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50
의지를 잇다 (2)
며칠 전.
섬서성 서안의 서쪽 ‘안후산’
기암절벽들이 즐비한 험난한 산속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밤낮의 구분 없이 들려왔다.
화르르르륵.
작은 불씨로 시작한 불꽃이 시간이 지나자 거대한 화마가 되어 세상을 집어삼켰다.
그 화마 속에서 정파와 마교는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죽어라!”
“이것들이 어딜!”
“절대 정파 놈들에게 밀리면 안 된다!”
“끄아아아아악!”
“아, 안 돼!”
수적으로 열세에 빠진 맹은 크게 밀렸고 지속된 전투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교주님이 계신다! 교주님을 위해서!”
독고룡의 압도적인 무학을 앞세운 마교를 정파가 이길 방도는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손짓 한 번에 강이.
쿠구구구구궁!
발길질 한 번에 산봉우리가 날아가는 모습에 정파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산이 사라지고 강이 사라지며 결국에 맹은 이틀이 걸린 전투 끝에 막다른 곳으로 몰리며 마교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크윽.”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은 무수히 많은 마교도들을 베었지만, 수적인 열세가 컸다.
마교의 피해도 없진 않았다.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과 여러 고수들의 합으로 마교에서 이름을 날리던 고수들도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수는 적지만, 정예들이 많은 정파와.
정예들은 적지만, 수가 많은 마교.
그러나 그것들을 무시하고 승리를 결정 짓는 것은 단 한 명의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맹주, 괜찮으십니까.”
구창룡의 오른쪽을 지키는 사람은 무당파 청엽진인 장유봉이었다.
“난 괜찮소. 다친 이들을 보살피시오.”
“무당의 검들이여! 절대 마교의 검이 정파의 심장을 도륙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무당파의 제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전황을 뒤바꿀 요소는 없었다. 그저 죽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백의검룡! 백의검룡은 언제 오는 것이냐! 저자를 상대할 자는 백의검룡밖에 없거늘!”
청성파 일성군자(一性君子) 벽해호의 말에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백의검룡만 있었다면.’
‘우리가 이토록 밀리지 않았을 텐데.’
독고룡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송삼현이 있었다면 상황은 아예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에 ‘만약’이라는 말은 소용없었다.
“선천진기를 쓴다 해도 저 괴물을 어찌할 방도는 없습니다.”
시체가 산처럼 쌓인 그 위에 가만히 앉아서 군림한 사람을 본 무림맹주 구창룡의 손은 떨렸다.
“…..”
시체 산 위에 앉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독고룡의 눈은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들을 보듯 정파 고수들을 바라봤다.
“무의미한 발악을 하는구나.”
스윽.
그러다가 주위를 바라봤다.
정파 무사들의 시체 사이에 보이는 마교도들의 시신이 눈에 밟혔다.
“그래도 대단하다. 그 수로 이토록 저항을 할 수 있다니···. 그러니 더더욱 살려둘 수 없구나.”
음성에도 내공이 실리며 자연스레 주위를 억눌렀다.
기운을 버티지 못한 맹의 무사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힘겹게 버텼고 구창룡은 두 발로 땅을 지지하고서 높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악귀를 노려봤다.
“참으로 거슬리는 눈빛이로다.”
독고룡은 손을 치켜들고선 무심하게 내리쳤다.
그 손에서 강기가 흘러나와 검의 형상을 띄었고 그것이 구창룡에게 쇄도했다.
카가가가각.
검강을 발현하며 참격을 막았으나 호신강기가 서서히 깨지기 시작하며 참격이 몸에 닿고 말았다.
촤아아아아악.
“매, 맹주님!”
독고룡의 손에서 나온 강기가 구창룡의 호신강기를 뚫고 복부를 크게 베었다.
“맹주님을 보호하라!”
기운에 억눌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무사들은 억지로 내공을 운용하면서 구창룡 주위를 에워쌌다.
“크윽.”
피가 나오고.
“괜찮으십니까!”
내상을 입었으나 그들은 오로지 구창룡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로 고통을 감내했다.
“속히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제가 시간을 벌 테니 청엽진인께서 맹주님을 모시고 빠져나가십시오!”
