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31
형산의 미래 (1)
“으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 억!”
화르르르르륵.
섬서성 한중 면현에 있는 마을 하나가 통째로 불에 탔다. 천월신교의 무자비한 손에 사람들의 비명이 천지를 뒤흔들었고 천월신교도들은 시체들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도륙했다.
타닥, 타닥.
사람들의 시체가 쌓인 옆에서 모닥불에 고기를 구워 먹던 마교도들은 절반 정도 무너진 건물을 쳐다봤다.
“교주님은 언제까지 저기 계실 생각이시지? 벌써 하루가 지났잖아.”
“가만히 있어, 교주님이 하시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반 시진이 지나자 무너진 건물로 한 사람이 들어갔다.
그는 암운뇌마 심우명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킨 것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꿈틀.
검은 내공이 뱀처럼 스르르륵 흘러나왔다.
“교주님. 심우명입니다.”
“왔소?”
흘러나온 내공이 독고룡의 몸 안으로 갈무리되자 아까까지 방 안을 가득 메웠던 어둠이 걷히고 무너진 건물 틈새로 달빛이 들어왔다.
달빛 아래에선 상체를 벗은 독고룡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심우명을 바라봤다.
“왔소?”
“늦어서 죄송합니다. 교에서 처리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던지라···.”
“맹의 상황은 어떻소?”
“서안을 중심으로 세력들이 밀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혹여라도 다른 곳으로 샐까 봐 길목을 막으려고 귀주성 동인을 근방으로 천라지망을 쳤습니다.”
“치밀한 놈들이군.”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저희의 발걸음을 막지 못할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독고룡의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내공.
그 내공은 엄청난 농도를 지니고 있었고 암운뇌마는 저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현경의 끝자락, 생사경을 목전에 두고 계시는구나.’
독고룡은 옆에 벗어둔 장포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의검룡의 행방은 파악이 됐소?”
독고룡의 관심사는 송삼현뿐이었다.
“현재 어디에서도 파악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도?”
“이레 전, 난하를 빠져나오는 것만 보였고 그 뒤로는 귀신처럼 기척을 숨기는 바람에 추행단(追行團)이 추적을 놓쳤습니다.”
까득.
“백의검룡.”
독고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 아무런 표정도 없던 독고룡이 표정을 보이자 암운뇌마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신기한 눈빛으로 독고룡을 바라봤다.
‘저리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시다니···. 소교주님 때부터 봐왔지만, 이런 건 또 처음이구나.’
독고룡은 계속해서 말했다.
“어떻게서든 백의검룡의 행방을 찾으시오, 그자를 내 손으로 죽이지 않는 이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테니.”
“존명!”
암운뇌마 심우명은 대답한 후에 자신이 세운 계획을 독고룡에게 상세히 읊었다.
*
광동성 광주로 향하는 진왕가의 행렬, 송삼현은 진왕가가 오른 커다란 마차 옆에서 나란히 따라가는데 계속해서 느껴지는 시선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 혹,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왕자는 마치 송삼현이 말을 걸기를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나며 대답했다.
“대협.”
“예, 저하.”
“흑사회주 철패흉과 생사를 걸고 결전을 벌였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싸움이었나요? 아까처럼 보이지 않는 신묘한 보법으로 죽였습니까?”
“하하하하···. 어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실례가 아니라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안 됩니까?”
곤란해하는 송삼현을 보는 진왕은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
“예, 아버지.”
“대협을 귀찮게 하지 말거라. 이곳까지 오느라 힘이 들 텐데 너까지 귀찮게 하면 대협이 편하겠느냐?”
“…. 예.”
시무룩해진 왕자를 보자 송삼현은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듣고 싶으십니까?”
“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대신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도 이해해주십시오.”
송삼현은 철패흉과 싸운 것을 처음부터 상세히 말했다.
“오오오오!”
왕자는 말 하나하나에 시시각각 반응했다.
그러면서 귀혼갑과 귀혼편의 말도 나오자 진왕이 깜짝 놀랐다.
“귀혼갑과 귀혼편이라···. 황궁이 흑사회 놈들에게 국가의 보구까지 넘겨줬다는 건가···.”
“전하, 전쟁이 끝나면 신물들은 깨끗하게 해서 황궁에 돌려드리겠습니다.”
진왕은 그 말을 듣고 송삼현의 손에서 검의 모습을 한 귀혼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라의 신물이긴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이 없을 때의 일이었다.
