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32
형산의 미래 (2)
광동성 광주.
커다란 주강(珠江)으로 사방이 뒤덮인 작은 섬에 대장군 하선후의 거처가 있었다.
높은 전각은 하늘을 뚫을 듯이 치솟았고 그 주위는 호위하는 병사들의 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광동의 패자.
나라를 대표하는 사대 장군 중 필두.
백성들의 신임을 얻는 그는 진왕의 거처를 집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으로 내줬다.
“전하, 이곳에서 편히 쉬시지요. 심부름을 할 사람들은 밖에 뒀으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부르시면 되옵니다.”
“신경 써줘서 고맙네.”
“오시는 길이 험했을 텐데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호위해 온 병사들에겐 제가 작은 연회를 열어 피로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자네도 그만 가서 쉬게나.”
“예, 전하, 편안한 밤 되십시오.”
그렇게 진왕가가 쉬러 들어가자 대장군 하선후는 송삼현을 따로 불러냈다.
처소에 있던 송삼현은 하선후가 부른 곳으로 갔고 안가 뒤편으로 가자 인기척이 거의 없었다.
허나.
부스럭.
기감이 뛰어난 송삼현에겐 몇몇 기척이 느껴졌다.
‘대장군을 근방에서 지키는 암부들이군.’
그렇게 걸어가자 보이는 안가 뒤편에 있는 정자.
이곳은 하선후가 생각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오는 곳으로 바다 풍경이 유독 아름다운 곳이었다.
“왔는가.”
시선은 주지 않고 멀리 뜬 달을 보는 하선후에게 송삼현은 포권지례를 올렸다.
“송가 삼현이 대장군님을 뵙습니다.”
“그대가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백의검룡이군.”
“과장된 소문입니다.”
그제야 하선후는 고개를 돌려 송삼현을 봤다.
‘무슨 눈이···.’
저번 삶에서 수도 없이 봤던 눈이었다.
하선후의 눈은 수많은 죽음을 보고 감정이 서서히 사라지는 사람들의 눈과 비슷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시선에 압도되어 저절로 기가 죽었을 테지만, 송삼현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이미 그러한 눈빛에 익숙해졌으니까.
“이리 와서 차 한 잔 하겠는가?”
“예, 그리하겠습니다.”
대장군 하선후는 나라에서도 백성들의 신임을 받는 명장 중의 명장으로 삼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쟁터를 누비며 단 한 번의 패배도 하지 않아 백성들에겐 신이 내린 무장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거물이었다.
“여기까지 전하를 모시고 와주어 고맙네.”
“제가 아니라 금호장이 한 일입니다. 저는 마지막에 합류해 그저 행렬에 묻어오기만 했습니다.”
“묻어오기만 했다? 그러는 자가 자객 수십을 단숨에 벤단 말인가?”
“마지막에 손만 살짝 보탰을 뿐입니다.”
송삼현의 말을 들은 하선후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 건가?”
“아직 강호에서 벌어진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흑사회가 무너졌다고 들었다만···. 서쪽 천산 산맥에서 넘어온 천월신교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네가 그걸 막으러 가야하고.”
“예.”
“흐음.”
“왜 그러십니까?”
“어린 나이에 참으로 힘든 길을 걷는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일세.”
힘들긴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순 없다.
회귀하고 세운 목표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스윽.
“이건···.”
“전하를 무사히 모셔와 주는 선물이네.”
하선후가 건네준 고급스러운 함.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은 일반 목재가 아닌 한기를 품은 냉목이었다.
“한기가 담긴 냉목이로군요.”
“안에 담긴 물건은 염화단(炎火團)일세.”
염화단은 마치 스스로 불을 뿜어낼 만큼 뜨거운 열기를 담았다는 일반적인 영약이 아닌 ‘신단(神團)’으로 불리는 영약이었다.
운이 좋다는 사람들도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귀하디귀한 약으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 약이라면 그대에게 힘이 될 것 같네만, 아닌가?”
화산지대에서 열기를 머금은 붉은 꽃으로 만들어 복용한다면 일 갑자의 내공 증진은 물론이거니와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숨이 붙는다는 신묘한 영약이었다.
“귀하게 쓰겠습니다.”
*
콰아아아앙!
“…. 실패했다?”
묵왕의 진노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가 내리친 책상은 반으로 갈라졌고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찾던 장부는 백의검룡의 손에 들어갔다고 하옵니다.”
“백의검룡의 행방은?”
“난하를 빠져나가 진왕과 접촉했습니다. 진왕을 습격한 이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백의검룡을 봤다고 했습니다.”
흑사회와 관련된 장부.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로지 그것만 원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부들부들.
묵왕은 주먹을 쥐며 떨었다.
‘그게 진왕의 수중에 들어갔다면 내가 세운 계획은 모두 허사가 된다.’
역적의 누명을 씌운 것까지 그 장부에 모든 게 적혀 있으니 진왕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될 것이 뻔했다.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의 수가 떠올랐다.
만일 회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도 해놨었다.
하지만.
진왕에게 전해진다는 최악의 수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묵왕은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턱을 쓸며 침착하게 생각하더니 한 식경이 지나서야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답은 한 가지뿐이구나.”
무언가 결심한 표정.
그 표정을 본 측근은 두 눈이 커졌다.
“설마···.”
“암살.”
“하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진왕은 대장군 하선후의 안가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대장군의 처소는 방비가 황궁에 버금갈 정도지 않습니까!”
“역적을 보호하고 있다면 그도 역적이 아닌가?”
“그렇다곤 하지만.”
“진왕이 장부를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틈을 봐서 진왕이 숨긴 장부를 빼돌린다.”
“….”
“만일 몸에 지니고 있다면.”
측근은 마른침을 삼켰다.
