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1
혈전(血戰) (5)
뚝.
뚝.
쏴아아아아아아.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졌다.
저번 삶에서 끊임없이 정파를 괴롭히며 독으로 많은 고수들을 죽인 독마장 천신후의 최후였으나 송삼현의 머릿속에는 다른 것이 떠올랐다.
“독고룡.”
죽기 전, 천신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두고 보거라, 교주님이 네 놈의 목을 비틀어 내게 선물로 보내주실 것이다···. 지옥에서 보자···. 그때는! 네놈의 입에서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괴롭혀줄 테니!’
독고룡과의 싸움은 두 번있었다.
저번 삶에서 졌고 이번 삶에서는 한 번 비겼다.
이제는 세 번째 대결이 남았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송삼현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줘 검을 꽉 쥐었다.
비는 그렇게 온 땅을 적시고 나서야 멎기 시작했고 먹구름 사이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주군, 이만 가시지요. 싸우면서 난 소란 때문에 곧 흑도들이 몰려올 겁니다.”
흑사회 천막이 있는 쪽에선 움직임이 보였다.
“마훈아.”
“예, 주군.”
“…. 이 전쟁을 속히 끝내야겠다. 더는 희생자가 늘어나선 안 돼.”
독고룡이 천산 산맥에서 내려왔다면 지체해선 안 됐다.
아무리 구창룡이 있다곤 하지만 독고룡의 경지는 그를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높았으니까.
*
소란이 일어난 곳에 서른 명의 흑의인들이 도착했다.
흑의인들은 참혹한 현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고 뒤이어 도착한 흑사회주 철패흉은 바닥에 있는 시신을 보고 놀랐다.
“독마장이 죽다니.”
철패흉의 옆에서 주위를 둘러보던 한충건이 말했다.
“독마장께서 백의검룡을 만난 것 같습니다.”
백의검룡 송삼현의 이름이 나오자 철패흉은 주먹을 쥐며 분노했다.
“왜 항상 그놈은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어째서! 그 녀석의 걸음을 잠시도 늦추지 못하는 것이냔 말이다!”
철패흉의 몸 밖으로 살기가 스멀스멀 나왔다.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추혼마공서부터 시작된 백의검룡의 악연.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천뇌의 죽음이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하늘을 꿰뚫어 본다는 눈을 가진 천뇌의 빈자리가 큰 만큼 백의검룡에 대한 원망도 더 커져만 갔다.
“한 걸음이었다.”
“….”
“내가 꿈꾸던 세상이 오기까지 단 한 걸음이었는데···.”
현재의 하늘을 뒤집으며 새로운 하늘이 되는 것.
그것이 철패흉이 꿈꾸는 일이었다.
정도 무림을 없애고 나면 그다음은 천월신교를 몰아내며 강호의 절대자가 되고자 했던 욕심.
허나 그 욕심은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 따랐다.
“예상한 것보다 이른 전쟁이긴 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
그래서 흑사회는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밀려났고 최후의 방어선인 난하강 유역까지 밀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난하강 유역까지 밀리면서도 한충건은 침착하게 천라지망을 펼치며 방어선을 구축했다.
모인 이들만 해도 사천 명, 그리고 후방에서는 교란 작전에 들어갔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정파 세력을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 준비는 확실하게 했겠지?”
“맹 녀석들을 몰아세울 계책은 수십 가지가 있습니다.”
툭.
“잘해야 할 거야. 마지막 남은 그 팔을 지키려면.”
철패흉은 흑사회에서 누구도 믿지 않았다.
유일하게 믿었던 천뇌가 죽은 이후로 더더욱.
*
서쪽에선 여전히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끄윽···. 끅···.”
목이 그어져 곧 죽음을 앞둔 정파 무사 한 명은 눈물을 흘리며 전장을 봤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가 반나절이 지나자 어느덧 산처럼 쌓였고 그들이 흘린 피가 강을 이루어 천지가 뒤바뀌었다.
‘이···. 지옥은 언제 끝나는 건가.’
스르르륵.
눈이 감기기 전, 그의 눈앞에 보인 건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다시 웃으며 보기를 원했지만, 그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행복하게 웃는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무사의 눈은 감겼다.
“젠장!”
“전사자의 시신은 나중에 옮기고 부상자부터 신속하게 뒤로! 그리고 검마장과 권마장에겐 되도록 다가가지 마라! 우리가 감당할 자들이 아니다!”
