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3
혈전(血戰) (7)
“흑수대! 밀형진(密形陣) 펼친다!”
밀형진은 천뇌가 고안한 진법으로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갈 틈이 없게 밀집해 적의 침입을 막는 진법이었다.
송삼현 주위를 에워싸곤 어떻게든 사방에서 무기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그들의 무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송삼현이 있는 곳을 내리쳤지만, 송삼현의 신형은 사라졌다. 그리고 송삼현이 나타난 곳은.
척.
무기들 위였다.
송삼현은 무기 위에 서서 가볍게 검을 휘둘러 그들의 목을 한 번에 베어버렸다.
촤아아아아악!
흑도들의 공격은 송삼현의 옷깃은 커녕 근처도 가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이 들리고.
“사, 살려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휘감은 전장.
그곳에서 송삼현의 검은 파도처럼 거침없이 몰아쳤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전쟁에 익숙한 사람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디뎠다.
‘저 아이는 대체···.’
곽수룡은 흑도들을 상대하면서도 자연스레 송삼현에게 시선이 갔다.
이제 한 달 뒤면 열일곱이 되는 어린 나이인데도 마치 이런 전장을 겪은 노장처럼 모든 게 익숙해 보였다.
망설임 없는 동작.
군더더기 없는 경로.
진의 가장 얇은 부분을 가장 확실하게 무너트리며 동료들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것을 보며 곽수룡은 작게 감탄했다.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일 장로, 자네는 좌익으로 무형이와 매화검수들을 데리고 가게. 이곳은 내가 맡겠네.”
“예! 알겠습니다! 전투가 끝나면 그때 뵙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린 뒤에 송삼현의 뒷모습을 보는 곽수룡의 입가는 서서히 올라갔다.
‘맹주께서 그렇게 칭찬한 이유를 알겠군, 진정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로구나.’
송삼현의 등을 보던 곽수룡은 이내 주위에 있던 흑도들을 일격에 베었다.
스르르르륵.
한 송이의 꽃이 떨어치는 착각을 일으키는 매화검.
돌산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 검법이 되며 흑도들을 차례차례 베어나갔다.
“… 밀리기 시작한다.”
수적인 우세를 점했다곤 하지만 흑사회의 사기는 서서히 떨어졌다.
벽력탄으로 인한 혼란.
화계로 인한 보급품의 소실.
그리고 압도적인 무공을 선보이는 송삼현과 다른 고수들의 존재까지.
촤아아아아악!
흑사회는 정파의 기세에 서서히 밀렸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기세를 다시 가져와야 했다. 그리고 그때, 앞만 보고 가던 송삼현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네놈이냐, 독마장을 죽인 것이?”
구 척이 넘는 기다란 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창마장 무군이었다.
“무에 미쳐서 자기 가족들까지 몰살시킨 악견(惡犬)이 아니오.”
악견이라는 말은 무림에서도 아는 이가 드물었다.
창마장 무군이 가족을 죽이며 얻은 악명이었고 원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인 무군으로 살면서 서서히 잊혀졌다.
“….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느냐.”
“어찌 아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가족을 죽이며 스스로 사람이 아닌 개가 된 창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시오.”
창마장은 천월신교에서 교주 밑의 배분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는데 송삼현은 창마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무학이 높다고 그리 오만하면 목이 금세 땅에 떨어진다는 걸 알려주마.”
“강해지기 위해 스스럼없이 사람을 도륙하는 마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만.”
“네놈의 버릇을 오늘 내 신창으로 고쳐주마!”
“신창이 아니라 마창이 아니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창.
카가가가가각.
송삼현은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제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쇄도하는 창을 막은 것은 마훈의 검이었다.
마훈은 송삼현을 향한 창을 위로 쳐낸 후에 창마장에게 검을 겨눴다.
“주군! 이 자는 제가 상대할 테니 앞으로 가십시오.”
“알겠다.”
“이 자식이! 제대로 이름도 날리지 못한 놈이 누굴 상대한다고?!”
창마장의 창이 거칠게 회전하며 다시 한번 송삼현을 급습하려고 했지만, 마훈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며 창마장의 창 위에 올라타 공격을 차단했다.
“내가 너를 막는 거다. 그리고 당신처럼 악명을 얻을 바에야 이름 따윈 없는 것이 낫지.”
“이 노오오오옴!”
