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너는 태산북두(泰山北斗)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태산북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는 말이었다.
“미욱한 제가 어찌 그리 고귀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저는 그저 저의 위치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역시 난 너와 벗이 되고 싶다.”
“… 그게 왜 갑자기 그렇게 연관이 되는 겁니까?”
“내 마음이다.”
어련하시겠습니까.
“…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군주마마의 벗이 되기에는···.”
“그냥 우리 둘만의 일로 하면 안 되겠느냐?”
“저기 옆에 계신 분이 저를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습니다만.”
휙.
“아, 아니 그것이···.”
“우향이는 내가 걱정되어 그런 것이니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말거라.”
“알고 있습니다.”
“답은 안 주느냐?”
“… 군주마마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더 이상 거절을 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제가 벗이라는 사실을 숨기셔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군주마마에게 흠이 될 수 있으니까요.”
“흠이라?”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금호장의 반푼이가 벗이라고 하면 군주마마의 이름에 흠이 갈 것입니다.”
황궁의 사람들과 관여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언제까지 군주마마의 명을 어길 수는 없으니 적당히 응해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금호무회가 끝나고 북경으로 돌아가시면 다음 해 여름이나 또 볼 텐데 지금 적당히 넘기는 게 좋지. 안 그랬다간 북경으로 돌아가기 전날까지 이리 찾아오셔서 괴롭힐 거 같으니까.
“왜 그리 보십니까?”
그런데 군주마마가 계속해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 아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달을 봤다.
“공자님! 만두를 쪄왔습···. 군주마마를 뵙습니다!”
기다리던 소월이가 만두를 가져오다가 군주마마를 보더니, 만두가 있는 소반을 내려놓고 넙죽 엎드렸다.
“땅이 더럽다. 어서 일어나거라.”
“감사합니다.”
만두를 가져온 소월이는 군주마마를 보고선 냉큼 가려는데 내가 옆에 앉힌 다음 만두를 군주마마께 권했다.
“소월이의 만두 찌는 실력은 웬만한 숙수보다 뛰어납니다. 한 번 드셔보시겠습니까?”
군주마마는 조심스럽게 만두를 들어 반을 갈랐고 한 쪽을 나에게 주는데.
“너도 먹거라.”
“옙?”
이미 먹던 중이라 발음이 이상하게 나왔다.
소월이 만두는 무슨 약이라도 들었는지 중독성이 있었다.
군주마마와 옆에 있는 시녀도 한 입을 베어 물더니 두 눈이 동그래졌다.
“…. 내가 먹은 만두 중 가히 두 손가락 안에 드는 맛이다.”
“한 손가락은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해주시는 것이지. 어머니는 가끔 재미로 만두를 빚으신다. 그 만두가 천하일미지. 이것도 그에 못지않게 맛있구나.”
아름다운 풍경에 만두라니.
“참으로 별유풍경(別有風景)이로다.”
내가 하려는 말이 옆에서 들려오자 슬쩍 군주마마를 보는데 정말···.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북경에는 이보다 아름다운 곳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벗과 같이 보는 달이라 그런지 더 좋구나.”
“군주마마께서는 아름다우셔서 벗이 많으실 거 같은데 아니십니까?”
“벗이라고 부르기에는 먼 사이다. 모두 이익으로 엉켜있는 복잡한 사이들 뿐이라 난 매년 팔월이 기다린다. 이곳에 오면 그곳에서 복잡한 일을 다 잊고 오로지 여유로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거든.”
벗이라.
달빛을 보며 진지하게 벗에 대해 생각했다.
나.
저번 삶에서 제대로 된 친우를 사귀어본 적이 없구나.
검에 미친 사부님 밑에서 온종일 수련만 하고 강호행을 하면서도 사교성이 낮아 교분을 나누지도 못했다.
점점 명성을 쌓아갈 때는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워 밀어내고.
‘뭘 하고 살았는지 참으로 허망하구나.’
진심으로 술잔을 나눌 벗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이가 무당 제일 검이었던 장휘봉 뿐이었으니 벗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만두를 먹었고 술 보다는 따뜻한 차를 곁들였다.
군주마마는 차를 호록 마시더니 다시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오늘 달은 유독 아름답구나.”
하늘에는 달이 피었고 땅에는 군주마마의 화사한 웃음꽃이 활짝 피었구나.
달구경을 하는 손에는 만두가 들려있었다.
