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58
천지개벽(天地開闢) (1)
“꺄아아아악!”
“방금 그건 뭐야! 뭐가 떨어진 건데! 운석이 떨어진 거야?”
지진이 온 것처럼 땅이 울리자 사람들은 급히 도망치려고 했고 서로 얽히고설키며 넘어졌다.
피해가 생기기 전에 송삼현은 무조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조! 내가 독고룡을 막는 동안 오리 밖까지 사람들을 대피시켜! 그리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
[예!]
독고룡이 떨어진 곳엔 깊게 파인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송삼현은 구덩이 안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독고룡을 보며 말했다.
“그대에겐 이곳의 사람들이 보이질 않소?”
“고작 개미들 몇 마리 죽인다고 누가 눈 하나 깜박하더냐?”
“무학을 익혔다면! 무고한 사람들을 지킬 줄 알아야 하지 않소.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어찌 그런 무학을 익히셨소?”
“무학을 익히는 이유는 내가 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지, 지키기 위함이 아니다. 고작 저런 벌레들의 목숨 따위에 연연해서 어디 큰일을 하겠느냐?”
“….. 단단히 미쳤군.”
“그런 무학을 지녔음에도 저것들을 지키려는 너보다 미쳤겠느냐!”
독고룡에게 양민들은 그저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휙!
그때였다.
틈을 보던 독고룡이 순식간에 구덩이 밖으로 신형을 날리며 송삼현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송삼현은 급히 오른쪽으로 피했으나 독고룡의 손은 뱀처럼 휘면서 송삼현의 왼쪽 어깨를 노리며 들어왔다.
카가가가가각.
귀혼갑이 반응하며 독고룡의 손이 몸에 닿는 것을 막아냈다.
그 뒤로 송삼현은 빠르게 독고룡과 거리를 벌리며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댔고 독고룡이 다시 진각을 하려고 자세를 잡는 순간, 관군 수십 명이 주위를 에워쌌다.
“감히 관군이 지키는 영역에 들어온 흑도는 당장! 그 걸음을 멈추고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병사들 앞으로 걸어 나오던 대장은 독고룡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으나 곧 검을 든 손이 떨리며 검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으으으윽.”
그리고 대장을 비롯해 다른 병사들은 독고룡이 내뿜는 살기에 억눌리며 숨을 쉬기 힘들어했다.
“커헉!”
“끄으으윽!”
“이, 이놈!”
“가, 감히 관군을 죽이고도 살아남을 성싶으냐!”
그들의 말에 독고룡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말이 많다.”
촤아아아아악!
독고룡은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손이 그어진 곳에서 관군 한 명의 목이 베어지며 하얀 눈 위로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관군 한 명의 목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더욱 혼비백산했다.
“강호인이 관군의 목을 벴다!”
방금 독고룡은 관군을 죽이면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강호 불가침을 깬 거였다. 그리고 관군들은 독고룡이 내뿜는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기 시작했고 송삼현이 검을 휘둘러 살기를 잘라내며 중간에 난입했다.
바들바들.
그리고 아직 정신을 잃지 않는 관군에게 말했다.
“어서 피하는 게 좋을 겁니다.”
“뭐요?”
“저놈은 당신들이 관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도 가차 없이 벨 겁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
“멍하니 있지 말고! 양민들부터 대피시키세요!”
송삼현의 일갈에 관군은 머뭇거리다가 죽은 자들의 시신을 거두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심즉살···. 생사경에 올랐다는 것이 사실이었군.’
살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 생사경의 힘을 두 눈으로 보자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변을 보니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독고룡이 다시금 달려들려고 하자 송삼현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도박이다.’
만약 달려든다면 피하면 되지만, 지금은 자신과 미치도록 싸우고 싶은 독고룡에게 한 가지 수를 두는 거였다.
“…. 왜 검을 다시 넣지?”
“무고한 사람들까지 휘말린 상황에서 싸우고 싶진 않소. 나와 싸우고 싶다면 저들이 대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요.”
그 말에 독고룡은 주위를 둘러봤다.
독고룡과 눈이 마주치며 도망치던 아이가 두려움에 몸이 굳더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의 부모는 순간 아이의 손을 놓쳤다.
그 순간 독고룡이 넘어진 아이에게 손을 뻗으려고 하는 걸 보고 저번 삶의 기억이 떠올랐다.
독고룡의 잔혹함에 사지가 잘려 땅을 기어서 오던 아이의 눈빛.
‘살려주세요.’
그 눈빛과 그 말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다.
