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60
천지개벽(天地開闢) (3)
“대체 저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곽수환은 멀리 보이는 운설산에서 낙뢰가 내리치는 걸 보고 말을 멈추곤 바라봤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 같았다.
뒤를 따르던 다른 이들도 말을 멈춘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운설산을 바라봤다.
‘벌써 나흘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싸우고 있다고?’
‘대협은 무사하신 거겠지?’
‘우리가 가서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대협께 폐는 끼치지 말자.’
각자 생각에 잠긴 채, 말을 달려 도착한 운설산은 더 이상 전에 봤던 운설산이 아니었다.
“무슨.”
나라에서 지정한 명소였던 아름다운 경관은 많은 것이 뒤바뀌었고 재앙이 닥친 것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운이 요동쳤다.
충격적인 광경에 입이 굳어버렸다.
어릴 적에 가족들의 손을 잡고 놀러와서 본 운설산과 지금의 운설산은 너무나도 달랐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운설산이 맞는 거지요?”
“저기 녹지 않은 눈을 보니까 맞는 거 같습니다.”
“….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 거대한 운설산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남궁효우의 말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저릿.
운설산에서 일리나 떨어졌는데도 피부를 통해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다. 가까이 가지도 못할 정도로 사특한 기운에 곽수환은 머뭇거렸고.
콰아아아앙!
땅이 울렸다.
“매화검존 어르신!”
“모두 방어 태세로!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른다!”
“예!”
“다들 저기 좀 보십시오!”
남궁세가의 일검대주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운설산을 삼킬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나자 다들 놀랐고 그 안에서 벼락이 치기 시작하더니 그 크기가 점점 커졌다.
소용돌이 속에서 벼락이 수도 없이 내려쳤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소용돌이가 뚫고 나오고 나서야 거대한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 맞느냐.”
도저히 사람 대 사람이 싸우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찌 사람이 싸우면서 재해를 일으킨단 말인가.
그렇게 조심해서 더 가까이 가자 사월향의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건 백의검룡 대협의 검집이 아닙니까?”
송삼현이 땅에 꽂아놓은 검집이었다. 그 검집을 본 곽수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 맞구나, 유천님이 쓰셨던 검의 검집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거다. 나흘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재앙이 들이친 운설산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저길 들어갔다간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 못할 것 같기에.
저벅.
“그래도 가야 합니다. 대협을 돕기 위해서라도.”
두려움 속에서 가장 먼저 발을 뗀 것은 사월향이었다. 죽을 위험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으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송삼현의 걱정이 가득 찼다.
뒤를 이어서 다른 이들도 발을 떼 운설산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때.
쿠구구구구구구구궁.
지축이 흔들리는 거대한 울림이 전해지며 발이 멈췄다.
*
생과 사의 경계.
죽음을 마주한 내 눈 앞에 펼쳐진 바다.
화경에 오를 때, 현경에 오를 때보던 바다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촤라라라라라락.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생각이 들 무렵, 발을 디디자 물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지며 수많은 검으로 변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흐려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화산.’
‘곤륜.’
‘무당.’
‘소림.’
검파에 여러 문파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 네 개의 문파 말고도 한 번도 듣지 못한 문파의 이름도 있었다.
검 하나하나에 새겨진 이름이 다 달랐다.
어째서 이 검들에 다른 문파의 명칭이 새겨진 걸까?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의구심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저곳이다.’
바다 위로 부는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불었다. 바람이 어서 가라는 듯이 등을 떠밀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검들로 이뤄진 길을 따라 걷자 검들은 내가 위로 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가장 위에 있던 검에 가까워졌다. 현경에 오를 때, 잡았던 검과 같은 검.
푸른 구름에 휘감긴 검이었고 손을 뻗어 검파를 잡자 ‘우우우우웅’ 거칠게 울었다.
현경 때는 잡자마자 사라졌던 검이 이제는 선명히 내 손에 잡히며 그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투박했다.
다른 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따뜻함.
이 검은 포근한 기운이 가득했다.
