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29
오랜만에 뵙습니다 (3)
장부에 적힌 내용을 보던 두 사람의 눈은 내용을 읽어감에 따라 점점 커졌고 제갈귀호의 손은 분노 때문에 바들바들 떨렸다.
“… 참으로 간악한 자들이로구나, 어찌 이런 일들을···. 이들에게 인심(人心)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것이냐?”
장부에 적힌 흑사회와 묵왕의 연결고리.
무고한 양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스스럼없이 이용한 내용.
묵왕의 후광을 등에 업은 흑사회의 악행들이 여실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 찍힌 묵왕의 직인은 여기 적힌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걸 의미했다.
“이건 꽤 충격적이구나. 의창의 역병도 이들이 관여되어있었다니.”
“예, 거기에 적힌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묵왕은 더 이상 강호에 그 직위를 유지하지 못할 겁니다.”
“허나 이것을 지금 공개한다고 해도 묵왕이 부인하면 그만이다. 지금의 묵왕에겐 그렇게 할 힘이 있으니까.”
“이건 진왕 전하께 드릴 생각입니다.”
이 장부의 쓰임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아닌 진왕 뿐이었다.
“진왕께 드린다라···. 그것이 좋겠구나. 그러면···.”
“제가 가서 전하의 안위를 확인하고 장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네가 말이냐?”
“예, 어찌 보면 금호장이 관여한 집안일이 아닙니까. 제가 가는 게 맞지요.”
“진왕께서 어디에 계신 줄 알고?”
“무조가 매 시각 어디로 향하는지 경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움직였구나.”
“지금 누구를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고민을 하던 구창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현재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대한 빠르게 다녀와야 한다.”
“예. 채비를 한 뒤, 반 시진 안에 바로 떠나겠습니다.”
“알겠다. 부디 몸조심하거라.”
“보름 후, 서안에서 뵙겠습니다.”
포권지례를 한 뒤에 천막에서 나갔다.
*
천막에서 나와 마훈과 선무정에게 반 시진 안에 떠난다고 기별을 한 뒤에 송삼현도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흑영마의 안장 아래에 마른 콩을 넣어두면서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자 곁으로 여러 사람이 다가왔다.
“대협, 오랜만이에요.”
“아미오승 장옥태가 백의검룡 대협을 뵙습니다.”
아미오승과 당수향이었다.
다른 아미오승들도 장옥태와 마찬가지로 포권지례 예를 갖췄고 송삼현도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
“서쪽 전선에 있다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저희는 부상병들을 호위하는 후발대였거든요.”
“아, 그렇군요.”
장옥태와 대화를 나누던 중, 당수향은 송삼현과 철패흉이 싸우면서 생긴 흔적들을 보며 말했다.
“흑사회주 철패흉을 죽이다니···. 역시 대협이세요.”
“운이 좋았소.”
“대협은 항상 운이라고만 하시네요. 보는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할 겁니다.”
“….”
“모두가 대협을 존경하고 있지요.”
당수향의 말처럼 여기 있는 모두가 송삼현을 동경의 눈빛으로 봤다.
“솔직히 조금은 부담스럽소.”
저번 삶에서는 주목받는 삶을 살지 못했다.
숨겨진 부대에서 온전히 숨겨진 사람으로 사는 삶에 익숙해졌더니 새로운 삶에서는 항상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시선이 위에 선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이지요. 대협도 위에 선 사람이 되셨으니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위에선 사람.
이제 송삼현은 중원에서 우뚝 선 태산 같은 존재가 됐다.
“대협!”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사월향이 다가왔다.
“네?”
“조모님이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 저분은?”
“아, 사 소저라고 천하봉선님의 손녀요.”
사월향과 천하봉선이 있는 곳으로 가자 구창룡도 함께 있었다.
“왔느냐.”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천하봉선께서 너에게 하실 말이 있다고 해서 불렀다.”
“하실 말씀이요? 어떤 거지요?”
천하봉선이 사월향을 보며 말했다.
“곧 광동 지역으로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아이도 대협과 동행하도록 해주시겠습니까?”
“사 소저요? 사 소저는 이곳에서 부대와 같이 행동하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월향이는 광동으로 가는 길눈은 누구보다 밝은 아이이니, 더욱 이른 시일에 목적지까지 도달할 겁니다.”
사월향이 사는 곳은 광동성이었다. 어릴 적부터 천하봉선을 따라 이곳저곳 떠돌아다녔으니 길눈이 밝을 수밖에 없었다.
“사 소저는 괜찮습니까?”
“저야 도움이 된다면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눈을 빛내는 사월향을 보니 거절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동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반 시진이 지나고 떠나는 시각.