촤아아아아악!
천월신교에선 독고룡만 조심해선 안 됐다.
사마장의 한 축인 검마장과 권마장의 무학은 화경을 넘었으니 이들을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피해는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익.
검마장 한헌의 검이 정파 고수의 목을 긋자 그 앞으로 나타나 발걸음을 잡은 것은.
콰아아아아앙!
무당파 장문인 청엽진인 장유봉이었다.
올해로 육십 육의 나이가 된 그는 무당 제일 검이라고 불리며 많은 고수의 존경을 받는 자였다.
“더는 마음대로 설치게 두지 않겠소.”
“무당 제일의 검을 견식 할 수 있다라, 검학을 걷는 자로서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지요.”
휘이이이익!
검붉은 검강이 휘감긴 검마장의 검이 매섭게 장유봉의 복부쪽으로 들어왔지만, 장유봉은 당황하지 않았다.
검으로 원을 그리며 검마장의 검을 감싼 뒤.
휘리리릭.
유능제강의 묘리로 검을 흘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빈틈을 노려 매섭게 검을 뻗었다.
노리는 것은 왼쪽 가슴께.
그곳으로 내지른 검에 검마장은 황급히 뒤로 보법을 펼치며 검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촤아아아악!
허나 온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태극일월검(太極日月劍)의 초식으로 검강을 더 늘리며 왼쪽 어깻죽지를 살짝 베었다.
“…. 무당의 검은 역시 다르오.”
“사특한 마검을 오늘이야말로 베어주겠소.”
콰가가가가각!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불꽃이 튀며 검풍이 주변의 나무를 꺾을 정도로 거세게 몰아쳤다.
화경과 화경의 대결, 승자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쪽에선.
촤아아아아아악!
구창룡의 검이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독고룡의 왼쪽 허리를 낮게 베었다.
옷깃을 지나 살갗을 살짝 베는 검격, 만약 제대로 들어갔다면 몸을 반 토막을 냈을 위협적인 검격이었으나 독고룡의 호신강기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검을 피한 독고룡의 손 주위로 내공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땅을 내리쳤다.
‘천동지격뢰(天動地擊雷)’
땅에 마치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그 갈라진 틈이 넓어지며 골짜기를 만들었다.
골짜기 사이에서 낙뢰 형태를 띤 내공이 파도처럼 밀려 나오며 두 사람을 덮쳤지만, 두 사람은 신형을 날리며 가까스로 피했다.
“화경과 현경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더니, 완전 괴물이군.”
“그래도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지.”
스윽.
“우리가 죽어도 뒤를 이을 아이들은 있으니까.”
그들은 나란히 자세를 잡고선 검을 출수했다.
마치 하나로 어우러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들의 검은 다르면서도 같았다.
‘천무신검.’
‘설풍신검.’
두 개의 다른 검이 하나로 어우러져 독고룡의 목을 노렸지만, 그 검은 아슬아슬하게 목을 비껴갔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호흡을 더 길게 가져가며 팔을 베려고 했지만, 검은 이형환위(移形換位)를 펼친 독고룡의 잔상을 가르고 말았다.
스르르륵.
독고룡의 신형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타난 곳은 두 사람의 뒤였다.
꼼짝없이 당할 상황이었지만, 구창룡은 순식간에 몸을 비틀더니 검을 뒤로 휘둘렀다.
‘설화면참.’
꽃처럼 휘날리는 눈송이들이 피부를 날카롭게 베는 것처럼.
일렁이는 연기 속에 검이 숨어 있는 것처럼.
독고룡의 오른쪽 허리춤을 노려 들어간 검격, 독고룡은 그것 마저 피하며 천마신장을 날렸지만, 그것을 막은 것은 유천의 검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주변 일대에 검풍으로 인한 모래바람이 몰아쳤다.
지형은 기괴하게 변해갔고 어느새 세 사람의 주변은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절벽이 만들어졌다.
닿을 수 없는 높은 태산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구창룡과 유천은 서로 힘을 합치며 그 거대한 태산에 맞섰다.
‘비록 닿지는 못하더라도.’
콰아아아아앙!
‘멈추게 할 수는 있다!’
유천은 허리를 베려던 검로를 손목을 틀어 오른쪽 발목으로 틀었다. 독고룡에게서 발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틈에 구창룡이 독고룡의 목을 노리는 형태로 협공이 이어졌다.
‘만혼격!’
