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52
의지를 잇다 (4)
융제에 있는 무림맹 지부 안은 처참했다.
마교와의 일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크게 다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의원들이 바삐 부상자들의 상처를 살폈다.
멀쩡한 사람들이 드물었다.
청엽진인 장유봉의 안내를 받으며 장원을 걸으며 상황을 살피자 익숙한 얼굴도 몇몇 보였다.
사천당가의 깃발 아래에서 꼬질꼬질한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하는 당수향.
제갈세가의 깃발 아래에서 공손히 포권지례를 하는 제갈소소.
남궁세가의 깃발 아래에서 흐뭇하게 웃는 남궁상룡과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남궁효우.
화산파의 도사들, 아미파의 여승들까지 다들 이곳에 있었다.
“오시느라 힘드시진 않으셨나요?”
“편히 말씀하세요.”
“그건 안 되는 말씀입니다. 금패를 가진 분이 곧 무림의 대표이니, 당연히 존대해야지요.”
제갈귀호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뼛속까지 정도 무림의 그 자체였다.
앉아서 쉬던 이들은 송삼현과 청엽진인 장유봉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포권지례를 올렸고 인사를 받으며 걷자 금방 무너진 전각에 도착했다.
“맹주님은 이 안에서 천하봉선님께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맹주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온전히 기력을 회복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긴 시일이라···.”
이건 큰 문제였다.
정도 무림을 이끄는 구창룡이 전쟁에 나서지 못한다면 아군의 사기는 바닥을 칠 게 불 보듯 뻔했다.
“청엽진인께서 오셨군요.”
“고생 많으십니다. 옥화사태님.”
문 앞에서 호법을 서는 사람들은 아미파 장문인 옥화사태(玉花師太)와 아미오승이었다.
“아미오승이 백의검룡을 뵈옵니다.”
“옥화사태와 아미오승 분들을 뵙습니다.”
마주보며 포권지례를 올렸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길을 비켜줬다.
“백의검룡이 오신다면 안으로 들이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청엽진인과 이 층으로 올라가다가 방 앞에서 청엽진인의 발은 멈췄다.
“들어가시지요.”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르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가 몰아쳤다.
바닥에는 피를 닦아낸 천이 나뒹굴고 온갖 약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하봉선은 땀을 흘리며 구창룡의 치료에 몰두했고 그녀의 곁에는 의원들 다섯이 수발을 들며 온 힘을 쏟았다.
“조모님!”
사월향이 말하자 그제야 천하봉선은 두 사람을 보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오셨군요.”
“다 사 소저 덕분입니다. 사 소저가 길을 잘 알려줘서 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월향은 송삼현의 칭찬에 미소를 지었고 천하봉선은 사월향을 바라봤다.
“월향이는 가만히 있지만 말고 손을 보태거라. 삼백근 말린 가루를 천에 감싸서 상처 부위를 봉합하고.”
“예! 조모님!”
의술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송삼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떻게든 상처를 낫게 하려고 필사적인 그들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후우.”
천하봉선이 구창룡이 몸 안으로 내공을 주입해 막힌 혈도를 뚫으려고 했지만, 며칠 새 잠도 못 자고 구창룡의 상처를 돌보는 바람에 기력이 쇠해 하지 못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송삼현이 나서자 천하봉선은 미소를 지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누워있던 구창룡의 몸을 일으킨 뒤, 양쪽에서 의원들이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송삼현은 구창룡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 몸에 내공을 흘렸다.
스르르르르륵.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따뜻한 기운.
‘…. 참으로 정순한 기운이로구나.’
천하봉선은 내공의 정순함을 느끼곤 깜짝 놀랐다.
지금껏 숱한 무림인의 내공을 살펴봤지만, 송삼현만큼 정순한 기운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벌모세수를 해줬을 때보다 내공의 질이 한층 정순해졌구나···. 하늘이 내린 천재라더니, 그 말이 헛말이 아니었어. 진정 하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로다.’
그렇게 반 시진 가량 송삼현은 구슬땀을 흘리며 구창룡의 몸 안에 막힌 혈도를 뚫어 새로운 진기를 주입했다.
쿨럭.
그리고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한 구창룡은 검은 피를 토해냈다.
“윽!”
의원 한 명이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더.
정교하게.
스르르르르륵.
송삼현의 손끝에서 시작된 정순한 내공이 구창룡의 몸을 순환했다. 그리고 혈맥이 다 뚫리고 탁기가 다 나오자 몸 안에 넣은 내공을 갈무리한 후에 심호흡을 내뱉었다.
