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7
오랜만에 뵙습니다 (1)
기나긴 싸움의 종지부가 찍히자 정파 고수 한 명의 입이 자연스레 열렸다.
“… 이겼다.”
그 말을 시작으로 무림맹 진영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백의검룡 송삼현 대협이 흑사회주 철패흉을 죽였다!”
기뻐하는 것도 잠시.
그들은 무언가를 보곤 깜짝 놀랐다.
“백의검룡 대협이 이상합니다!”
철패흉의 숨이 끊어지자 귀혼갑이 송삼현에게 옮겨가서 온몸을 휘감았다.
“저러다가 백의검룡 대협도 흑사회주처럼 귀혼갑에 삼켜저 폭주하는 거 아닙니까!”
혹시라도 폭주할까 봐 모두 놀라서 구덩이 안으로 들어올 때, 귀혼갑의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며 송삼현이 태연한 표정으로 멀쩡하게 나타났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송삼현의 말에 남궁상룡이 대답했다.
“아니다. 귀혼갑은···?”
“아.”
송삼현이 웃옷을 들자 거기엔 금룡신갑이 있었고 가운데 새겨진 금색 용 문양은 귀혼갑의 기운을 머금은 검은 용으로 변해 있었다.
“이거인 거 같습니다.”
“허···. 참, 귀혼편에 이어 귀혼갑이라, 거기다 그런 무학까지 지녔다면 나라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구나.”
귀혼갑과 귀혼편.
천하를 호령하는 신물 두 가지가 송삼현에게 있다는 걸 알면 황궁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나라가 만들어질 때, 홍무제가 지녔던 신물이라 이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거니까.
“…. 그나저나 흑사회주가 죽었구나.”
“예.”
싸늘하게 식어가는 철패흉의 시신.
송삼현은 고개를 돌려 이곳을 보는 흑사회 무리를 바라봤다.
“저들도 이제 더 싸우지 못할 겁니다.”
남궁상룡은 송삼현의 몸을 살폈다.
싸우면서 생긴 상처에 피가 흘렀고 고된 싸움에 옷가지도 많이 상해 있었다.
“고생했다.”
“제가 할 일인 걸요.”
흑사회와 결전으로 사망자도 있었지만,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적었다.
작고 크게 다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천하봉선이 깔끔하게 치료해줬다.
이제 흑사회를 이끄는 회주 철패흉이 죽었으니 더는 싸울 필요가 없어졌고 남궁상룡이 곽수룡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더니 흑사회 무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본 것처럼 흑사회주 철패흉은 백의검룡 송삼현의 검에 죽었다! 더 싸워봤자 승산은 없으니! 이대로 투항하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마!”
웅성웅성.
사천 명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흑사회 무리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남궁상룡이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계속해서 싸우겠다면!”
무슨 말을 할지 눈치를 챈 송삼현이 한 걸음 나오자 남궁상룡은 씩 웃더니 이어서 말했다.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한충건이 구덩이 안으로 내려왔다.
그 주위를 호위하는 이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다가온 한충건은 무릎을 꿇었다.
“….. 가족들만은 살려주십시오.”
한충건, 천뇌가 죽고나서 흑사회를 이끌어 각종 나쁜 짓을 일삼은 자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자 그의 앞으로 다가간 송삼현은 귀혼편으로 된 검을 목에 겨누었다.
그러자 한충건은 혼비백산했다.
“하, 항복하는 자를 죽이는 건 명예롭지 못한 일이지 않소.”
“그대는 수많은 자를 사지로 몰아넣고 하는 말이 살려달라 그것밖에 없소?”
“…..”
“천뇌가 살아계실 때가 더 나았군. 흑사회가 패배한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이고.”
“네놈이 죽이지 않았느냐!”
“그렇게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뻔뻔하게 살려달라니···. 다른 사람들의 생사권은 맹에 넘어갔지만, 그대의 생사권은 내가 가져가야겠소.”
그 말을 하고 남궁상룡을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한충건의 생사 결정권을 준다는 뜻이었다.
촤아아아악!
송삼현은 동의를 받자 가차 없이 한충건의 목을 베었다.
살려두기에는 워낙 뱀 같은 자라 화근의 싹을 미리 잘라내는 거였다.
그렇게 한충건의 목이 떨어지자 흑사회는 더 웅성거렸고 송삼현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크게 외쳤다.
“이제 그대들에겐 승산이 없소! 그러니 얌전히 맹의 뜻에 따른다면 목숨을 살려줄 것을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오!”
흑사회 무사들은 스스로 무기를 내렸다.
아직 숫자는 무림맹보다 더 많았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송삼현을 이길 순 없기에 항복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흑도 고수들은 맹의 포위망을 뚫으며 도주를 선택했고 결국 남은 것은 맹의 포위망을 뚫지 못한 자들 뿐이었다.