동시에 검에서 푸른 용의 형상이 나와 하늘로 승천했고 수많은 검들이 용을 따라 일제히 허공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별처럼 쏟아지는 검.
그 검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왔고 몸에 꽂혔다.
푹!
아프지 않았다.
푹!
몸이 꿰뚫렸음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렇게 여러 문파의 무학이 새겨진 천 개의 검들이 몸에 꽂히며 사라졌고 어느덧 검으로 가득했던 바다 한가운데 나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며 마치 검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이 말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검을 몸에 품은 채.
서서히 눈이 떠졌고 다시 운설산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세게 부는 눈보라.
바다의 풍경은 사라지고 설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근.
심장이 뛰었다.
두근.
방금까지 죽음을 목전에 뒀으나 죽음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독고룡의 음성이 들려왔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그 짧은 찰나에 대체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생사경에 오른 거지?”
헛웃음을 짓는 독고룡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감기 전에 떨어졌던 오른팔은 다시 붙어있었고 귀혼편이 오른팔을 휘감은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맙다.’
귀혼갑은 온몸을 휘감으며 외상을 치료해줬고 그렇게 다시 오른손에 검을 쥐며 독고룡을 바라봤다.
“이제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요.”
“각오하고 있었다. 나를 더 재미있게 해다오.”
“당신의 목을 베어 이 참상을 하루빨리 끝내도록 하겠소.”
생사경 대 생사경.
나흘째, 아침이 밝아오는 시각, 그렇게 마지막 싸움이 시작됐다.
*
쿠구구구구궁.
푸른 연기와 검은 연기가 어우러지며 운설산을 가득 채웠다.
이제 심즉살의 억눌림은 송삼현에게 통하지 않았다.
생사경에 오르며 송삼현도 심즉살을 다룰 수 있게 되며 몸이 한층 자유로워졌다.
몸이 자유로우니.
검에도 자유로움이 담겼다.
카가가가가가각.
송삼현이 뻗은 검을 받아낸 독고룡은 검에서 전해지는 강대한 힘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지금껏 상대한 어떤 적들보다도 뛰어난 무학을 발휘하는 송삼현을 보며 독고룡은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푸른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려는 것처럼 송삼현의 겉으로 내뿜어지는 기운은 하늘을 향해 용솟음쳤다.
풍류운산(風流雲散).
연기처럼 사라지고 기척까지 지우는 바람에 독고룡은 살짝 늦게 송삼현이 자신의 왼쪽 사각으로 이동한 걸 알아채고 반응했다.
‘천무 3식 만경창파(萬頃蒼波).’
파도처럼 요동치는 기운을 한 점에 모아서 폭발시켰다.
독고룡의 목을 노렸으나 검은 귀신같이 피한 독고룡의 뺨을 스치는 데 그쳤다.
퍼어어어억!
그리고 가슴팍으로 들어온 천마흑룡장.
독고룡은 피하면서도 공격을 시도했고 송삼현은 가까스로 막아내며 열 장 정도 밀려났다. 그렇게 독고룡과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
탓.
탓.
그러나 이제는 아까와 상황이 달랐다.
생사경의 초입에 들며 송삼현의 시야는 보다 넓어졌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자 송삼현은 거침없이 보법을 펼치며 간격을 좁힌 뒤에 검을 휘둘렀다.
‘천무 1식 개벽.’
땅을 가르고.
‘천무 2식 일도양단.’
허공을 베었다.
그러나 독고룡이 가만히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송삼현의 검격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독고룡의 움직임도 더 빨라졌다.
그 움직임도 어떻게든 따라가며 검을 뻗은 송삼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파도같이 몰려왔다.
‘이 기억들은 대체 뭐지.’
생사경에 오르면서 시야만 넓어진 게 아니었다.
천 개의 검에 새겨진 각 문파의 무학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무학들이었다. 그리고 독고룡의 천마회격이 날카롭게 들어오는 것을 보곤 문득 한 가지 무학을 떠올린 뒤, 움직였다.
제운종(梯雲縱)
무당파의 신법이었다.
구름 위를 거니는 신선처럼 허공으로 도약했다.
‘됐다.’
