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6
예가 무엇인지 물었느냐 (2)
거침없이 한 사람의 손목을 베어버리는 바람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저 사람이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삼 공자가 맞는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네, 반푼이로 알려진 공자님이 저 거대한 철웅검을 단 일격에 제압하다니.”
누구보다 놀란 것은 송이현이었다.
지난 왕세자마마 납치 때, 송삼현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을 들었지만, 실제로 송삼현의 검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내가 아는 송삼현이 맞는 것인가?’
그저 반푼이였던 이복동생이었는데 철웅검이라는 무인의 손목을 한 번에 벨 강단을 보여주니 말을 잇지 못했다.
철웅검은 꿈틀거리더니 혈도를 짚어 지혈한 뒤에 송삼현을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철웅검의 살기가 주변으로 내뿜어졌고 송삼현은 미동도 없이 철웅검을 보고 있었다.
“이, 이놈!!!”
거대한 곰 한 마리가 송삼현을 덮쳤다.
하지만 송삼현은 침착하게 철웅검의 움직임을 읽었다.
‘경공이 형편없군.’
몸집이 커 발이 느리고 더구나 무거운 중검까지 지녔으니 그의 몸은 더욱 느리게 보여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후에 철웅검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이것이 송삼현이 풍천신보에게 말했던 경공의 중요성이었다.
더구나 중검을 쓰는 무인들은 무거운 검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경공을 신경 쓰는 것이 대부분인데 철웅검은 경공 수련을 대충 한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잖나! 손을 베다니! 그것도 무인의 손을!”
뒤로 피해 있던 유호천이 나서서 호소했다.
송삼현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빛으로 철웅검의 목을 겨눴던 검을 거두며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뭐가 말인가!”
“먼저 검을 뽑은 것은 이쪽인데 어찌 저에게 그러십니까? 저는 제 목숨을 노리려는 비적 떼를 상대로 몸을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송삼현은 철웅검을 비롯해 그 일행을 비적 떼라고 비유했고 그 말을 들은 유호천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분했지만, 어쩌겠나.
자신이 자랑했던 호위무장인 철웅검은 아무것도 못 하고 한 손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있으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유호천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고를 했고 송삼현은 검을 검집에 넣은 후에 그에게 대답했다.
“아비의 등이 세상 전부인 줄 알지 마시오. 그대들이 이룬 명예가 아닌 아비가 이룬 명예니, 그대들이 내세울 명예는 그대들이 만들어가는 거요.”
“뭐라?”
“명예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려드리는 거요.”
송삼현은 저번 삶에서도 이런 자들을 많이 봤었다.
집안의 보호 아래 안하무인으로 자란 후기지수들을 비롯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욕스러운 자들.
그들은 스스로의 명예가 아닌 부모의 명예를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살았고 위험한 일은 피하고 쉬운 일만 하며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족속들이었다.
분해하는 유호천을 뒤로하고 송삼현은 군주 일행이 아닌 옆 좌판으로 걸어갔다.
“미안하네, 피가 튀었구려.”
좌판에는 철웅검의 손을 베면서 튄 피가 유등에 묻어 있었다.
“아, 아닙니다. 공자님! 괜찮습니다!”
좌판 여주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송삼현은 은자 두 개를 꺼내 좌판 여주인의 손에 쥐여줬다.
“피가 묻은 유등은 내가 사지.”
여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고 송삼현은 피가 묻은 유등 두 개를 들고 군주 일행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철웅검은 유호천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황급히 인파 틈으로 사라졌다.
*
일이 마무리되고 난 군주마마와 왕세자마마에게 말을 걸었다.
“유등을 띄우시지요.”
두 개의 유등을 쥐고 가려는데 군주마마가 뒤에서 말했다.
“하나 주거라.”
“네? 허나 이것은 피가 묻은 유등입니다. 군주마마께서는 더 깨끗하고 예쁜 유등을 고르십시오.”
“괜찮다. 마음에 드는 유등도 없었거니와 네가 들고 있는 유등이 마음에 드는구나.”
