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6
혈전(血戰) (10)
귀혼갑은 철패흉을 집어삼키곤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아직 그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그 모습은 이리 밖으로 물러난 이들에게도 명확하게 보였다.
“조부님, 저게 무엇입니까?”
남궁효우의 눈에 보인 것은 사람이 아닌 악귀였다.
철패흉에게 검은 악령 같은 것이 몸에 달라붙은 것처럼 요동쳤고 몸 밖으로 악기(惡氣)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남궁상룡이 대답했다.
“흑사회주의 몸을 휘감은 건 귀혼갑이다.”
“귀혼갑이라면···. 황궁이 관리하는 신물이 아닙니까.”
“그래, 그리고 저 신물이 마침내 제 주인을 집어삼켰구나.”
“그렇다면 저기 저건 사람이긴 합니까?”
더는 사람으로 보기 힘들었다.
“아니, 신물에 잡아먹혔다면 죽기 전에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이제는 사람이 아닌 괴물에 가깝지.”
말을 나누면서도 남궁상룡의 시선은 송삼현과 철패흉을 향해 있었다. 아직까진 그렇다 할 움직임은 딱히 없었다.
“….. 대협이 괜찮으실까요?”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이었고 사월향도 부상자를 치료해준 뒤에 그곳을 바라봤다.
천하봉선은 그 곁에 서서 사월향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쌌다.
“우리가 아는 대협이라면 괜찮을 거다. 그리고 대협이 저자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스윽.
“우리는 부상자가 아닌 시신을 거둬야 했을 거다.”
철패흉의 무학은 각종 암기술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만약 철패흉이 전장에서 마음껏 날뛰었다면 정파의 피해는 이것의 곱절은 됐을 공산이 컸다.
그렇게 될 뻔한 걸 송삼현이 막아준 거였다.
“어!”
“저기 봐!”
귀혼갑의 기운이 형체화가 되며 주위로 퍼졌고 곧이어.
쿠구구구구궁.
땅이 울렸다.
중심도 제대로 못 잡을 만큼 요동치는 땅.
검은 연기를 내뿜는 철패흉과 푸른 기운을 내뿜는 송삼현.
두 사람은 다시금 중앙에서 충돌했다.
*
콰직.
‘온다.’
철패흉을 잡아먹은 귀혼갑은 물결처럼 마구 일렁이더니 곧 잠잠해졌다.
끼릭. 끼릭.
목을 돌릴 때마다 기괴한 소리가 들렸고 먹잇감을 찾던 눈은 곧 송삼현을 발견했다.
그리곤 진각을 하며 달려들었다.
바람처럼 사라진 신형, 그것을 끝까지 보던 송삼현은 목에 검이 들어오기 전, 뒤로 물러나며 가까스로 피했다.
‘…. 놓칠 뻔했다.’
그 속도는 번개 같았다.
웬만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척으로 가늠이 갔지만, 철패흉의 움직임은 기척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또 온다.’
콰가가가가각!
오른쪽 안면으로 들어오는 권격을 왼팔을 들어서 막아냈다.
왼팔에는 귀혼편이 감기며 권격을 받아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걸 이용해 천무각으로 복부를 가격하려고 했지만, 철패흉은 몸을 활처럼 꺾으며 피해냈다.
탓.
거리를 벌리며 자세를 잡더니 송삼현을 노려봤다. 그러더니 다시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우선 저 귀찮은 움직임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쿠구구구구궁.
쩌억.
바닥이 갈라질 만큼 높은 농도의 내공을 내뿜었다.
내공이 만든 기막에 눌리며 송삼현의 뒤를 노리려던 철패흉의 다리는 잠시 멎었고 허리는 굽혀졌다.
바들바들.
철패흉이 억지로 움직이려고 하자 다리가 떨렸다.
탓.
그 틈을 파고들었다.
내공으로 억눌러 움직임을 느리게 한 뒤에 품으로 파고들어 장법을 날렸다.
‘천멸장.’
손바닥에서 내공이 폭발하며 복부를 휘감던 귀혼갑이 풀렸다. 풀린 틈새로 다시 한번 장법을 날리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귀혼갑이 본능적으로 검을 만들어 왼쪽에서 날아왔다.
휙.
왼쪽 어깻죽지로 날아오는 검격을 피한 뒤.
퍼억!
검을 휘두른 오른손을 잡고 그 반동을 이용해 얼굴 왼쪽 부위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얼굴을 감쌌던 귀혼갑의 일부분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또다시 귀혼갑은 금세 빈 곳을 막았고 아무것도 없던 허리춤에서 검이 뻗어나오며 송삼현의 오른쪽 허리춤을 살짝 베고 지나갔다.
