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48
혈호패도 초여상 (3)
재해(災害)
이 단어 말고는 지금 상황을 설명할 다른 단어는 없었다.
하늘을 뒤덮은 도와 땅에서 솟아오른 검들이 주변 일대를 날려버리자 마교도들은 혼비백산하며 피하기 바빴다.
“아, 안 돼!”
하지만 여풍이 그들을 덮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폭풍우에 잡아먹힌 마교도들은 절명했고 비교적 먼 거리에 있던 다른 이들에게는 도망칠 틈이 생겨났다.
“지금입니다! 군사 어른!”
진법으로 사마언을 잡아둔 제갈귀호와.
“노사님! 빠져나가려면 지금뿐입니다!”
일행들과 마교도들을 상대하던 백운노사에게 활로가 열린 거였다.
빠져나가려면 송삼현과 혈호패도의 싸움에 마교도들이 휘말린 지금이 적기였다.
“이런!”
광무신창은 깜짝 놀랐다.
여파가 일대를 집어삼키며 다가왔고 황급히 무사들과 같이 제갈귀호를 잡아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났다. 그리고 그들이 안전한 곳에 다다르자 백운노사와 그 일행도 때마침 도착했다.
“다들 무사하오?”
“예, 괜찮습니다. 노사님은 어디 상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난 괜찮네, 그리고 자네가 부탁한 것도 다 챙겼고···. 그나저나.”
백운노사는 재해가 일어난 곳을 바라봤다.
“…. 백의검룡은 무사한 것인가?”
곤륜 일대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압도적인 무학에 제갈귀호를 비롯해 다른 이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토록 웅장했던 산이 순식간에 민둥산이 되고 화산처럼 분화구가 생긴다면 그 누가 믿겠는가.
“분명히 무사할 겁니다. 그리고 흑무신공을 대성에 이른 혈호패도와 저리 싸울 수 있는 건 백의검룡이 유일하니 저희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가 도울 것은 없겠지.”
“백의검룡의 무학이라면 우리가 돕는다고 해도 방해가 될 겁니다.”
섣불리 돕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송삼현에게 폐가 될 수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것이 곧 도와주는 거였다.
“합류지점으로 가시지요.”
“알겠네.”
그렇게 일행들은 마교도들이 추격이 시작되기 전에 신속히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제갈귀호는 걸음을 떼기 전에 곤륜의 정상을 올려다봤다.
‘부디 무사하게.’
무림맹을 비롯해 백운노사와 있던 비문 상단까지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간 이후, 여파에 휘말려 살아남은 마교도들이 정신을 차렸다.
진법에 빠져 움직이지 못했던 사마언은 측근이 감싸준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건물의 잔해를 밀어내며 일어났다.
“쿨럭.”
그리곤 주변에 널브러진 마교도의 시신을 보고 이를 바득 깨물었다.
“…. 제대로 당했군.”
제갈귀호가 진법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더구나 이런 피해라니.
예상한 것과는 아예 다른 결과였다.
“부 군사 어른!”
여파로 인해 왼쪽 팔 한 짝이 떨어진 마교도 한 명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 허공을 쳐다봤다.
“저기를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마언도 그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봤다.
“저게 뭐냐.”
계속 봐오던 곤륜산이 아니었다. 운남성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자랑하던 태산은 그 흔적이 일부 사라졌다.
빼곡하던 나무도.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개울도.
구름을 뚫을 듯 치솟던 전각도.
그 모든 것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 우리가 알던 곤륜이 맞느냐?”
더는 옛날의 곤륜이 아니었다.
*
콰아아아아앙!
도의 끝과 검의 끝이 맞닿자 기괴한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혈호패도는 도를 눕히며 송삼현의 공격을 흘렸고 품으로 도를 뻗었다.
그것을 본 송삼현은 검을 휘둘러 막으려고 했으나 검은 기운이 휘감긴 도는 뱀처럼 휘면서 검을 피해 품으로 파고들었다. 움직임이 마치 귀혼편과 흡사했다.
콰아아아아앙!
금룡신갑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뼈가 울릴 만큼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혈호패도는 도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자 의아해했고 곧 송삼현이 입은 백의가 살짝 찢어지며 안에 보이는 금룡신갑을 보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 어린놈이 얼마나 기연이 좋았으면 신물이란 신물은 다 두르고 있구나.”
“당신만 하겠습니까. 자기 몸을 신물로 만드는 무학이라···. 왜 십 년 전에 흑무신공의 비급서를 두고 정과 마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이 정도로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무학이라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는 게 이해가 됐다.
스르르르르륵.
다시금 흑무신공의 검은 기운이 혈호패도의 도를 휘감고 그게 파도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저릿.
흑무신공의 기운이 천무신공 기운과 맞닿자 송삼현은 온몸이 저릿해 오는 걸 느꼈다.