피가 묻은 유등이지만, 군주마마가 말하니 거절하기도 그래서 달 문양이 들어간 유등을 건네줬다.
“이런 유등을 드려 송구합니다.”
“아니다, 그리고 아까는 정말 속이 시원하더구나.”
“…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것이 무엇이냐. 잘못은 저들이 했고 넌 정당한 명분으로 행한 일이니 탈이 날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아버지께 잘 말씀드리마.”
“나도 그렇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말게나!”
왕세자마마까지 그러니 포권을 올려 예를 갖추는 거 말곤 할 게 없었다.
“아! 내가 이룬 명예가 아닌 아비가 이룬 명예니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게 좀 그런가?”
“고, 군주마마!”
내 말을 인용해서 농을 한 군주마마의 눈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우리는 소월이와 무사들이 미리 자리를 잡아놓은 장강으로 가서 사람들과 같이 유등을 띄웠다.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유등이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장강의 물결을 따라 흘러갔다.
“이 유등에 소원을 담아 떠나보내면 그자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더구나. 넌 어떤 소원을 빌었느냐?”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사히 끝맺음을 맺을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군주마마는 어떤 것을 비셨습니까?”
“다음 여름이 오길 빌었다.”
“네?”
“그래야 다시 이곳에 오지 않겠느냐.”
그렇게 금호무회부터 시작된 남경의 축제가 막을 내렸다.
*
저자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금호장은 발칵 뒤집혔고 다음 날, 내가 불려간 곳은 대전각이었다.
그곳에는 진왕 전하를 비롯해 고관대작들이 있었고 한림학사는 고관대작들 가운데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제 일의 발단인 유호천은 미리 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너를 부른 연유를 알겠느냐?”
송우태의 말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젯밤, 저자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소란이라고 하자 가장 말석에 앉은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어찌 이것이 작은 소란이란 말인가! 저자에서 무고한 자의 손목을 자른 것이 작은 일이라는 건가?”
“무고라 하셨습니까?”
“….”
“모든 이에게 여쭤보십시오. 그자가 먼저 제 목에 검을 겨누었고 전 강호의 법도대로 나를 위협한 적을 상대한 것뿐이옵니다.”
“이 자가 그래도!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진왕 전하가 가만히 계시더니 말석에 앉은 이에게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만하고 앉으시게.”
“… 예, 전하.”
진왕 전하가 운을 뗐으니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고 진왕 전하가 말했다.
“그날에 있었던 일은 군주와 왕세자에게 전해 들었다. 그들이 먼저 너를 무시하고 때리기까지 했다고.”
“그러하옵니다.”
“그래도 손속이 과했다. 무인의 손을 자른다는 것은 다시는 무인으로 살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는 걸 모르느냐?”
검객에게 손이 하나 없는 것은 아주 큰 일이었다.
“알고 있사옵니다.”
“왜 그랬느냐?”
“저는 분명히 정중하게 예를 올려 인사를 했지만, 한림학사의 아들인 유호천 공자가 제 태도를 문제 삼아 윗사람으로서 예를 가르친다고 하여 일어난 일이옵니다.”
벌떡.
“전하! 삼 공자가 먼저 저희를 무시해서 저는 정당하게 윗사람으로서 예를 가르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대전각 안에는 피부를 찌르는 진득한 내공이 가득 찼다.
고관대작들은 식은땀을 흘렸고 난 그 내공이 어디서 흘러나온 지 봤는데 그 내공의 주인은 진왕이었다.
“내가 일의 진상도 모를 거라고 보는 것이냐? 아니면 그 자리에 있던 왕세자와 군주의 눈이 안 보인다고 하고 싶은 것이냐?”
이미 진왕 전하는 군주와 왕세자에게 일의 이야기를 들었고 더 확실하게 하려고 송우태로 하여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오래 걸릴 필요도 없이 모든 이들이 유호천이 먼저 송삼현을 깔봤고 유호천의 호위무사가 검을 꺼내 위협해 송삼현이 대처를 한 것이라고 일관된 진술을 했다.
그러니 유호천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한림학사.”
