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2
혈전(血戰) (6)
“천아!”
놀란 구창룡이 황급히 달려가 바닥에 쓰러진 유천의 상처를 살폈다.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고 점혈을 해도 피가 멎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젠장! 젠장!’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으나 유천은 숨이 끊어져 가면서도 힘겹게 손을 뻗어 구창룡의 손을 잡았다.
“왜 이랬느냐! 어째서!”
잡은 손이 떨렸다.
구창룡이 울면서 말하자 유천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너 구해내고 나도 피하려고 했는데 저놈의 손이 내 생각보다 빨랐다···. 쿨럭.”
스르르르륵.
잡은 손은 서서히 힘이 빠져갔다.
흐릿해지는 시야, 거칠어지는 숨.
죽음을 앞둔 유천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땅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하늘에는 닿지 못하는구나.’
땅 위는 전쟁으로 지옥도가 펼쳐졌지만, 하늘은 그와 반대로 너무나도 맑았다.
“산에서 늙어 죽지 않고 이리 싸우다 죽으니, 무인으로서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지.”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려! 내가 어떻게든 너 살릴 거다.”
“애쓰지 마라···. 쿨럭.”
약관이 지난 나이에 강호행을 하며 만난 두 사람.
그때부터 벗이 되며 긴 세월 동안 서로를 지탱해주는 친우가 됐다. 힘든 일이 있다면 제일 먼저 서로의 얼굴이 떠오를 만큼 가까운 사이였기에 구창룡은 죽어가는 친우의 손을 꽉 잡고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저놈.”
유천은 구창룡을 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천유현이 마교도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내 무학을 다 물려받긴 했지만, 아직 미흡해···. 네가 좀 가르쳐줘라.”
“그건 네가 할 일이잖아! 살아서!”
“됐다···. 끅···. 그보다 어서 피해라···. 저놈···.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천은 끝내 피를 토하며 눈을 감았고 구창룡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 장난치지 말거라.”
툭.
“넌 항상 그랬다. 귀찮은 일을 하기 싫어서 산으로 도망치고.”
툭.
“마지막으로 죽는 것까지 넌 항상 내 의견은 묻지 않고 멋대로구나.”
유천에게 팔을 크게 베인 독고룡은 급히 지혈한 뒤에 유천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구창룡에게 다가갔다.
유천이 죽음으로 하여금 잠시 멈춘 전투.
정파와 마교는 모두가 구창룡과 독고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하겠느냐?”
투항하라는 뜻이었다. 허나 정도 무림을 책임지는 자가 그런 말에 넘어갈 리가 있겠나.
스르르르르륵.
주변 일대의 공기가 차갑게 변해갔다.
몸이 떨릴 정도의 한기, 그 한기를 잠재우기 위해 독고룡은 심화를 발현하며 열기를 뿜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태울 만큼 뜨거운 열기도 벗을 잃은 한이 실린 한기를 밀어내지 못했다.
스스스스슥.
독고룡은 자신의 옷깃마저 얼어붙게 하는 한기를 느끼곤 구창룡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괜히 무림맹주가 아니라는 건가.’
구창룡은 땅에 꽂아놓은 검을 잡고서 독고룡에게 검을 겨눴다.
“너의 목을 베지 않고서는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격차가 여전히 존재했지만, 구창룡의 눈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정파 무사들도 유천의 죽음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때, 제갈귀호의 진법이 발동되며 마교도들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들이 멈칫한 사이, 제갈귀호는 구창룡에게 다가갔다.
“맹주! 피하셔야 합니다!”
“이거 놓으시오!”
“맹주마저 돌아가시면 누가 이 전쟁을 이끌겠습니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입니다! 저자도 크게 다친 탓에 섣부르게 대응하지 못할 겁니다!”
이대로 계속 싸우다간 구창룡도 유천처럼 죽을 공산이 매우 컸다. 그렇게 된다면 정도 무림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제갈귀호는 지금은 물러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을 택했다.
“어서요! 진법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제갈귀호의 말을 듣던 구창룡은 차분하게 생각을 했다. 떠나간 벗의 복수를 하고 싶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 유천의 시신을 챙겨서 빠져나가야 하오.”
“예!”
유천의 시신을 회수하려고 할 때, 먼저 유천의 시신에 다가간 사람이 있었다.
“…..”
“스, 스승님.”
그는 천유현이었다.
