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59
천지개벽(天地開闢) (2)
저릿.
몸을 짓누르는 독고룡의 살기에 조금씩 반응이 늦어졌다.
그 때문에 몇 번이나 치명상을 입을 위기에 놓였지만, 몸을 보호해주는 귀혼갑과 귀혼편이 있어서 치명상을 입진 않았다.
그러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더 벌어졌다.
현 무림에서 가장 높은 현경의 끝자락이었으나 생사경과 차이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송삼현의 몸에는 독고룡의 공세로 인해 점차 상처가 늘어갔고 호흡은 목 끝까지 차올랐다.
콰아아아아앙!
‘이대로 끌려다니다간 위험해진다.’
몸을 짓누른 살기를 어떻게든 해야 했다.
독고룡의 공세를 막아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몸을 짓누르는 살기를 없앨 수 있을까 고민했고 한 가지가 떠올랐다.
스르르르르륵.
내공을 방출해서 주위에 일시적인 기막을 형성하는 거였다. 기막으로 살기가 몸을 짓누르는 걸 막으려고 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기막을 형성하자 잠시나마 살기가 차단되며 몸이 가벼워졌다.
‘이걸 계속해서 하다간 내공이 남아나질 않겠어.’
하지만 기막을 형성하는 건 예상보다 많은 내공을 소모하기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투에서 계속해서 쓸 순 없었다. 그렇게 송삼현은 몸이 억눌린 상태에서도 독고룡의 공격에 적응해갔다.
왼쪽 상단.
오른쪽 하단.
오른쪽 중단으로 조금 늦게.
독고룡의 움직임을 보곤 미리 반응하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반격하려고 검을 휘두르면 독고룡은 귀신같이 알아채곤 간격을 벌리며 검이 닿는 거리에서 벗어났다.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공격.
두 사람이 지나간 곳은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망가져 갔다.
‘다시 온다.’
독고룡은 자세를 낮췄고 양손에 강기를 둘렀다.
짐승처럼 눈을 빛내며 송삼현을 향해 달려왔고 발을 디딜 때마다 땅이 움푹 파여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앞에 도달했고 독고룡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던 송삼현은 움직임에 맞춰 검을 뻗었다.
‘해무천뢰.’
달려드는 순간과 검을 내뻗는 순간이 일치했다.
그대로 검이 독고룡의 미간 사이로 들어가기 직전.
‘아래!’
독고룡은 무릎을 굽히며 검 아래로 몸을 숙였다.
초식이 빗나갔고 독고룡의 발이 왼쪽에서 올라왔다. 발의 움직임을 살핀 송삼현은 허리를 꺾으며 피했다.
‘… 비었다!’
발차기를 한 독고룡이 다음 동작을 취하는 데서 약간의 빈틈을 보였다. 그 틈을 본 송삼현은 곧바로 내공을 방출하며 기막을 형성해 몸을 억누를 살기를 살짝 밀어냈다.
스르르르르르륵.
순간적으로 몸이 가벼워졌고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천무 7식 승풍파랑.’
거대한 파도를 베듯이 세로로 벤 검격에 독고룡의 오른쪽 팔이 베어졌다. 드디어 치명상을 입혔다는 생각에 미소가 나왔으나 그건 착각이었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송삼현이 벤 것은 독고룡의 잔상이었다. 독고룡은 눈보라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졌고.
“아직도 검이 살아있구나.”
뒤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나 내공을 거두는 바람에 살기가 몸을 짓눌렀고 반응이 살짝 늦었다. 급히 검막을 둘러 막아보려고 했으나 독고룡의 천마흑룡장이 그보다 빠르게 오른쪽 어깻죽지로 들어왔다.
퍼어어어억!
귀혼갑이 몸을 보호했으나 내공이 회전하며 귀혼갑이 일순간 뚫렸다.
“신물 따위에 의존하다니!”