구창룡의 손에 들린 검에서 두 갈래의 검격이 독고룡의 목으로 향했다.
카가가가가각!
호신강기에 막혔지만, 곧 호신강기가 깨지며 독고룡의 오른쪽 뺨을 베었다.
‘얕았다.’
그러나 구창룡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중심을 잡고선 곧장 독고룡의 품으로 신형을 날렸다.
스윽.
사특한 기운이 가득 담긴 독고룡의 손끝이 목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했고 어깨를 스치며 피가 나왔으나 멈추지 않고 검을 뻗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목을 노리고 들어가는 검.
독고룡은 손에 내공을 모아 단단하게 만든 뒤에 검을 튕겨냈다.
그 충격에 검이 들리면서 순간 자세가 흐트러졌지만, 그 사이에 유천이 구창룡의 오른쪽 허리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독고룡의 왼팔을 노렸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검격에 독고룡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쿠우우우웅!
내공을 발산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유천은 피를 토하면서도 검의 경로를 지켜냈다.
촤아아아아아악!
검은 그대로 나아가 독고룡의 왼쪽 팔뚝을 베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닿지 못했던 검이 서서히 닿기 시작하자 두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가 살짝 걸렸다.
‘간격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착실하게 걸어온 길 위에 그들은 호흡을 덧대었다.
한 시진이 지나면서 주위 일대는 이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했다.
산이 사라지며 새로운 산이 나타나고 강이 범람해 새로운 물길을 내며 경관이 바뀌어갔다.
‘내가 먼저 들어간다.’
이제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눈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구창룡은 설풍신검의 묘리를 모두 담은 절초를 위해 검을 고쳐잡았다.
스르르르르륵.
무릎을 굽히고 자세는 낮추며 심장은 차갑게, 바람과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자연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검이 청명한 공명음을 내기 시작했다.
탓!
‘들어간다.’
평소보다 반보 더 빠르게.
‘설해(雪海)’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눈의 바다가 세상을 뒤덮었다.
한기가 몸을 휘감았고 독고룡은 눈 속에서 자신에게 오는 검을 봤다.
‘설뢰(雪雷).’
눈으로 뒤덮인 바다에서 빛이 일렁이며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그걸 보던 독고룡은 보법을 밟으며 교주에 오른 자들만 발현할 수 있는 심화를 발현했다.
그러자 한 번에 폭발한 열기가 주위를 감싼 한기를 밀어냈다.
화르르르륵.
모든 것을 불태울 기세의 열기는 구창룡의 한기를 밀어냈다.
그리고 독고룡은 ‘마룡참(魔龍斬).’으로 구창룡의 검을 반으로 동강을 내버렸다. 검이 사라지며 무방비상태가 된 구창룡의 복부를 향해 독고룡은 천마회격을 날렸다.
심화의 열기를 담은 날카로운 창.
구창룡은 뒤로 보법을 밟으며 피하려고 했지만, 천마회격의 간격에서 벗어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이건 당했다.’
독고룡의 손끝이 복부에 닿기 직전, 신형 하나가 날아오며 구창룡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퍽!
그 발차기를 한 사람은 유천이었다.
유천은 구창룡을 발로 쳐내고 대신 천마회격의 간격에 들어갔다.
푸우우우욱.
“유, 유천!”
유천의 배가 독고룡의 손에 의해 뚫렸고 곧 등으로 독고룡의 손이 나왔다.
“커헉!”
장기가 모두 망가져 피를 토했지만, 유천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내공을 모두 끌어모아 검에 집중했고 몸을 관통한 독고룡의 오른팔에 찔러넣었다.
푹.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유천은 입으로 피를 토하며 말했다.
“…. 비록 난 죽지만, 네놈의 걸음은 내 제자가 멈출 것이다. 그 녀석은 나보다 강하고 올곧은 녀석이니까.”
힘을 줘 오른팔을 그대로 잘라버리려고 했으나 힘이 부족한 나머지 다 잘라내지 못했다.
촤아아아악!
하지만 유천은 선천진기까지 발휘하며 팔의 절반가량을 베어냈다.
‘한 번 더!’
그리고 이어서 천무일심(千武一心)의 초식으로 독고룡의 오른쪽 가슴에 검을 찔러넣으며 치명상을 입혔다.
독고룡은 황급히 손을 빼냈다.
푸하하하학!
독고룡이 손을 빼내자 피가 솟구쳤고 유천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