마훈과 선무정은 건조식량을 챙겨서 말에 올랐고 송삼현은 말에 오르기 전에 장문인들과 세가주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창룡과 인사를 하며 흑영마에 올랐다.
“보름이다. 보름 뒤에 섬서성 서안에서 보자꾸나.”
“예.”
그렇게 인사를 끝낸 뒤, 네 사람은 말을 달리며 광동성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
다그닥. 다그닥.
말들이 풀숲을 헤집으며 빠르게 내달렸다.
“대협.”
달리는 말 위에서 사월향은 송삼현에게 물었다.
“진왕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아시나요?”
“광주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광주라면···.”
눈을 감은 사월향의 머릿속에선 그 근방의 지리가 상세히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며 말했다.
“그렇다면 양양으로 가는 것이 빠르겠군요.”
“양양이요? 저는 구강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구강이 직선거리긴 하지만 그쪽은 지령산맥이 있습니다. 산맥을 지나려고 하면 시일이 지체될 겁니다.”
“….”
“양양으로 가면 산맥이 없는 길이 있습니다. 산을 피하고 강을 건너지 않고도 광동으로 통하는 가장 빠른 길이지요.”
사월향의 말을 들은 마훈과 선무정은 적잖이 놀랐다.
아무리 지리에 밝은 사람이라고 해도 지도 없이 길을 명확히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사월향은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길을 설명했고 송삼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데려온 게 잘한 일이군.’
다그닥.
“사 소저의 말대로 가겠습니다.”
“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길눈만 밝은 게 아니었다. 사월향의 기마 실력은 웬만한 군인들보다도 나았다.
네 사람은 계속해서 말을 내달렸고 그렇게 시일이 흘러갔다.
*
엿새 후.
진왕이 가는 곳은 광동성 광주였다.
거기엔 진왕의 대장군 하선후를 비롯해 아군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그곳만 가면 묵왕에 대항할 세력이 갖춰지게 되니 금호장의 주력 부대인 금검대(金劍隊)는 진왕을 호위하며 광주로 향했다.
“전하, 오전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셔서 혹여라도 몸이 상하실까 걱정스럽습니다.”
마차 옆에는 송우태가 말을 탄 채로 나란히 걸으며 진왕과 대화를 나눴다.
“입맛이 없네.”
“억지로라도 드셔야 합니다. 그러다가 몸이 상하십니다.”
“장주.”
“예, 전하.”
“그대는 내 상황이 되면 어찌하겠는가?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면 말일세.”
“….”
“그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구려, 결국에는 그릇된 윗사람들 때문에 애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다니, 이것만큼 끔찍한 일이 세상 또 어디 있겠나.”
“…. 광주까지 사흘 남았습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그러한 생각은 접어두시고 편히 쉬십시오. 저희가 곁을 지키겠습니다.”
“고맙네.”
두 시진 후, 산을 지나 평야로 들어섰다.
삐이이이이익.
“호각 소리입니다! 일리 안! 자객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태세를 갖춰라! 마차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라!”
송우태는 금빛 휘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지휘를 시작했다.
촤라라라라락.
금검대를 비롯해 호위부대는 일제히 송우태의 지시에 맞춰 움직였고 순식간에 마차 주위로 방호진을 만들었다.
그렇게 자객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암기에 경지가 낮은 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무인들은 검으로 쳐내며 암기를 막아냈다.
채애애앵!
“부상자들은 진 안으로! 틈을 내보이지 마라!”
하늘에서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걸 본 송우태는 오른손에 든 검을 치켜 들며 외쳤다.
“방패진!”
주르르르륵.
일제히 방패로 산이 쌓아지고 비처럼 내리는 화살은 방패에 맞고 땅으로 떨어졌다.
허나 틈이 보이자 자객들은 거침없이 신형을 날려 진의 한 가운데로 날아들었다.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방벽.
금검대가 필사적으로 방벽을 유지했고 송우태가 일선에서 검을 휘두르며 자객들의 목을 베었다.
촤아아아아악.
“수가 많습니다.”
호법당주 이윤이 송우태의 등을 지키며 말하자 곁에 있던 외총관 송광도 적들을 살피며 말했다.
“초절정 고수가 다섯, 그리고 절정 고수가 서른에 일류 무사가 오십···. 하나같이 암기술을 익힌 자들입니다.”
적들 가운데서도 광오한 기운을 풍기는 이들이 있었다.
특히 백발을 휘날리며 서서히 다가오는 사람의 살기는 온몸의 털을 쭈뼛 서게 할 만큼 농도가 짙었다.
“저자는···.”
“천독노군(千毒老君) 구철귀입니다.”
