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5
혈전(血戰) (9)
“맹주님, 괜찮으십니까?”
무림맹은 천월신교와 전투에서 패배하며 호북성 십언까지 밀려났다.
부상자도 많았고 처음 맹을 출발할 때와 비교하면 전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 나는 괜찮으니 다른 부상자를 살피도록 하시오.”
제갈귀호가 의약 당주와 함께 부상자를 살필 때, 구창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그를 본 무사들은 모두 포권지례로 예를 갖췄고 구창룡이 도착한 곳은 피 묻은 유천의 검을 멍하니 바라보는 천유현의 곁이었다.
“네가 마교도 백 명을 베며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다더구나, 참으로 고맙다.”
“……”
천유현은 말을 하지 못했다.
“유천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구창룡은 미안한 마음이 컸다.
유천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나온 말이지만, 천유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사부님이 돌아가신 건 맹주님의 잘못이 아니십니다.”
“…..”
“이 또한 사부님의 뜻이니, 맹주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분노하는 건···.”
꽉.
“한없이 약한 제 자신입니다.”
구창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천유현이 하는 말을 경청했다.
“제가 조금 더 강했다면···. 제가 사형처럼 강했다면···. 사부님을 지킬 수 있었을 테니까요.”
천유현이 하는 것은 자신의 약함에 대한 원망이었다.
“부럽구나.”
“예?”
“너 같은 제자가 있다는 게 말이다. 난 아직 그렇다 할 제자도 없는데 유천은 비록 죽었어도 이 세상에 너라는 씨앗을 뿌려두고 가지 않았느냐.”
“…..”
“유현아.”
“예, 맹주님.”
“약하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더 강해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는 마음이니 그 마음 잊지 말고 더욱 정진하거라.”
“예!”
“그런데 아까 말한 사형이라는 건 누구를 말하는 것이더냐?”
“아, 백의검룡 송삼현 대협이 제 사형입니다.”
그 말을 들은 구창룡은 웃음을 지었다.
“백의검룡이 유천의 제자라.”
구창룡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송삼현이 쓰던 검은 유천과 유사한 점이 많았기에 천유현이 하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 제 사형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퍼하실지···.”
구창룡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천유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검을 잘 간수하거라, 전쟁이 끝나면 유천의 시신과 함께 장례를 치를 것이니.”
“네.”
구창룡은 일어나서 장문인들을 비롯해 한 참 돌아다니며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말을 마치자 제갈귀호가 곁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물러나서 동쪽 전선의 백의검룡과 합류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게 좋을 거 같소. 이 상황에서 다시 마교와 격전이 벌어지면 피해가 클 것이오.”
독고룡은 구창룡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백의검룡 송삼현이었다.
“속히 채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온전한 패배?
그건 또 아니었다.
마교도 큰 피해를 입은 탓에 섣부르게 무림맹을 뒤쫓지 못하고 잠시 걸음을 멈춰 정비하는 중이었으니까.
*
철패흉의 흑천해운공은 거대한 파도가 몰아친 것처럼 주변 일대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미처 간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휘말리며 절명했고 근방 이 리까지 큰 구덩이가 파였다.
저릿.
송삼현은 검을 바닥에 꽂고 정면에서 그 내공을 받아냈다. 귀혼편이 태풍 속에 담긴 강기를 막아낸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압도적인 무학을 선보인 철패흉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송삼현에게 말했다.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힘이라는 거다.”
그의 목소리에는 내공이 담겨서 이리 밖으로 물러난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들렸다.
“…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
“어째서 흑사회 같은 세력을 세우신 겁니까? 어째서 무고한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이득을 취하고자 하신 겁니까?”
저번 삶에서도 알지 못했다.
왜 흑사회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송삼현의 말을 들은 철패흉은 웃으며 말했다.
“간단하다.”
“….”
“내 무학으로 제일 위에 서고 싶으니까.”
“겨우 그게 답니까? 역천사상은요? 흑사회가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역천사상이 아닙니까.”
흑사회의 명분은 ‘역천사상’이었다.
무능한 황제와 권력욕에 사로잡힌 환관들이 어지럽힌 정세.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지고 그런 약자의 것을 빼앗는 권력에 사로잡힌 강자들.
흑사회는 그런 것들을 갈아엎고자 역천사상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업을 꿈꿨다.