‘… 이건 뭐, 저번 삶에서 이 사람도 전쟁에 나섰다면 우리는 더 빨리 졌겠군.’
모든 걸 집어삼킬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혈호패도는 도를 들어 허공에 반원으로 휘둘렀고 도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검은 파도가 꿀렁였다.
암무신도(暗武神刀)와 흑무신공(黑武神功)이 합쳐진 초식.
여천여해(如天如海).
파도는 하늘처럼 높아졌고 바다처럼 깊어졌다.
강기를 품은 파도가 덮치기 직전, 송삼현은 반검의 자세를 취한 뒤에 검을 휘둘렀다.
‘천무 1식 개벽.’
푸른 기운을 머금은 검격이 땅 밑부터 하늘까지 나아갔다.
그 검격에 파도가 반으로 갈라졌고 갈라진 틈새로 귀혼편이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 혈호패도의 가슴께를 뚫으려고 했다.
혈호패도는 그것을 막아낸 후에 거리를 벌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몸을 감고 있는 그 신물을 어찌하지 않으면 너의 몸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겠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특한 기운을 없애지 않으면 목을 베지 못하겠군요.”
그 말을 들은 혈호패도는 크게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내 목을 벨 거라고 하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곧 그게 사실이 될 겁니다.”
둘의 경지는 비슷했으나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내공의 차이였다.
혈호패도도 칠십여 년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영약으로 도합 백 오십 년의 내공을 얻었으나 송삼현은 그보다 곱절은 되는 내공량을 자랑했다.
온갖 영약과 기연으로 인해 송삼현의 내공은 어느덧 인간을 벗어난 오(五)갑자, 삼백 년에 다다랐다.
스르르르르륵.
‘난 벌써 육 할의 공력을 꺼내썼는데 저놈은 내공은 도저히 예상되지 않는다.’
강대한 초식을 쓰면 쓸수록 내공이 소모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혈호패도는 이제 송삼현의 내공이 거의 바닥에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 생각 한 거였다.
‘…..’
송삼현의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내공의 양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흑무신공의 기운을 압도할 만큼 강맹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혈호패도는 공력을 쏟아부으며 송삼현의 목을 노렸다.
흑무신공의 사특한 기운이 송삼현의 온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룡신갑에 막혀서 흠집을 내진 못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장법을 날려 일순간 통제를 풀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내공이 서서히 소모되며 혈호패도는 연계를 이어가지 못했다.
‘쳇.’
스르르르륵.
손을 휘감은 흑무신공의 기운.
혈호패도는 승부수를 걸었다.
휘리리리리릭.
맹렬하게 회전하는 도로 일순간 통제를 푼 다음, 다시 보호하기 전에 흑무신공의 기운을 머금은 장법을 시도했다.
‘흑멸장(黑滅掌)!’
난회전을 하는 장법으로 만일 정통으로 맞는다면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 있었다.
퍼어어어어억!
장법은 금룡신갑의 벌어진 틈새로 들어가 송삼현에게 적중했지만.
스르르르륵.
혈호패도는 흠칫 놀랐다.
‘이게 뭐냐.’
난회전으로 들어가 심각한 내상을 초래하는 장법이었으나 송삼현의 몸 안에 있는 내공이 오히려 흑무신공의 내공을 흡수해버린 거였다.
흑무신공을 대성에 이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상성이 좋지 않았다.
금룡신갑 안에서 송삼현의 몸을 휘감은 영험한 기운.
무형의(無形衣).
환골탈태에 오를 때, 무림맹 천지굴에 있던 이무기가 승천하면서 남긴 기운이 발현된 거였다.
‘아니다···. 이 내가 실패할 리가 없어!’
콰아아아아앙!
아무리 휘둘러도 닿지 않는 거리.
카가가가가가각!
단 한 순간만 방심해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해갔다.
펼쳐지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혈호패도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질 수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먹자 흑무신공의 기운이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통제를 잃은 흑무신공의 기운에 송삼현의 기운이 침범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인식을 뒤틀 틈을 내주는 계기가 됐다.
뚝.
‘응? 뭐지?’
뚝.
‘…. 비가 오는 건가?’
송삼현의 기운이 흑무신공의 기운을 압도하며 혈호패도의 인식을 뒤틀었다.
스스스슥.
눈을 비빈 혈호패도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송삼현의 기운에 압도되어 인식이 뒤틀렸다는 걸.
‘흑무신공의 기운을 뒤트는 순도 높은 내공이 있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흑무신공이 사특한 기운의 정점에 있다면 송삼현의 기운은 정순한 기운의 정점에 있었다.
무형의의 기운으로 매일 같이 운기조식을 하며 내공의 질을 높인 이유가 이제야 효과를 발휘하는 거였다.
