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35
마교가 원하는 것 (2)
“백의검룡 대협이 돌아오셨습니다!”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은 우리를 보곤 환하게 웃었고 곧이어 내 뒤에 있던 이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협의 뒤에 계신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형산파 제자분들과 비문 상단입니다.”
“그렇군요. 잠시 신분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대장군님의 안가에 출입할 때는 명부에 적는 게 규율이라···.”
“당연하지요.”
형산파 제자들과 비문 상단은 흔쾌히 협조했고 옆에 있던 무사는 출입하는 사람들을 적는 명부에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신분이 확인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안으로 들어가자 진왕과 하선후, 송우태가 장원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장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진왕에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다녀왔습니다.”
진왕은 인사를 받아준 뒤에 뒤쪽에 있는 자들을 봤다.
“어서 오게, 이 자들은 누구인가?”
“이쪽은 형산파 도사들이고 저쪽은 비문 상단주입니다. 예전 강호행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이들인데 제가 개입하기 전에 형산파 제자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산파 일대 제자인 유화가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지례를 올렸다.
“형산파 일대 제자 유화가 진왕 전하와 대장군 하선후님을 뵙습니다.”
이어서 비문 상단주도 똑같이 자세를 취했다.
“비문 상단주 벽이천이 진왕 전하와 대장군 하선후님을 뵙습니다!”
벽이천은 바들바들 떨었다.
중원에서 커다란 상단도 아닌 그저 강소성에서 작은 상단을 운영하는 그에게 있어서 진왕은 하늘과도 같은 존재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진왕은 일어나라고 했고 그들이 일어나자 송우태가 진왕에게 포권지례를 올리며 말했다.
“전하, 저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그리하시게. 아는 사람들인가?”
“알지는 못하지만, 아예 모르지는 않습니다.”
진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송우태는 비문 상단주 벽이천을 바라봤다.
“그대가 비문 상단주라고?”
“금호장주님! 살면서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비문 상단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네. 벽양태 상단주님이 돌아가셨을 땐 참 마음이 아팠지.”
“…. 저희 아버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벽양태 상단주님과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네.”
금호장이 있는 곳도 강소성이니 비문 상단과 연이 있었구나.
송우태와 벽이천이 대화를 나누자 진왕은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서 마저 대화를 나눌까?”
*
상처를 입은 형산파 도사들은 약당으로 가 의원들에게 치료받았고 그동안 자지 못한 잠을 몰아서 자는지 눕자마자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그 사이, 나는 진왕, 대장군 하선후와 같이 정자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마교가 이렇게 나왔다면 그대도 더는 이곳에 머물지 못하겠군.”
“슬슬 떠나야지요.”
“바로 떠날 건가?”
“네. 채비만 마치면요.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사내의 앞길을 그 누가 막겠는가.”
“전하께서도 묵왕과 싸우려면 바쁘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황궁에서 자네는 강호에서, 서로 다른 곳에서 싸우게 되겠군.”
진왕은 이곳을 기반으로 묵왕과 전면전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장부가 손에 있으니 언제든 묵왕의 숨통을 조일 수 있었다.
“부디 전하께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천하를 안정시키십시오.”
“자네가 가져온 선물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릴 거네, 그러니 자네도 꼭 승리하길 바라네.”
찻잔의 차가 거의 바닥 났고 진왕은 마지막으로 하늘에 뜬 달을 보며 말했다.
“하나만 묻겠네.”
“말씀하시지요.”
“이길 수 있겠나?”
진왕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그 눈은 여러 감정을 담고 있었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시선에 찻잔에 든 찻잎을 보며 말했다.
“그럴 겁니다.”
그리곤 차를 다 들이켠 뒤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마저 말했다.
“반드시.”
휘이이잉.
그 말을 한 뒤에 불어오는 바람.
우리 사이를 지나는 바람을 타고 진왕의 말이 들려왔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을 아는가?”
모를 리가 없다.