“나라를 구해준 보답이니, 자네가 갖게.”
“…. 그래도 됩니까?”
“신물들은 일반적인 보구들과 다르다는 건 알지?”
“예.”
“신물이 온전히 황궁에 있던 건 주인이 없기 때문이었다. 주인으로 인정한 사람이 있다면 신물을 황궁으로 가지고 간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관리할 수 없다. 신물은 귀주본능이라는 게 있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인에게 돌아가려고 하니까.”
“….”
“신물은 이제 자네의 것이니, 나중에 황궁에 와서 그것만 보고해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반나절을 더 가자 하늘에 노을이 지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숲에서 야영을 할 수 있기에 송우태는 행렬을 정지시켰다.
“전하, 내일이면 광주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시지요.”
“날이 어두워지는 걸 보니, 그러는 편이 좋겠소.”
숲이 아닌 평야에서 야영을 택했다.
그러면 경계 근무를 서는 것도 편하고 어디에서 적이 나타나도 대처하는 게 빨라지니까.
“야영 준비를 시작해라!”
*
야영 준비가 빠르게 끝나고 진왕과 가족들이 묵는 천막은 높은 경지의 호위 병력들이 경계를 섰다.
송삼현도 진왕의 천막 근처 모닥불에 앉아 마훈과 선무정하고 말린 육편을 먹으며 쉬었다.
자객들이 오나 안 오나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구나.”
“예, 군주 마마.”
달이 연못에 떠서 일렁일 때, 군주는 송삼현의 곁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시녀 우향이가 따라왔다.
“군주 마마!”
마훈과 송삼현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예를 표하자 군주는 손사래를 쳤다.
“괜찮으니 고개를 들게.”
선무정도 선무정이지만, 마훈은 아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무림 공적 신분이라 지체 높은 사람들과 엮일 수 없던 거였다. 그래서 마훈은 군주의 고개를 들라는 말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군, 저는 근방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어떤 뜻인지 아는 송삼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훈은 선무정과 같이 신형을 날리며 숲으로 들어갔다.
“… 내가 온 것이 실례였군.”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난 네가 그렇게 솔직해서 좋다.”
“…..”
“청월부인의 일 이후에 네가 금호장을 떠나 그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질 못했구나.”
“그렇지요.”
“늦었지만, 청월부인을 위해 기도를 드려도 되겠느냐?”
“예.”
군주는 하늘에 뜬 달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반 각 정도 지나자 눈을 떴고 송삼현을 바라봤다.
“잠깐 걷겠느냐?”
“보는 눈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시지요.”
“하긴 그렇겠구나.”
“저희가 벗이라는 건 비밀이니까요.”
“이미 이렇게 만난 것을 알면 친한 사이라고 알지 않을까?”
“그것도 그렇겠네요.”
군주는 시녀와 같이 모닥불 옆에 앉았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이야기를 했으나 점차 이야기의 진지함이 짙어지고 군주는 한 가지 질문을 해왔다.
“이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참이냐?”
전쟁이 끝나면 딱히 생각해둔 게 없었다.
만일 독고룡을 죽이고 이 전쟁을 끝내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나오는 말은 별거 없었다.
“우선 잠을 잘 겁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밥을 먹을 거고요.”
“그다음은?”
“잘 겁니다.”
“…..”
“사실 별생각이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우선은 좀 쉬고 싶습니다.”
군주는 송삼현의 말을 경청하곤 말했다.
“그렇구나.”
“마마께서는 이 상황이 힘들지 않으십니까? 쫓기고 있으니···.”
“괜찮다. 우리 때문에 다른 이들이 더 힘드니, 어찌 마차에서 편하게 가는 사람이 힘들다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느냐.”
군주는 고개를 돌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무사들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역시 마마께서는 변하지 않으셨네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않느냐, 아···. 무학은 정말 많이 변했더구나.”
달이 중천에 자리를 잡자 군주는 시녀와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그만 가봐야겠다.”
“어서 들어가서 쉬십시오. 내일 광주에 들어설 것입니다.”
.
.
.
다음 날.
숲을 지나고 반나절이 더 흐른 후에 드디어 사람들의 시야에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광주다!”
성벽 앞에는 병력이 늘어서 있었고 그들의 가장 앞에선 대장군 하선후가 말을 달려 가까이 와 말에서 단숨에 뛰어내려 무릎을 굽힌 뒤 진왕을 맞이했다.
