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5
예가 무엇인지 물었느냐 (1)
금호무회가 끝났지만, 진짜 끝은 아직 아니었다.
비무회는 끝났어도 금호장을 찾은 고관대작들은 어떻게든 진왕 전하에게 얼굴을 비추려고 했고 그들을 상대하는 건 송우태의 몫이었다.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라 청월각 연무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차근차근 쌓았다.
‘어린 시절부터 유운심법으로 내공이 흐를 혈맥을 뚫어놔서 천무심법의 흐름에 막힘이 없어, 천무심법의 효능이 이토록 좋을 줄이야.’
저번 삶에서는 열다섯에 무공을 처음 접해서 일갑자의 내공은 마흔 살에 간신히 이뤘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을 생각하면 사람은 역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한 식경 가량 천무심법으로 내공 운용을 마친 후, 검술 수련에 들어갔다.
매일 같이 천무신검에 유운검법의 묘리를 접목하다가 한 가지 동작이 떠 올라 그것을 다듬는 데 집중했다.
‘천무신검의 색을 지우지 말고 유운검법을 색에 맞게 변화를 줘야 한다.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것처럼.’
손목의 움직임.
발의 보폭.
검이 나오는 속도.
모든 것을 계산해 신중하게 나아갔다.
“뭐 하고 있느냐.”
말이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군주마마가 우향이와 같이 청월각 연무장으로 들어오고 계셨다.
“이곳은 또 어쩐 일이십니까?”
“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너의 어머니를 뵈러 왔다.”
“저희 어머니를요?”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며칠 전부터 이곳에 차를 마시러 자주 들렸다. 그때마다 청월부인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지.”
“재미있는 이야기요?”
“예를 들어 너의 어릴 적 이야기 같은 거?”
“너무 파고들지 마시지요. 저에게도 지키고 싶은 비밀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마.”
군주마마와 어머니랑 가깝게 지내니 좋구나.
“그러면 난 이만 가보마. 수련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그러면 살펴 가십시오.”
“또 보자꾸나.”
정중하게 포권을 올렸고 군주마마가 어머니가 계시는 전각으로 가는 것을 보고 다시 검을 들어 수련을 시작했다.
*
사람들은 유등을 들고 저자를 돌아다녔고 난 어째서 여기에 송이현과 변복을 한 왕세자마마, 군주마마랑 같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군주마마, 이번에도 꽃무늬가 들어간 붉은 유등을 찾으시옵니까?”
송이현은 군주마마의 옆에서 극진히 보필했다.
“아니다. 올해는 좀 다른 걸 찾고 있으니 괜한 신경 쓰지 말고 너도 띄울 유등을 고르도록 하거라.”
“네! 마마, 전 왕세자마마께서 당과를 드시고 싶다고 하여 잠시 사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무언가 불편한 게 있으면 삼현이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알겠다.”
송이현은 잽싸게 당과를 사러 갔고 난 군주마마와 유등을 골랐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말이 들려왔다.
“감히 나에게 이런 유등을 팔겠다는 것이냐? 남경 유등 축제는 명성이 높더니 파는 건 형편없구나!”
그곳에는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미공자 느낌을 풍기는 남자가 서 있었다.
“한림학사의 아들이군.”
“아시는 사람입니까?”
“예전에 황궁에서 본 적이 있다. 삼 년이나 흘렀음에도 저 오만한 성격은 아직 고쳐지지 않은 모양이구나.”
옆에서 군주마마의 말이 들려오며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황제의 측근인 재상 후보로 오른 한림학사의 아들이었다.
“아이고! 나으리,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유등을 보시겠습니까?”
“됐다! 기분이 상했구나!”
그러다가 유등을 땅에 던지고서 가려고 했다.
이대로 가려고 했는데 저자 남주인과 눈이 마주쳤고 망설이다보니 어느덧 한림학사의 아들이 내 앞으로 왔다.
“썩 길을 비키지 못할까! 이분은 대 한림학사 유평수 대감의 아들! 유호천 공자시다!”
옆에 수하들이 누군지 설명할 때, 저자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금호장의 삼 공자님이 아니신가!”
금호장의 삼 공자라고 하자 한림학사의 아들 주위에 있던 이들이 웅성거렸고 이내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삼 공자라면 그 반푼이 공자가 아닌가?”
“그렇소.”
“나는 대 한림학사 유평수 대감의 아들 유호천이다! 예를 갖추지 못하겠느냐.”
금호장의 이름이 높으니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금호장의 아들에게 정중한 예를 받으며 체면을 차리고 싶은 것이 확 보였다.
어쨌든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의 아들이니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 포권을 올려 예를 갖춘 뒤에 이대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반푼이라 그런가?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니구나.”
“유등 띄우러 오셨으면 유등만 띄우고 가십시오. 보는 이들이 많으니 아비의 이름에 먹칠이 갈까 우려됩니다.”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괜한 시비를 걸지 말고 가시던 길 가시라는 말씀입니다.”
한림학사 주위에는 다른 고관대작 자제들도 있었다.
누군가를 깔아뭉개고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삼류 무인보다도 못한 심보를 지닌 녀석이었다.
“그대들이 하는 것도 그다지 예라고 불릴 만한 것이 아니라 사료되네. 안 그런가?”
어느새 당과를 사 온 송이현의 말이 들렸고 유호천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이 공자, 자네에게는 악감정이 없네. 저 삼 공자가 너무 건방지지 않은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 동생이네.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겠나?”
오, 송이현이 뭐 하는 일이냐? 이게 뭐 그건가? 욕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못 보는 그런 거?