‘저기서도 나온다고?’
귀혼갑에 휘감긴 철패흉은 그냥 몸 전체가 무기였다.
“신물에 의지하고 천하제일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말을 해도 들릴 리가 없었다.
지금 철패흉은 귀혼갑에 사로잡히며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니까.
그렇다면 송삼현이 할 것은 귀혼갑을 뚫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조금 더 빠르게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풍류운산.
기척을 감추는 보법으로 사각으로 들어간 뒤에 미처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쩌억!
쩌억!
쩌억!
삼 연타를 먹였다.
왼쪽 복부, 오른쪽 얼굴, 오른쪽 허리.
귀혼갑은 충격에 일순간 보호가 풀렸다.
귀혼갑이 폭주했음에도 송삼현은 밀리지 않았고 검이 부러졌음에도 그의 뜻은 꺾이지 않았다.
촤르르르르륵.
위기를 느꼈는지 거미처럼 사방으로 뿜어지는 귀혼갑의 기운.
그것들은 채찍처럼 바뀌며 마구잡이로 송삼현이 있는 곳을 내리쳤다.
쿠우우우웅!
바닥이 파이고.
촤아아아악.
바위가 깔끔히 베여가며 서서히 간격을 좁혀왔다.
그때, 송삼현은 귀혼갑의 움직임을 보면서 한 가지 방책을 떠올렸다.
‘귀혼갑이 저렇게 다양하게 변한다면···. 귀혼편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귀혼갑.
그렇다면 귀혼편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검이 부러진 지금.
만일 귀혼편이 검을 대신 할 수 있다면?
스르르르르륵.
귀혼편이 오른손을 휘감게 했고 그렇게 더 올라가 손바닥까지 올라왔다. 그리곤 검의 형상을 떠올리자 귀혼편이 손바닥 위에서 검처럼 변했다.
‘이거라면.’
손에 착 달라붙는 감촉.
우우우우웅.
내공을 흘리자 공명음을 냈다.
마치 자신을 마음껏 부리라는 듯이.
카가가가가각!
귀혼갑과 귀혼편의 충돌.
기괴한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고 경지가 약한 사람들은 고막이 터지며 귀에서 피가 나왔다.
카앙!
카앙!
카앙!
귀혼편으로 만든 검으로 초식을 썼다.
‘해무천뢰’
귀혼갑의 오른쪽 어깨 부분에 들어간 검격에 틈이 벌어지자 송삼현은 그 안으로 거침없이 귀혼편을 찔러넣었다.
‘간격이 조금 짧다.’
검강까지 둘렀음에도 간격이 짧다는 생각이 들 때.
촤르르르르륵.
귀혼편은 마음을 읽은 것처럼 스스로 늘어났다.
늘어나면서 간격이 좁혀졌고 벌어진 틈 사이로 귀혼편이 들어가며 철패흉의 오른팔을 베어버렸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
분명히 철패흉의 오른쪽 팔이 떨어졌다.
허나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귀혼갑이 스멀스멀 떨어진 오른팔과 몸을 감싸더니.
“…. 다시 붙는다고?”
상처가 회복되고 있었다.
*
귀혼갑이 오른팔을 몸이랑 다시 붙이자 송삼현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탓.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상처를 완벽하게 수복하기 전에 더 몰아세워야 했기에 송삼현은 신형을 날리며 철패흉에게 다가갔다.
휘리리리릭.
귀혼편으로 만든 검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했고 그 회전력으로 귀혼갑을 꿰뚫었다.
푸우우욱.
‘천행격.’
복부를 관통하고 등 뒤로 검 끝이 나왔다.
완벽하게 꿰뚫렸으나 귀혼갑은 여전히 풀릴 기미가 없었다. 몸을 꿰뚫은 뒤에 검을 아직 뽑지 않은 송삼현까지 집어삼킬 기세로 요동쳤다.
스르르르륵.
검을 빼고 거리를 벌리자 귀혼갑은 다시 상처를 회복하려고 꿈틀거렸다.
일반적인 검으로는 귀혼갑을 쉽게 뚫어내지 못했지만, 귀혼편으로 된 검은 아니었다.
신물 대 신물.
그래서 송삼현은 귀혼편에 내공을 덧대었다.
그러자 검게 그을렸던 귀혼편은 송삼현의 푸른 내공에 영향을 받아 검은 껍질이 스르륵 벗겨지며 푸른색으로 변했다.
‘이건.’
지금까지 귀혼편에 따로 내공을 흘린 적은 없었다.
