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63
종장(終章) (2)
스르르륵.
눈을 뜨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으으으으으.”
저절로 신음성이 나올 만큼 움직일 때마다 몸의 이곳저곳이 쑤셨다. 수십 개의 검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삼현아!”
“대답이 들린다면 고개를 끄덕여보거라.”
송우태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고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 뒤에는 구창룡과 제갈귀호를 비롯해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깨어났으니 됐다.”
송우태의 목소리는 떨렸다.
촤락.
그때 천막이 걷히며 들어온 사월향과 눈이 마주쳤다.
약재를 소반에 담아 들어오던 그녀는 눈을 뜬 나를 보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고 와락 안겨 왔다.
바들바들 떨리는 그녀의 몸, 그리고 어깨가 축축해졌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봤을 때, 약조한 게 있었는데 그걸 지키지 못했구나.
손을 뻗어 사월향의 들썩이는 등을 쓸며 위로해줬다.
“미안합니다.”
“뭐가요···?”
울었는지 눈도 붉어졌다.
“다치지 않겠다는 약조를 못 지켰네요.”
“기억은 하시네요?”
“제가 기억력 하나는 좋습니다.”
“겨우 그게 다예요? 할 말이?”
“….. 그러면 뭐가 더···?”
“대협이 잘못되시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대협이···. 대협이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고요.”
“미안합니다.”
사월향은 내 말을 듣고선 흘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미소를 지었다.
“할 말이 진짜 많았어요. 그런데 대협이 이렇게 일어난 모습을 보니, 그 말이 쏙 들어갔어요. 기뻐서요.”
“…..”
“이제 다 끝났으니까 잔소리는 안 할게요.”
“감사합니다.”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다시 소저를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렇구나.
이제 다 끝났구나.
꿀렁.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제야 내 오른팔을 어떻게든 이으려는 조각들이 보였다. 이미 다 망가진 상태라 능력은 일 할도 쓰지 못했다.
아마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건 힘들겠지, 나도 신물도.
내 시선을 본 사월향은 우물쭈물했다.
“….. 신물들이 부서져서 회복하는 게 늦습니다. 시일이 지나면 될 거니까 조급해하지 마세요.”
파편들이 어떻게든 내 팔을 붙이려고 애를 썼지만, 온전하지 않은 상태라 힘들었다.
아직 오른팔에 감각은 없었고 팔꿈치의 살짝 위에 부분까지 잘린 거라 회복하는 것도 오래 걸릴 게 분명했다.
스윽.
파편들에 손을 댔다.
“됐으니까 그만해도 된다.”
내 말에 파편들은 스르르륵 하던 일을 멈추고 떨어졌다.
“못난 주인을 만나서 힘을 다했는데도 무리를 하고 있구나, 난 됐으니, 그만하고 쉬거라.”
귀혼편과 귀혼갑을 손에 넣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 신물들 덕분에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만일 신물이 없었다면 독고룡에게 진즉에 죽었겠지.
파편들을 두고 오른팔을 잡았고 살짝 힘을 주자 그대로 떨어졌다.
신경이 연결되기도 전이라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내가 한 행동에 천막 안에 있는 모두가 놀라서 말을 하지 못했다. 제일 먼저 말을 한 것은 사월향이었다.
“시일이 지나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그러십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 물음에 사월향은 말을 아꼈다.
자신도 알고 있는 거였다. 신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오른팔이 예전의 상태로 돌아온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는 걸.
“팔 하나가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간 고생했는데 오른팔도 쉬게 해줘야지요.”
웃음을 짓자 사월향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내 팔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힘든 걸, 들어서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비틀.
순간 몸이 욱신거리고 현기증이 몰려와 넘어지려고 하자 사월향이 부축을 해줬다.
“….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하시면 안 돼요?”
“독고룡의 시신은 어찌 됐습니까?”
“수습해서 불에 태울 거라고 들었어요. 근데 그건 왜요?”
“거기로 데려가 주십시오.”
천막 밖으로 나오자 밖에 있던 무림인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백의검룡 대협이시다!”
“대협이 깨어나셨어!”
그들은 내 앞에서 가는 구창룡이나 제갈귀호, 뒤를 따라오는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이나 오대 세가의 가주들이 아닌 나를 향해 포권지례를 올렸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하자 앞장서서 가던 구창룡이 물었다.
