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0
혈전(血戰) (4)
난하강 유역 동쪽에 마련된 흑사회 본진.
많은 천막이 있었고 경계 근무를 서는 흑도들은 오후에 잡은 말고기를 구워서 마유주와 함께 먹고 있었다.
“역시 여기서는 말고기가 최고라니까.”
“이거 누구 말인가?”
“살호방의 호씨 말이네.”
“호씨라면 살호방의 가축을 관리하는 사람이잖아, 근데 이렇게 구워도 돼?”
“오후에 살호방이 잡은 말고기를 조금 받아온 거라 괜찮아.”
그들은 담소를 나누며 모닥불에 앉아 말고기를 뜯어 먹다가 허공에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걸 봤다.
“… 뭐지? 꽃가루인가?”
11월이 되는 시기라 꽃가루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눈으로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는 미세한 가루, 그 가루를 코로 마시자마자 말고기를 뜯던 무사는 손에 든 말고기를 땅에 떨어트리곤 목을 부여잡았다.
“크흑.”
“자네 왜 그래···? 억! 이, 이게 뭐야!”
그들의 단전에 쌓인 내공이 스멀스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공이···. 설마! 산공독!”
가루는 바람을 타곤 점점 흑사회 진영 곳곳으로 퍼졌다.
기침.
발열.
호흡곤란.
가루를 마신 흑도들에게선 여러 증상이 나왔고 독마장 천신후는 갑작스러운 소란에 천막 밖으로 나왔다.
킁킁.
코로 맡아지는 냄새, 이 냄새는 천신후에겐 익숙한 냄새였다.
“이 냄새는 내가 만든 산공독 가루잖아.”
세상의 모든 독을 다루는 그는 자신이 만든 산공독 가루가 허공에 날리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끄으으윽.”
흑의인들이 고통스러워하며 하나둘씩 쓰러졌고 맥을 짚으며 상태를 보니 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중독됐군. 내공이 흩어지기 시작했어.”
“으으으으윽.”
툭, 툭, 툭.
점혈을 하며 독이 퍼지는 것을 늦췄다.
“독마장,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흑사회주 철패흉이 천신후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철패흉의 표정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내가 만든 독이긴 하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오.”
“그러면 누가 했단 말이오?”
“내 수하들이 정파 놈들 진영에 공작을 펼치러 갔는데 아무래도 정파 무리를 만난 것 같소.”
“…. 사실이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실패할 아이들이 아니오. 그보다 이거 받으시오.”
스윽.
천신후는 품에서 작고 하얀 항아리를 꺼내 철패흉에게 건네줬다.
“이게 뭐요?”
“해독약이니, 이것을 속히 물에 풀어 중독된 자들에게 먹이시오. 한 시진 동안 운기를 하면 내공이 다스려질 것이니, 그 후에는 아무런 문제 없을 거요.”
“당신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러 가야겠소.”
독마장의 수하들은 싸울 준비를 마친 후, 천신후의 주위에 모였고 천신후는 그들과 함께 신형을 날렸다.
탓.
“습한 냄새가 나는 군, 비가 오려나.”
먹구름이 서서히 달빛을 가렸다. 천신후는 멈추지 않고 신형을 날리며 독이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아직 바람에 날리는 산공독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원체 미세한 가루들이라 사라지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의 풍경은 처참했다.
“…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독마장 천신후는 자신의 수하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곳곳에 고인 피 웅덩이.
시신들은 이미 온기가 사라져 차가워져 있었다.
“마형아.”
이 일을 주도했던 천신후의 오른팔이었다. 피를 토하며 목이 그어진 그를 천신후는 품으로 끌어안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정신을 차려 보거라!”
천신후와 같이 온 이들은 천신후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격이 괴팍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을 가차 없이 독으로 죽이는 걸 즐기는 자가 수하가 죽었다고 눈물을 흘린다는 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저게 진정 우리가 알던 독마장님이 맞나?’
‘예전부터 마형님을 예뻐하셨잖아.’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오른쪽에서 광오한 기운이 느껴져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기다리고 있었소.”
송삼현은 기운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를 억누르는 농도 짙은 내공을 뿜으며 천신후에게 걸어갔다.
“으으으윽.”
천신후의 수하들은 움직이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힘겹게 숨을 쉬었다.
“… 백의검룡.”
천신후는 자신을 마주 보는 송삼현을 보며 이를 갈았다.
바들바들.
송삼현이 뿜어내는 짙은 내공에 억눌리면서도 천신후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일어나 송삼현을 노려봤다.