“주군, 죄송합니다.”
맹의 무사들이 흑사회 잔당들을 포박하는 것을 보고 있을 때, 마훈이 곁으로 다가왔다.
“창마장을 잡지 못했습니다. 호각이긴 했지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습니다.”
“괜찮다. 나중에 갚아주면 되니.”
“예.”
창마장 무군은 어느새 사라졌다.
‘천월신교로 돌아갔나 보군.’
동쪽 전선.
무림맹 대 흑사회.
승자 무림맹.
*
무림맹과 흑사회의 결전은 무림맹의 승리로 끝나고 송삼현은 그 틈에 흑사회 본산으로 갔다.
“저곳입니까.”
난하 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본산.
마치 거대한 성처럼 되어 있는 곳이었고 그곳을 지키던 무사들은 흑사회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선 길을 열었다.
장원으로 들어가자 송삼현은 같이 온 개방주 취하걸에게 말했다.
“비고로 먼저 가 계십시오. 전 잠시 다른 곳을 살피고 가겠습니다.”
“알겠다. 조심하거라.”
“예.”
같이 온 일행을 보낸 뒤에.
[무무야.]
무무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말했던 물건을 찾았다고 들었다. 어디냐.]
무무는 신형을 날려 안내를 해줬고 뒤를 따라 이동했다.
본산에서도 숨겨진 공간.
흑사회주 집무실로 들어갔다. 따라온 사람은 마훈과 선무정이었다.
무무가 가리킨 서고로 다가가서 내공을 흘려 상세히 살폈다.
일반적인 서고였으나 뒤에서 미세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그건 즉, 이 뒤에 공간이 있다는 뜻이었다.
“뒤로 물러나거라.”
“예.”
다들 뒤로 물러났고 송삼현은 서고 한가운데에 손을 가져가 내공을 폭발시켰다.
콰아아아아앙!
서고가 부서지며 나무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통로.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자 비밀 방이 있었다.
‘가로로 일장, 세로로 이 장이라. 석벽으로 되어 있어서 무너질 염려는 없군.’
그곳엔 검은 철로 된 함이 있었다.
딱 봐도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고 송삼현의 천무장에도 흠집이 가지 않았다.
“그냥 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운철 아닙니까?”
“운철이라.”
“운철은 이렇게 신묘한 기운을 풍기는군요.”
운철(隕鐵)은 별의 기운을 담은 신묘한 철이었다. 부르는 게 값이었고 운철로 만든 무기는 천하에서 제일 단단하다고 알려졌다.
허나 그것을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장인이 드물어 좀처럼 무기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함이나 장식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 철이었다.
“여기 열쇠 구멍이 있습니다.”
함을 이리저리 살피던 선무정이 가리킨 곳에는 열쇠가 들어갈 작은 구멍이 있었다.
‘열쇠라···. 아!’
귀혼편이 여러 모습으로 변화를 한다면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스르르르륵.
그렇게 몇 차례 열쇠 구멍에 맞게 변화를 주자 손가락 끝에서 작은 열쇠가 만들어졌다.
철컥.
함이 열리자 선무정이 깜짝 놀랐다.
“와···. 신물은 그런 것도 됩니까?”
“나도 이번에 처음 해봤다.”
열린 함 안에는 서책 하나가 있었다.
“…..”
제목이 적혀 있지 않았고 그것을 펼쳐서 읽어보니 원하던 정보들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거라면.’
흑사회와 묵왕이 거래한 정보가 담긴 서책이 확실했다.
흑사회주의 직인과 묵왕의 직인까지 있으니 이게 공개된다면 진왕과 묵왕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렇게 원하던 것을 챙기고 운철로 된 함까지 챙겨 집무실을 나오자.
“주군, 주변 기척이 늘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없었던 기척이 느껴졌다.
“기척을 숨기는 걸 보니 제대로 키워진 전문적인 살수로구나.”
“어쩌시겠습니까?”
“…. 흑사회의 잔당인가?”
“그럴 공산이 큽니다.”
데구르르르.
그때 창문 사이에서 연기를 뿜는 탄이 들어왔다. 그 탄에서 나오는 연기가 집무실을 가득 채웠고 다섯 명의 신형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일격으로 송삼현을 잡으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무무가 움직였다.
스르르르르륵.
붕대가 풀리며 다섯 명의 신형을 연기 속에서 정확하게 잡고 묶어버렸다.
“마훈.”
“예.”
휘이이이익.
마훈이 검풍으로 방 안을 가득 채운 연기를 창밖으로 뺐고 그제야 무무의 붕대에 잡힌 다섯 명의 자객들이 보였다.