“독고룡의 시신은 갑자기 왜 보겠다는 것이냐?”
“저자와 약조한 게 있으니까요.”
“약조? 저런 악귀와?”
구창룡의 곁을 지나갔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고 나는 독고룡의 시신을 바라봤다.
싸늘하게 식어간 주검.
목이 베어져 죽은 흔적이 한눈에 보였다.
“…. 결국, 이렇게 됐소.”
저번 삶에서는 독고룡의 손에 죽는 바람에 이 자의 최후를 볼 기회가 없었다.
내가 죽고 어떻게 세상이 변했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고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었다.
별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눈을 감아 생각에 잠겼다.
반 각의 시간이 지나 눈을 뜨고 왼손에 들린 오른팔을 독고룡의 시신 곁에 뒀다.
“저승길 노잣돈이나 하시오.”
*
전쟁이 끝나긴 했으나 마음이 편한 사람은 없었다.
죽은 자들의 시신을 옮기던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원래 운설산이 있던 자리에는 살아남은 이들의 눈물과 죽어간 이들의 시신이 쌓여갔다.
운설산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중원 곳곳에서 하나하나 찾아내 마차에 실어 데리고 온 시신들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 다음으로 끔찍한 것은 승리한 것이다.
이 말처럼 승리한 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못했다.
그 시각, 송삼현은 천막 안에서 천하봉선에게 시침을 받았다.
“기의 흐름이 안정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하봉선님 덕분에 이렇게 살았네요.”
“제가 뭘 했겠습니까, 다 하늘의 뜻이겠지요. 그리고 감사 인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이 강호를 구한 영웅이신데.”
“…. 영웅이라니, 부끄럽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봤습니다. 악귀를 베고 하늘에 새로운 길을 연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송삼현은 이 일로 인해 강호인들의 영웅이 됐다.
“저 때문에 혼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게 제가 할 일인 걸요. 그러니 그리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밖으로 나가보세요.”
“예?”
“두 시진 전부터 대협을 기다리던 분들이 계시거든요.”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긴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가자 반가운 얼굴들이 송삼현을 맞이해줬다.
“주군!”
눈시울이 붉어진 선무정과 마훈, 그리고 무조와 천월궁귀 묘추였다.
“다들 고생많았다.”
내 말에 선무정은 눈물을 폭포같이 흘리며 다가왔다.
“흐어어어엉!”
“그만 울 거라. 귀 아프다.”
“주군이 잘못되시면 제가 천하진미를 어떻게 먹겠습니까!”
“….. 먹을 것 걱정뿐이더냐?”
“주군이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천하진미를 먹게 해 준다고요!”
“하하하하, 그래 내가 실컷 먹게 해 주마.”
선무정을 지나.
“주군이 깨어나지 않으셨다면 제가 따라가서 염라대왕의 목을 베었을 겁니다.”
마훈.
“주인이시여, 이리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 감격 그 자체이옵니다.”
무조.
그리고 송삼현은 곁에서 머뭇거리는 묘추를 봤다.
“도와줬다고 들었다. 고맙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주군께서 비급서와 영약을 주셨으니까요.”
“이제 날 주군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냐?”
척.
“비급서를 주시던 날부터 그리 결정했습니다. 대답이 늦어 송구합니다.”
“됐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예! 주군!”
그들과 모닥불 근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송삼현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제갈귀호와 이것저것 처리를 하던 구창룡의 곁으로 다가갔다.
“맹주님.”
스윽.
“이 패를 돌려드릴 때네요.”
맹주의 대행을 증명하는 금패를 주자 구창룡은 웃으며 받았다.
“어떠냐.”
“뭐가요?”
“내 뒤를 이어 맹을 이끌어 보겠느냐?”
주변에서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송삼현이 한 말은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아니요. 맹주님을 보니, 무림의 가장 높은 자리는 자유로운 자리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책임이 큰 자리지요.”
“이런 들켰군.”
“저는 자유롭게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습니다.”
“하긴 식견을 넓히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지, 허나 이거 하나는 명심하거라.”
“말씀하시지요.”
“너는 이미 강호의 모든 이들의 위에 선 자라는걸.”