“죽이고서 빼앗아야지.”
*
다음 날.
묘시가 살짝 지나는 이른 오전, 진왕이 머무는 안가에 사람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이곳은 대장군 하선후 장군의 거처다! 당장 거기서 멈추고 소속과 이름을 밝혀라!”
경계를 서던 무사가 창끝을 그 사람에게 겨눴다.
피를 뚝뚝 흘리며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숨을 거칠게 쉬는 그는 비틀거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백의···. 검룡 대협···. 속히 백의검룡 대협을 뵈어야 합니다!”
“백의검룡 대협?”
“어서요···. 한시가 급합니다!”
울먹이면서 소리치는 그를 본 무사는 옆에 있는 자에게 말했다.
“어서 가서 대협께 소식을 알리고 의원을 모셔오게.”
“하지만! 소속과 이름을 모르면···.”
“딱 봐도 모르겠느냐. 강호인이다.”
“강호인이요?”
“더 엮이기 싫으면 속히 대협을 모셔오는 게 좋을 거다. 어서!”
.
.
.
.
조식을 먹은 후, 송삼현은 진왕을 비롯해 대장군 하선후, 금호장주 송우태와 같이 정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거물들 사이에서도 송삼현은 웃으며 대화를 주도했고 그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대협!”
정문에서 근무를 서던 초병이 달려왔다.
“웬 소란이냐.”
하선후가 말하자 초병은 무릎을 꿇고 포권지례를 올렸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허나 너무나도 급박한 상황이라!”
“됐으니 왜 대협을 찾는지 답하거라.”
“그, 그것이! 지금 피 칠갑한 사람이 백의검룡 대협을 뵈어야 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소속과 이름은?”
“… 강호인으로 보였습니다.”
강호인이라는 말에 송삼현은 찻잔에 든 차를 마저 마신 후에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소인이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아니다. 무슨 일인지 우리도 함께 가보자꾸나.”
진왕의 말에 대장군 하선후와 송우태도 뒤를 따라 장원으로 갔다. 그곳에선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추스르는 무인 한 명이 있었다.
‘잠깐.’
그곳으로 가던 송삼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진짜···. 그 사람이 맞는 건가?’
얼굴에 피가 묻어있었으나 알던 얼굴이 맞았다.
‘형산파 묘향천, 저번 삶에서 첩보부대에 있던 사람이다.’
저번 삶에 있던 조직에서 첩보부대원으로 주로 정보를 알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지금 눈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송삼현은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며 냉정을 유지했다.
“저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대, 대협.”
송삼현을 비롯해 금호장의 사람들은 물론 진왕과 대장군도 자리했다. 이미 의식이 거의 끊어질 듯한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송삼현에게 넙죽 엎드렸다.
“이리 찾아와 송구합니다!”
“형산의 도사가 아니십니까, 어찌 이곳에···.”
“저는 형산파 이대 제자 묘향천이라고 합니다! 대협! 부디···. 부디 형산파를 구해주십시오!”
자신이 생각했던 묘향천이 맞았다는 생각도 잠시, 형산파를 구해달라는 말에 놀랐다.
“형산파를 구해달라니? 형산파가 위험하기라도 한 것입니까?”
입가에 피가 고인 묘향천은 형산파에 마교가 쳐들어온 것과 유화와 함께 사제들이 광주로 향했다는 것을 얘기해줬다.
그 얘기에 모두가 충격에 빠졌고 묘향천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던 중에 마교의 추격이 이어졌습니다.”
“….”
“그리고···.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반나절 걸리는 숲에서 마교에게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저는 속히 대협께 구원을 청하기 위해 이리 달려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의식을 잃기 전, 묘향천은 송삼현의 손을 꼭 잡았다.
“부디···. 사제들을···. 사매를 구해주십시오.”
그렇게 묘향천은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꽉 잡은 손을 보며 송삼현은 침을 삼켰다.
‘그때도 그랬지.’
저번 삶에서도 묘향천은 죽음을 각오하고 정보를 빼 왔었다. 그 정보를 빼 오면서 치명상을 입는 바람에 송삼현의 품에서 싸늘하게 죽어갔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제발.
떨리는 손으로 뒤늦게 도착한 사월향을 보고 말했다.
“사 소저.”
송삼현이 이름을 부르자 사월향이 다가와서 진맥을 했고 상태를 살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습니다. 피를 좀 많이 흘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죽지 않고 살았으니 된 거다.
“사 소저, 이 자를 부탁드립니다.”
“가실 거지요?”
“가야지요. 도움을 청했으니.”
그를 사월향에 맡긴 뒤에 송삼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째서.’
형산파를 습격한 것은 정파의 싹을 뽑겠다는 의도겠지만, 그 주위의 마을을 불태운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가 없는 양민들이 무슨 위협이 된다고 그리했는지, 어째서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짓밟는지.
아마도.
그들이 그러는 것은 그저 유흥일 공산이 컸다.
저번 삶에서도 마교는 힘없는 이들의 생사를 그저 자신들의 악명을 드높이는 유흥거리로 여겼으니까.
“마훈.”
“예, 주군.”
“넌 이곳에 남아라.”
“네?”
“혹, 마교가 이쪽으로 사악한 술수를 펼칠 수 있으니 네가 있는 편이 안심이 된다.”
“…. 알겠습니다.”
“무조, 넌 지금부터 마교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예!”
“무정이 넌 속히 서안으로 가서 맹의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거라.”
“그러면 형산파는···.”
스르르르륵.
“나 혼자 간다.”
푸른 내공이 발 주위로 흘렀고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았다. 한 마리의 새처럼 사라지는 송삼현의 뒷모습을 본 장원에 모인 모든 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 정말 사람이 아닌 신선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