쓰러진 구창룡을 부축했고 구창룡은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이 남고자 했다.
“어찌 이곳에 자네들만 남겨놓고 가겠는가! 어차피 이런 상처를 입었으니 짐만 될 뿐! 자네들이 살아야 하네!”
구창룡의 말에 청엽진인은 수혈을 찌르며 구창룡을 재웠다.
“…. 이럴 수밖에 없는 저를 용서하여주십시오.”
청엽진인 장유봉은 구창룡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자신이 남으려고 했지만, 최후의 결사대로 남고자 한 건 청성파 일성군자(一性君子) 벽해호가 이끄는 청성의 무사들이었다.
“자네는 맹주님의 곁을 지키게.”
“허나!”
“우리는 아직 서른여섯의 사람이 있네, 무당은 스물의 고작이잖나. 시간을 벌려면 우리가 남는 게 제일 나아. 그리고 부탁 하나 함세.”
“…..”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청성의 남은 아이들을 보살펴주게나.”
죽음을 결심한 눈빛을 보곤 청엽진인의 입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일성군자의 간곡한 말에 청엽진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일성군사가 소리치자 청성파가 다른 무사들의 곁을 지나 일선으로 나왔다.
후우.
죽음을 앞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정파의 생존자들을 눈물을 머금고 속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을 쫓으려던 마교도들은 청성파가 몸을 날려 막아냈다.
“누구도 뒤쫓게 하지 마라!”
그렇게 일각이 흐르며 정파의 고수들이 멀리 간 것을 느낀 일성군사 벽해호는 자신의 검을 하늘 높이 올렸다.
“적들이 두려우냐!”
“아닙니다!”
“죽는 것이 두려우냐!”
“아닙니다!”
“청성의 무사들이여! 검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고 나아가라! 우리의 가족을 위협하는 악귀들을 처단하라!”
와아아아아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곳에서 흘린 피가 흐르고 흘러 청성에 닿아 더 번영하게 될 것이니!”
일성군자 벽해호의 검에 푸른 검강이 깃들며 나아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치열한 혈전이 다시 벌어졌다.
독고룡은 흥미를 잃었다는 듯 시체 산 위에서 가만히 앉아 그들을 내려다봤고 그 앞은 또 다른 악귀들이 막아섰다.
“정파놈들이 겁을 상실했구나!”
“무분별한 살육을 벌이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정도를 걷는 이들의 숭고한 뜻을 어찌 알겠느냐!”
콰아아아아앙!
싸움의 소리가 점차 멀어졌고 구창룡이 정신을 차렸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했다.
“일성군자는 살 겁니다. 분명히 살 친구입니다.”
“…..”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맹주가 흔들리면 정도 무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잘 알지 않으십니까!”
평소에는 인자하고 모든 이들을 품을 대군자였으나 전쟁에서 패퇴를 거듭하며 구창룡은 자신의 무능함을 한 없이 비판하고 또 비판했다.
내가 맹주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맹주였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가 매일 밤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맹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이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마지막 일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구창룡은 청엽진인과 다른 장문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에 떠 올랐다.
‘백의검룡 송삼현.’
독고룡을 상대할 자는 그밖에 없었다.
구창룡은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았고 이내 찾자 그곳으로 갔다.
“넌 어서 백의검룡에게 돌아가라!”
구창룡이 말을 건 것은 송삼현의 수하인 선무정이었다.
“하지만 제가 앞장 서는 것이!”
“이 소식을 알리는 것이 먼저다! 어서!”
선무정의 경공으로 안전한 길을 확인한 후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구창룡은 그것이 더 급하다고 여겼고 그 순간.
휘이이이이익.
하늘에서 신형 하나가 나타났다.
“사, 사부님!”
선무정은 깜짝 놀랐다.
그는 다름 아닌 천하제일의 경공 고수, ‘천음산보’였으니까.
“넌 어서 가보거라.”
“사부님이 어찌 여기에!”
스윽.
천음산보는 피를 흘리는 구창룡을 바라봤다.
“오랜 벗이 궁지에 빠졌다는 데 도우러 와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나저나!”
딱!
“아아아아! 아픕니다!”
