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4
금호무회 (2)
‘풍천신보(風天神步) 선무정.’
전쟁 때, 마교 제일의 경공 고수인 ‘혈보마귀’가 그를 잡지 못해 한 말이 있었다.
‘바람처럼 사라져 하늘 끝에 발이 닿는구나.’
풍천신보라는 별호는 이러한 말이 퍼져 붙여진 별호였다.
그는 참혹한 현장 그 어느 곳이든 누비며 다른 이들이 열흘 걸릴 길도 사흘 만에 주파해 무림 맹주 구창룡에게 막대한 신임을 받았었다.
그러한 자가 지금 내 앞에서 국수에 만두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정말 이 술을 모두 내가 먹어도 되는 거요?”
“그렇습니다. 나는 아직 술을 먹을 나이가 되지 않아서 이 차로 대신하지요.”
객잔의 술 중에서도 귀한 대국주를 보더니 한 바가지 퍼 꿀꺽꿀꺽 마셨다.
“크으! 향이 아주 끝내줍니다!”
나도 맞은 편에서 국수를 먹었고 강 무사도 옆에서 만두를 먹으며 선무정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사부에게 모든 무공을 전수 받은 건가요?”
“예, 하지만 아직 깨달음이 부족해 금호무회에 참가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비무 경험을 쌓으면 경공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다음 음식에 꽂혀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대는 경공에 집착하는 겁니까?”
“저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두렵습니다.”
“두렵다?”
“어릴 때, 부모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보고 피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경공을 배우면 굳이 싸우지 않고 달아날 수 있기에 그리했습니다. 괴팍한 사부를 만날 줄 알았다면 도망치는 거였는데···. 쳇.”
선무정에게 어떤 사연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자세히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한 사연 때문에 검술을 쓰지 않고 오로지 경공에만 인생 전부를 바친 거군.
하긴 그래야 풍천신보라는 별호를 가질 존재지.
“국수가 그리 맛있습니까?”
“매일 사부와 먹는 벽곡단 보다 곱절은 낫습니다. 아마 또 돌아가면 사부님이랑 그것만 먹고 지내야겠지만요.”
“수고비는요?”
“이건 사부님이 드실 탕약을 짓는 데 써야 해서 먹을 것은 못 삽니다.”
행색을 보니 돈이 적잖이 필요한 것 같고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겠군.
“강 무사.”
“예, 공자님.”
“장주께서 주신 전낭 좀 줘보시게.”
“예.”
나와 관계 개선을 하고 싶은 것인지 송우태는 생전 안 하던 것들을 최근에 자주 했다.
그 중 하나가 매일 만전당에 들려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쓸 수 있게 이야기를 해놔서 난 이제 돈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었다.
전낭에서 은원보 하나를 꺼내 선무정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 이것이.”
은원보 하나는 은전 오십 냥의 가치가 있으니 풍천신보의 두 눈이 커졌다.
금호무회의 수고비라고 받은 건 딸랑 은전 두 냥이 전부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떻습니까. 지금부터 저랑 같이 행동하시는 것이?”
“예?”
“금호장의 하급 무사가 되어 여기 있는 강 무사와 같이 저의 호위가 되어 주시는 겁니다. 물론 급여는 제가 지급해드리겠습니다.”
“금호장? 금호장···. 어!”
풍천신보는 그제야 내가 누구인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예사 분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금호장의 자제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혹여 제가 예를 어겼다면 부디 용서하십시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제 제안은 어떠시나요?”
“허나 전 검술은 기본적인 육합검까지만 배웠기에 도움이···.”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건 검이 아니라 발입니다. 중원 전역에 어느 정도 수준의 검객은 수두룩 하지만 경공의 고수는 손가락에 들지요.”
전쟁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기를 들고 싸울 무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정보를 습득하고 전하는 전령이었다.
한 시라도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면 한 명이 살 것도 열 명이 살고, 열 명이 살 것도 백 명이 살 수 있었다.
