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54
운설산으로! (1)
무림맹 지부 안, 폐허가 된 우물가.
송삼현은 자리를 옮겨 마훈과 마주 앉아 모닥불을 피워 죽은 말고기를 구워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창마장을 죽였다고 들었다.”
“다 대협 덕분이지요.”
“내 덕이라니, 모든 건 너의 공이다. 아까 도문파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느 정도 벽을 허문 것 같더구나.”
마훈은 창마장 무군을 베면서 그곳에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공적이 아닌 무림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 도문파의 장로인 화룡정검에게 인정을 받으며 공적이 된 도문파와의 벽이 약간은 허물어졌다.
“아직 멀었지요.”
“…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전쟁이 끝나고 나면 같이 도문파로 가서 빌어주겠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이 전쟁이 끝나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저 때문에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흑사회에 쫓기던 너의 손을 잡았을 때부터 각오한 일이다.”
마훈은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장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군 덕분에 저는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주군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저와 제 식솔들은 흑사회에 죽었겠지요.”
“…..”
“이 은혜는 죽어서도 갚지 못할 겁니다.”
송삼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마훈의 말을 들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지요?”
마훈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이어서 말했다.
“혹여 제가 죽더라도 주군이 부르시면 염라대왕의 목을 베고서라도 다시 돌아온다고.”
“갑자기 그 말은 왜 하느냐.”
“오늘 밤, 저를 데리고 가지 않을 거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밤, 마지막 일전을 위해 송삼현이 이곳을 떠난다는 것과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을 거라는 것.
마훈은 이미 송삼현이 어떻게 나올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그 전에 한 가지 여쭈고 싶습니다.”
“말하거라.”
“전쟁에서 이기고 모든 게 끝난다면 주군은 무엇을 하실 겁니까?”
사월향과 같은 질문이었다.
“모르겠다.”
“…..”
“우선 전쟁이 끝나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독고룡만 생각을 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마훈은 그 말을 듣고선 곰곰이 생각하더니 술을 마시곤 말했다.
“주군.”
“그래.”
“주군이 만에 하나 돌아가셔도 저도 따라갈 겁니다. 그래서 염라대왕의 목을 베고 주군과 같이 살아서 돌아올 겁니다.”
“……”
“그러니 죽지 마십시오. 사셔서 제가 은혜를 갚을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마훈의 말에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물을 마시며 대답했다.
“그리하마.”
할 말은 이게 전부였다.
*
그날 밤.
송삼현은 남들이 다 자는 늦은 시각에 떠날 채비를 마쳤다.
반 시진 전부터 사월향은 송삼현에게 떨어지지 않고 여러 약재를 챙겨주며 끊임없이 걱정했다.
“이건 상처에 쓰는 약입니다. 그리고 이건 중독이 되었을 때, 몸살에 걸렸을 때입니다. 명심하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 고마우면 다치지 말고 돌아와요.”
송삼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일은 다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일, 그렇기에 쉬이 약조할 순 없었다.
“왜 대답이 없어요?”
“노력하겠습니다.”
“이럴 때는 노력이 아니라 알았다고 해야지요!”
사월향의 말에 천하봉선이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월향아, 곧 떠날 대협께 그리 다그쳐서 되겠느냐? 웃으면서 보내드려야지.”
“저는 그냥···. 걱정이 되는 마음에···. 죄송합니다.”
이대로 송삼현을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곳에서 보살필 병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숙인 사월향을 보고 송삼현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사 소저.”
“예?”
“약조하겠습니다.”
“…..”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 곤륜 때도 약조를 지키지 않았습니까?”
혈호패도와 일전을 벌였을 때도 사월향은 다치지 말고 돌아오라고 했었다.
그 약조를 지킨 것을 떠올린 사월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입니다. 다쳐서 돌아오시면 저번에 말한 것처럼 제일 아프게 치료해드릴 거예요.”
작게 미소를 짓는 사월향을 보고 송삼현도 마찬가지로 작게 미소를 지었다.