“네, 진왕 전하.”
“난 이 일을 크게 문제 삼고 싶지 않네. 아이들끼리 있었던 일이니 조용히 묻는 게 어떻겠나?”
이것은 부탁이 아닌 통보였다.
한림학사도 그것을 알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그리하겠나이다. 전하!”
진왕 전하에게 예를 갖춘 뒤에 한림학사는 뒤로 돌아 유호천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유호천의 앞에서 더니 ‘짝!’소리가 나게 뺨을 치며 호통쳤다.
“내 집으로 돌아가 너에게 큰 벌을 내릴 것이다! 그때까지 눈에 띄지 말고 자중하고 있거라!”
유호천이 고개를 숙이며 나가는 사이, 한림학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노기로 가득한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 따뜻하게 감싸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것도 잠시, 진왕 전하의 말이 들려오며 난 넙죽 엎드렸다.
“아직 내 질문 중에 답을 안 준 것이 있다. 손속이 과했다는 부분은 어찌 생각하느냐.”
“소인이 잘못했사옵니다. 도저히 말을 할 새도 없이 목에 검이 들어와 본능적으로 행한 일이니, 전하께서 내리시는 벌은 뭐든 달게 받겠나이다.”
여기서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게 낫다.
내가 손목을 벤 철웅검이나 유호천 같은 애들은 이 무림에 영향력을 끼칠 인물은 아니니 밀어붙여도 되지만, 진왕 전하는 예외였다.
황궁이 강호에 관여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안 되는 일이나 진왕의 이름은 강호를 진동 시키고도 남으니까.
“네가 생각하는 예란 무엇이더냐?”
진왕 전하의 물음에 내 생각대로 답했다.
“예란 곧 사람입니다.”
“사람이라?”
“예는 본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만 행하는 것이 아닌 윗사람도 아랫사람에게 하는 예가 있사옵니다. 그러니 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는 근본(根本)이지요.”
말이 끝나고 슬쩍 주위를 보자 고관대작들이 나를 보고 있었고 진왕 전하 또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싱긋.
“훌륭하다. 이만 나가보거라, 이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으마.”
“소인의 주제넘은 말에도 이리 은혜를 내려주시니 전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다시 말을 걸기 전에 황급히 대전각을 나왔다.
*
송삼현이 나가고 진왕은 웃음을 띠며 한림학사 유평수를 쳐다봤다.
“자네가 보기에 저 아이가 어떻게 보이나?”
“제 호위무장의 손을 베어버린 것은 분한 일이오나, 저 나이에 저런 깨달음은 얻은 아이는 드뭅니다.”
송우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림학사 유평수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올렸다.
“제 철없는 아이가 한 일을 아비로서 사죄드립니다. 호위무장의 손을 다시 붙일 수는 없지만, 한림학사께서 부탁하실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돕겠습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이 일은 철없는 제 아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금호장주께서 사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럽군요, 어린 나이에 저리 깨달음을 얻었으니 약관이 되면 필히 벼슬길에 올라 천하를 지탱할 재목입니다.”
“한림학사께서 못난 자식을 그리 좋게 봐주시니 부끄럽습니다.”
몇몇 고관대작들은 이러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건의 당사자인 한림학사와 금호장주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 가운데 있던 진왕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송우태를 보고 말했다.
“금호장주.”
“예, 전하.”
“금호장에서 정치가가 나올 것 같군. 훗날 삼 공자가 약관의 나이가 되어 전시에서 급제한다면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밀어주지.”
그때 송우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금호장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송일현이 거의 확실해졌고 둘째인 송이현은 무림맹 군사부의 추천을 받아 들어갈 공산이 컸다.
그러면 삼 공자를 벼슬길로 내보낸 후에 금호장을 보호하는 우산으로 키우면 된다는 계획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무공에 빠지기 전, 서책을 그리 읽었다더니 저리 깨달음이 깊을 줄이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게 이런 것인가?’
허나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과거를 잊게끔 잘해주려고 해도 피해를 받은 이는 그것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흉터로 남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