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42
마교가 원하는 것 (9)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고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시각, 풍월 객잔 밖으로 고성이 새어나갔다.
“네 이놈! 황보선우! 정도를 걷는 무림인이 어찌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군사 어른! 억울합니다! 왜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이 맹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걸 알고 있긴 하느냐?”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뼈저리게요!”
“무엇보다 서로 간의 신뢰가 중요한 법이거늘! 신뢰를 깨트리는 짓을 하는 녀석과 함께 갈 생각은 없다! 당장 짐을 꾸려 서안으로 돌아가거라!”
제갈귀호가 황보선우를 혼을 내는 소리였다.
그렇게 점차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송삼현은 수상한 기척을 감지했다.
‘여덟 마리의 쥐새끼들도 듣고 있군.’
첩자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송삼현은 이 층에서 일 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일이 통 할까요?”
맞은 편에 앉아 차를 마시는 사월향의 물음에 송삼현은 황보선우를 바라봤다.
“저자가 얼마나 잘 속이는지에 달렸지요.”
이 일의 시작은 황보선우에게 달려 있었다.
“잘할까요? 그다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요?”
여인을 희롱할 줄이나 알지 제대로 일을 할지 걱정스러웠다.
그건 송삼현도 마찬가지였다.
저번 삶에서도 황보선우를 만나봤었는데 겁이 많은 사람이라 잦은 실수를 많이 했었다.
“함께 일을 하는 사이니 미덥지 않더라도 믿어야지요. 아무리 못났다더라도 정파 사람이니까요.”
곧이어 말소리가 잠잠해지고 황보선우는 탁자에 기대놓은 검을 집어 들었다.
“그게 군사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제갈귀호에게 축객령을 받은 황보선우와 용봉지회 후기지수들이 객잔에서 나가고 송삼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다쳐도 소저가 치료해줄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해도 만약 다쳐서 오면 제일 아프게 치료해드릴 겁니다.”
“이제 농도 할 줄 아시고 제가 많이 편해지신 모양이네요.”
“농 아닌데요?”
“….”
“그러니까 다쳐서 오지 마세요.”
“그리하겠습니다.”
백의검룡이라는 별호의 상징과도 같던 백의가 아닌 자객들이 입는 흑의와 복면을 한 송삼현은 이 층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스르르르르륵.
기감을 넓혀 첩자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조심히 뒤를 밟았다.
*
귀양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황보선우와 용봉지회 후기지수들은 말을 타고 길을 내달렸다.
그렇게 반나절을 달린 후에 귀주성 준이 남쪽에 있는‘대수정(大水井)’에 도착했다.
웅장한 호수가 그들을 맞이했고 잠시 쉬려고 말의 고삐를 나무에 걸어둔 뒤에 자리에 앉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군사 어른께서 저희에게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리 막 하시다니요.”
“군사님의 결정이지 않으냐.”
“그렇다고 해도···. 이 계획은 숫자가 중요한데 저희를 내치고도 성사할 수 있을까요?”
“군사님도 다 생각이 있으셨기에 이리 한 것이겠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군사님의 마음을 어찌 알겠느냐.”
귀양에서부터 그들은 꾸준히 불만이 섞인 목소리를 냈고 적정거리 내에서 그것을 엿듣던 첩자들이 시선을 맞춘 뒤에 전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어떻습니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저들은 꾸준히 저런 말을 해왔다. 사이가 틀어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보를 쉽게 내줄까요? 썩어도 정파 사람이 아닙니까.]
[그건 우리가 뭘 제안하느냐에 달렸지.]
전음을 끝낸 뒤에 첩자들은 수신호에 맞춰서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스윽.
갑자기 복면을 쓴 첩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봉지회 후기지수들은 검을 빼 들어 그들에게 겨눴다.
“…. 누구냐.”
“우리는 천월신교의 교도들이오. 몇 가지 여쭈고 싶어 이리 결례를 범했으니 부디 용서해주시오.”
괴팍한 성격의 일반적인 마교도들과 달리 교섭을 하는 첩자들은 차분한 성격이었다.