‘무책임한 약조라고 할지라도 대답만으로 편해진다면 해주는 게 낫겠지.’
사월향 다음은 천하봉선의 차례였다.
“월향이가 많이 챙겨줘서 제가 따로 챙겨드릴 건 없네요.”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시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천하봉선 다음은 남궁상룡이었다.
“자네가 다치면 내가 손주며느리를 볼 낯이 없네, 그러니 무사히 돌아오게나.”
“꼭 그리하겠습니다.”
흑영마에 올라타 고삐를 쥐자 후기지수들은 삼삼오오 모여 포권지례를 올렸다.
“백의검룡!”
구창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 여러 세가주들과 후기지수들이 모여서 포권지례를 했다.
“무운을 비네.”
씩.
“예.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웃으며 뵙겠습니다.”
그렇게 가려고 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천유현이었다.
“기다리십시오! 사형!”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천유현의 품에는 천으로 감싸진 검이 있었다.
“그건.”
“스승님의 검입니다.”
유천이 생전 쓰던 검이었다.
구창룡이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봤고 천유현은 그것을 두 손으로 공손히 송삼현에게 내밀었다.
“저보다 사형에게 필요할 겁니다.”
“…..”
“스승님의 검으로 꼭 스승님을 죽인 자를 죽여주십시오. 사형.”
귀혼편을 검으로 만들어 쓰고 있었지만, 멀쩡한 검이 필요하긴 했다.
송삼현은 천유현이 내민 검을 잡았고 검은 ‘우우우우웅!’맹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내공을 주입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기운을 뿜어내자 모두가 놀랐고 송삼현은 검을 쓰다듬었다.
‘분한 것이로구나.’
검의 감정은 분노였다.
검을 오른쪽 허리춤에 찬 뒤에 천유현을 바라봤다.
“너도 다치지 말고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하거라. 스승님을 위해서라도.”
“제 걱정은 마십시오.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 스승님의 원을 갚겠습니다.”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에 마훈을 바라봤다.
“마훈.”
“예. 주군.”
“어제 말한 대로 너도 이곳에 남아서 손을 보태거라.”
“….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주군께서도 저와 한 약조를 지켜주십시오.”
“최대한 노력해보마.”
흑영마의 허리를 차며 빠르게 숲길을 내달렸다. 그리고 일부러 기척을 흘렸다.
그래야지. 독고룡에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보고가 올라갈 테니까.
*
섬서성 서안.
천월신교의 본진.
감숙성으로 갔던 검마 가충현의 부대까지 합류하며 오천 명의 군세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각자 모여서 담소를 나눴고 쉬고 있던 마교도 한 명이 일행들이 있는 곳에서 고기를 한 덩이 꺼냈다.
“이 고기는 뭐야? 색깔이 조금 특이한데?”
일반적인 고기라고 하기에는 형태가 조금 이상했다. 그 말을 들은 마교도는 음흉하게 웃었다.
“크크크큭, 넌 이것도 모르냐? 이건 인육(人肉)이다. 인육.”
그건 사람의 고기였다.
“인육이라고?!”
“진짜? 언제 이런 것을 구한 거야! 죽은 녀석들의 고기는 잡내가 심할 텐데?”
“살아있는 상태로 도륙했지. 그래서 아직 신선해.”
혈인우문(血人羽門)에게 있어 인육은 특별했다.
‘산 사람의 고기를 먹으면 그만큼 수명이 늘어나고 내공이 늘어난다.’
이러한 이야기 때문에 혈인우문이 지나가는 곳에는 살점이 베여진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옆으로 심우명은 다급히 지나갔고 곧 독고룡이 있는 처소에 도착했다.
“교주님!”
땀을 비오듯 흘리며 말하자 독고룡은 뇌마에게 땀을 닦으라고 천을 내밀었다.
“왜 이리 급하시오? 땀 좀 닦으시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교주님께서 명하신 백의검룡의 행방이 파악됐습니다!”
심우명의 입에서 나온 백의검룡이라는 단어에 독고룡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변하며 심우명을 바라봤다.