사월향이 천을 가져와 흐르는 땀을 닦아줬고 천하봉선은 구창룡의 진맥을 보곤 활짝 웃었다.
스르르륵.
한없이 감겼던 눈이.
“왔구나···.”
“살아계신 모습을 보니 다행입니다.”
떠졌다.
*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스쳐갔다.
“맹주님이시다!”
밖으로 나온 구창룡을 본 무림인들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구창룡에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송삼현은 묵묵히 그 옆을 걸었다.
의식을 차린 구창룡과 간 곳은 다 무너진 전각이었다. 그곳은 무림맹 지부의 본각이었던 곳으로 무너진 잔해 사이,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비석이 하나 있었다.
‘盟’
거기 새겨진 것은 무림맹의 지부라는 걸 증명하는 글귀였다.
“이 맹이라는 글자 아래 칠십여 개의 문파와 수십 개의 세가들이 모여 ‘정도(正道)’를 대표하고 수호한다.”
“예.”
“내가 너에게 패를 넘긴 이유를 알겠느냐.”
“…..”
“맹이라는 글자 아래 모인 정도 무림의 모두가 너의 말 한마디, 너의 행동 하나하나에 목숨을 건다는 의미다.”
뒤를 보자 수많은 정파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마교들의 공세를 대비해서 진을 구축하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부담이 될 거다. 강호의 운명이 걸린 큰일을 어린 너에게 맡기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상황이 이리되고 보니 믿을 사람은 너뿐이더구나.”
독고룡과 두 번을 싸우면서 든 생각은 오로지 송삼현만이 그를 막을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린 나이에 현경에 오른 하늘에서 내린 천재.
하늘이 내린 악귀인 ‘천마’를 이길 자는 오직 하늘이 내린 천재뿐이었다.
“그 패를 들고 네가 정도 무림의 앞에 서거라. 나는 너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겠다.”
구창룡의 말에 패를 만지작거렸다.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이냐, 마교놈들이 벌써 이곳까지 온 것이더냐?”
“마교의 군세 천 명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일 차 방어선을 책임지던 무영문, 강우문, 창일파가 순서대로 격파됐습니다!”
“현재 마교의 위치는?”
“우룡강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곧 도강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식을 듣곤 황급히 장원으로 갔다.
그곳에선 곧 들이닥칠 마교를 대비해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었고 송삼현은 구창룡과 앞으로 가다가 천유현을 보곤 걸음을 멈췄다.
“사형!”
천유현이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래, 잘 지내고 있었느냐?”
“저는 잘 지내고 있었지요. 그보다 마교도들이 온 것 같습니다.”
“들었다. 넌 지금 어느 곳과 같이 행동하고 있느냐.”
“적화대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속히 그곳과 합류해라, 이야기는 저것들을 몰아낸 뒤에 나누자꾸나.”
“네! 사형!”
천유현은 적화대가 있는 곳으로 갔고 송삼현은 무너진 성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정면을 응시했다.
정파 고수들은 일제히 장원으로 모여들었다.
밖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음에 무기를 쥐고 당장이라도 출수할 기세를 내뿜었다.
‘밖에 있는 마교도의 수는 적어도 천.’
천 명의 마교도와 오백의 정파 고수.
경지가 낮은 마교도들 뿐이라 막아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천 명의 마교도 사이에서도 강맹한 기운을 내뿜는 한 명.
‘설마.’
송삼현은 익숙한 기운에 저번 삶의 기억이 떠올랐다.
*
콰아아아아아앙!
융제의 성벽이 날아갔고 먼지구름 속에서 신형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사람이긴 한 것이냐?”
영락없는 사람의 신체였으나 풍기는 기운은 숨을 쉬기 힘들 만큼 고약했다.
스르르르륵.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낀 송삼현은 깜짝 놀랐다.
멀리서 느껴진 사특한 기운.
정기와 마기가 혼합되어 있었고 그자의 신형이 순식간에 쇄도하며 송삼현의 앞에 도달했다.
‘결국, 암운뇌마가 정기와 마기를 혼합하는 것을 성공했구나.’
저번 삶에서 이러한 기운을 가진 존재와 붙었던 적이 있었다.
능히 두 경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
지금 눈앞에 있는 자의 움직임은 화경의 끝자락에 필적해 있었다.
“청엽진인께서는 다른 분들과 같이 마교도들을 맡으십시오! 저자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예!”
청엽진인 장유봉에게 지휘를 맡긴 뒤에 사특한 기운을 내뿜는 마인에게 신형을 날렸다.
마인은 창을 들고 있었다.