“… 경공을 이토록 중요시하시는 분은 처음 뵙니다. 대부분 무인은 경공을 무공 초식을 펼칠 때만 사용하는 기본적인 것이라 무시하는데.”
“무릇 모든 무공의 기본은 경공에서 나오지요. 경공이 없다면 아무리 강대한 무공이라 무슨 소용입니까?”
사람 대 사람의 승패를 가리는 것은 발이 아닌 검이나 창 같은 무기이니 사람들은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결과만을 중요시했다.
허나 내 생각은 달랐다.
무공의 일부분인 경공을 등한시했다가 강호에서 얼마 가지 않아 목이 떨어져 나가는 걸 수두룩하게 봐왔었다.
그러니 경공은 기본적인 것이 아닌 검술 만큼이나 중요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당연하지요.”
“먹을 거는···.”
“국수나 만두 말고도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원 없이 사드리겠습니다.”
내 눈을 뚫어져라 보던 선무정은 오랜 시간에도 내가 눈을 피하지 않자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일 년 후에 뵈러 와도 되겠습니까? 사부님께 배울 것도 있고 저 없이도 살 수 있게끔 해드려야 해서요.”
“그리하시지요.”
내 말을 들은 선무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저 선무정은 앞으로 금호장 삼 공자님의 발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훗날 천하제일 보로 이름을 날릴 풍천신보 선무정이 내 손에 들어왔다.
*
풍천신보와 헤어지고 다시 대장원으로 왔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자 금호무회는 다시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마지막에 이르렀다.
푸르던 하늘은 어느덧 붉게 변했고 남은 이는 불과 두 명, 최후의 승자만 가릴 비무만 남겨놨다.
‘흑월창 마청두’
‘연환검 고인후’
강호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두 무인의 비무가 시작됐다.
최후의 승자는 평생을 먹고 놀 정도의 돈이 들어오는 비무회, 내 기억으로 여기서 연환검이 이길 것이 분명했다.
연환검이 펼치는 ‘구환검법’은 아홉 개의 초식으로 이뤄졌지만, 그 하나하나가 강했다.
‘이제야 금호무회가 왜 제일의 비무회인 지 알겠구나.’
전에 봤던 이들과 확연히 달랐다.
흑월창의 창기와 연환검의 검기가 허공에서 충돌하며 ‘콰아앙!’거대한 폭발음을 냈고 흙먼지가 대장원을 가득 채웠다.
먼지 안에서도 창과 검이 부딪치며 빛이 일렁였고 서로가 매섭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챙!
챙!
챙!
절정 고수들의 비무에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후기지수 중에서도 풍운검 송일현보다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두 사람의 대결은 용과 호랑이의 싸움,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흑월창의 초식은 강맹함에 연환검의 초식은 환과 쾌에 주안점이 되어 있다.’
무기에도 상성이 있었다.
같은 수준의 창과 검이 붙으면 창이 이긴다는 건 웬만한 이들도 알고 있었고 우승은 흑월창이 한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같은 수준이라도 높고 낮음이 다른데 어떻게 그것이 같다 할 수 있을까.
‘흑월창의 경지는 절정의 중간 정도, 송일현과 같은 경지지만, 연환검은 다르다.’
절정의 끝에 닿아 초절정을 눈앞에 둔 그의 검은 매섭게 흑월창을 노렸고 흑월창은 가까스로 막아내지만, 힘이 다했는지 창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백여 합을 나눴으니 그럴 만하지.
“이만 끝내도록 하겠소.”
“들어오시오! 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는 않으니!”
흑월창의 창기와 연환검의 검기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콰앙!
그리고 내 예상에 맞게 흑월창의 창기는 연환검의 검기에 깨졌고 연무대 위에 서 있는 자는 연환검 고인후였다.
흑월창은 연무대에 누워있다가 연환검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대단한 검기였소. 강서 사람들이 연환검이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구려.”