송삼현이 그동안 보여준 행보, 그것만으로도 그는 중원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한곳에 모였다.
전쟁으로 인해 죽은 이들을 기리는 추모제(追慕祭)가 열렸다.
검신(劍神) 유천.
곤륜파 태허진인(太虛眞人) 학표운.
화산파 용화신검(龍花神劍) 곽수룡.
청성파 일성군자(一性君子) 벽해호.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은 물론 이름 없는 비석들도 많았다.
추모제가 진행될수록 울음소리가 점차 커졌다.
소중한 사람들을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창룡의 말이 끝나자 각자 인연이 있는 비석으로 가서 꽃과 선물을 뒀고 송삼현은 유천의 비석이 세워진 무덤 앞으로 갔다.
그 옆에는 천유현도 함께였다.
“모든 게 끝났습니다. 스승님.”
송삼현의 말에 천유현은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애써 울음을 참았다. 그리고 송삼현은 유천의 검을 비석 옆에 가지런히 뒀다.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부님의 검으로 중원의 평화가 왔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편히 쉬세요.”
꽃을 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전원!”
구창룡의 일갈에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숨을 바쳐 싸운 동료들에게 인사!”
천여 명의 무림인들이 동시에 포권지례를 올렸다.
그 광경은 장관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이 없었고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그들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중원을 참혹으로 물들였던 정마 대전이 끝났다.
*
그날 밤.
마음이 공허해져 잠이 오지 않았고 홀로 밤 산책을 나왔다.
웅장했던 운설산이 사라진 곳에 세워진 수많은 비석, 그 비석이 달빛에 비치는 것을 멍하니 봤다.
저벅.
저벅.
누군가가 걸어왔다.
옆에 다가온 사람은 사월향이었다.
“잠이 안 오세요?”
“… 예, 뭔가 그러네요.”
같이 달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비치는 달빛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대협.”
“네?”
“제가 그때 드린 말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호를 같이 돌아다니자고요?”
“예, 조모님과 같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우러 다닐 겁니다. 대협도 같이 가시지요? 대협이 구한 강호가 어찌 변해가는지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내가 구한 강호가 어떻게 변해가는가.
솔직히 독고룡을 죽이는 데만 몰두했지,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좋은 말이네요.”
“그리고 드릴 말이 또 있어요.”
“또요?”
사월향은 앉아있다가 일어나더니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와 혼인해주세요.”
“…. 저는 사지 멀쩡한 남자도 아닌데 왜 고생하려고 하십니까? 소저가 걸어갈 길에 짐만 될 뿐입니다.”
“그야 이제부터 제가 대협의 팔이 되어드리면 되지요?”
“……”
“대협이 중원을 지켜준 것처럼 이제는 제가 곁에서 대협을 지켜드릴게요. 저와 혼인해주실래요?”
은은한 달빛을 머금은 미소, 그 미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종장(終章) (3) -完-
다음 날.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제를 끝낸 강호인들은 나중에 만날 날을 기약하며 하나둘씩 떠나갔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모두가 송삼현을 보고 가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강줄기처럼 쭉 줄을 섰다.
“대협! 꼭 양천의 화영문으로 오십시오. 대협이 오시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산동성 치박에 있는 유천파 일 장로 강문도입니다. 한 번 들러주십시오.”
“연안 근방을 지나시면 운문 객잔으로 오셔서 양화철을 찾아주십시오. 저희 문파가 운영하는 곳인데 직접 빚는 술이 있습니다. 대협이 오시면 모두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있는 지역으로 오면 꼭 들리라며 송삼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그 행렬은 반 시진이 지나자 한산해졌고 곧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가시는 겁니까?”
“예, 가야지요.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순 없으니까요.”
아미파 아미오승 장옥태였다. 그 곁으로 다른 아미오승과 주영약, 주영설도 포권지례로 인사를 했다.
“아미파는 피해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장옥태는 고개를 끄덕였고 주영약이 대답했다.
“아미산을 떠날 때, 비급을 다 들고 비워서요. 사람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예, 사람만 있으면 어디가 됐든 문파는 다시 꽃처럼 피어오를 테니까요.”
“…. 처음에 뵀을 때보다 많이 달라지셨네요.”
