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57
운설산으로! (4)
결전을 앞둔 제갈귀호의 천막에는 청엽진인 장유봉, 남궁상룡을 비롯해 정파 무림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눴다.
그때였다. 급히 천막의 입구를 가리던 천이 걷히며 천인부가 피 칠갑한 채 들어왔다.
“군사 어른! 나와보셔야겠습니다!”
급박한 말에 제갈귀호를 비롯해 천막 안에 있던 모두가 밖으로 나와 마교의 움직임을 보고 놀랐다.
“저것들이···. 역시 이걸 노린 건가.”
황하강 줄기가 얼어붙자 마교가 얼음 위를 걸으며 강을 넘어오기 시작한 거였다.
“당황하지 말고 궁인들을 배치해서 몰아내라!”
황하강이 얼어붙어 강을 넘을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얼음 위를 건넌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미끄러운 나머지 균형을 잃고 공격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 군사.”
청엽진인 장유봉은 멀리서 무언가를 보곤 제갈귀호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마교도들의 발을 보십시오.”
먼 거리라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내공을 눈에 집중하자 선명하게 보였다.
“하하하하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단 말인가!”
마교도들의 발에는 하나같이 빙판 위에서도 중심이 잡기 편하게 신발 바닥에 송곳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얼음 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걷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신을 신발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재료가 필요한 일이라 예상보다 긴 시일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시일이 걸리지 않고 바로 사용한다는 건 미리 이 일을 예상하고 준비했다는 거였다.
“암운뇌마.”
제갈귀호의 뇌리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십년 전, 그토록 지겹도록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이름이었다.
‘당신은 여전히 내 예상을 벗어나는 사람이오.’
살짝 당황한 것도 잠시, 제갈귀호는 백선을 꺼내며 지시를 내렸다.
“사전에 알려준대로 움직이십시오. 이곳이 우리의 최종 방어선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물러서선 안 됩니다!”
그 말과 동시에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을 비롯해 정파 고수들은 일제히 신형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각자 소속된 곳의 지휘를 맡으며 얼음 위를 넘어오는 마교도들을 바라봤고 그때였다.
휘이이이이이익!
콰아아아앙!
화살 하나가 날아오더니, 마교도들의 발아래에 있는 얼음을 깨트렸다.
“…?”
당황한 건 제갈귀호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온 곳을 본 마훈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늦었잖나.”
“미안하군.”
그는 예전 천월신교를 나와 송삼현에게 천월신궁의 비급을 받은 묘추였다.
한 달 전, 수행을 한다며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가 지금 나타난 거였다.
처음에는 절정 수준의 무인이였으나 지금은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 북검, 저자가 누군가?”
제갈귀호의 물음에 마훈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주군의 수하입니다.”
“백의검룡의?”
“예, ‘천월신궁(穿月神弓)’을 익혔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천월신궁(穿月神弓)의 비급을 익힌 그는 천막 위에서 활대를 휘었고 화살에 내공을 실더니, 황하강의 얼음을 깨트리기 시작했다.
“와···.”
그의 신궁을 본 무림인들은 감탄만 했다.
일반 궁과 달리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그 정확도가 가히 바늘구멍을 꿰듯이 정확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천월신궁의 등장에 마교도는 혼비백산에 빠졌다.
*
검마 가충현을 벤 송삼현은 지친 몸을 이끌고 운설산으로 나아갔다.
‘쳇.’
예상외의 충돌이 있었으나 별로 큰 타격은 없었다.
다만 도착하는 시각이 늦어지는 것이 걱정됐다. 독고룡보다 먼저 도착해야 했으니까.
‘청하림(靑河林)’
섬서성 북단에서 제일 커다란 죽림을 지나가는 중, 무조가 신형을 드러냈다.
“주인이시여.”
“독고룡의 행방은?”
“수하를 보내놨으니 곧 소식이 올 겁니다. 그보다 묘추가 수행을 마친 뒤에 융제로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갔다는 건 초절정에 올랐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주군께서 명하신대로 ‘일궁(一弓)’을 내줬습니다.”
일궁(一弓)은 명궁 중의 명궁이었다.
오래 전, 황제에게 무구를 진상하던 대장장이가 만든 물건으로 내구성이 뛰어난 것이 강점이었다.
“다행이군. 초절정에 일궁을 지녔다면 마교도들도 쉬이 그를 어쩌지 못할 거다.”