독고룡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송삼현을 보호하는 신물 때문에 성가셨던 그는 신물의 보호력이 풀린 순간을 노려 ‘천마흑룡장’을 한 번 더 시도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작에 송삼현은 검에 강기를 두르며 막아냈다.
카가가가가각!
강기에 막히며 살짝 경로가 벗어났으나 독고룡은 그 순간, 기운을 거둬들인 뒤에 손에 있는 강기를 회전시켰다.
천마흑룡장과는 다른 흐름이었다.
‘이런.’
변칙적인 공격에 검으로 막지 못했고 그대로 복부로 들어온 일격, 천마회격이었다.
내공이 작은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는 천마회격에 귀혼갑이 일순간 혼란에 빠지며 보호력이 풀려버렸다.
황급히 뒤로 벗어나려고 했으나 독고룡은 집요하게 쫓아왔다. 그 움직임을 본 송삼현은 검을 거꾸로 들고 반검의 자세를 취했다.
‘천무 1식 개벽.’
뒤로 도약을 하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독고룡이 피하는 바람에 고작 옷깃을 스치는 데 그쳤다.
“검이 예리하구나.”
주위를 억누른 진득한 살기와 함께 독고룡 주위로 검은 기운이 구름처럼 일렁이며 퍼졌고 구름에 닿은 눈들은 녹아갔다.
‘이건 열기다.’
심화(心火).
일전에 봤던 붉은 불이 아니었다. 푸르고 검은 불꽃이 독고룡의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옷처럼 둘린 불꽃.
그 불꽃들이 일정하게 한 방향으로 회전하며 독고룡의 두 손안으로 모였다.
‘천마광염참(天魔光炎斬)’
전보다 더 강대한 기운을 머금은 불꽃들이 운설산의 눈들을 녹이기 시작했다.
눈들이 죄다 녹기 시작했고 곧 그 열기가 파도가 되어 송삼현에게 들이쳤다.
천마신공의 세 가지 절초 중 하나인 천마광염참에 송삼현은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두 눈을 감았다.
‘검이 곧 나요. 내가 곧 검일지니.’
신검합일의 경지.
검과 나의 경지가 흐려졌다.
그리고 나서야 길이 보였다.
‘풍표전격(風飄電激)’
지난번에도 천마광염참을 날려버린 초식이었다.
푸른 바람으로 만들어진 소용돌이 안에 검강들이 벼락처럼 담겼고 천마광염참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구구구구구궁.
땅이 울리고 주변으로 광염참의 열기가 퍼지며 눈들이 녹기 시작했다.
운설산의 녹지 않았던 눈까지 녹일 만큼 강한 기운을 풍표전격으로 간신히 막아냈다.
“허억···. 헉···.”
거친 숨을 토해내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송삼현이 있는 곳을 제외하곤 다른 곳은 골짜기처럼 깊숙하게 파였다.
‘전보다 더 강대해졌다.’
강대한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내서 그런지 손이 떨려왔다.
지금껏 만난 상대 중, 가장 강한 상대이자 이길 수 있을지 계산도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에서 웃고 있는 독고룡을 바라봤다.
독고룡도 마찬가지로 풍표전격의 여파로 입고 있는 옷이 찢기며 사이사이에서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 눈빛이 꺾이지 않았구나.”
아직 빛나는 송삼현의 눈빛을 보고 독고룡은 다시 한번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송삼현은 천무신검의 초식으로 독고룡을 막으려고 했으나 천마광염참을 막으며 생긴 상처가 욱신거리는 탓에 반응이 한순간 늦었다.
카가가가가가각!
심화가 강기와 어우러지며 내뻗은 천마회격에 귀혼갑의 통제가 일순간 풀렸다. 그리고 귀혼갑의 보호력이 돌아오기도 전에.
퍼어어어어억!
천마흑룡장이 그 사이로 들어왔다.