창마장은 마훈이 밟은 창을 뺀 뒤에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창을 크게 휘둘렀다.
검은 탁기가 창끝을 휘감았다.
매서운 기세로 바람을 뚫고 쇄도하는 창.
‘흑운일섬(黑雲一閃).’
마훈의 사각을 노리며 들어가는 일격.
마훈은 뒤로 한 발 물러나며 창의 경로를 끝까지 본 뒤에 창끝을 쳐냈다.
카가가가가각!
창과 검이 맞닿으며 일순간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마훈은 침착하게 창마장 무군을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창마장 무군이 든 창에 시선이 갔다.
‘검에 비해 창의 길이가 길다. 간격을 좁히는 게 먼저다.’
검과 창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같은 수준의 무학을 가졌다면 검보다는 창이 우세하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창마장은 그러한 우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벌렸고 마훈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견제했다.
탓.
그렇다고 마훈이 포기할 사람은 아니었다.
스르르르륵.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매서운 창격을 흘리며 마훈은 허공에서 검을 눕혔다.
마치 무당의 검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리곤 번뜩이는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창마장과 간격을 좁혔다.
검을 출수하면 닿는 거리.
콰가가가가가각!
그러나 창마장도 화경에 오른 고수였기에 이대로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마훈의 검로를 보곤 창대에 강기를 두르며 검격을 막아냈다.
마훈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은 더 나아갔다. 거리가 좁혀진 지금, 물러서선 안 됐다.
그러자 떠오르는 대련을 할 때 송삼현이 누누이 했던 말.
‘넌 항상 닿기 직전에 검을 멈추는 버릇이 있다. 그 버릇을 버리고 한 걸음 나아간다면 너의 검은 능히 태산도 벨 거다.’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한 걸음 더 내디딘 마훈의 검은 창마장이 예상한 것보다 두 치는 더 늘어났다.
촤아아아악!
왼쪽 허리춤을 베어나가는 검.
창마장 무군은 황급히 거리를 벌린 뒤에 자신의 왼쪽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축축해지며 흘러나오는 피.
마훈은 자세를 잡으며 창마장 무군을 바라봤다.
“다음은 빗나가지 않는다.”
휘이이이잉.
불어오는 바람.
아무것도 없는 평야에.
‘…. 어째서 이곳에 숲이.’
창마장 무군은 존재하지 않는 숲을 봤다.
마훈의 기세에 압도되어 인식이 뒤틀린 거였다.
*
송삼현은 제일 먼저 한충건을 죽이려고 했다.
흑사회의 모든 전략은 한충건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를 죽이면 흑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탓.
탓.
탓.
흑도들의 머리를 밟으며 날아갔고 그렇게 한충건이 있는 후방까지 신형을 날렸다.
“백의검룡이다! 군사 어른을 보호하라!”
“호위대는 일제히 방어진으로!”
“백의검룡의 침입을 허락하지 마라!”
한충건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오자 송삼현은 허공에 뜬 상태로 자세를 잡았다.
그 주위에 호위대들이 일제히 방어진을 구축하며 무기를 뻗었지만, 그건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천무장(千武掌).’
쿠우우우웅!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 장법.
한충건은 황급하게 뒤로 물러났고 그 앞을 흑매와 적매, 백매가 막아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학을 끄집어내 송삼현에게 맞섰지만, 옷깃을 스치지도 못했다.
푹.
한 호흡에 흑매의 배를 꿰뚫었고.
촤아아아악!
두 번째 호흡에는 적매의 목을 그었다.
퍼어어어억!
세 번째 호흡에는 천무장으로 백매의 기맥을 뒤틀며 내공운용을 못하게 만들었다.
호위대는 천무장에 휘말려 이미 절명한 뒤였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에 한충건은 말을 잇지 못했다.
‘흑매, 적매, 백매가 한순간에···.’
저벅.
한 걸음.
저벅.
한 걸음.
저벅.
송삼현은 그렇게 한충건에게 다가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눴다.
“죽기 전에 남길 말은 있느냐?”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한충건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파라는 놈들은 역시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
“네놈들이 이러고 있는 동안에! 승덕은 지금 어떤 꼴을 겪고 있는지 아느냐?”
흑사회는 무림맹과 싸우는 것만 생각하지 않았다.
정도 무림을 흔들기 위해 무고한 마을들을 습격하며 정파의 전력을 약하게 하려고 했다.