천유현은 싸늘하게 죽어간 스승의 시신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고 아직 온기가 남은 시신의 손을 꽉 잡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구창룡은 천유현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려 위로해줬다.
“지금은 물러날 때다. 유천의 시신은 네가 챙기거라.”
“맹주님.”
“… 미안하구나, 내가 죽었어야 했거늘.”
싸늘하게 식어가는 유천의 시신을 회수해 정파 세력은 속히 전쟁터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참패는 아니었다.
전투가 끝나기 직전, 무당 제일 검, 장유봉의 검이 검마장 한헌의 가슴을 꿰뚫었으니까.
정사마 대전의 첫 번째 전투는 그렇게 여러 희생이 있고 나서야 끝났다.
*
“개방주님, 흑사회가 이동 중입니다.”
동쪽에선 흑사회가 사시를 기점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는?”
“사천이백 명, 전원입니다.”
난하강 서쪽 유역에 진을 친 정도 무림 세력은 흑사회의 움직임을 단 한 시도 놓치지 않고 감시했다.
“… 저것들이 뭘 노리는 걸까.”
싸우기 위해 달려오는 게 아니라 대화를 원하는 것처럼 걸어오는 흑도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 취하걸에게 말했다.
“진을 펼쳐 수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새가 날개를 펼쳐 먹이를 감싸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흑사회는 양쪽으로 길게 진을 늘리며 한 번에 감싸기 위한 진을 만들었다.
개방주 취하걸이 턱을 쓸면서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할 때, 멀리서 새 떼들이 날아왔다.
“설마.”
그 새 떼들은 벽력탄을 품은 흑폭대였다.
“흑폭대입니다. 수는 열이군요.”
“저것들이 소문으로만 듣던 벽력탄을 품은 새들이로구나.”
“예, 저것 때문에 무림맹이 큰 피해를 입었었지요. 아마 저것들로 먼저 우리 진영에 혼란을 준 뒤에 기습적으로 전투를 시도할 것 같습니다.”
흑폭대는 손이 닿지 않는 하늘에서 정파 진영에 벽력탄을 떨어트리려고 했다.
무림맹에게 그랬던 것처럼.
허나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여긴 허무하게 당한 무림맹 진영과는 다르다는 것을.
“무정아.”
바로 선무정의 존재였다.
“예!”
“저놈들을 땅으로 떨어트릴 수 있겠느냐?”
새처럼 상공을 높이 나는 사람들을 떨어트릴 수 있냐는 황당한 질문에 다들 어리둥절했으나 선무정은 흑폭대를 바라보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반 각 안에 모조리 떨어트리겠습니다.”
“날아다니는 놈들은 열, 새 한 마리당 만두 백 개씩 사주마.”
만두 백 개라는 말에 눈이 커졌다.
“지, 진짜입니까?”
“당연하지, 내가 언제 빈말하는 거 봤느냐?”
“그러면 만두가 천 개···. 다녀오겠습니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됐다.
하늘을 나는 새는 똑같은 새로 잡으면 되니까.
선무정은 무릎을 굽혔다가 피며 단숨에 도약했다.
‘능공허도(凌空虛道).’
하늘을 나는 신묘한 경공에 다들 멍하니 선무정을 봤고 선무정은 흑폭대보다 한 걸음 더 높은 곳에 도달했다.
툭.
그리곤 선두에서 나는 흑폭대원의 등에 올라탔다.
“이, 이놈!”
흑폭대는 허공답보도 할 수 없었기에 상공에서 움직임을 바꾸지 못했다.
그러니 하늘은 자유롭게 능공허도를 펼치는 선무정의 놀이터였다.
퍽!
“우선 만두 백개.”
선무정은 내가 알려준 장법으로 하늘을 나는 새를 한 마리 한 마리씩 땅으로 떨어트렸다.
“이백 개!”
“삼백 개!”
“사백 개!”
.
.
.
.
.
“마지막으로 천 개째다!”
콰아아아아아앙!
떨어지는 충격으로 흑폭대의 품에 있던 벽력탄은 정파 세력이 아닌 흑사회 진영 한가운데에서 터졌다.
벽력탄이 터지면서 흑사회의 촘촘했던 진은 일순간 무너졌고 틈을 타 정파 세력이 밀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뻗어 막았다.
“아직입니다.”
“….. 정말 네가 말한 것이 가능한 것이냐?”
취하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반 각이 지나자 흑폭대는 모조리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새 사냥을 끝낸 선무정은 무사히 땅으로 내려왔고 동시에 무무를 보며 신호를 내렸다.