“그보다 쉬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조의 눈에도 송삼현이 피곤해 보였다.
“괜찮다.”
“독고룡은 생사경에 올랐습니다. 아무리 주인께서 강하시더라도 이 상태라면 위험합니다.”
신형을 날리던 송삼현은 잠시 생각하곤 말했다.
“독고룡의 경지가 생사경이라?”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전쟁 전에 현경에 오르고 전쟁 중에 생사경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옵니다.”
송삼현도 어떻게든 현경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래야지만 독고룡을 상대하기에 어렵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수련을 거듭하고 거듭해도 생사경이라는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 대체 어떤 깨달음이기에 생사경에 오른단 말이냐.”
생사경이라는 경지는 강호가 생긴 이래로 딱 한 명, 강호를 세상에 알린 태인(太人) 밖에 없었다.
그 후에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인간의 힘으로 닿을 수 있는 경지는 현경이 전부였다.
그런데 생사경이라?
송삼현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겠는가, 이미 결정을 한 일인 것을.”
여기까지 온 이상, 도망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죽더라도 독고룡을 상대해야 했다.
여러 가지 수 중에 최악의 수인 ‘죽음’
송삼현은 그곳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
강호 밖에선 진왕 세력이 점차 거대해지며 황궁까지 나아갔다.
묵왕이 강호인들과 결탁해서 벌인 일들은 중원 곳곳에 벽지로 붙었고 백성들은 그것을 읽고 분노했다.
“어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벌인 거란 말이냐!”
“성벽이 무너져서 우리 친척이 죽었는데···. 묵왕이 일부러 진왕 전하를 음해하려고 했다고? 이 쳐 죽일 놈!”
하지만 이런 내용에도 묵왕을 믿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저 진왕이 묵왕을 음해하려고 했다고 하며 떠들었으나 그 과정에서 묵왕이 도주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진왕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묵왕의 치부가 드러난 지금, 다음 황위를 이을 자로 진왕이 유력했기에 그의 그늘에서 보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환영하오.”
진왕은 누구도 내치지 않고 받아줬다. 그렇게 명분을 쌓아갔다.
묵왕과 흑사회 사이에 거래가 적힌 장부.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명분까지 내세우며 가는 길마다 백성들의 환대를 받았다.
“우리는 지금부터 천하의 안정을 되찾는다! 모두 나를 따라 황궁으로 향한다!”
진왕의 주도하에 황궁을 지키던 수비병력을 제압한 뒤, 황궁의 통제권을 모조리 빼앗았다.
그렇게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세상에 혼란을 가져온 내시들이 대거 잡히며 수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이 꿇렸다.
“으으으으으윽!”
진왕은 직접 그들을 고신하며 죄목을 낱낱이 읊었다.
“무고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폐하를 독에 중독시키며 마음대로 부리려고 한 죄! 그 죄는 구족을 멸해도 씼지 못하는 죄인 것을 그대들은 아는가!”
내시들의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죄는 황궁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다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억눌려 억지로 할 수밖에 없던 이들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분노했다.
“너희의 죄를 인정하느냐!”
쿨럭.
피를 토한 내시의 우두머리는 진왕을 노려봤다.
“이놈이 어딜 전하를 똑바로 바라보느냐! 냉큼 고개를 조아리지 못할까!”
퍽!
무사의 손길에도 내시의 우두머리는 목이 꺾이지 않았다. 더 강하게 노려봤고 피를 토한 뒤에 말했다.
“진왕이라고 뭐가 다를 거라고 보시오?”
“…. 뭐라?”
“어차피! 권력이란 돌고 도는 것! 우리가 없어져도 또 다른 우리가 나타나 권력을 탐할 거요. 그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니까!”
그의 말에 많은 문무백관들이 얼굴을 붉히며 당장 참하라며 소리쳤다.
진왕은 손을 들었고 그의 손을 본 이들은 일제히 말을 멈춘 채, 진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벅.
저벅.
진왕은 상석에서 내려와 직접 죄인들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 옆을 대장군 하선후가 보필했고 무사들은 양 갈래로 갈라지며 진왕이 갈 수 있게 길을 만들었다.
“고개를 들라.”
내시 우두머리는 고개를 들어 진왕을 올려다봤다.
“네 말이 틀리진 않다.”
