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37
마교가 원하는 것 (4)
비문 상단 행색을 한 금호장 무사의 숫자는 백여 명.
뒤에서 포위해오는 인기척은 그 수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앞과 뒤로 포위된 형국, 우리가 몰래 뒤를 밟는 것을 읽히고 역으로 뒤를 잡히는 방식은 십 년 전과 비슷하다.’
흑마단주는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이 왠지 모르게 눈에 익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과도 같았던 그때와 수법이 비슷했다.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나무와 바위로 가득한 숲속.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
‘몸을 숨기기 좋은 환경이나 앞뒤로 포위가 되어 온전히 빠져나가는 건 어렵다. 그나마 괜찮은 점은 우리가 있는 곳이 지대가 높다는 것 하나뿐.’
생각해내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포위망이 더 좁혀지기 전에 흑마단주는 신중히 판단을 내린 뒤에 옆에 있는 부단주를 봤다.
“부단주.”
“네.”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네가 기척을 숨기고 이곳을 빠져나가라. 북서쪽, 바위 사이에 두 갈래로 자란 나무가 자란 곳으로 가면 빠져나갈 수 있다.”
흑마단주의 말에 부단주는 깜짝 놀랐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단주님이 빠져나가시는 게!”
“금호장주와 난 안면이 있으니, 내가 없다면 의심할 거다. 네가 가는 게 상책이다.”
고민하던 부단주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반드시 이 소식을 뇌마께 전하겠습니다.”
부단주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포권지례를 올렸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벅.
숨어 있을 줄 알았던 흑마단주가 모습을 드러내자 몇몇 사람들은 놀랐고 송우태는 무표정으로 흑마단주를 바라봤다.
오십 장 거리에서 어느덧 열 장 거리까지.
흑마단주는 걸음을 멈추며 송우태에게 말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 교활한 머리는 여전하오, 금호장주.”
“그대도 여전하오, 세월이 흘러도 같은 함정에 빠지는 멍청함은.”
*
금호장 무사들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취했지만, 송우태가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십 년 전인가? 그때도 이렇게 나한테 뒤통수를 맞아서 큰 곤욕을 치르지 않았소.”
“…..”
“그때 일을 겪고 또 이렇게 속다니···. 그대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어줘야 직성이 풀리나 보오?”
십 년 전, 사천성 서쪽에 있는 아안은 천월신교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했다.
피의 바다.
다행히 그 일은 금호장주 송우태의 계략으로 무림맹의 승리로 끝났지만, 당시 일어난 ‘아안 참변’으로 인해 천월신교는 중원 모든 이의 감시 속에 천산 산맥에 고립됐다.
“…. 십 년 전의 일을 말하다니, 그대의 목숨은 두 개인가 보오.”
흑마단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떠올리기 싫은 치욕스러운 순간이 떠오르자 감정이 드러난 거였다.
“흑마단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쥐새끼 짓을 잘하는구려. 그렇게 쥐새끼 짓을 해서 얻는 게 대체 무엇이오? 십 년이 지나도 그대들은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지 않소.”
꽉.
모욕적인 말에 흑마단원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십 년 전의 치욕스러운 기억이 떠오른 자들은 뛰어들 기세를 내비쳤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눈치만 볼 뿐이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충돌하면 피해가 클 터, 이쯤하고 헤어지는 게 어떻소?”
흑마단주의 말에 송우태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대는 뒤를 밟은 쥐를 그냥 풀어주나 보오?”
“이 상황에서 충돌하면 금호장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을 터인데 각오는 하셨소?”
“그렇다면 각자 다리 하나 내놓는다면 보내주겠소.”
“다리라. 내가 다리를 내놓는다면 금호장주는 무엇을 내놓을 거요? 응당 거래란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는 법 아니오?”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겠소.”
다리 하나와 목숨.
그 말을 들은 흑마단주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십 년이 흘러도 여전하오, 그대의 오만한 태도는.”
“십 년이 흘러도 여전하오, 그대들의 욕심은.”