천 가지의 독을 다루며 이십 년 전에 마을 세 곳을 독살로 몰살을 해 무림 공적에 오른 인물이었다.
추격하는 정파 고수 수십을 죽인 뒤, 십 년 전에 돌연 자취를 감추며 강호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려진 자가 나타나자 송우태는 적잖이 당황했다.
“천 가지 독을 다루는 마귀가 어째서.”
스윽.
송우태는 천독노군에게 검을 겨눴다.
“그대가 어째서 강호에 다시 나온 겁니까?”
“내가 다시 강호로 나오기에는 이러한 거물의 목을 취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거든.”
“팔십이 넘으셨으면 그만 산에서 생을 마감하시지 왜 산을 기어 나오셨습니까.”
“강호에 다시 나오려면 마교 덕분에 맹이 약해진 지금이 적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휘이이익!
천독노군은 품에서 독침을 날렸고.
챙!
송우태는 그걸 검으로 쳐냈다.
“새파랗게 어렸던 놈이 제법 큰 장원을 운영하게 되더니, 강호의 선배를 보는 목이 너무 뻣뻣하구나.”
콰아아아아앙!
한쪽에서는 광오한 기운이 터지며 금호장의 무인들이 죽어갔다.
“뭘 그리 길게 얘기하십니까? 다 죽여버리고 진왕만 살려서 데리고 가면 되는걸.”
“자네는 벌써 재미있게 놀다 왔군, 온몸이 피범벅이야.”
“오랜만의 강호행이라 그런지 피 맛이 달콤하네요.”
먼지바람을 뚫고 나온 이는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옷을 입은.
“… 열화마군(熱火魔君).”
열화마군 사패우였다.
강호에서 큰 죄를 짓고 은거한 이들이 나타나자 송우태는 헛웃음을 지었다.
천독노군과 열화마군, 그리고 이들 뒤에는 과거에 숱하게 이름을 날렸던 악귀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천독노군은 화경의 초입, 열화마군은 초절정의 끝자락···. 이대로 전면전을 펼쳤다간 전멸당한다.’
은신과 암살에 능한 무조의 도움이 있다곤 하지만 전력 차이가 명확했다.
지금 여기서 경지가 제일 높은 송우태의 경지는 초절정의 끝자락이었으니 열화마군은 상대할 수 있었지만, 화경에 오른 천독노군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챙!
이어지는 전투에 금호장과 진왕의 호위대는 필사적으로 마차를 지켜갔고 송우태는 착실하게 앞으로 오는 적들을 막아냈다.
“각자의 등을 지켜라! 틈을 내주지 말고 계속해서 소통하며 적들의 공격에 대응하라!”
천독노군과 열화마군이 개입하니 희생자가 크게 늘어갔다.
버틸 수는 있어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그때, 천독노군이 송우태의 시선이 잠깐 다른 곳으로 팔린 틈에 기습적으로 독침을 날렸다.
‘무음침술.’
소리가 나지 않는 암기술이었다.
내공이 실린 독침은 정확히 진왕이 탄 마차로 향했다.
챙!
닿기 직전, 신형이 하나 날아들며 보이지 않는 은침을 쳐낸 후에 땅에 착지했다.
촤아아아아악!
무조는 다가오는 적을 베고 그곳으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오셨습니까, 주인이시여.”
은침을 쳐낸 것은 송삼현이었다.
뒤이어 마훈과 선무정, 그리고 사월향까지 마차가 있는 곳까지 왔고 송삼현은 진왕이 탄 마차를 향해 포권지례를 올렸다.
“전하! 송가 삼현이 진왕 전하를 뵙습니다.”
“백의검룡! 자네가 왔는가!”
진왕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송삼현을 맞이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우선 저들을 처리한 뒤에 해도 되겠습니까?”
“그리하거라.”
계속되는 공격에 진왕가의 마차는 부서졌고 그들 주위로 호위 병력이 겹겹이 에워쌌다.
“마훈과 선무정, 너희 둘은 마차 근처를 지켜라.”
“예!”
“예!”
“사 소저는 다친 자들을 봐주시겠습니까?”
“그리하겠습니다.”
저벅.
걸어가다가 대열의 제일 앞에서 거친 숨을 토해내는 송우태를 보며 말했다.
“물러나서 마차 호위에 만전을 기해주십시오.”
송우태 또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제일 선두로 나간 송삼현의 손 주위에 귀혼편이 맴돌며 검의 형상을 갖췄다.
스르르르르륵.
내공이 검을 휘감았고 푸른 기운이 스멀스멀 뻗어나가 주위를 억눌렀다.
“시간이 없다. 그러니 머뭇거리지 말고 모조리 덤비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