그 어느 때 보다 짙은 살기를 품은 눈빛으로.
*
천신후 수하들의 수는 사십 명, 마훈이 그들에게 검을 겨누며 견제했다.
천신후는 송삼현을 보며 물었다.
“네가 이리했느냐.”
어마어마한 살기를 분출했다. 주변 사람들은 흠칫 놀랐지만, 송삼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음침하게 뒤에서 공작을 펼치기에 그리했소.”
스르르르르륵.
천신후의 주위는 검은 기운과 함께 악취가 퍼지기 시작했다.
‘독기다.’
송삼현은 주위를 억누르던 힘을 풀고선 뒤로 물러나며 독기의 간격에서 벗어났고 마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독마장의 독공은 다른 독공과 다르다. 네가 화경에 오르면서 백독불침의 경지에 오르긴 했으나 섣부르게 나서지 말고 뒤로 물러나거라.”
“예! 주군! 전 그럼 다른 이들을 상대하겠습니다!”
“알겠다! 조심하거라.”
“예!”
천신후의 몸 밖으로 나온 독기가 닿은 풀은 순식간에 죽어갔다. 토지는 불에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려갔다.
휘이이이익.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천신후의 품에서 은침 네 개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왔다.
하나같이 극독이 발라진 은침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작은 크기였지만, 송삼현은 그것을 검막을 두른 검집으로 튕겨냈다.
챙.
검집에 맞고 떨어진 은침, 천신후는 송삼현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교주님과 일전을 벌였다고 듣긴 했지만, 그게 정녕 사실이었군.”
“설마, 독고룡이 천산에서 내려온 것이오?”
“그걸 네가 알아서 무엇하겠느냐! 어차피 넌 이곳에서 죽을 목숨이거늘!”
독마장 천신후가 싸우는 방식은 암기와 단도였다.
특히 그의 독공은 사천당가와 어깨를 견줄 만큼 뛰어났다.
‘독룡신공(毒龍神功).’
수많은 사람을 죽여가면서 스스로 창안한 사특한 마공이었다. 그 마공의 기운은 여러 사람의 원혼이 덧대어지며 짙어졌다.
스스스스스슥.
‘비혼도(飛魂刀)’
극독이 발라진 단도 두 개가 마치 이기어검처럼 허공을 날아다녔다. 검을 다루지도 않는 천신후가 이기어검의 경지에 들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은실로 다루는 거구나.’
단도를 고정하는 은실.
천잠사로 만들어진 은실이었다.
챙!
예측하기 힘든 각도에서 들어오는 공격이었지만, 송삼현은 단도의 경로를 읽고선 능숙하게 쳐냈다. 그리고 보이는 은실을 향해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악!
단도와 천신후를 잇고 있는 은실을 잘라버리자 단도는 땅에 뚝 하고 떨어졌다.
천잠사로 만든 실은 일반 검으로 끊어내기엔 억센 실이었다. 더구나 내공이 흐르는 실이었으니 그 강도는 철검을 부러트릴 만큼 강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베는 강기, 천신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한다.’
몇 번의 합을 나누고서 격의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천신후의 머리는 송삼현을 어떻게 죽일지보다 어떻게 도망쳐야 할지가 먼저 떠올랐다.
주위로 독기가 가득한 기운을 흘렸다. 그의 기운이 닿는 곳은 생명이라는 것이 사라져갔다.
‘사람을 죽여가며 만든 무공이라더니, 참으로 사악한 기운이 가득하구나.’
천신후는 신형을 날리며 송삼현에게 ‘독룡신장(毒龍神掌)’을 날렸다. 그러면서 품에서 반 각 정도 상대를 마비시킬 수 있는 독탄을 꺼내 그것을 터트리며 달아나려고 했다.
허나 송삼현에게 그런 게 통할 리가 있겠나.
퍽.
송삼현은 독룡신장을 피하곤 천신후의 오른쪽 허리를 발로 차며 땅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바닥에 골이 파였고 그곳에서 천신후가 힘겹게 나오려고 했지만, 송삼현은 그의 목에 검을 겨눴다.
“…..”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천신후는 송삼현을 올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교주님을 보는 것 같군.’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면 대를 이어 독마종을 이끌 자가 사라지게 되니까 어떻게든 송삼현을 따돌리며 도망쳐야 했다.
꿀렁.
천신후의 입 주위가 검게 그을리기 시작하며 열렸다.
하아아아아아악.