한충건의 말에 송삼현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 뭐야 왜 웃지?”
“너희들은 한결같구나. 그래서 내 검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뭐라?”
“내가 그것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보느냐?”
“서, 설마.”
“그곳으로 보낸 흑사회 추적대, 그놈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다.”
흑사회가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어떻게 움직일지는 저번 삶의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악귀(惡鬼).
사람들이 왜 이런 표현을 썼겠는가.
그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고한 이들을 사지로 내몰 정도로 극악무도한 자들이었다.
그것 때문에 저번 삶에서 여러 번 곤욕을 치렀다.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죽은 폐허도 봐야 했고, 죽어간 이들의 가족들에게 원망도 들어야 했다.
왜 지키지 못했습니까.
왜 살려주지 못했습니까.
왜.
왜.
왜.
짙은 후회만 남았다.
지킬 수 있는 데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 죄책감은 회귀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 삶에서도 흑사회가 하는 짓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무조가 흑사회가 아닌 송삼현에게 있다는 점이었다.
무조의 정보력으로 흑사회가 어떤 마을을 습격할지 알아냈고 그곳에 무조의 수하 몇몇과 천월궁귀를 보내놨다.
천월궁귀는 아직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절정 경지에 올랐으니 궁술은 능히 흑사회의 짓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승덕 승호현.”
“….!”
송삼현의 입에서 나온 마을 이름에 한충건은 놀란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너희들은 그곳을 시작으로 영구현, 창우현, 기창현을 차례로 습격할 계획을 세웠겠지.”
“….”
“너희들의 비열한 짓거리에 당할 줄 아느냐.”
“그럴 리가 없다! 그 녀석들은 애초에 북쪽으로 이동해서 너희들의 시야에 발각됐을···. 끄아아아아아!”
말을 끝마치기 전에 송삼현의 검은 한충건의 허벅지를 뚫었다.
“그건 죽어서 생각해보거라.”
휘이이이익.
그대로 목을 베려고 했는데 검격이 들어오며 목을 베지 못했다.
광오한 기운을 품은 검.
송삼현은 검강을 두르며 검격을 막아냈다.
콰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충돌했고 검풍으로 인한 모래바람이 주위를 휘감았다.
“오랜만이다.”
모래바람이 걷히자 보이는 사람은 흑사회주 철패흉이었다.
“정정하십니다.”
“그야 너의 목을 베기 전까지 죽으면 안 되니까 그렇지.”
“….”
“오늘 네 놈을 죽이고 무림맹 녀석들을 모조리 도륙을 내주마.”
스르르르륵.
그를 휘감은 광오한 기운.
그 기운을 본 송삼현은 확신했다.
눈앞에 있는 철패흉이 용천회주 혁련서권과 마찬가지로 현경에 올랐다는 것을.
콰직.
철패흉이 진각을 하자 땅이 울렸고 곧이어 매서운 기세로 날아왔다.
벼락처럼 쇄도하는 검을 튕겨내며 침착하게 철패흉의 왼쪽 허벅다리를 노렸다.
휘이이이익.
그러나 철패흉은 그것을 피한 뒤에 허공에서 암기를 날렸다. 품에서 암기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챙.
챙.
챙.
천잠사로 만든 장포를 찢을 만큼 암기에도 강기가 실려 있었다.
암기들을 모두 막아내자 철패흉은 쉬지 않고 신형을 날려 송삼현을 공격했다.
철패흉의 움직임은 한 마리의 맹수와도 같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자세를 낮추더니 한 순간에 거리를 좁혀 검을 매섭게 출수했다.
콰아아아아앙!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충돌했고 그 아래에는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웅덩이가 파였다.
‘현경, 그것도 용천회주보다 기운이 더 강맹하다.’
적어도 철패흉이 용천회주 혁련서권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이어지는 싸움.
철패흉의 검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송삼현을 노렸지만, 송삼현은 몸을 눕히며 검을 피했다.
‘비었다.’
그러자 보이는 철패흉의 몸.
카가가가가각.
분명히 훤히 비어있는 복부를 베려고 했지만, 검강을 두른 검으로도 베지 못했다.
검을 통해 손에 전해진 감각.
그리고 철패흉의 상의가 베어지며 드러난 정체.
“… 귀혼갑.”
철패흉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귀혼편의 짝이자 천하제일의 갑옷이라고 알려진 귀혼갑(鬼渾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