“감히 마교의 끄나풀이 우리의 앞을 막는 것이냐!”
“지금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모조리 죽이는 방법도 있소.”
첩자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손을 들자 주위로 첩자들이 포위했다.
수는 여덟.
용봉지회 후기지수들의 실력으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마교의 첩자들을 상대하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황보선우도 침을 꿀꺽 삼켰다.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해도 내 입에서 나올 말은 없을 거다.”
“듣기로는 내분이 일어난 것으로 보였는데 아니오?”
“그게 당신들이랑 무슨 상관이지? 우리는 엄연히 적인데? 더 할 말이 없으면 그냥 가든가 아니면 우리 모두를 죽이든 알아서 해라.”
황보선우는 입을 절대 열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고 마교의 첩자는 그런 그의 신경을 긁었다.
“당신을 이렇게 막대한 이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소?”
“내가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처럼 보인다면 눈이 이상이 있는 거군.”
처음부터 마교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쉽게 의심할 테니까.
황보선우가 손을 뻗으며 신호를 주자 용봉지회 후기지수들이 원형진을 만들어 첩자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버림을 받았다고는 하나 우리는 정도 무림의 후손들···. 죽을 때 죽더라도 마교와 협상은 없다.”
이곳에서 죽기라도 하겠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던 마교 첩자는 이내 본론을 꺼냈다.
“그러면 제안 하나 해도 되겠소?”
“제안?”
“우리에게 저들이 꾸미는 계략을 알려준다면 첩자 한 명을 내어주겠소.”
“너희 동료를 말이냐?”
“어떻소? 군사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첩자 한 명을 생포해서 잡아간다면 그대들의 이름은 온 무림에 퍼질 거요.”
전쟁 중에 적 첩자의 생포는 전투에서 업적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공헌이었다.
“…. 내가 그 말을 어찌 믿지?”
하지만 섣불리 믿을 순 없었다.
마교라는 족속들이 약조를 어기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 쉽다는 걸 온 무림이 알고 있었으니까.
까닥.
첩자가 손가락을 까닥하자 첩자 한 명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저자를 내줄 거요. 원하는 정보만 제공해준다면.”
마교의 첩자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였다.
제갈귀호에게 버림을 받아 서안으로 쫓겨나듯 떠나는 이들이 첩자를 잡아간다면 금의환향도 이런 금의환향이 없었다. 이름을 날리고 싶은 후기지수들에게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황보선우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반 각이 지나자 결정을 내렸다.
“좋다. 어차피 이대로 돌아가봤자 서안에서도 눈칫밥만 먹을 텐데 이런 공적이라도 올려야지.”
“허나! 소협!”
“너희들은 이대로 돌아가면 맹주님을 비롯해 다른 이들이 우리를 어찌 볼 것 같으냐! 분란을 일으켜서 쫓겨났다는 걸 알면!”
“……”
“여기 있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면 된다!”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도 무시를 당할 것이 뻔할 뻔 자였다.
‘걸려들었군.’
마교 첩자는 이 상황을 흥미롭게 봤다.
강호의 경험이 많은 노고수들에게 통하지 않을 수였지만, 패기 넘치는 후기지수들은 달랐다.
하루라도 빨리 이름을 날려 출세하고 싶은 것은 모든 후기지수가 공통으로 가진 마음이었고 마교 첩자는 바로 그 마음을 흔든 거였다.
“총 군사가 꾸미는 계책이 무엇이오?”
황보선우는 숨을 깊게 내쉰 뒤에 계책을 상세하게 말해줬다. 그것을 들은 마교 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문을 통해 잠입한 후에 쪽문을 이용해 다른 병력이 들어와 곡식 창고를 불태운다? 너무 단순한 거 아니오? 우리를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세부적인 부분은 그다음이지.”
“그다음?”
스윽.
“직접 포박해라.”
첩자를 자기들 손으로 포박해서 넘기라는 말이었다.
“꽤 머리가 굴러가는 사람이군.”
“배신한 셈이니 나도 받을 건 받아야지.”
