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47
혈호패도 초여상 (2)
[ 흑혈조마(黑血祖魔)의 유산을 얻는 자여.
어둠을 통제하여 천하를 호령해라, 이 비급을 읽은 그대에게 나의 무학 전부를 줄 지어니.]
수백 년 전, 천월신교의 시조인 흑혈조마가 남긴 유산으로 온 무림이 그것을 얻고자 난리였다.
허나.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치르며 종국에는 혈호패도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십 년이 흐른 지금, 흑혈조마를 뛰어넘는 무학을 익히며 다시금 흑무신공은 천하에 나타났다.
“…. 신물 같군.”
귀혼편과 귀혼갑처럼 주인을 스스로 치료해주는 신물과 같이 흑무신공의 기운도 혈호패도의 몸을 치료했다.
“대단해···. 대단해! 정말 대단한 무학이구나! 그 나이에 이런 무학이라니! 내가 평생 살면서 만난 상대 중 네가 제일 강하다!”
강한 자를 만나면 서서히 미쳐가는 버릇이 있는 혈호패도는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시작됐군.”
그것을 지켜보던 늙은 마교도가 나지막이 말하자 주변에 있던 마교도가 물었다.
“뭐가요?”
“십 년 전에 패도님은 저렇게 웃으며 정파 고수 백여 명을 단숨에 베었다.”
“…..”
“이제 백의검룡도 끝날 거네. 패도님이 웃음을 지으며 휘두른 도에 살아남은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는 혈호패도 초여상과 수십 년을 같이 다닌 마교도였다.
그렇기에 웃음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가 웃음을 지으며 도를 휘두르면 주변에 살아남은 자들이 없다는 것을.
스르르르륵.
허벅지를 감은 검은 기운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탓.
송삼현은 신형을 날리며 검을 출수해 왼쪽 허벅지를 노렸다.
검로를 지켜본 혈호패도가 도를 휘둘렀고 송삼현은 땅에 장법을 날리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호오!”
어느새 허벅지를 모두 치료한 혈호패도도 마찬가지로 어기충소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오른 송삼현을 쫓아갔다.
그러더니 도를 양손으로 잡고 앞으로 쭉 내밀며 강기를 만들었다.
‘암운일섬(暗雲一閃).’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검은 구름 속에서 벼락이 번쩍였다.
위협을 느낀 금룡신갑에 깃든 귀혼갑이 스르르륵 흘러나오며 목을 보호했고 구름 속을 뚫고 쇄도하는 도를 본 송삼현은 신속히 검을 휘두르며 도의 경로를 틀었다.
거대한 도를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휘두르는 혈호패도는 도의 경로가 벗어났음에도 멈추지 않고 도를 끌어당겨 송삼현의 왼쪽 어깨를 노렸다.
카아아아아앙!
검막을 두른 검으로 왼쪽 어깨로 들어오던 도를 쳐냈고 혈호패도는 멈추지 않고 거머리같이 쫓아왔다.
승천을 앞둔 이무기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도는 끈질기게 송삼현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움직였다.
‘이렇게 커다란 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혈호패도를 도의 최고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고수의 싸움에 서서히 땅은 파이기 시작했다.
반 시진 후.
챙!
챙!
챙!
두 사람이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은 땅을 가르고 끝내 하늘에 뜬 구름을 갈랐다.
송삼현과 검을 나누는 혈호패도의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흑무신공을 대성에 이른 지금, 그것을 한계를 시험할 상대가 나타난 것에서 나오는 기쁨의 웃음이었다.
잠깐 거리를 벌리더니 순식간에 진각으로 거리를 좁혀오는 혈호패도를 본 송삼현은 검을 바로 출수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직이야.
조금 더.
…. 지금이다!
‘천무 6식 검뢰.’
다가오는 혈호패도의 등 뒤로 검강으로 된 벼락을 내리쳤다.
총 다섯 번의 낙뢰.
낙뢰처럼 떨어지는 검강에도 초여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도를 휘두르며 막아냈다.
‘도룡풍(刀龍風).’
강기가 소용돌이처럼 도 주위를 휘감았고 그것이 검뢰를 막아냈다.
하지만 송삼현은 검뢰가 막혔다고 당황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혈호패도가 검뢰에 정신이 팔린 그때.
낮게.
더 낮게 자세를 낮추며 다가갔고.
‘해무천뢰.’
왼쪽 가슴을 노리며 검을 출수했다.
다른 이들은 눈으로 좇기도 버거운 속도로 뻗은 쾌검.
그대로 가슴께로 날아갔지만, 혈호패도는 그 상황에서도 검로를 보곤 몸을 틀며 피하려고 했다.