흑복에 복면을 하고 눈만 드러낸 그들은 송삼현을 노려봤다.
송삼현은 손을 뻗어 그들의 목 뒤를 확인했다. 흑사회의 자객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목 뒤에 몰래 숨겨놓는 게 규칙이었으니까.
하지만 목 뒤에도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흑사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자객들이라는 의미였다.
“흑사회가 아니구나.”
까득.
그때, 자객들은 입에 머금은 독단을 깨물며 자결을 선택했다.
“자결?”
“입 안에 독단이 있었습니다.”
“흐음, 흑사회 잔당일 공산은 적다. 그렇다면···. 이걸 노리는 자들이라는 소리인데.”
송삼현은 손에 있는 서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사람이 떠올랐다.
‘묵왕.’
하지만 아직 그렇다 할 증좌가 없으니 그들의 시신을 두고 나갔다.
장원에선 여러 비급과 영약을 회수한 취하걸과 개방원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함께 본산을 빠져나갔다.
난하강 유역으로 돌아가니 떠날 때보다 사람들이 북적였다.
“대협! 오셨습니까!”
송삼현을 본 정파 무사 한 명이 황급히 달려왔다.
“누가 오셨습니까?”
“서쪽 전선에 있던 맹주님이 이끄는 부대가 지금 막 도착하셨습니다!”
*
“왔는가?”
구창룡은 장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송삼현을 보자 반갑게 맞이해줬다.
척.
“맹주님을 뵙습니다.”
“예는 됐네. 자네의 활약을 전해 들었어. 아주 잘해줬군.”
“아닙니다. 다른 분들이 도와주셔서 저도 편히 싸울 수 있었습니다.”
장문인들은 흐뭇하게 웃었고 구창룡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긴 이야기는 전사자들의 시신을 보낸 뒤에 하도록 하자.”
“예, 맹주님.”
밖에는 구창룡이 가지고 온 시신들이 있었고 송삼현은 그곳에서 유천의 시신을 보고 숨이 멎었다.
“사형.”
유천의 시신을 곁을 지키는 천유현이 일어나서 송삼현을 맞이했다.
“…. 무슨 일이냐. 사부님이 왜 이곳에 이리 누워계시냔 말이다.”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구창룡은 눈물을 흘렸고 제갈귀호는 고개를 숙였다.
송삼현은 유천의 시신에 다가가 손을 만졌다.
‘차갑다···. 이토록 차갑다니.’
저번 삶에서 만졌던 죽은 이들의 시신과 똑같은 촉감이었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 삶에서는 비록 반년의 시간밖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저번 삶에서는 무려 십 년을 동고동락하며 많은 추억이 있었다.
처음 혼이 났을 때.
처음 칭찬을 받았을 때.
처음 강호행을 했을 때.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째서···. 어째서···. 사부님이 죽는 것은 저번 삶과 달라지지 않은 것이냐. 어째써···.’
저번 삶과 달라지려고 노력했다.
저번 삶과 다른 결과를 만들려고 계속해서 새로이 길을 만들었지만, 유천이 독고룡에게 죽는 미래는 바꾸지 못했다.
송삼현이 속으로 자책을 할 때, 곁에서 가만히 보던 천유현이 입을 열었다.
“사형.”
“… 왜 그러느냐.”
“사부님이 전쟁터로 오기 전에 저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사형께 전해달라고요.”
이것은 구창룡도 들은 적이 없기에 옆에서 가만히 경청했다.
“뭐라고 했더냐.”
“만약 자기가 죽는다면 사형께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 사부님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주먹에 힘이 들어갔고 천유현이 유천이 남긴 말을 했다.
“사부님의 검은 하지 못했지만, 사형의 검은 천하를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죽는다고 걸음을 멈추지 말고 그것을 발판으로 더 높이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두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말은 저번 삶에서도 들었던 말이었다.
저번 삶에서도 유천과 다른 곳에서 싸워야 했고 유천은 길을 나서기 전에 말을 하나 남겼다.
‘만일 내가 죽는다고 해도 걸음을 멈추지 말거라, 너의 검은 능히 천하를 지킬 수 있는 검이니.’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다.
그러자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뚝.
바닥에 떨어졌고 흐려지는 앞을 봤다.
기억 속에 웃던 유천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화르르르륵.
불에 타는 희생자들의 시신.
그 시신을 보며 모두가 눈물을 삼켰다. 유천의 시신도 그렇게 불에 타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유현아.”
“예, 사형.”
“그 검은 네가 소중히 여기거라. 사부님께서 물려주신 검이니.”
“…. 제 목숨보다 귀히 여길 겁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사부님의 비석을 세워 검을 그 옆에 두자꾸나.”
유천의 시신이 재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고 곧 그 재는 하늘의 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