대역죄인의 말을 틀리지 않다고 하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하선후 또한 당황했다. 지금 상황에서 대역죄인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진왕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곧이어 들리는 말에 하선후는 열려던 입을 다시 닫았다.
“하지만 모두가 너처럼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
“네놈이 생각한 권력이 뭔지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권력은 백성에게 있다.”
“….”
“무책임하게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는 것, 백성을 이용하기보다 백성을 보다 어떻게 잘 살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논이 권력이다.”
진왕의 말에 수백의 문무백관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존경을 표했다.
“권력은 부패한다. 이건 세상에 권력가들이 존재한 이래로 달라지지는 않는 사실이지, 허나!”
그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그것도 모두의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위엄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것을 바꾸려는 자들 또한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 말을 한 진왕은 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고신이 다시 시작됐다.
끄아아아아악!
그들의 비명은 사흘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성벽 밖, 백성들에게도 전해졌다.
강자가 약자의 것을 강탈하던 시대, 그 시대의 끝이 다가온 것을 느낀 백성들은 진왕의 이름을 연호했다.
“저 간악한 자들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 매달아라! 그리고 죽는다면 그 시신은 성문 밖에 던져 백성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라!”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모인 광장에서 처형식이 진행됐고 권력을 탐하던 이들은 백성들의 돌을 맞으며 죽어갔다.
시신은 사람들이 다니는 성문 아래에 매장됐고 사람들이 그곳을 밟고 지나가게 깃대를 세워 어떤 자들이 묻혔는지 상세히 적었다.
그렇게.
역적의 누명을 쓰고 도주하던 진왕이 다시 황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에게는 걱정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가 도울 것은 없는 건가…? 내 백의검룡에게 너무나도 많은 은을 입었네.”
그건 강호에서 맺은 인연들이었다.이렇게 살아서 온 것도 묵왕을 몰아낼 힘을 준 것도 모든 게 백의검룡 송삼현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도와주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 전하.”
“알고 있네, 대대로 황궁은 강호에 관여를 해선 안 되지.”
강호 불가침.
이 단어가 이토록 답답한 단어일 줄은 몰랐다.
“지금은 우선 묵왕의 신병(身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진왕이 황궁의 통제권을 장악했다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묵왕을 잡지 않은 이상은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 알고 있다.”
중원 전역을 샅샅이 살피고 있지만, 묵왕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묵왕을 잡는 것만 생각하시고 강호에 관련된 일은 그다음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었다.
진왕은 더 이상 친왕의 위치가 아닌 황위를 이어받을 존재니까.
*
이틀 후, 운설산.
수많은 해가 지나도 산 정상에 쌓인 눈은 녹지 않아 매 년 구경꾼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정상에 살고 있다는 호랑이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알아보는 사냥꾼들도 많았다.
“용씨! 오랜만일세.”
“자네는 가족들이랑 같이 온 건가?”
“운설산의 절경은 겨울에 더 잘 드러나지 않나, 마침 그리 춥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주려고 데리고 왔지.”
중원에 전쟁이 벌어졌어도 이곳은 평화로워 보였다.
“…. 예상보다 사람이 많다.”
“이 시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운설산이 겨울에 아름답긴 해도 한기가 가득한 곳이라 겨울에 사람들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저번 삶에서 일전을 벌일 때도 운설산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인데 이건 계산에서 벗어난 상황이었다.
“날씨 때문이 아닐까요?”
“날씨?”
“며칠 전부터 한기보다 온기가 감돌고 있어 사람들이 몰린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이건 예상을 벗어난 숫자였다.
하지만 이렇게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서 이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송삼현이 독고룡보다 이곳에 먼저 오고자 했던 이유는 무고한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키기 위해서였다.
관군도 있어서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고 송삼현은 다급히 사람들을 대피시키려는데 멀리서 거대한 기운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건.’
기운만 느껴도 누구인지 알 정도로 사특한 기운이었다.
“전부! 피하십시오!”
송삼현의 일갈은 근방 이리까지 퍼졌고 곧이어 허공에서 신형이 쇄도했다.
“백의검룡!”
콰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먼지바람이 소용돌이처럼 하늘까지 솟구쳤고 그곳에서 신형이 걸어 나왔다.
저릿.
저릿.
기운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사특한 기운이 허공으로 마구 분출됐고 독고룡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독고룡.”
하늘이 내린 악귀.
‘천마(天魔)’
그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