“소장! 전하께서 이곳에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
진왕가가 광주에 들어선 늦은 밤, 형산파는 마교의 급작스러운 습격에 불길에 휩싸였다.
형산파 도사들은 마교의 사악한 손길에 숨이 끊어졌고 살아남은 이들은 일장로를 중심으로 진을 만들었다.
촤아아아악!
일장로 구만천.
강호에선 형산오검으로 불리며 검으로는 천하에서 백 대 안에 드는 고수였다.
처음에는 아무런 방비도 없어 속절없이 당했지만, 일장로 구만천을 중심으로 형산파는 똘똘 뭉쳤다.
“일대 제자는 이대 제자를! 이대 제자는 삼대 제자를 보호해라!”
장문인이 형산파의 주요 전력들을 데리고 전쟁에 참여한 지금, 형산파를 이끄는 건 일장로의 역할이었다.
‘이것들이···. 맹을 무너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파 전체를 무너트리는 것이 목표였는가!’
일장로는 필사적으로 후학들을 살리려고 했고 그러던 중에 왼팔 하나를 잃었다.
쿨럭.
계속해서 늘어나는 마교의 수.
그리고 가장 앞에서 그들을 이끄는 창을 든 괴물, ‘창마장’.
‘이대로면 몰살이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 구만천은 한 걸음 뒤에 있는 여제자를 불렀다.
“유화야.”
“자, 장로님! 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어서 치료를!”
“그보다 내 말을 듣거라!”
유화는 일대 제자 중 유일한 여제자이자 구만천의 제자였다.
“네가 아이들을 데리고 속히 빠져나가거라! 이들을 내가 어떻게든 막아보마.”
“허나!”
유화는 눈물을 흘렸다.
“유화야!”
“… 네!”
“대사제인 청훈이가 없는 지금, 사제들을 이끌 사람은 너뿐이다. 우리가 죽어도 아이들이 살아남는다면! 전쟁이 끝나도 장문인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형산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콰아아아앙!
“어서!”
구만천은 달려드는 마교도를 베며 소리쳤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유화의 말을 들은 구만천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맹이 있는 서안은 너무 위험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어딜 가야 안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며칠 전에 들은 소식이 하나 있었다.
‘아! 어젯밤에 저자에 나갔다가 백의검룡 대협을 뵈었습니다.’
‘백의검룡 대협? 대협은 난하에서 흑사회와 결전을 벌이지 않았더냐.’
‘예. 급한 일이 있어 광동성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광동성? 어디로?’
‘광주라고 했습니다.’
무참히 죽은 사제가 했던 말이었고 그 말을 떠올린 구만천은 유화에게 말했다.
“광동성 광주로 가서 백의검룡을 만나 이 소식을 알리거라! 이들은 백의검룡 대협이 와야 막을 수 있으니!”
“예! 사부님! 반드시···. 반드시 이 원수는 죽어서라도 갚겠습니다!”
유화는 눈물을 머금고 살아남은 사제 서른 명과 형산파를 빠져나갔다.
나가는 중에 마교도에게 발각이 됐지만,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이들 덕분에 무사히 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저···.”
불에 타는 형산파의 전각.
유화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사제들을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형산의 미래가 무사히 산을 떠나자 구만천은 앞에 선 창마장의 창 끝에 가슴께가 뚫리며 피를 토했다.
“저 아이들이 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어차피 단 며칠을 더 살 뿐인 무의미한 삶이거늘.”
쿨럭.
“짐승처럼 자란 너희들은 모를 거다.”
“…..”
“이어진다.”
“뭐라?”
구만천은 형산이 울릴 만큼 커다란 소리로 호탕하게 웃었다.
“비록 우리는 이곳에서 죽지만! 우리의 뜻은 다음 세대로 전해졌으니! 저 아이들이 우리의 뜻을 이어 이 폐허가 된 산에 다시 싹을 피울 것이다!”
푸우우우욱.
“죽음을 앞두고 할 말이 그거 하나 뿐이더냐? 살려달라고 해보거라, 혹시라도 내 마음이 바뀌어 살려줄 수 있지 않겠느냐.”
창마장은 끝까지 조롱했으나 구만천은 오히려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 어찌 짐승에게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냐. 죽이거라, 이 인간도 되지 못한 악귀들아.”
촤아아아아아악!
창마장의 창은 구만천의 목을 그으며 숨을 끊었다.
그렇게 형산 전체가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고 이 일을 계기로 흑사회 멸문 후, 멈췄던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