“어서 가라고 했지! 계속 농땡이 부릴 거야? 강호에 보냈더니! 이게 말대꾸만 늘었구나!”
“갈 겁니다! 안 그러셔도 지금 출발하려고 했다고요!”
선무정이 가려고 하자 구창룡이 말을 남겼다.
“융제다. 융제로 오라고 하거라. 그리고 이걸 받거라.”
구창룡이 피를 흘리면서도 품에서 꺼낸 것은 금패였다.
그것을 본 이들은 화들짝 놀랐다. 금패를 준다는 의미는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걸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알았다.
“백의검룡에게 전해주거라.”
“예!”
선무정은 경공을 펼치며 현장에서 빠져나온 뒤, 운남으로 향했고 천음산보는 구창룡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항상 무모한 짓만 하는구나.”
“사람이 쉽게 변하면 안 되지 않나.”
“융제까지의 길은 내가 안내할 터이니 뒤나 바짝 쫓아와. 마교놈들이 추격을 시작했으니까.”
신형을 날리는 천음산보를 본 구창룡은 나지막이 말했다.
“…. 고맙다.”
“고맙긴 개뿔, 이 일이나 끝나면 술이나 한잔 사!”
등만 봐도 든든한 벗을 본 구창룡은 그렇게 스르르륵 의식을 잃었다.
*
이 말을 들은 이상,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바로 떠나겠습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정리하고 반나절 뒤에 출발하겠네, 먼저 가서 맹주님을 꼭 구해주게나.”
“알겠습니다.”
바닥에 놓인 패를 들고일어나자 제갈귀호가 일어나서 포권지례를 올렸다.
이제 패를 가진 송삼현이 곧 그가 모셔야 하는 맹주 대행이었으니 예를 갖추는 거였다.
“….. 확실하시네요.”
“맹의 패를 가진 분이 곧 맹이니까요.”
제갈귀호의 예를 받은 뒤에 방에서 나왔다.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는데 제갈귀호가 뒤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맹주님의 의지를 백의검룡이 이어받았다! 이제 곧 백의검룡이 맹이니! 그의 명을 따르거라!”
그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다가 이내 송삼현의 허리춤에서 빛나는 금패를 보더니 광무신창을 시작으로 모두가 포권지례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송삼현은 걸음을 멈추고 제갈귀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맹주님께 패를 전해드려야겠네요.”
“부담스러우십니까?”
“엄청요.”
“감당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백의검룡이 받을 시선은 이보다도 더 부담스러운 시선들 뿐이니까요.”
“…. 저희 둘만 들릴 때는 편히 말씀해주시면 안 됩니까?”
“무림인의 청력이 얼마나 예민한데요. 여기서 편히 해도 객잔 안의 무림인들에겐 다 들릴 겁니다.”
송삼현이 어색한 웃음을 짓자 제갈귀호는 전음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다. 그 패를 가진 사람이 맹주의 대우를 받는 것은 강호가 설립되고서부터 이어진 규율이니까.]
[전음이 편하네요.]
[언제까지고 전음을 할 수 없잖나, 패를 가지고 있는 동안 자네가 곧 정파의 정점이니, 그 마음을 잃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일 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사월향을 바라봤다.
“사 소저, 같이 가시지요.”
“저도요?”
“예, 맹주님만이 아닌 많은 분이 다쳤을 겁니다. 사 소저의 도움이 절실할 거예요.”
송삼현의 말에 제갈귀호도 수긍했다.
“그러는 게 좋겠다. 네가 가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야. 나도 이리 부탁하마.”
“아아아아! 고개 드세요! 안 그러셔도 제가 부탁해서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월향도 같이 가기로 했고 객잔 밖으로 나가 미리 준비한 말에 올라탔다.
무림맹이 패퇴한 융제까지는 말을 쉬지 않고 달려도 족히 이레는 걸리니까 한시라도 빨리 출발해야 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따라 나온 제갈귀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뒤로 광무신창, 백운노사, 황룡대를 비롯해 비문상단과 형산파도 있었다.
“비문 상단과 형산파 분들은 마을을 재건하는 쪽으로 합류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척.
제갈귀호를 시작으로 뒤에 있던 이들도 모두 포권지례를 올렸다.
“무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