첩자들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한 명을 포박해서 용봉지회의 품에 안겼다.
“말하시오, 세부적인 작전을.”
황보선우는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마교 첩자들은 적잖이 놀랐다.
처음에 말한 것보다 상세한 내용이었다.
어떤 식으로 들어와 어떤 식으로 보급을 노릴 것인지.
그것에 대한 계획을 듣자 첩자들은 잠시 말을 잃었고 그들을 본 황보선우는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는 말을 했으니 거래 물품을 가져가겠네.”
포박된 첩자를 데리고 가려고 했고 첩자들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대로 보내실 겁니까? 말에서 뭔가 하나가 비어 보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 이 녀석들의 말에는 괴리감이 있다. 사실처럼 보이는 세부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섣부르게 믿을 수는 없지.]
그때.
툭.
황보선우가 말에 오르다가 실수로 서찰을 하나 떨어트리고 말았다.
땅이 아닌 풀에 떨어져 황보선우와 용봉지회 후기지수들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황보선우가 멀어지자 마교 첩자는 걸어가서 서찰을 주웠다.
“이 서찰은 뭘까요?”
“끈이 예사롭지 않군.”
일반적인 매듭이 아니라 특수한 매듭이었다.
“맹에서 긴급히 운송하는 서찰에만 쓰는 매듭법입니다. 끈에 맹독이 발라져 있어 모르는 이들이 만졌다가는 중독되어 사망하는 매듭이지요.”
“그렇다는 것은.”
“제갈귀호가 맹주에게 전하라고 건네준 서찰일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예?”
“쫓아낸 이들에게 밀서를 건네줬다?”
“서안으로 가는 길이니, 넘겨준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저 녀석들은 이렇게 중요한 서찰을 떨어트려도 눈치를 못 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직 강호 경험이 적은 이들이라 긴장을 한 것이 아닐까요? 우선 서찰을 본 후에 결정을 하시지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첩자 우두머리는 서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곤 단도를 꺼내 매듭을 잘라 서찰을 펼치는 데 그곳에 세세한 작전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 저놈이 거짓을 고했군. 교활한 놈.”
황보선우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작전이었다.
“실제로는 이게 계획서다. 서안으로 가져가 맹주에게 전하려는 거였군.”
“강우는 어쩌시겠습니까?”
용봉지회가 데리고 간 첩자의 이름이 강우였다.
“됐다. 강우라면 저것들이 눈치채기도 전에 빠져나올 것이다.”
“아, 그래서 강우를.”
“내가 저놈들에게 고개를 숙일 성싶더냐. 그것보다 어서 가자, 부 군사님이 기다리시겠구나.”
송삼현은 이 일에 두 가지 함정을 팠다.
첫 번째 함정인 황보선우의 말을 의심할 것을 예상하고 두 번째 함정인 서찰로 이중 덫을 놓은 거였다.
“주인이시여.”
송삼현의 곁으로 무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맡긴 일은?”
“모든 조사가 끝났습니다. 바로 움직이셔도 됩니다.”
“알겠다.”
“그나저나.”
무조는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첫 번째 덫을 의심하게 만들어 두 번째 덫을 확신하게 만드시다니요.”
“마교놈들은 매사에 의심이 많아 덫을 이중으로 치지 않으면 걸려들지 않는 족속들이다.”
“상대를 많이 해보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저번 삶에서 마교랑은 진물이 나도록 지겹도록 싸웠다.
그래서 마교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무조.”
“예.”
“넌 곤륜의 서쪽 상황을 낱낱이 살펴라.”
“지키는 수는 몇 명이며, 어떤 표물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경계병들의 교대 시간과 언제 잠이 드는지, 건물은 어떤 식으로 되어 있고 마차의 통행 검문은 어떻게 하는지 모조리 조사하겠습니다.”
송삼현은 무조를 물끄러미 봤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넌 언제나 날 실망하게 한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잘할 거라고 믿는다.”
“존명.”
무조가 신형을 날리며 사라졌고 송삼현은 마교의 첩자들이 사라지자 신형을 날려 귀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