저번 삶에서도 끊임없이 들었던 말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물러서지 말게, 물러섰다간 자네가 잡으려는 맹수가 자네를 역으로 잡아먹을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도선행(正道善行)을 가슴에 새겨넣게 그리하면 종국에는 천하가 자네의 이름을 귀하게 여길 것이니.”
진왕은 뼈에 새겨지는 말들을 남겨줬다.
옳은 길로 가되 물러서지 말고 목표한 곳으로 나아가라.
진왕은 이런 말을 내게 해주려는 거였다.
우리 사이를 부는 바람은 멎었고 진왕은 웃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부디 전쟁이 끝나고 웃으며 다시 보세. 그때는 내가 천하에서 제일 성대하게 대접하지.”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전하, 다시 보는 그날까지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
늦은 밤, 대장군 하선후의 도움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이, 전서구 하나가 날아왔다.
“어디서 온 전서구입니까?”
“수하가 보낸 거요.”
무조가 보낸 전서구였다.
[정마 대전 발발, 마교가 일제히 세 갈래 길을 통해 진군 중.]
서신에는 마교가 나아가는 방향과 누가 이끄는 지도 적혀 있었다.
[검마가 이끄는 감숙성 경양.]
[독고룡이 이끄는 섬서성 서안.]
[창마장과 권마장이 이끄는 호남성 회화.]
그리고 총 숫자는 칠천에 육박한 대병력이었다. 만일 이 병력이 중원을 휩쓴다면 상상을 초월할 혈겁이 벌어질 공산이 컸다.
‘저번 삶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
저번 삶에서 겪었을 때보다 뭔가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 같아지자 위화감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그때.
몸을 추스른 유화가 다가왔다.
“대협.”
“좀 더 쉬지 않고 왜 온 거요?”
“아까 대협께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요.”
“못한 말이 뭐요? 상단에 의탁하는 거요?”
“예.”
유화는 심호흡한 뒤에 말했다.
“대협의 제안을 받아 비문 상단과 동행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소. 형산파에게도 그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거요.”
“대협과 상단주님의 배려 덕분이지요. 염치없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대 짐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 결정을 내렸다면 상단주께 말을 드립시다.”
그 말을 들은 벽이천은 활짝 웃으며 형산파 사제들을 흔쾌히 맞이해줬다.
안 그래도 마을을 재건하러 돌아다니면 여러 위협이 따를 텐데 형산파의 보호가 있다면 일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
웃던 벽이천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대협.”
“왜 그러시오?”
“어젯밤에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대협이 저번에 말씀하신 일에 대해서요.”
“…..”
그 일은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비문 상단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었기에 거절을 한다고 해도 이해할 생각이었다.
“안 하셔도 되오.”
“안 한다는 게 아닙니다. 강호의 안녕을 위한 일인데 어찌 공적인 것을 지우고 사적인 마음을 품겠습니까.”
“어떤 걸 생각하셨소?”
“대협께서 제일 먼저 할 것이···.”
말을 하다가 다른 사람이 들릴까 봐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만 속삭였다.
“보급로를 끊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소.”
내가 계획한 일의 첫 번째 시작은 천산 산맥부터 이어지는 마교의 보급로를 끊는 거였다.
전쟁의 팔 할 이상은 보급 싸움이니 아마 무림맹도 이것을 알고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마교의 보급로를 끊으면 칠천에 육박하는 대병력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상단의 병력을 반으로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반으로 나눈다면 다른 반은 지금처럼 계속 마을을 재건을 돕는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형산파 도사님들도 오셨으니 반으로 나눈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오. 일이 위험하기도 하고 은밀하게 해야 하니 적은 수로 움직이는 게 용이하니까 좋은 제안이오.”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아, 그렇다면 한 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소.”
“어떤 거지요?”
“상단주께서는 마을을 재건하는 쪽에 있어야 한다는 거요.”
“예?!”
벽이천은 눈에 띄게 놀랐고 시무룩해졌다.
“… 저도 대협의 곁에서 돕고 싶습니다.”