하지만.
천뇌가 죽고서 흑사회는 뼈대부터 달라졌다.
천뇌는 진심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으나 철패흉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송삼현의 예상을 완전히 깨트렸다.
“겨우 자기가 제일 강하다는 걸 증명하고자 하는 일이었다니···. 한심하지 않습니까.”
“역천사상을 포기한 적은 없다. 난! 누구보다 강해져 권력을 손에 넣어 그 사상을 이뤄낼 것이니.”
“무공을 배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공은 나의 옷이다. 나를 더 밝게 빛나게 해주는 도구지.”
“….. 약탈을 해서라도요?”
“약자는 어차피 빼앗기는 삶을 산다. 그 시대는 변하지 않고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 순리 아니겠느냐.”
예전에 흑해도문을 멸문시킬 때, 들은 말이었다.
“그러는 넌! 너도 결국에는 우리의 것을 빼앗고 있지 않으냐!”
“저는 지키는 겁니다.”
“지킨다?”
“당신들이 더는 무고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지 못하도록.”
스르르르르륵.
“그래서 무학을 배운 겁니다.”
송삼현의 몸에서 내공이 흘러나왔고 그건 푸른 연기로 변했다. 곧 푸른 연기는 용의 형상이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는 기운.
철패흉은 몸이 떨리면서도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당신의 목을 베어야 끝날 싸움이군요.”
“네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이 귀혼갑의 보호를 받는 나를!”
철패흉은 강대한 내공을 소모했으면서도 아직 내공이 남아있는지 사방에 암기를 띄웠다.
그 수가 점차 늘어나더니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아졌다.
‘만성연철(萬星連鐵)’
암기가 내공의 흐름대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만천화우와 같은 수준의 암기술.
그게 일제히 날아오기 전에.
스윽.
송삼현은 검을 허리춤에 넣고 자세를 잡았다.
‘풍표전격(風飄電激).’
암기가 몸에 닿기 직전.
송삼현의 몸을 휘감은 푸른 연기가 암기들을 허공에서 땅으로 떨어트렸다.
그 푸른 연기는 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폭풍으로 변하며 철패흉에게 향했고 그 안에는 검강이 벼락처럼 담겼다.
휘리리리릭.
폭풍이 휘몰아칠 때, 철패흉의 몸을 귀혼갑이 휘감으며 보호했다.
하지만 한 가지 허점이 송삼현에게 보였다.
낙뢰가 사방에서 몰아치자 귀혼갑이 살짝 벌어진 거였다.
풍표전격에 휘말린 철패흉은 허공으로 도약하며 피했다.
그걸 노린 송삼현은 어기충소로 따라가며 검을 검집에 넣고서 눈을 감았다.
휘이이잉.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몸을 맡기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천무신공 최고의 경공술.
풍류운산(風流雲散)
바람에 몸을 맡기자 송삼현의 기척이 사라졌다. 철패흉은 송삼현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고 송삼현이 나타난 곳은 철패흉의 뒤였다.
송삼현은 검파를 쥐고 검에 강기를 둘렀다.
유운검법의 유함에 천무신검의 강함을 더한 초식.
‘벽력섬전(霹靂閃電)’
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지며 벼락처럼 내리치는 검격은 철패흉의 등으로 들어갔다.
‘귀혼갑은 신물이긴 하지만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보호를 한다. 그렇다면 기척을 느끼지 못하면 보호하는 것도 늦춰지겠지.’
혁련서권이 귀혼편을 부릴 때, 생각했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싸움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떠올리며 새로이 창안한 초식이 벽력섬전이었다.
콰가가각!
처음에는 막혔지만.
촤아악!
강대한 기운을 머금은 강기로 하여금 귀혼갑이 서서히 열렸고 검이 살갗을 얕게 베어나갔다.
뚫리지 않을 것만 같던 귀혼갑이 열리며 검이 들어가자 철패흉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럴 리가 없다. 귀혼갑이···.’
철패흉은 당황했으나 침착하게 권과 장으로 송삼현에게 맞섰다.
오래전부터 갈고 닦아온 자신만의 무학으로 송삼현의 허점을 노렸다.
변칙적인 공격이 주를 이뤘고 그사이 사이에 암기까지 사용하니 철패흉만의 격투술이 완성되어갔다.