필주에서 흑천오방을 상대할 때의 주영약은 강호 초출에 철모르는 어린애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은 꽤 생각이 깊어진 모습이었다.
“대협처럼 되려면 달라져야지요.”
“저처럼요?”
“대협은 제 영웅이니까요.”
주영약과 대화를 나눌 때, 아미파 장문인 옥화사태(玉花師太)가 다가왔다.
아미파 여승들은 양옆으로 자리를 비켜줬고 장옥태는 포권지례를 했다.
척.
“대협의 은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이번 생이 아니면 죽어서라도요.”
“은이라고 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어서 고개를 드시지요.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협 덕분에 저와 제자들이 무사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제 대에서 못하면 그다음 대에서 아미파가 있는 한 대협께 보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선 보은패를 줬다.
보은패는 가진 사람이 무슨 부탁을 해도 반드시 문파의 명예를 걸고 도와줘야 하는 패였다.
아미파만이 아니었다. 다른 문파들도 보은패를 줬고 보은패만 해도 한 보따리가 생겼다.
그 뒤로 배웅해준 뒤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 쉬려고 자리를 옮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인적이 드문 절벽 가까이 다가갔다.
멀리 보이는 비석들.
운설산이 있던 자리에 새로이 만들어진 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어제 사월향이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혼인해요.’
그 말에 섣부르게 대답할 수 없었다.
마음은 하고 싶었으나 몸이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몸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짐이 되기 싫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답은 내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 자리를 피했다.
‘내가 혼인을 해도 되는 걸까?’
‘그런 삶을 살아도 되는 걸까?’
계속해서 그 생각이 들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물끄러미 하늘을 보던 송삼현의 곁으로 송우태가 다가왔다.
“….”
눈이 마주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같은 곳을 바라봤고 일각이 지나자 침묵하던 송우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목표를 뭐로 정해놓고 살아야 하나.
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아무런 목적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독고룡을 죽이고자 했을 때는 계속해서 떠오르던 목적지들이 지금은 연기처럼 흐릿해져서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송우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만하면 됐다. 그만 금호장으로 돌아오거라, 네가 부인과 살던 청월각은 아직 그대로니.”
송우태는 송삼현이 금호장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허나.
들려오는 말은 정반대의 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그곳에는 제가 있을 곳이 없습니다.”
“…..”
“감사한 말씀이지만, 전 조금 더 많은 곳을 보고 싶습니다.”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싸우는 것이 아닌 지켜낸 것을 둘러보기 위해서.
송우태는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삼현아.”
“예.”
“네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리고 너무나도 미안하구나, 지난 세월 동안 너에게 무심했던 것이.”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난 네가 밀어내도 너에게 다가갈 참이다. 세상을 둘러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서도 돌아올 곳이 없다면 언제든 금호장으로 오거라. 너를 위한 곳은 항상 깨끗하게 해놓을 테니.”
송우태는 그저 송삼현에게 돌아올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 말에는 진심이 있었고 그 진심을 느낀 송삼현은 입을 열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
그리고 그토록 송우태가 듣고 싶었던 말.
“예···. 아버지.”
장주가 아닌 아버지라는 말.
그 말을 들은 송우태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송우태는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걸음을 뗐고 멀어졌던 부자 사이는 그렇게 한 걸음 가까워졌다.
*
송삼현은 우선 이곳을 떠나기로 했고 남궁세가와 금호장이 가는 길에 동행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남궁세가였다.
천하봉선과 사월향도 송삼현의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기에 치료를 위해 따라나서기로 했다.
송삼현 일행이 떠난다고 하자 아직 떠나지 않고 뒷정리를 하던 이들은 다들 마중을 나왔고 남궁상룡은 구창룡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이 다 정리가 되면 술 한잔하지요?”
“맹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환영이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용화주를 들고 가겠습니다.”
“오! 용화주? 남궁세가에서 직접 빚는 술이 아닙니까? 풍미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기대해도 되겠지요?”
“한 번 드시면 매일 찾으실 겁니다.”
“허허허허, 태상가주께서 회춘하신 게 다 그것 때문이구려.”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송삼현도 제갈귀호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푸릉!’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구나.”
독고룡을 상대하러 갈 때, 금호장 역참에 맡긴 흑영마였다.