소월이가 넉넉하게 해와서 다행이지.
군주마마가 은근히 식탐이 있으셨다.
“… 벌써 다 먹은 것이냐?”
어느덧 소반을 가득 채운 열 몇 개의 만두가 사라졌고 난 군주마마를 쳐다봤다.
“저희가 세 개씩 먹는 사이에 군주마마 혼자서 다섯 개를 드셨으니 벌써 없지요.”
“크음.”
“그리 맛있으셨습니까?”
“노, 놀리지 말거라!”
군주마마의 뽀얀 뺨이 붉게 물들었고 달빛에 비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음에 북경에 오면 내가 만두를 사주마!”
천하를 내려보는 고귀한 신분의 군주마마와 그저 돈 많은 집 반푼이가 벗이라.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꼭 사주십시오.”
*
이틀 뒤, 금호무회의 당일이 밝아왔다.
난 오후에 있을 금호무회 전에 저자에 나와 다급하게 걸었다.
“공자님! 어딜 가시는 데 그리 바쁘십니까!”
뒤에서 강 무사가 따라오지만, 대답해줄 시간이 없었다.
저번 삶의 내 기억이 맞는다면 천유현이 이곳까지 와서 구걸하고 정보를 파는 개방 분타의 일을 할 때였다.
남경 고로구 천남현 화일주 앞에서.
“공자님!”
회귀하고 매일 같이 생각했었다.
‘내가 천유현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면 본신은 어디에 있지 않을까?’
이 골목만 빠져나가면 저번 삶에서 내가 구걸을 하고 정보를 사러 온 사람을 분타주에게 안내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네가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처럼 뛰었다.
멈칫.
골목을 빠져나오자 목적지가 보였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저절로 발걸음이 멈췄다.
“아이고! 나으리! 한 푼만 주십시오!”
열넷의 나, 아니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이.
“헤헤헤, 감사합니다!”
꼬질꼬질한 옷에 몇 대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부은 이는 내가 아는 이가 맞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많이 맞았구나.’
이때는 원래 섬서성 재지(在地) 대죽현에 있는 분타 소속이었지만, 남경의 대잔치가 있는 날이니 지원조로 온 거였다.
그저 배를 곯지 않기 위해서.
그저 성질 고약한 분타주의 발길질을 하루라도 피하고 싶어서.
그저 살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개방이 중원에서 제일 거대한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거지들의 단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위에 있는 이들만 배가 부르지, 밑에 있는 이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달그락.
“허억!”
난 나에게 다가가 은전이 든 전낭을 바구니에 툭 하고 놓아줬다.
“이리 귀한 분을 몰라뵙습니다! 부디 대대손손 부귀를 누리시고 천수를 누리소서!”
“저쪽에서 분타주의 수하가 너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허나 이 전낭에 있는 돈은 내 너에게 주는 것임을 명심하거라.”
“네?”
“구걸한 양에서 분타주에게 삼 할을 떼어주는 게 관례일 것이다.”
“그걸 어찌···. 고귀한 집안의 자제분께서 아십니까?”
열 살 때부터 지겹도록 겪은 일이니까.
“이 전낭에 은전 열 개가 들어있다.”
천유현은 깜짝 놀랐다.
“그러니 은전 열 개 중에 네가 따로 챙겨 넣으라는 말이다. 빼앗기지 말고.”
“그리하겠나이다!”
그리고 이제는 전음으로 할 때였다.
전음입밀(傳音入密)은 내공이 반갑자 이상이 되어야만 쓸 수 있었고 보통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만이 쓸 수 있었다.
절정에서도 내공이 많은 극소수만이 쓸 수 있는 수법으로 난 내공이 반갑자를 넘어 이제 일갑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금호무회가 끝나고 자시에 저 골목길에서 만나자.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이때는 아직 내공을 쌓지 않을 때라 나에게 전음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 이제 가보셔야 합니다!”
“그래 알겠다.”
뒤에서 나에게 인사를 하며 바닥에 넙죽 엎드린 천유현은 바가지에 든 전낭에서 은자 일부분을 빼내어 바지춤에 숨겼다.
내가 가면 분타주 수하들이 와 전낭 안에 든 것을 검사하고 빼앗아 갈 것이다.
개방은 그런 족속들만 모인 곳이니까.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허나 버티거라.
일 년 뒤, 너의 인생을 바꿀 귀한 인연이 이어질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