복부부터 시작된 모든 것이 뒤틀리는 감각에 송삼현은 역류하는 피를 토해내며 뒤로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앙!
커다란 절벽에 부딪혔고 그 절벽이 깊게 파이며 갈라졌다.
운설산의 자랑이던 거대한 빙벽이 반으로 갈라졌고 송삼현은 떨리는 손으로 옆에 떨어진 검을 잡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힘이 들었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죽든지 살든지 결정을 내려야 했고.
꽉.
송삼현은 죽고자 마음을 먹었다.
*
삼 일째.
운설산에서 벌어진 전투의 여파로 운설산의 일부분이 사라졌다.
하늘 높이 치솟았던 봉우리도 몇 개가 날아가고 산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며 아름다운 운설산은 기괴하게 변해갔다.
그런데도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계속된 싸움에 독고룡도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렀으나 내가 입은 피해가 훨씬 컸다.
“신물도 신물이지만···. 그러한 고통을 참아내는 너도 참으로 대단하다.”
이미 죽을 위기를 몇 번 넘겼다.
경지의 차이를 신물로 메꾸고 있긴 하지만 독고룡은 신물을 무효화시키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를 몇 차례나 죽음의 위기로 몰아세웠다.
‘쓰러지면 안 된다.’
대꾸할 힘도 아껴야 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살아있다면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피를 흘리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고 내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하얀 눈 위로 떨어지며 온통 하얀 세상을 붉게 적셨다.
뚝.
한 방울.
뚝.
두 방울.
그 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도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당하고.
콰아아아아아앙!
또 당하면서도.
촤아아아아악!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출 순 없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검을 늦췄다가는 그 순간, 독고룡의 공격이 심장을 꿰뚫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힘에 부쳤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독고룡은 다시 한번 심화를 발현하며 천마광염참을 시도했고 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검에 푸른 연기를 휘감았다.
‘천무 10식 검해(劍海).’
천마광염참에 맞서 허공에 수많은 검의 형상이 허공에 생겨났다.
“마지막까지 이런 기운이라니! 검으로는 네가 천하제일이라는 걸 인정하마!”
독고룡은 눈보라와 같이 하늘을 빼곡히 뒤덮은 검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기쁨에 나오는 웃음이었다.
모든 것을 태울 불꽃.
모든 것을 꿰뚫을 검.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울렸다.
운설산에 쌓인 눈은 독고룡이 내뿜는 열기에 서서히 녹아갔고 두 초식이 충돌하는 여파로 눈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렇게 두 사람의 무학은 주변을 모조리 휩쓸었고 운설산의 고운 경관은 어느덧 지옥도(地獄道)로 변해갔다.
“커헉!”
천마광염참의 불꽃들이 허공에서 펑하고 터지며 흩어졌고 그것과 충돌한 검해의 수많은 검들이 부서지고 사라질 때, 화염을 뚫고 나오는 독고룡이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가 산발이 된 그의 몸에서도 수많은 상처가 생기며 피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였다.
독고룡의 기운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잉!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강기의 소용돌이, 재앙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을 정도로 운설산을 모조리 집어삼킬 기세로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천마신공의 세 가지 절초 중, 마지막인 ‘천마재운공(天魔災運功)’이었다. 이 초식 때문에 저번 삶에서 팔이 떨어지고 죽기 직전까지 몰렸었다.
이 안에서 빠져나가려고 해도 강기의 소용돌이에 막혀 몸만 상할 뿐이었고 사특한 기운을 머금은 천마재운공은 저번 삶보다 더 강한 기운을 머금었다.
금방이라도 숨통을 조여올 듯이 요동쳤고 강기는 벼락처럼 나를 덮쳐왔다.
촤아아아악!
긁히고.
촤아아아악!
또 찢기며.
상처가 점점 벌어졌다.
귀혼갑이 상처를 회복하려고 하기도 전에 다음 공격이 들어왔고 검을 뻗어서 공격을 틀어지게 했다.