그러자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저번 삶에서처럼 잃지 않기 위해서.
풍류운산(風流雲散).
연기처럼 신형이 사라졌고 나타난 곳은 쓰러진 아이의 앞이었다.
휘릭.
독고룡의 손이 닿기 전, 넘어진 아이를 품에 안고 신형을 날렸다. 독고룡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송삼현을 바라봤고 송삼현은 아이를 부모의 품에 안겨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곳은 위험하니, 관군들의 통제에 따라 어서 도망치세요.”
아이를 품에 안은 부모는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갔고 사람들은 송삼현을 힐끔 보면서 도망쳤다. 그리고 송삼현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독고룡을 바라봤다.
그의 살기에 독고룡은 몸의 털들이 쭈뼛 섰다.
‘그래, 이거다. 내가 원하던 너의 모습이 바로 이거였다.’
스릉.
검집에서 검을 뽑고 검집을 바닥에 ‘쾅!’ 꽂았다. 그리고 몸 밖으로 푸른 연기가 흘러나오며 전신을 휘감았다.
스르르르르르륵.
“이 긴 인연의 끝을 봅시다.”
두 사람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싸움이 시작됐다.
*
다그닥.
다그닥.
융제에 있는 정파 진영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정이 지난 늦은 밤, 말을 타고 빠져나왔다.
눈보라를 뚫으며 말을 달리는 사람들은 스무 명 정도 되는 작은 규모였다.
“저희가 없어도 괜찮을까요?”
“마교놈들이 무리해서 강을 건너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고 승기는 맹으로 넘어왔으니 우리는 군사님의 말 대로 백의검룡 대협을 지원하러 간다.”
그들은 송삼현을 지원하러 운설산으로 가는 무리였다.
가장 앞은 화산파 일 장로 매화검존(梅花劍尊) 곽수환과 대제자 무철, 그리고 남궁효우, 여동생인 남궁유유와 초절정과 절정의 고수들로 이뤄진 남궁세가의 一검대가 그 뒤를 이었다.
“…. 우리로 백의검룡을 도울 수 있을까요?”
무철의 말에 곽수환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가도 대협께는 별 도움이 되진 않을 거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우리의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을 테니까.”
“…..”
“그래도 가야 한다. 대협 홀로 그 무거운 짐을 전부 짊어지게 할 순 없다.”
생사경에 오른 독고룡과 현경의 끝자락에 있는 송삼현.
이 두 사람이 싸운다면 그 일대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들이 가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정파의 모든 이들은 그러한 짐을 송삼현에게만 지게 할 순 없었고 승기가 거의 확실히 되자 선발대를 꾸려 먼저 송삼현을 지원하러 보낸 거였다.
“다들 알고 있을 거다.”
곽수환은 뒤를 따라오는 이들에게 말했다.
“백의검룡의 나이는 아직 약관도 지나지 않았다.”
“…..”
그때 뒤를 따르던 이들의 입은 자연스레 닫혔다.
지금껏 백의검룡 송삼현이 한 일을 보면 약관은 커녕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는 이들이 하는 일보다 더한 일들 뿐이었다.
홀로 흑해도문을 격파하고.
정도를 더럽히던 용천회를 없애고.
악행의 씨앗이 될 혈심경을 불태우고.
역천사상에 휩싸여 온갖 악행을 저지른 흑사회를 멸하고.
마교의 초고수인 혈호패도 초여상을 베며.
종국에는 하늘이 내린 악귀, 독고룡과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목숨을 걸지 않고서 해내기 힘든 일들 뿐이었다.
그러한 일들을 성사한 송삼현이 어떤 나이인지 잠시 잊고 있다가 곽수환의 말을 듣고 떠올랐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들이 그 나이 대에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문득 떠올랐다.
검을 휘두르며 정도 무림을 지탱할 후기지수로 자라거나, 부모님의 그늘에서 권세를 누리던 안하무인, 그저 그런 평화로운 생활만 했던 나이에 송삼현은 스스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선 목숨을 걸고 강호를 구하려고 하고 있었다.
“허나 그 나이에 중원 전역에 있는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무림의 운명을 가르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냥 보고만 있을 건가?”
곽수환의 말에 다들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뒤를 따르던 이들의 눈에는 의지가 생겨났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송삼현을 돕겠다는 의지였다.
“난 내 목숨으로 백의검룡 대협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작은 돌이 될 작정을 하고 가는 거다. 너희들은 너희들 나름대로 백의검룡 대협을 도울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거라.”
“예!”