“그만 끝내겠습니다.”
한 방울씩 오던 비는 곧 폭우로 변했고 송삼현의 신형이 비와 함께 사라졌다.
*
챙!
챙!
챙!
‘검이 점점 빨라진다.’
혈호패도의 숨은 점차 차올랐고 가까스로 송삼현의 검을 받아냈다.
눈 앞을 가리는 폭우를 뚫고 들어오는 검은 달빛을 머금으며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촤아아아아악!
닿지 않았던 곳도.
촤아아아아악!
닿기 시작하자 혈호패도의 왼쪽 뺨에 검흔이 그어졌다.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온 검격에 피가 흘러나오자 혈호패도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곤 도를 휘둘러 송삼현의 복부를 걷어 올렸다.
베려는 목적이 아닌 거리를 떨어트리려는 목적이었다.
퍼어어어억!
온 힘을 주고 휘두른 도는 송삼현의 몸을 허공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
‘끝을 내야겠다.’
만일 여기서 싸워도 이제 일각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온 공력을 쏟아부어 송삼현의 목을 노리고자 했다. 기운을 방출하자 흑무신공은 혈호패도의 오른쪽 팔을 잠식해갔다.
불에 탄 것처럼 검게 그을리는 팔.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으나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 이것이 아니면 송삼현을 이길 방법이 없었으니까.
쿠구구구구궁.
바닥에 있는 돌들이 일제히 기운에 화답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흑암도성(黑暗刀星)’
밤하늘처럼 검은 하늘이 도에 담겼다.
그리고 도는 달빛을 받으며 마치 별처럼 반짝였다.
허공에 뜬 돌들에 흑무신공이 덧대어지며 별똥별처럼 쏘아졌다.
도의 현상을 하며 유성우(流星雨)처럼 날아왔으나 송삼현은 속지 않았다.
그것들은 다 흑무신공이 만든 허상이었기에 자세를 다 잡고 어기충소로 하늘로 치솟아 오른 후에 혈호패도를 바라봤다.
절세의 무학을 익혔지만, 아직 다루는 게 미숙했다.
통제를 잃어가며 기운에 서서히 잡아먹히는 것을 본 송삼현은 속히 끝낼 생각으로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곤륜 전체를 휩쓸 폭풍우가 불어오더니, 그것이 송삼현의 검에 고스란히 담겨갔다.
‘풍표전격(風飄電激).’
휘이이익!
검을 아래로 휘두르자 검격이 폭풍우처럼 몰아쳤다.
흑무신공으로 만든 허상은 모조리 폭풍우에 집어삼켜졌고 검격은 혈호패도에게 곧장 날아갔다.
그것을 본 혈호패도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이런 괴물 같은 놈을 봤나! 이것이 어찌 사람이 품는 힘이란 말이더냐! 하늘은 너에게 크나큰 선물을 주셨구나!”
풍표전격을 정면으로 받았다. 혈호패도의 온몸은 넝마가 되어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검흔이 새겨져 피가 솟아올랐다.
몸을 검게 그을리던 흑무신공의 기운은 서서히 사라졌다.
몸이 단단해 산산조각은 나지 않았지만, 더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뒤로 넘어졌다.
“…. 내가 죽는 건가.”
그토록 최고의 도를 추구했지만, 결국에는 오르지 못했다.
털썩.
뒤로 넘어진 혈호패도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밤하늘에 뜬 달이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서 혈호패도에게 다가온 송삼현은 그를 내려다봤다.
“네가 원하는 것은 교주님의 목이더냐?”
“…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 내 목보다 어려울 거다. 교주님은 이미 한 참 전에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됐으니까.”
“각오는 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건.”
“베거라, 이제는 그만하고 싶구나.”
칠십 평생을 무학에 몸을 바쳤다.
그렇게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경지에 오르고 싶었으나 오르지 못했다.
결국에는 하늘의 선택을 받지 못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묻겠다.”
“….”
“하늘의 선택을 받은 기분이 어떠하더냐?”
피를 토하며 묻는 혈호패도를 보며 송삼현을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쿨럭···. 아직 모르겠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로다.”
송삼현이 든 검이 달빛을 받아 빛을 일렁였다.
그리곤 곧장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악!
정수리부터 고간까지 베었다.
시야가 어긋나기 시작하자 혈호패도는 하늘에 뜬 달을 바라봤고 달이 반으로 갈라졌다.
‘달을 벤 것인가.’
스르르르륵.
‘아니군···. 내가 베어진 거로군.’
혈호패도는 반으로 갈라지며 숨이 끊어졌고 그의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흑무신공의 기운은 허공으로 퍼지며 사라졌다.
‘만일 흑무신공의 기운이 혈호패도의 정신을 빼앗고 폭주했다면···.’
송삼현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지금 쓰러진 건 혈호패도가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