‘허어, 이리 당했는데도 아직 검을 휘두를 힘이 남아있다는 건가?’
독고룡의 손에는 자비라는 단어는 없었다.
온몸이 찢기고 찢겼고 천마재운공을 빠져나온 나의 오른팔은 떨어졌다.
꽉.
독고룡은 허공답보를 하며 나를 내려다봤다.
“….. 그 순간에도 반격을 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눈보라로 인해 이리저리 휘날리는 독고룡의 왼팔에는 수많은 검흔이 새겨졌다. 찰나의 순간에‘풍표전격’의 초식으로 반격을 가한 게 들어간 거였다.
피가 흐르며 감각이 사라지는 팔을 바라보던 독고룡은 피 칠갑을 한 채, 쓰러진 나를 보며 땅으로 내려왔다.
꽉.
왼손으로 검을 잡았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의 근맥이 끊어졌다. 숨만 쉴 뿐,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렸다.
‘제길, 귀혼갑이 상처를 치료하는 게 늦어진다.’
떨어진 오른팔을 귀혼편이 가져와 어떻게든 몸과 이으려고 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정신없이 싸우면서 어느덧 삼 일째 밤이 지나가 사흘 째, 아침이 됐다.
눈보라가 부는 탓에 일출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 시간이라면 정파와 마교의 전쟁도 얼추 끝났을 시간이었다.
‘내가 죽어도 이제 독고룡이 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저리 다친 몸으로 관과 연합한 정파를 상대로 무식하게 싸움을 걸진 않겠지.’
이걸로 된 건가?
저번 삶에 비해서 많은 사람을 구하긴 했다. 만일 그게 아니었다면 중원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었을 거다.
허나.
지금은 저번 삶에 비해 피해가 고작 이 할에 불가했다.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인 것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는가?”
그러면 이제 끝내도 되는 건가?
다 된 거냐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대로 된 거냐고, 이렇게 끝내는 것이 내가 원하던 목표였냐고.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살아서 내 손으로 독고룡을 죽인 뒤, 이 전쟁을 끝내고 싶다.
이렇게 죽는 건 저번 삶이랑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스으으윽.
피 칠갑을 한 독고룡의 손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창의 모습을 한 강기가 나의 목을 향했고 눈보라를 뚫고서 날아오는 창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대체 산다는 건 무엇이고 죽는다는 건 또 무엇인가.
전쟁이 벌어지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매일 수십에서 수백 명의 시신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죽음으로 뛰어들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 얼마나 역설적인 말인가.
살기 위해서 죽음으로 뛰어든다니.
뜻이 극명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닮은 말들이었다.
‘삶은 사람이 주는 것이고 죽음도 사람이 주는 것이다. 삶과 죽음 모든 것이 사람이 주는 것이라면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이 전쟁 후의 평화로운 세상에서 내가 지킨 사람들의 미소를 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한데 그게 욕심이었나?’
휘이이이익.
창은 더 가까워졌다.
삼 장.
이 장.
일 장.
코앞까지 왔고 두 눈을 감았다.
스르르르륵.
귀혼편과 귀혼갑이 막으려고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카가가가가각.
점점 귀혼갑의 능력이 풀리더니, 창은 귀혼갑을 비집고 들어와 내 심장 앞까지 도달했다.
죽는 구나.
회귀를 하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많이 바꿨지만, 내가 죽는 운명은 저번 삶과 다를 바가 없고 똑같구나.
죽음과 삶의 경계.
죽음을 앞둔 순간, 삶이 뻗은 손이 희미해지고 죽음이 뻗은 손이 선명해지자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졌고.
스르르르르륵.
죽음을 받아들이며 감았던 눈을 뜨자 눈앞에는 검으로 가득한 바다가 펼쳐졌다.
전에 봤던 것보다 더욱 커다랗고 광활한 바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