내공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며 지켜줬으니까.
하지만 송삼현도 한 가지 모르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신물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그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스윽.
새로이 변한 검을 잡고 자세를 취하며 철패흉을 봤다. 정확하게는 철패흉을 휘감은 귀혼갑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지요.”
주변으로 내공을 흘렸다.
그 내공은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검을 휘감았고.
두두두두둥.
허공에 뜬 건 한 개의 검만이 아니었다.
열 개의 검에서 스무 개의 검.
스무 개의 검에서 총 서른 개의 검이 송삼현 주위에 떴다.
‘유혼검(有魂劍).’
혼이 깃든 검법.
유혼검은 진전을 잇는 자가 없어 백 년 전, 소실 됐다고 알려진 무학이었다.
하지만 그건 소문이었다.
저번 삶에서 송삼현은 유혼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검의 무덤이라는 곳에서.
그곳에서 얻은 유혼검의 진전.
저번 삶에서는 천마 독고룡과 싸우면서 죽기 전에 잠깐 깨달음을 얻었던 무학이었으나 회귀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선 현경에 올라 이기어검의 경지에 올랐을 때, 본격적으로 유혼검을 수련했고 마침내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됐다.
허공에 뜬 검들은 스스로 의지가 깃든 것처럼 허공을 유유히 돌아다녔고 송삼현의 손끝이 가는 대로 쏘아졌다.
콰가가가가각!
철패흉은 황급히 도약하며 허공으로 피했다.
땅으로 꽂히려다가 이내 방향을 바꾸며 허공으로 향하는 서른 개의 검들.
스윽.
철패흉이 손을 뻗자 귀혼갑이 검을 막으려고 방패처럼 변했다.
촤라라라라락.
그 방패에 몇 개의 검이 부딪치며 떨어졌고 다른 검들은 한곳으로 모였다.
‘일섬(一閃).’
콰가가가가가각.
귀혼갑과 여러 개의 검이 일순간 충돌했다.
그러면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주변 일대가 억눌렸다.
크윽.
송삼현은 약간의 내상도 입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내공을 더 쏟아부었고 푸른 용의 형상이 된 내공이 검을 물고 날아갔다.
쩌억.
검들이 부서지며 만든 귀혼갑의 구멍.
서른 개의 검은 귀혼갑과 부딪치며 산산조각이 났고 그 검의 파편들이 별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그 파편의 사이를 지나간 송삼현은 마침내.
푸우우욱.
철패흉의 심장을 꿰뚫었다.
철패흉의 심장을 꿰뚫은 뒤에 송삼현은 씩 웃으며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혼편이 검의 형상을 풀고선 날아오며 송삼현이 안전하게 떨어지게 보호했다.
‘이걸로 됐다.’
심장을 꿰뚫은 이상, 아무리 신물이라고 해도 수복하는 건 불가능했다.
일반 자상이 아닌 생명을 잃어가는 치명상이었으니까.
심장의 고동이 점차 멎어가자 귀혼갑도 서서히 풀리며 철패흉의 흐릿해진 시야가 선명해졌다.
귀혼갑에 삼켜졌던 의식이 돌아온 거였다.
쿨럭.
철패흉은 피를 토하며 가슴께에 생긴 검상과 푸른 하늘을 보며 웃었다.
“내가 진 건가···.”
그저 남들보다 강해지기 위해 고아였던 어린 시절부터 죽을 만큼 노력해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자신을 고통 속에 방치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다시 그 시궁창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사파에서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고자 했지만,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스윽.
단 한 사람으로 인해서.
“너는···.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우리의 일을 방해하고···. 홀로 이리 많은 걸 감내하면서까지···. 뭘 얻으려는 것이냐.”
“얻고자 했던 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얻고자 하는 게 없다? 그리 강한 무학을 지녔으면서도?”
“그저 지키려는 겁니다.”
“지킨다고···. 그래 아까 무학을 익히는 이유가 빼앗는 것이 아닌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지···.”
철패흉은 하늘을 보며 웃었다.
‘결국에는 승패를 가린 것은 마음가짐의 차이였는가.’
선의와 악의.
그 모호한 경계에서 악의는 선의에 밀렸다.
스르르륵.
두 눈이 감겼다.
“….. 내가 졌다.”
그 말을 끝으로 숨이 끊어지자 철패흉의 몸을 휘감던 귀혼갑은 송삼현에게 와서 휘감겼다.
이미 있던 금룡신갑이 귀혼갑의 기운에 저항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스르르르륵.
‘흡수된다.’
금룡신갑과 귀혼갑이 공명음을 내며 서로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