“그대의 창기도 예리해서 자칫 방심했다간 내가 패배했을 거요. 오늘의 비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오.”
흑월창은 다른 무사들로 인해 약당으로 옮겨졌고 송우태는 단상에서 곧바로 연무대로 올라갔다.
연환검 고인후는 무림의 선배에게 공손하게 예를 갖췄고 송우태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모든 이에게 공표했다.
“올해! 금호무회의 최종 일인은 연환검 고인후 대협이오!”
와아아아아아!
잘생긴 얼굴에 화려한 검술, 여성들이 그를 좋아하고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곧 승자에게 주는 선물을 들고 무사들이 올라왔고 송우태는 고인후에게 금전 열 냥이 든 상자를 전해주고 보검 유혼검을 전해줬다.
“금호무회를 빛내주어 고맙네. 그대는 앞으로 어찌하길 바라는가? 금호장에서 상급 무사로 일을 해볼 생각이 있는가?”
“금호장에서 일하는 것은 무인으로서 명예로운 일입니다. 전 앞으로 금호장에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연환검 고인후의 패기 넘치는 말에 대장원에 있는 모두가 큰 박수를 보내줬다.
이제 보니 금호무회의 자체가 금호장의 명성을 드높이는 이유가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구나.
‘인재 등용.’
그리하여 금호장에서 주최하는 금호무회는 그렇게 끝났다.
*
그날 밤, 난 천유현과 약속한 시각에 만났다.
“나으리!”
천유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를 맞이했고 난 그에게 아까 풍천신보와 먹다가 포장해온 만두를 건네줬다.
아직 따끈따끈한 만두를 받자마자 천유현은 그것을 허겁지겁 먹었고 난 그 옆에 털썩 앉았다.
“힘들지는 않아?”
“거지들의 삶이 뭐 다 그렇지요.”
사부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난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살았다.
성격이 괴팍한 지부장의 발길질에 얼굴이 성한 날이 없었지만, 그곳을 나오면 갈 곳이 없기에 꾹 참고 버텼다.
“… 버티거라.”
“예?”
이 흐름대로 살거라 그렇게 해서 일 년 뒤, 사부님을 만나 천무신검을 전수 받으면 너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거지라며 낮추는 성격도 사부님이 뜯어 고쳐주실 거고.
“아니다. 남경에는 언제까지 있는 것이더냐?”
“구월 초파일까지 있습니다.”
“내가 준 돈은 어떻게 했느냐?”
“나으리가 말씀해주신 것처럼 가시자마자 왔는데 그 전에 제가 다섯 냥은 미리 빼놨습니다.”
“오, 꽤 많이 빼놨구나?”
“그럼요!”
스윽.
난 전낭을 더 줬다.
“은원보 한 개가 들어있다. 밥은 굶지 말고 다니거라.”
“아이고! 아까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또 받기는 제가 좀.”
“거지 놈이 무슨 염치를 찾느냐. 주면 어서 받거라. 팔 아파서 주기 싫어지기 전에.”
천유현은 냉큼 전낭을 받아 품에 갈무리했다.
같은 열넷의 나이지만, 어찌 이토록 나와 너의 삶이 다를까.
“일 년 뒤.”
“네?”
“일 년 뒤, 팔월 보름 섬서성 재지 저자에 있거라. 그리하면 너의 인생을 바꿔줄 귀한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귀한 인연이요?”
“그래, 그러니 힘들고 괴롭더라도 버티거라.”
“네! 알겠습니다!”
가져온 만두를 다 먹은 천유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나에게 포권을 올렸다.
“절대 나으리를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나도 그렇다.”
천유현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공을 가르쳐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리하면 원래 이어지려던 인연이 이어지지 않겠지.
천무신검은 다른 이가 아닌 너의 손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일 년 뒤에 보자 원래의 나여, 아니 이제는 다른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