휙.
왼쪽으로 들어오는 권격을 피하며 검을 뻗으려고 할 때, 뺨이 베이며 피가 나왔다.
분명히 닿지 않았는데 닿은 것처럼 상처가 남자 송삼현은 의아해했다.
그 이후로도 또다시.
피했다는 생각이 들면 무형의 무언가가 날아오며 옷깃을 베었다.
‘설마.’
촤아아악!
다시 피했으나 오른쪽 어깨가 베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게 무언인지 정체를 파악했다.
‘귀혼갑도 늘어나다니. 귀혼편과 닮았군.’
그건 귀혼갑이었다.
철패흉은 귀혼갑을 주먹에 두르며 마치 귀혼편처럼 자신의 공격 간격을 늘리는 목적으로 변화를 줬다.
이어지는 합에서 철패흉은 귀혼갑을 자유자재로 늘리며 사각을 노렸다.
한 치에서 두 치, 두 치에서 세 치.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간격 때문에 예상하는 게 어려웠다.
스르르르륵.
그렇다고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쿠구구구궁.
주변을 억누르는 내공.
철패흉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강대한 초식들을 썼으면서도 아직도 이렇게 강한 내력을 쓸 수 있다니···. 저놈은 대체 얼마만큼의 내공을 가진 것이냐!’
내공으로 억누르며 철패흉의 움직임을 빼앗고 진각을 하며 검을 출수했다.
벼락처럼 빠르게 몸을 노리고 들어가는 검에 귀혼갑이 목과 얼굴 절반을 보호하기 위해 감쌌다.
그러나 송삼현은 귀혼갑이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걸 예상하곤 손목을 비틀며 경로를 틀었다.
카가가각.
왼쪽 허리춤으로 들어간 검격에 귀혼갑이 빠르게 보호하며 막아냈지만, 거기서 다시 한번 내공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다시 벌어지는 틈.
그 안으로 검격이 들어가자 이번에는 예상보다 깊은 검흔이 새겨졌다.
촤아아아악!
왼쪽 허리춤이 베이자 철패흉은 놀라며 뒤로 물러났고 피가 흐르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 귀혼갑이 뚫렸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송삼현을 바라봤다.
‘저놈이.’
송삼현은 가만히 철패흉을 바라봤다. 마치 할 것이 있다면 더 해보라는 듯이.
까득.
그게 철패흉을 열받게 했다.
‘웃기지 마라, 신물인 귀혼갑을 뚫은 것은 그저 운일 공산이 크다! 신물을 뚫는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서서히 분노에 사로잡히며 이성을 잃어갔다.
촤라라라락.
귀혼갑이 스멀스멀 철패흉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철패흉의 시야도 귀혼갑으로 가려지며 흐려졌다. 귀혼갑이 얼굴까지 휘감으며 전신이 귀혼갑으로 뒤덮이자 철패흉의 마지막 이성의 끈이 풀어졌다.
‘난 천하에서 제일 강한 자란 말이다!’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는 괴물로 변했다.
탓!
바람보다도 빠른 몸놀림.
전보다 곱절, 아니 적어도 세 곱절 이상은 빨라졌다.
송삼현은 뒤로 돌아오는 철패흉을 인식하고 가까스로 검막을 둘러 막아냈다.
하지만.
까아아아앙!
귀혼갑의 단단함에 망가졌던 검이 결국에는 부러졌다.
그 사이, 귀혼편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의 철패흉의 권격이 복부에 들어왔다.
정통으로 맞은 송삼현은 그대로 날아가 바위에 처박혔다.
다행히 금룡신갑 덕분에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다시 공격이 들어올 거니 황급히 자세를 고쳐잡으며 대비했다.
‘어?’
하지만 철패흉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스르르르르륵.
철패흉의 몸을 휘감은 귀혼갑은 폭주하기 시작했고 주인을 삼키기 시작했다.
‘신물에 잡아먹혔군.’
신물은 얻기만 하면 세상을 호령할 힘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것에 가려진 커다란 단점이 있었다.
신물의 기운에 압도되어 통제력을 잃으면 그대로 신물에 집어삼켜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어버리는 다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악!”
지금 송삼현의 앞에는 더는 인간 철패흉이 아닌 귀혼갑의 탈을 쓴 괴물만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