“어디로 가고 있소?”
“운설산 방향이었습니다.”
“운설산? 북쪽이 아니오, 어째서 백의검룡이 융제를 떠나 그곳으로 가는 거요?”
의아했다.
전쟁을 하려면 융제에서 정도 무림의 무사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융제를 떠나 북쪽으로 간다?
분명히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짚이는 게 없소?”
심우명은 중원 지도를 펼쳐서 섬서성 북쪽을 세세하게 살폈다.
여러 지명이 눈에 들어왔고 머릿속에서는 그곳과 관련된 소식들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광물?
황궁?
영약?
어떤 것도 지금 상황에서 송삼현에게 필요한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때 운설산을 보자 떠오른 한 가지가 있었다.
“설마!”
“뭔가 떠오른 거요?”
“운설산의 정상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백호라는 영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 영물을 잡아 그 피로 목욕을 하면 그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강인한 신체를 갖게 된다고 하여 수십 년 전에 여러 무림인이 백호의 목을 노렸었지요!”
백호(白虎) 또는 설호(雪虎)라고 불리는 호랑이는 운설산 정상, 녹지 않는 눈 속에 산다고 전해졌다.
“그러면 백의검룡이?”
“……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유력합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수색대를 보내 행방을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독고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송삼현과 싸웠던 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던 기억.
그 기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뇌마.”
“하명하십시오.”
“나 혼자 운설산으로 가겠소.”
“예? 하지만!”
“이 숫자라면 충분히 정파를 몰아낼 수 있지 않소? 난 백의검룡과 결정짓지 못한 승부를 봐야 하오.”
심우명은 말을 아꼈다.
“…. 아무리 그렇다곤 하지만 교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사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독고룡은 천월신교의 전부였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교도들의 사기를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사라진다면 사기에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
“뇌마.”
스르르르르륵.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고 주변에 있던 이들은 그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크윽.”
심우명은 간신히 의식의 끈을 부여잡았다.
주르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생사경에 오르셨더니, 기운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것 같구나.’
살갗을 뚫을 듯이 맹렬히 내뿜는 살기, 심우명은 감히 독고룡과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며칠 전,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는 고찰을 하며 밤하늘에 뜬 달에서 깨달음을 얻은 독고룡은 마침내 생사경의 경지에 들어섰다.
심즉살(心卽殺)의 경지.
마음만 먹으면 살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로 생사경에 오른 자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독고룡은 살기의 농도를 조절하며 죽지 않을 정도로만 압박했고 심우명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의식을 부여잡은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 하명 하십시오···. 크윽!”
“내가 부탁을 하는 걸로 보이오?”
부탁이 아닌 명령이었다.
심우명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교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기운을 갈무리한 독고룡은 바위에 걸쳐놓은 자신의 검은 장포를 챙겼다.
“이곳의 모든 것을 뇌마께 위임하겠소.”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나가기 전, 다시 한번 심우명을 바라봤다.
“다시 한번 내 말에 토를 달았다가는 아무리 그대라도 할지라도 가만히 두진 않겠소.”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독고룡은 신형을 날리며 사라졌고 심우명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까 전, 자신의 숨통을 조이던 독고룡의 기운을 떠올리자 손이 떨렸다.
‘천하를 발아래 둘 힘을 가졌음에도 어찌하여 공심(公心)이 아닌 사심(邪心)에 사로잡히셨습니까.’
심우명이 독고룡이 사라진 곳을 향해 포권지례를 올렸다.
‘부디 질긴 인연에 매듭이 지어지면 마음가짐이 달라지셨으면 합니다. 더는 변방의 작은 교가 아닌···. 천하를 지배할 교의 수장으로서.’
생과 사를 뛰어넘는 경지인 생사경에 오르며 천하를 움켜쥘 힘을 가진 독고룡이 송삼현에게 진다는 건 애초에 단 일 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천월신교 교주 독고룡.
백의검룡 송삼현.
두 사람은 질긴 인연을 끝내기 위해 운설산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