일제히 말을 더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화산파 제자 한 명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백의검룡 대협이 다쳤을 때를 대비해 오신 의원님이시다.”
“…. 굉장히 아름다우신 분이네요.”
“대협의 여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아, 그렇군요.”
“천하봉선님의 손녀시라 의술은 웬만한 의원들보다도 뛰어나니, 급박한 상황에선 분명 도움이 될 거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보호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대사형.”
뒤에서 말을 달리며 쫓아오는 여인은 사월향이었다.
혹시라도 송삼현이 다쳤을까 봐 천하봉선이 곽수환에게 부탁해서 선발대에 포함한 거였다.
휘이이이잉.
몰아치기 시작하는 눈보라.
그 눈보라를 뚫고 말을 달리는 내내 사월향은 송삼현에 대한 걱정만 앞섰다.
‘대협, 제발 다치지 말고 계셔주세요. 부디···. 제발요.’
*
하루가 지나갔다.
휘이이이잉.
하루 전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눈보라는 점점 거세지며 시야를 가릴 만큼 거세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송삼현과 독고룡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합을 나눴다.
챙!
챙!
챙!
두 사람의 싸움으로 인해 운설산의 빼곡한 나무들은 부러지고 땅에는 수많은 흔적이 새겨졌다.
콰아아아앙!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운설산 전체가 울렸다.
강대한 천마신공의 위력에 송삼현의 옷깃은 갈가리 찢겼고 그건 독고룡도 마찬가지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독고룡과의 격차를 줄여보려고 했으나 독고룡과의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촤아아아악!
송삼현의 검은 계속해서 틈을 노리며 들어갔고 치명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고룡에게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싸움에 호흡이 차올랐고 송삼현은 검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줬다. 그리고 독고룡의 오른손에는 검고 사특한 기운이 모였다.
‘저건.’
저번 삶에서도 저 기운을 본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을 앗아갈 위력을 지닌 천마신공 세 가지 절초 중 하나인.
‘천마흑룡장(天魔黑龍掌).’
손에 둘린 강기가 마구잡이로 날뛰어서 어떤 방향으로 들어오는지 몰라 처음에는 고생했으나 저번 삶의 경험을 통해 얼추 파훼법은 알고 있었다.
‘날뛰는 내공이 아닌 팔의 방향을 봐야 한다.’
송삼현은 날아오는 팔의 방향을 읽고선 보법을 밟아 장법을 피했고 천마흑룡장은 송삼현 뒤에 있는 절벽에 박혔다.
높이 솟은 절벽은 먼지처럼 잘게 부서졌고 독고룡은 이어서 호조수로 송삼현을 노렸다.
촤아아아아악!
검으로 베는 것처럼 날카로운 일격.
돌이 종잇장처럼 잘려 나갔고 송삼현의 뺨은 미처 귀혼갑의 보호를 받지 못해 긁히고 말았다.
주르르르륵.
뺨에서 흐르는 피는 곧 귀혼갑이 얼굴을 휘감으며 치료를 해줬다.
후우.
송삼현은 거친 숨을 토해낸 뒤에 독고룡을 바라봤다.
여전히 엄청난 기운을 내뿜는 독고룡은 천마회격으로 송삼현이 있는 곳으로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움푹 파인 땅.
허공으로 도약하며 피한 송삼현은 검을 고쳐 쥐고 그대로 독고룡을 향해 내리쳤다.
‘천무 6식 검뢰.’
사방에서 들이치는 검강이 독고룡을 덮쳤고 독고룡은 그것을 일일이 강기가 둘린 손으로 쳐내며 막아냈다.
현경의 끝자락과 생사경.
송삼현은 그 차이를 저번 삶에서 독고룡을 상대했던 경험으로 메꿨다. 경험했던 초식들을 어떻게 파훼할 것인지, 떠올리며 대응했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저번 삶에서 독고룡의 경지는 현경의 끝자락, 지금은 생사경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얼마 가지 않아 몸으로 느껴졌다.
세 시진 후.
쿠구구구구궁.
주변 일대를 억누르는 강대한 기운.
송삼현도 일순간 휘청일 만큼 강대한 기운이었고 그건 독고룡이 내뿜은 기운이었다.
‘심즉살(心卽殺).’
생사경에 오른 자들만이 발현할 수 있는 경지, 이건 송삼현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거였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독고룡.
송삼현은 무거워진 몸으로도 검을 잡고 독고룡에게 신형을 날리며 검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렇게 멈추지 않는 두 사람의 싸움 속에 운설산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