촤아아아악.
미처 끝나지 않은 검뢰에 왼쪽 팔뚝이 베이면서도 몸을 크게 비틀어 송삼현이 뻗은 해무천뢰의 초식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나 송삼현의 검은 일반적인 검이 아니었다.
귀혼편으로 만든 검이었기에 주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간격이 늘어날 수 있었다.
스르르륵
검의 간격이 세 치 정도 더 늘어나더니.
푹.
검끝이 혈호패도의 호신강기를 뚫으며 가슴께로 살짝 들어갔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었고 그사이, 혈호패도가 각법으로 송삼현의 복부를 차며 두 사람의 거리는 다시금 멀어졌다.
“그 검은 참으로 희한하구나, 방패처럼 변하질 않나, 검강을 발현한 것도 아닌데 간격이 자유자재로 늘어나질 않나.”
혈호패도 초여상은 송삼현의 오른손에 있는 검을 유심히 바라봤다.
분명히 피했다고 생각했으나 가슴으로 들어온 검 끝.
피부를 약간 뚫고 들어온 느낌은 검강이 아닌 검 자체였다. 혈호패도는 물끄러미 귀혼편을 바라보더니 꿈틀거리며 변하는 귀혼편을 보며 놀란 눈을 한 채, 송삼현을 바라봤다.
‘저건 귀혼편이다···. 신물을 얻었다고는 들었지만, 저리도 자유자재로 변화를 하는 무기였다니! 그렇다면···!’
신물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무학이라면?
스르르르르륵.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쿠구구구구궁.
땅을 울렸다.
천지를 흔들 만큼 강대한 기운.
몸 안에서 통제하고 있던 흑무신공의 기운을 방출하는 거였다.
혈호패도 주위로 거친 바람이 불어왔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그 울림은 이리 밖까지 전해졌다.
숲에 있던 짐승들은 재해가 온 것처럼 흠칫 놀라서 도망쳤고 정신없이 싸우던 이들은 잠시 움직임을 멈출 만큼 광오한 기운이었다.
악귀(惡鬼)의 형상을 띈 기운을 몸으로 갈무리한 혈호패도 초여상의 몸에는 이상한 문양들이 새겨졌다.
“신물의 선택을 받은 너를 죽이려면 모든 공력을 쏟아부어야겠구나.”
혈호패도의 몸 밖으로 통제된 기운이 스멀스멀 물처럼 흘러오더니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설마, 인식을 비트는 건가.’
상대의 기운을 압도했을 때는 인식을 비틀어 환각을 보게 할 수 있지만, 이건 이상했다.
기운을 압도당하지도 않았는데 온 세상이 검게 물들어갔다.
인식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진법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르르르륵.
내공을 흘려 검은 기운이 몸을 침식하기 전에 막아냈다.
하지만 다 막아내진 못했다. 흑무신공의 끈적한 기운이 오른쪽 시야를 가려버렸다.
‘… 제길.’
흑무신공은 다른 무학들과 달랐다.
대성에 이르면 적의 신체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내뿜는 것이 특징이었다. 누구나 마음에 검은 생각을 품고 있으니까 흑무신공의 기운이 닿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온다.’
혈호패도가 오른쪽으로 사라졌다.
시야가 차단된 곳으로 신형을 날려 사각을 노리겠다는 의도였다.
휘이이잉.
불어오는 바람.
휘이이익.
바람 소리 안에 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본능적으로 검을 들었다.
채애애애앵!
한쪽 눈이 가려졌다고 혈호패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감을 극대화하면 어디로 공격이 들어올지 예상을 하고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혈호패도는 이미 막을 것을 예상이라도 했듯이 도의 기운을 한 곳에 모은 뒤, 빠르게 회전시켰다.
그제야 송삼현은 혈호패도가 무엇을 노렸는지 눈치챘다.
귀혼편을 부수려는 거였다. 자신이 용천회주, 흑사회주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콰아아아아아아앙!
한 점에 모인 도의 강기가 폭발하며 귀혼편이 일순간 송삼현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검의 모습이 사라지고 틈이 보이자 그 사이로 혈호패도의 장법이 송삼현의 가슴께로 날아왔다.
쿠구구구구궁.
손을 휘감은 내공은 일정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닌 사방으로 회전하는 난회전이었다.
그것이 가슴께에 닿자 금룡신갑은 ‘우우우우웅!’거칠게 반응했고 곧이어 왼쪽 어깨를 감싸던 통제가 풀려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송삼현은 그대로 날아가며 땅에 처박혔고 혈호패도는 날아간 송삼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 팔을 쳐다봤다.
주르르르륵.