단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아안을 습격하고 가져갔던 흑무신공(黑武神功)은 어디에 팔아먹었기에 이리도 무모한 짓을 하는 거요?”
“기억력이 좋구려, 흑무신공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그 사특한 마기를 잊을 리가 혈호패도가 폭주한 것도 그게 원인이었잖소.”
송우태의 입에서 나온 말에 흑마단주의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냉정하게 현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때, 전음이 들려왔다.
[단주님, 부단주님께서 무사히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흑마단주가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송우태가 말했다.
“이제 내 말에 답을 줄 차례요. 다리를 내놓고 가겠소? 아니면 다 같이 죽겠소?”
“미안하게도 우리는 다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거래는 성립되지 않겠구려.”
“유감이군.”
금호장은 진을 유지한 채, 흑마단과 대치했고 암부는 뒤에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한 가지만 묻겠소, 어째서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미끼 역할을 하는 거요?”
송우태는 중원에서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이런 자가 미끼 역할을 한다는 것이 살짝 이해되지 않았다.
송우태는 검집에서 검을 빼며 말했다.
“아들이 가는 길에 아버지가 도움을 주는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오?”
커다란 이유는 없었다. 그저 아버지로서 아들의 길을 열어준 거였다.
“부자(父子)라.”
곰곰이 생각하던 흑마단주는 품에서 탄을 꺼내 바닥에 던져 터트렸다.
스르르르르륵.
퍼지는 연기.
그리고 흑마단주의 목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산(散)!”
훈련받은 병사들을 상대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승산이 희박하니 최대한 많은 인원이 연기를 틈타 도주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지는 흑마단원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도 송우태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듯이 침착했다.
“굳이 쫓지 말거라.”
“예? 하지만.”
“도망치는 녀석들은 암부들이 해결할 거다.”
처음부터 이 상황은 송우태가 원하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이들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윗선에 정보가 전달되기까지는 이틀에서 길게는 닷새까지 걸린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송삼현은 더 먼 곳까지 가게 되니 보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휘이이이익.
콰아아아아앙!
연기 속에서 날아오는 검 하나.
송우태는 금빛 검강을 두르며 그 검격을 막아냈다.
강대한 힘을 머금은 검격의 주인은 흑마단주였다.
“그대는 안 도망치오?”
“십 년 전 빚을 갚기 전에 내가 가는 일을 없을 거요.”
*
챙!
챙!
챙!
한 식경이 지나면서 상황은 정리가 됐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흑마단원들은 금호장의 검날에 무참히 죽었고 살아서 도망친 이들은 고작 네 명밖에 되지 않았다.
“부상자들을 속히 치료하라!”
금호장도 온전하지는 않았다.
부상당하거나 죽은 이들이 절반이 넘어갔다.
호법당주 이윤이 주도해서 신속하게 정리했고 이제 싸우는 사람은 두 사람이 전부였다.
금호장주 송우태.
흑마단주 고요.
두 사람의 경지는 초절정의 끝자락.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간 그대로 승부가 갈리는 상황이었다.
촤아아아악!
서로의 검에 상처를 입었고 온몸에 검흔이 하나하나 새겨졌다.
그렇다고 검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고 더 치명적이게 휘둘렀다.
휘리리릭.
흑마단주가 내뻗는 검 주위로 검을 소용돌이처럼 회전시켰다.
송우태가 쓰는 유운검법은 상대의 공격을 흘리면서 역으로 공격을 들어가는 초식이 주를 이뤘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무당파처럼 부드러움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묘리를 담은 검으로 무당의 검과 닮은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흑마단주의 검을 위로 쳐낸 후에 빈틈이 보이자 거침없이 벼락처럼 검을 뻗었다.
챙!
흑마단주는 목을 향하는 검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땅을 거칠게 내려쳤고.
콰아아아아아앙!
그 충격으로 튀어 오르는 돌들을 발로 차면서 송우태에게 탄환처럼 쏘았다.
사방에서 오는 돌들을 보며 송우태는 ‘ 10초식 운무빈첩(雲霧頻疊)’을 펼쳤다.
휘리리리리릭.