천신후의 입에선 독을 머금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자식, 독인이군.’
저번 삶에서는 직접 붙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독인 이라니, 어릴 적부터 독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몸 내부가 독 내성도 높아질뿐더러 독을 품게 된다.
천신후가 그랬다.
독에 특화된 성질이라 몸 모든 부분이 독이었고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독인이라고 불렀다.
원체 죽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독인들은 강호에서 사라졌지만, 독마장 천신후가 바로 그 독인이었다.
뚝.
촤아아아악.
몸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은 바닥의 돌을 녹였다.
“지독하군, 독마종은 항상 그렇게 사람을 키우는 거요?”
“자질이 맞는 아이들이라면.”
“맞지 않는 아이들은···. 그냥 죽겠군.”
“우리 교에선 약한 아이들은 죽는다. 약하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이러한 세상을 만든 건 너희들 정파다!”
콰직!
땅이 울릴 정도로 진각을 한 천신후가 신형을 날리며 돌진했다.
암기와 함께 독룡신공으로 송삼현을 습격했지만, 송삼현의 옷깃은 커녕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크윽.”
내공을 억지로 운용하는 바람에 내공이 금세 고갈됐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신형을 날리는 천신후를 보며 송삼현은 그제야 검을 휘둘렀다.
스르르르르륵.
청월에 휘감기는 푸른 기운.
송삼현은 달빛을 머금은 청월을 위에서 아래로 정직하게 휘둘렀다.
‘해무천뢰.’
심장을 꿰뚫을 기세로 뻗은 검이었지만, 천신후가 마지막에 허공답보로 급히 움직임을 틀었다. 하지만 온전히 피하진 못했다.
촤아아아아악!
심장을 노린 검은 그의 왼 다리만을 베어버렸다.
“끄아아아악!”
왼 다리가 베어졌으니 제대로 설 리가 있겠나.
주르르르륵.
허벅지가 잘렸고 천신후는 피가 나오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송삼현이 다가오는 걸 보곤 급히 점혈을 해 지혈했고 오른손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마지막 발악이군.’
천신후는 발악을 하며 송삼현에게 독룡신장을 날렸지만, 옷깃에 스치지도 못한 채, 모든 게 빗나갔다.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품에 있던 모든 암기를 꺼내 송삼현을 공격했다.
휘리리리릭.
사방에서 날아오는 암기들.
그 수가 적어도 수십은 됐다. 송삼현은 청월을 휘둘러 막을 수 있었으나 천신후에게 곧장 걸어갔다.
챙!
챙!
챙!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몸을 보호해주는 신물이 있었으니까.
‘귀혼편.’
용천회주 혁련서권을 죽이고 얻은 신물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모조리 쳐내며 송삼현을 보호했다.
“마교가 이렇게 된 것이 정파 탓이라고 하셨소?”
천신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독룡신장을 날렸지만, 송삼현은 피하며 더 다가갔다.
콰아아앙!
“그대들이 사람들을 죽인 것도.”
콰아아앙!
“그대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끔찍한 살육을 저지른 것도.”
콰아아아앙!
“그 모든 게 정파 탓이다?”
“그래! 너희가 우리를 천산 산맥으로 내쫓지만 않았다면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거니까!”
다시 독룡신장을 날리려는 천신후의 손을 그대로 잡았다.
손안에서 꿈틀거리는 독기.
그 독기가 송삼현을 휘감기 시작했지만, 중독되지 않았다.
꽉.
오히려 잡은 손을 더 꽉 쥐며 손뼈를 으스러트렸다.
“그렇게 남 탓을 하면 뭐가 바뀌오?”
“으으으윽!”
천신후는 다시 입 밖으로 독기를 뿜으려고 했지만, 송삼현은 다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대들은 결국, 그대들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뿐이오.”
손을 풀고 청월을 천신후의 목에 겨눴다.
“크하하하하!”
천신후는 목에 검이 들어왔지만, 겁먹지 않고 오히려 호탕하게 웃었다.
“너는 네가 제일 강한 줄 아느냐?”
“…..”
“두고 보거라, 교주님이 네 놈의 목을 비틀어 내게 선물로 보내주실 것이다···. 지옥에서 보자···. 그때는! 네놈의 입에서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괴롭혀줄 테니!”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한 천신후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뚝.
뚝.
때마침 하늘에서는 비가 떨어졌고 송삼현의 검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뚫고 천신후의 목을 그었다.
촤아아아악!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피, 그 피들은 곧 비와 함께 땅으로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