검흔이 새겨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그 상황에서도 반격이라?’
멍하니 상처를 보다가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고 검은 기운이 더욱 사납게 꿈틀거렸다.
바닥에 떨어진 송삼현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귀혼갑이 몸을 휘감으며 내상을 치료했다.
“그딴 신물에 의존을 한 채, 몸 수련을 게을리하면 안 되지.”
“선배님이야말로 그딴 사특한 마공에 사로잡혀 이성의 끈을 놓으시는 거 아닙니까? 마공은 사람들의 기운을 잡아먹으면서 강해진다던데.”
혈호패도 초여상도 송삼현이 날아가기 직전에 새겨넣은 검흔을 치료한 뒤에 땅으로 내려왔다.
“… 네 놈은 어째서 그런 힘을 가졌음에도 이렇게 목숨을 거는 거지?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출세할 방법이 있지 않으냐?”
송삼현이 가진 무학은 혈호패도가 지금껏 봐온 무학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그런데도 승산이 없는 정파를 돕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천월신교로 입교하거라, 내가 너의 뒤를 봐주마.”
“출세하려고 검을 잡은 적은 없습니다. 거기다 마교와 한통속이 되라니, 차라지 죽는 게 낫지요.”
“…..”
“패도님은 도를 왜 잡으셨습니까?”
“그야 내 도가 천하에서 제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잡았지, 무학의 길을 걷는 이에게 다른 이유가 필요하더냐?”
그렇다.
무학을 익힌 무림인 대부분이 혈호패도와 같은 마음으로 무학을 익혔을 거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스윽.
그러나 송삼현은 달랐다.
이름을 알리거나 인정을 받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회귀를 하고 마음먹은 것은 그저 전쟁을 막고자 하는 마음뿐이지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패도님은 지키고자 하는 게 있으십니까?”
“지키고자 하는 거라? 굳이 강해지는 데 그런 것들이 필요하더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무의미해지는 것을.”
스르르르륵.
송삼현의 몸 주위를 휘감은 내공.
‘… 용?’
푸른 내공이 흘러나오며 연기처럼 변했고 그 연기는 용의 형상을 띄었다.
검은 기운을 모조리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기운.
그것들이 귀혼편으로 된 검과 동화하자 ‘우우우우웅’ 공명음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제가 이기겠군요.”
“뭐라?”
“저는 지키고 싶은 게 너무 많은지라.”
푸른 기운이 마치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였고 혈호패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찌···. 저런 아해가 이런 기운을 발현할 수 있단 말이냐.’
웃음이 났다.
그동안 보지 느껴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공력.
혈호패도는 도를 꽉 잡으며 어기충소로 하늘 높이 올라갔다.
씨익.
웃음을 짓곤 흑무신공의 기운을 발현했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 기운으로 된 검들이 무수히 많이 생겨났다.
‘도우(刀雨)’
촤라라라라락.
수는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수많은 도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건 다른 곳에서 싸우는 이들에게도 한눈에 보일 만큼 엄청난 광경이었다.
스윽.
압도적인 광경에도 송삼현은 표정 변화 없이 땅에 두 발을 대곤 허리춤에 검을 깊게 집어넣었다.
후우.
호흡을 길게 내뱉고는 검 주위로 내공을 모았다. 푸른 용의 기운이 검 주위로 빨려 들어갔다.
조금 더.
조금 더.
정밀하고 또 정밀하게 내공을 다듬었다.
그리곤 하늘을 뒤덮은 도들이 혈호패도의 손짓으로 일제히 비처럼 쏟아졌다.
‘천무 10식 검해(劍海).’
땅에서는 푸른 기운이 담긴 검의 형상들이 가득 채웠고 송삼현이 검을 휘두르자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도의 비들과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그렇게 두 사람의 초식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주변 일대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교도들은 사람이 일으키기는 재앙에 휘말리기 싫어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어느덧 곤륜파의 터전이던 곤륜산에서 온전한 건물을 찾아볼 수 없었고 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지며 화산의 분화구처럼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구멍 안.
그곳에선 혈호패도와 송삼현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내가 칠십이 다 되어야 얻은 경지를 너는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아 이뤘구나···. 이 무슨 괴물 같은 재능이란 말이냐.”
인간을 벗어난 것은 혈호패도만이 해당한 것이 아니었다.
송삼현도 인간을 벗어난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한 명은 자신의 도가 천하제일이라고 증명하고 싶어서.
다른 한 명은 자신의 검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의 손에는 서로 다른 목적이 담겨있었으나 서로를 죽이겠다는 의지는 같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렇게 두 사람의 싸움은 곤륜이라는 곳의 지도를 새로이 그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