창마장이 가진 창처럼 기다란 창으로 남궁효우를 찌르려고 할 때, 송삼현의 검이 날아들었다.
카가가가각!
“매형! 뒤로요!”
“알겠습니다!”
마인은 창을 거두곤 송삼현의 왼쪽 허리춤으로 창을 쭉 뻗었다.
휙!
아슬아슬하게 창을 피한 뒤에 복부에 ‘천멸장’을 날렸다.
퍼어어어어억!
여파로 뒤에 있는 성벽의 잔해가 날아갔으나 내공이 뒤틀리지 않았다.
‘내공이 흐르는 것이 일반적인 무인들과 다르다.’
내공은 보통 오른쪽으로 흐르지만, 마인의 신체는 마구잡이로 흘렀다.
그러니 내공을 흩트리는 장법은 소용이 없었다.
휘이이이익!
마인의 오른손에서 창이 회전하며 송삼현의 오른쪽 무릎을 노렸다.
다리를 들어 피했고 창 위로 올라서서 검을 휘둘러 목을 노렸다. 하지만 마인은 목을 꺾었고 뒤통수가 등에 닿는 기괴한 모습으로 검을 피했다.
“허!”
기괴한 모습에 저절로 소리가 나왔다.
이어지는 합, 화경의 경지라 송삼현이 압도하는 것은 당연했으나 피하는 것이 기괴해 치명상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체···. 백의검룡과 싸우는 것의 정체가 무엇이냐! 도저히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이 아니었다.
송삼현이 검을 매섭게 휘둘렀지만, 허리를 반으로 접고 팔을 꺾으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그야말로 귀신의 움직임이구나.’
밀리던 마인은 거리를 벌리더니 기괴한 울음소리를 냈다.
“깨애애애액!”
사람이 아닌 짐승에 가까운 목소리.
그 소리에 마교도들을 베던 정파 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카아아아아앙!
창이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까지 도달했고 귀혼편으로 만든 검은 그것을 막아냈다.
휘릭!
창을 흘리면서 그대로 검을 휘둘러 왼쪽 목을 노렸으나 또다시 기괴한 움직임으로 피한 뒤에 거리를 벌려 송삼현을 노려봤다.
스르르르르륵.
주변의 마교도들은 이미 정파 고수들이 정리한 상황.
남은 것은 마인 한 명뿐이었다. 정파 고수들은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고 송삼현이 싸우는 것을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봤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 창을 들고 송삼현에게 쇄도했고 보통 무인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다.
카가가가각!
창을 왼쪽으로 흘렸으나 그 순간 마인의 팔이 꺾였다.
흘린 창이 그대로 송삼현의 등 뒤로 꺾이며 들어왔고 호신강기가 창을 막아냈다.
퍼어어어억!
잠시 균형이 무너진 순간, 천무장으로 복부를 가격해 마인을 날려버렸고 잔해에 파묻힌 마인은 몸을 일으키며 울부짖었다.
“깨애애애애애액!”
꿈에 나올 듯 기괴한 울음소리.
그리고선 창 주위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각을 하며 날아들었고 그것을 보던 송삼현은 오른쪽으로 검을 뻗으며 검강을 만들었다.
스륵.
눕힌 검이 달빛을 머금자 ‘우우우웅’ 미세하게 진동했다.
스르르르르륵.
그리고 천천히 휘둘렀다.
‘천무 1식 개벽’
검은 하늘의 구름을 가르며 마인에게 나아갔다.
휘리리리리릭.
폭풍우같이 쇄도하는 창의 끝과 달빛을 머금은 검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카가가가가각!
폭풍이 주위로 몰아쳤다.
잔해들은 소용돌이처럼 주변으로 마구 날아갔고 송삼현의 검은 마인의 창끝을 부숴버렸다.
창이 끝부터 두 갈래로 갈라졌다.
그렇게 가르고 갈라 손까지 가르자 마인이 다시 몸을 비틀며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송삼현은 검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기괴하게 꺾으며 피하기도 전에 그보다 빠른 쾌검으로 머리를 노렸다.
“깨애애애애애애액!”
마침내 정수리부터 고간까지 몸을 갈라버렸다.
촤아아아아악!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마인의 시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르르르르륵.
귀혼갑을 풀어 시체를 감싸게 했고 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정기와 마기가 통제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저번 삶에서도 이렇게 마인을 베었지만, 그것을 몰랐기에 이 폭발로 동료 셋을 잃었었다.
잠시 저번 삶의 기억에 빠져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척.
청엽진인 장유봉을 필두로.
척! 척! 척!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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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의 이름 아래 모인 모두가 송삼현에게 포권지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