안개가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검형이 만들어지며 돌들을 다 막아냈다. 그리고 그 동작을 이어서 ‘ 5번째 초식 운암충수(雲暗衝殊)’를 펼쳤다.
안개 속에 감춰졌다가 단숨에 상대의 심장을 노리는 초식.
송우태의 검은 흑마단주의 오른쪽 가슴으로 쇄도했고 흑마단주는 연막을 터트리며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좁혀지지 않는다.’
같은 경지, 그것도 흑마단주는 빠른 보법과 뱀처럼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검을 써서 상대하는 게 까다로웠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한 식경이 지나며 이제야 어떻게 가야 하는지 길이 보였으니까.
“금호장주!!! 죽더라도 그대의 목은 가져가야겠소!”
흑마단주는 절초를 쓰며 신형을 날렸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로 똘똘 뭉친 흑마단주의 검에는 사특한 검강이 만들어졌다.
그를 보며 송우태는 검에 검강을 만들면서 자세를 잡았다.
스윽.
검을 오른쪽 아래로 길게 늘어트리는 자세.
‘유운검법 24 초식, 비룡승운(飛龍乘雲).’
유운검법을 대성에 이른 자들만 펼칠 수 있는 절초로 송우태는 악귀로 변하는 흑마단주를 바라보며 승부수를 띄웠다.
스르르르륵.
주위를 휘감는 내공.
그 내공은 마치 구름처럼 변하며 송우태를 휘감았다.
‘….. 이게 뭐지?’
단 한 번도 몸밖으로 분출한 내공이 통제된 적이 없었다.
평소와 다른 감각.
이상하리만큼 내공은 흩어지지 않고 몸 주위를 맴돌았다.
마치 구름 위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 그 속에서 검이 보였다.
우우우웅.
검이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
평소에 잡던 검이 마치 자신이 된 것 같은 착각.
틀에 박혀 있던 검이 통제를 벗어나자 검에는 ‘자유’가 깃들었다.
검을 통제하는 것은 무엇이고.
검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검에 몸을 맡기는 자만이 그 깨달음을 알 뿐이거늘.
스르르르륵.
오랜 세월 몸을 감싸고 있던 껍질이 깨지며 새로운 것이 보였다.
보이는 풍광은 자신이 지금껏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야 구름 속에 가려졌던 세상이 보이는구나.’
늘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하늘 위 세상, 그 세상이 보였다.
송우태가 휘두른 검격은 구름을 뚫고 나온 용의 형상처럼 흑마단주에게 쏘아졌고 흑마단주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각!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으나.
파직.
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용은 흑마단주 고요를 반으로 갈랐다.
촤아아아아악.
고요를 반으로 갈랐음에도 여전히 검의 떨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구름 속에 감춰진 검.
그 검을 잡은 순간 송우태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
백여 명의 무사들 가운데 온전히 서 있는 사람은 절반가량, 나머지 절반은 신체 하나를 잃거나 숨이 끊어졌다.
살아남은 이들이 시신을 수습했고 나무를 여러 겹 덧대어 시신을 태워 보냈다.
“장주님.”
호법당주 이윤이 다가왔다.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셨네요.”
송우태는 검날에 묻은 피를 닦아낸 후에 크게 숨을 내뱉었다.
“아니다. 삼현이는 날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으니 아버지 노릇을 한 셈은 아니지.”
“…..”
“내가 그 아이에게 준 상처는 평생 가도 사라지지 않은 상처일 거야.”
어린 시절부터 반푼이라고 여기며 다른 자식들처럼 애정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혹독하게 절벽으로 내몰았다.
그런 과거가 얽히고설키며 현재라는 결과물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어찌 삼현이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그저 내 욕심이거늘.’
과거에 했던 자신들의 실수.
그 실수는 사라지지 않고 평생의 흉터로 남겠지만, 송우태는 한 가지만을 원했다.
“이걸로 그저 삼현이와의 거리가 한 걸음 좁혀졌으면 좋겠구나.”
이것으로 아들과 멀고도 먼 길이 한 걸음이라도 좁혀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