“비문 상단의 일에 상단주가 없다면 의심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상단주는 마을 재건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나랑 같이 행동하고 싶은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말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대협의 뜻대로 전 마을 재건을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소.”
“…. 그래도 나중에 함께 움직일 날이 있겠지요?”
“그럴 거요.”
벽이천과 대화를 나누는 틈에 유화가 사제들과 이야기를 끝낸 뒤에 나에게 다가왔다.
“대협, 잠시 따로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허나 기척은 어딜 가나 존재했다. 대장군 하선후의 거처이자 진왕이 있는 곳이니 암부들이 쥐 한 마리 돌아다니지 못하게 천라지망을 펼친 거였다.
탓.
도약해 지붕으로 올라가 몰래 지켜보던 암부의 곁으로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잠시 자리를 피해줄 수 있겠소? 반 각이면 되오.”
암부는 자신이 발각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지 두 눈이 커졌고 이내 내 말에 알겠다는 표시를 해준 뒤에 사라졌다.
그렇게 말이 들릴 열 장 이내의 거리 안에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르르르륵.
만약이라는 게 있어 기막을 펼쳐 혹시라도 새어나가는 말이 없도록 막았다.
“이제 말해도 되오. 어떤 걸 말하려는 거요?”
“그들은 형산파를 불태우는 것만이 아닌 제가 가진 형산파의 비급서를 노렸습니다.”
“비급서라···. 아예 씨를 말리려고 했던 거 아니요?”
“제 예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형산파의 전각을 불태우고도 저희를 뒤쫓았으니까요.”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형산파를 완전히 몰락시키려면 그들의 정수가 담긴 비급서도 같이 사라져야 했으니까.
하지만 뭔가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그들이 정말로 비급서를 소실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저번 삶에서도 문파가 하나하나 마교도들의 손에 불에 타 사라졌다. 그때를 떠올리다가 한 가지가 생각났다.
“…. 혹시 마교도들이 곤륜파의 무학을 쓰지 않았습니까?”
뭔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저번 삶에서 마교도들이 사용했던 무공, 그것은 온전히 사특한 무공만 있던 게 아니었다.
오묘하게 달랐던 기운.
사특한 무공과 정순한 무공이 섞인 듯한 무학을 보이곤 했다.
유화는 곰곰이 생각하며 마교도와 싸웠던 것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더니 무언가 떠올랐는지 화들짝 놀랐다.
“그들이 곤륜의 보법인 용형보(龍形步)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
용형보는 곤륜파에 들어가자마자 배우는 기본적인 보법이었다.
“미숙하지만, 분명히 용형보의 보폭이 맞습니다. 제가 곤륜파 일대 제자인 고철과 비무를 해봐서 용형보에 대해서 잘 압니다.”
저번 삶에서도 그랬다.
전쟁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마교는 정파에게서 빼앗은 비급을 익히며 자신들의 사특한 마공의 단점을 보완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무학을 발전시켰고 이것들은 다 ‘암운뇌마 심우명’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다.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이 멀어지고.
두 걸음 다가가면 네 걸음이 멀어지며.
정파와 마교는 그렇게 손을 쓸 수도 없을 만큼 차이가 벌어졌다.
그러면서 종국에는 내가 죽으며 전쟁은 마교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번에도 그런 흐름으로 이어진다면 마교는 불과 석 달 후에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게 된다.
저번 삶에서도 정마 대전이 벌어지고 석달이라는 시간 뒤에 비상식적으로 강해졌으니까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였다.
단번에 강해질 수 있는 사특한 마공.
세월이 흘러 정돈된 정파의 정교함.
이 두 가지가 합쳐진다면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해진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저번 삶에서 그것들을 피부로 직접 느껴봤으니까.
“암운뇌마 심우명.”
“예?”
“그자의 목부터 베어야 했었거늘. 이 전쟁이라는 그늘에 숨은 그림자 하나를 놓쳤구나.”
독고룡이 첫 번째 위험이라면, 그의 그늘에 철저하게 가려진 두 번째 위험이 이제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