“내 자네 얼굴을 보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삼 공자에게 윗사람으로서 예를 가르쳐야겠네.”
송이현의 친우라면 이제야 열여덟이 된 아이들이 윗사람으로서 예를 가르친다고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명백히 따지면 면전 앞에서 반푼이라고 깎아내린 것은 예가 있는 행동이십니까.”
“삼현아, 그만하거라.”
송이현이 좋게 말해서 끝내려고 했는데 유호천은 뒤에 있던 호위무사에게 손짓해 무언가를 지시했다.
“어, 어어어! 공자님!”
군주마마와 왕세자마마를 뒤쪽으로 모신 후, 강 무사가 다급하게 이야기하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내가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이것쯤은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다.
짝!
보는 이가 많은 곳에서 한림학사의 아들이 아닌 그의 뒤에 있던 호위무사가 다가와 뺨을 때렸다.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내가 반격을 하려면 정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
“이게 무슨 짓이냐!”
오히려 발끈한 건 군주마마 쪽이었다.
허나 여기서 군주마마와 왕세자마마의 신분이 노출되면 유등을 띄워보지도 못한 채, 금호장으로 돌아가야 하니 우향이가 필사적으로 막았고 송이현도 군주마마를 말렸다.
군주마마의 신변이 드러나기 전에 황급히 전음을 보냈다.
[전 괜찮습니다. 그러니 군주마마도 노기를 가라앉히십시오. 아직 이들은 군주마마와 왕세자마마의 정체를 모르니 제가 잘 해결하겠습니다.]
유호천은 마치 자기가 우월한 듯 어깨를 펴고 나를 바라봤지만, 저 녀석은 지금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가 보다.
후에 군주마마와 왕세자마마가 진왕 전하께 이 사실을 알리면 그것을 어찌 감당하려고.
“예를 갖추시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놈이 여기 하나 더 있었네.
“거꾸로 묻겠소. 그대가 지금 행한 것은 예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 예라는 것이오. 유 공자님이 그대보다 위니, 예를 갖춰야 하지요.”
“예는 위와 아래의 경계가 없소. 아랫사람이 갖춰야 하는 예가 있다면 윗사람이 갖춰야 하는 예가 있는 법이오.”
내 뺨을 때린 호위무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에 멘 커다란 중도와 곰처럼 거대한 몸, 저자 한림학사의 호위무장인 철웅검이군, 사람이 표정이 없고 벽처럼 딱딱하다지?”
“검의 실력은 또 어떻고, 검풍으로 세 명의 무인을 날려버린 일화는 유명하지 않나. 금호장 삼 공자님이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난 모양일세.”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고 철웅검을 바라봤다.
저번 삶의 기억을 뒤져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단 무사, 덩치는 가히 산처럼 크구나.
“왼손으로 때렸구려. 검은 어느 손으로 잡소?”
스릉.
“보시겠소?”
커다란 중검을 빼서 내 목을 겨누자 주변에서 보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왼손이군.”
스윽.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철웅검이다 뭐다 하는 놈의 왼손을 벨 기세로 검을 뻗다가 왼손목 위에서 멈췄다.
철웅검이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쾌검.
난 고개를 돌려 한림학사의 아들을 바라봤다.
“황궁에도 법도가 있지만, 강호에도 많은 이들이 모르는 법도가 있소.”
“…..”
“자기 몸에 해를 입힌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내라는 법도요. 안 그렇소 철웅검? 이라고 했나?”
“뭐라 하는 것이냐! 당장 이 검을 치우지 못할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먼저 검을 꺼내 날 위협한 것은 그쪽이오. 그러니 이제 내가 무엇을 하든 나의 행동에는 정당함이라는 명분이 있소.”
시선을 거두고 군주마마의 시녀 우향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군주마마의 눈을 가리시오. 지금 당장.]
우향이 어쩔 줄 몰라 하더니 황급히 군주마마의 시야를 가렸고 그 틈에 강 무사는 왕세자마마의 시야를 가렸다.
귀한 분들의 눈을 더럽힐 수는 없지.
그제야 한림학사의 아들은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말리려고 했다.
“자, 잠깐.”
“돌이키기엔 늦었소.”
철웅검이 다급하게 내 목에 겨눈 검을 거둬들이려 했지만, 내 검의 속도가 그가 검을 거둬들이는 속도보다 빨랐다.
촤악!
“변명은 검을 들기 전에 했었어야지.”
모든 언(言)과 행(行)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것이 강호를 비롯한 모든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 법칙이었다.
이와 같은 법도대로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 그에 따른 책임도 마땅히 져야 하는 거 아니겠나.
“앞으로 칼이 아닌 다른 것으로 벌어먹어야 할 거요.”
강호의 도리대로 날 위협하는 상대를 베어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악!”
철웅검의 왼손과 커다란 검이 땅에 떨어지고 피가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곰같이 커다란 철웅검의 몸이 애벌레처럼 쭈그러들었다.
근처에 있던 고관대작 호위무사들이 달려들려고 했지만, 우리 쪽 호위무사를 보고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저벅.
저벅.
난 철웅검에게 다가갔다.
내가 걸을 때마다 주위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원래 이리 주목받는 것은 나중 일이라 여겼는데 칠견 사추도를 상대한 후에 송우태가 내가 절정에 올랐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는 없었다.
멈칫.
걸음을 멈추자 내가 철웅검을 어떻게 할 것인지 보는 이들이 많았고 내가 하는 말이 그들의 귀로 전해졌다.
“그대가 내 몸을 상하게 한 대가를 가져간 것이니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오. 강호란 원래 그런 거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