‘지금이다.’
흑사회가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가 난하강 유역을 거의 건넜을 때, 소수의 병력만 있는 본진을 급습하는 거였다.
난하강 유역 일대 지역은 평야라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지만, 은신에 특화된 무조 세력은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해도 몸의 기척을 숨길 수 있는 ‘무혼대법(無魂大法)’을 익힌 이들이라 숨을 쉬지 않고서도 일정 시간을 버티는 게 가능했다.
촤아아아악!
그리곤 암살까지.
흑사회 본진을 지키는 이들은 무무가 이끄는 다섯 명의 암살대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화르르르르륵.
불이 붙기 시작한 흑사회 진영.
내가 노린 것이 이거였다. 명백한 수적인 열세가 있었지만, 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흑사회의 사기를 떨어트려야 했다.
기습적인 화계로 흑사회가 돌아갈 둥지를 없애 사기를 떨어트린다.
이것이 내가 세운 계획의 일부였다.
흑사회의 둥지가 불에 타기 시작하자 취하걸을 바라봤다.
“보십시오. 실패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 대단하구나. 네가 노린 화계가 적중하다니.”
“벽력탄과 화계 때문에 저들이 동요할 겁니다. 치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좋다!”
개방주 취하걸은 각 세력의 수장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가장 어른인 화산파 장문인 곽수룡의 신호에 맞춰 천 오백의 정파 무사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강호를 어지럽히는 마귀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동쪽 전선에서의 전투가 시작됐다.
*
흑사회의 수가 곱절은 더 많았지만, 정도 무림의 무사들은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온 이들이었다.
“삼호진!”
“밀형운진!”
“서로의 등을 지켜라!”
진법을 이용해 흑도들을 상대했고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독자적으로 무학을 쌓아올린 흑도들은 속절없이 정파의 검에 죽어갔다.
촤아아아아악!
그렇다고 수적 우위는 무시하지 못했다.
반 시진이 지나자 정파의 우위도 점차 퇴색되어갔다.
한 명이 세 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흑도들은 수로 밀어붙이며 정파 고수들을 고립시켰다.
촤아아아악!
“끄윽!”
“흔들리지 마! 진이 무너지면 곧 죽는다!”
흑사회는 경지가 낮은 이들이 많았다.
절반 이상이 일류와 이류 정도의 수준이었고 그들은 제일 일선에서 정파 고수들의 검에 죽어갔다.
그렇게 그들의 시체가 언덕이 되며 흑도 고수들은 시체들을 발판으로 정파 무사들을 베어나갔다.
“오늘 밤은 정파 놈들의 고기로 술 안주를 하자꾸나!”
흑사회는 마교와는 싸우는 방식이 조금은 달랐다.
마교는 사특한 마기로 가득한 무학을 썼지만, 흑사회는 무기도 같이 사용했다.
특히 개량된 벽력탄은 그 위력이 상당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전선이 밀린다 싶으면 개량된 벽력탄을 터트리며 우위를 다시 가져왔다.
“좌익과 우익은 벽력탄을 사용해 우위를 빼앗기지 마라!”
한충건은 후방에서 총지휘를 내렸다. 새처럼 펼친 진은 수적인 우위를 앞세우기 위해 선택한 진이었기에 한 곳이라도 무림맹에게 빼앗겨선 안 됐다.
허나.
그러한 수적인 열세를 극복한 힘이 정파에게 있었다.
촤아아아아악!
남궁 제일 검, 태상가주 남궁상룡.
콰와아아아아앙!
화산 장문인 용화신검 곽수룡.
이 두 사람은 화경에 오른 고수들이라 일당백은 기본이었다.
그들의 검에 흑도들이 무참히 죽어갔으나 흑사회 입장에서 진짜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백의검룡이다.’
한충건의 시선은 전선 한 곳에서 화려한 검으로 흑도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송삼현에게 향했다.
혼자서도 수천을 상대할 수 있는 무학을 지닌 자.
송삼현은 어기충소로 하늘로 솟구치더니 검을 눕혀 초식을 썼다.
‘천무 6식 검뢰.’
하늘에서 검강으로 된 낙뢰가 흑도들이 있는 한 가운데로 내리쳤다.
그 낙뢰는 수차례 땅을 울렸고 흑도들은 낙뢰로 된 검강에 휘말려 몸이 찢겨져 절명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가공할 무공을 보던 한충건은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