단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무학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후로도 다른 문파의 무학들이 마구 떠올랐고 생각을 멈추고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검을 휘둘렀다.
무당파의 태극검(太極劍)
화산파의 화산검법(华山剑法)
형산파의 청풍검결(靑風劍決)
남궁세가의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
그 외에도 여러 문파의 무학들이 저절로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리고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했고 오래전에 유천이 한 말이 떠올랐다.
‘천 개의 무를 토대로 만든 것이 천무신공이다.’
그것이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유천은 정말 천 개의 무학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천무신공을 만든 거였다.
스르르르르륵.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내공 운용을 다르게 해야 하는 무학들이 천무신공의 정순한 기운에 맞물리며 펼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마치 애초에 이런 것을 위해 만든 무학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
뚝.
뚝.
뚝.
피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운설산의 일부는 독공룡이 내뿜는 열기에 녹았고 우리가 흘린 피는 땅으로 스며들었다.
이미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의 피를 흘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닿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으아아아아악!”
내가 기합을 지르면.
“하하하하하! 즐겁다! 내 인생에서 이토록 즐거웠던 날은 없었다!”
독고룡은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받아냈다.
내가 뻗은 검과 독고룡의 손이 허공에서 맞닿았고 순간 엄청난 폭풍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운설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아래에서 계속되는 싸움.
오대 명산이라 불리던 운설산은 칠할 이상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숨소리만이 주변을 채웠다.
거리를 벌리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전투.
잠시 숨을 고르던 독고룡은 ‘콰직’ 진각을 밟았다.
쿠구구구구궁.
울리기 시작하는 땅.
그리고 독고룡 주위로 검은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며 주변 일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심화와 합쳐진 마기.
그러면서 푸르던 불꽃이 검은 불꽃으로 변하며 독고룡의 몸을 휘감았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은 누가 위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하늘로 솟구쳤다.
엄청난 열기였다.
한서불침(寒暑不侵)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열기.
온 세상을 태울 듯이 요동치는 불꽃을 휘감은 독고룡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는 뒤로 보법을 펼치며 거리를 벌렸으나 독고룡은 오십 장 거리를 단 네 걸음으로 좁혀왔다.
천마광염참(天魔光炎斬).
천마흑룡장(天魔黑龍掌).
그리고 마지막 조각인 천마재운공(天魔災運功)까지.
콰과과과과과과광.
독고룡 또한 싸우면서 깨달음을 얻었고 그 깨달음으로 천마신공의 세 가지 절초를 합치며 새로운 초식을 창안해냈다.
그 모든 것이 한 점에 모였고 그것을 담은 권격이 나에게 날아왔다.
광오한 기운에 귀혼편과 귀혼갑은 본능적으로 내 주위를 휘감으며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했으나 그 위력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카가가가각.
강기에 강기를 더하며 막은 검에서도 전해지는 위력.
그 위력에 귀혼편과 귀혼갑이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설마.’
신물은 하늘이 내린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힘으로 상하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을 벗어나 하늘에 도달한 힘이면 어떨까.
쩌억.
귀혼편과 귀혼갑에 금이 가며 갈라졌다.
더구나 귀혼갑은 금룡신갑과 합쳐지며 더욱 신묘한 신물이 됐음에도 독고룡의 절초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물이.’
독고룡의 모든 무학이 합쳐진 새로운 초식은 그 기운이 더욱 강대해지며 신물들을 억눌렀다.
벌어진 틈새가 더욱 커지며 결국.
콰아아아아앙!
깨지면서 사방으로 신물들의 파편이 흩어졌다.
‘깨졌다.’
신물들이 깨지는 것을 본 독고룡은 기운을 거두고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이제야 방해꾼들이 사라졌구나.”
인간을 벗어난 힘.
그 힘은 우리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운설산의 가장 높은 ‘설봉(雪峰)’ 마저 날려버리며 운설산을 아예 지도에서 사라지게 했다.
오대 명산으로 꼽히며 매 년 구경꾼들로 끊이지 않았던 명산.
그 명산은 하늘마저 뒤덮을 광오한 힘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