다른 말들보다 확연히 다른 덩치와 털의 윤기, 명마가 나타나자 무림인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흑영마는 송삼현에게 다가와 머리를 숙였고 송삼현은 왼팔로 흑영마의 털을 쓸었다.
푸릉.
그러더니 흑영마는 송삼현의 오른팔에 코를 가져다 댔다.
바람에 펄럭이는 옷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괜찮다. 그보다 못 본 사이에 살이 붙었구나, 다들 잘 챙겨준 모양이다.”
푸릉.
명마는 사람과 같이 호흡한다는 이야기가 진짜라는 게 사람들 앞에 증명되는 광경이었다.
마치 송삼현과 흑영마는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고 구창룡이 대화를 마치고 다가왔다.
“호오, 명마 중의 명마는 사람과 소통하는 기이한 능력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정녕 사실이었나?”
“저를 잘 따르긴 합니다.”
“흑영마는 성질이 포악해서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대단하구나.”
흑영마는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는 걸 극도로 싫어해 뒷발로 걷어차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송삼현은 흑영마를 쓰다듬었고 그 손길이 좋은지 흑영마는 눈을 감고 ‘푸르르릉’ 소리를 냈다.
“신기한 구경을 했다.”
“하하하하.”
“그보다 내가 한 제안은 잊었느냐?”
“아주 싹 잊었습니다.”
“아쉽구나. 난 내 뒤를 이을 녀석이 너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늘.”
구창룡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삼현은 확고했다.
“맹주님이 훌륭하게 이끌고 계신 데 제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전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억압되는 삶은 저번 삶으로 충분했다. 이제는 원하는 것도 이뤘고 마음이 가는 대로 그저 흐름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면 푹 쉬고 맹으로 오거라. 내가 아주 근사한 차를 내어주마.”
“그리하겠습니다.”
말에 올라서 가려고 하자 구창룡의 일갈이 울려 퍼졌다.
“뭣들 하는 것이냐! 강호를 구한 영웅이 가는 길이다! 모든 예를 표해 배웅하라!”
척.
모두가 포권지례를 올렸다. 그 포권지례는 남궁세가의 태상가주 남궁상룡에게도, 천하제일의 장원을 가진 금호장주 송우태에게도 하는 것이 아닌 무림을 구한 영웅, 백의검룡 송삼현에게 하는 거였다.
그렇게.
살짝 놀란 송삼현도 포권지례로 화답했고 말머리를 돌려 길을 떠났다.
서서히 멀어지는 비석들.
그 비석들이 시야에서 온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앞을 보고 똑바로 나아갔다.
과거는 뒤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
.
.
“….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게!”
닷새가 지나고서야 남궁세가가 있는 합비에 도달했다.
남궁세가의 모든 이들이 마중을 나왔고 송연화는 남궁상룡과 남궁효우를 맞이한 뒤에 송삼현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송삼현의 오른팔이 없는 걸 보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누님, 괜찮습니다.”
“이게 괜찮은 거냐···. 이게? 팔이···. 너의 팔이 없지 않으냐!”
텅 비어 바람에 휘날리는 오른쪽 팔 부위의 옷자락, 뒤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송연화와 같이 눈물을 훔쳤다.
팔만이 아니었다.
송삼현의 몸 곳곳에 난 성치 않은 상처를 보고 싸움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 그만 우세요. 보는 눈들이 많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맞소, 부인. 천하봉선님이 각별히 치료해주고 계시니, 아무런 문제 없을 겁니다.”
남궁효우가 와서 송연화를 위로해줬다. 송연화는 눈물을 닦고 송삼현의 뒤에 있는 여인에게 눈이 향했다.
“저분은···?”
송연화도 사월향과는 구면이었다. 자객들에게 습격당했을 때, 치료를 해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난 사월향을 한 번 보고 솔직하게 말했다.
계속해서 고민을 거듭하며 내린 답.
“저와 혼인할 사람입니다.”
그것은 혼례를 하는 거였다.
욕심일 수 있지만, 딱 한 번이라도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다.
내 말에 사월향은 살짝 놀랐다가 수줍게 웃었고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그래서 누님께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송삼현의 말에 송연화는 다시 눈물을 흘렸고 송삼현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줬다.
“왜 이렇게 눈물을 흘리십니까. 저는 누님의 우는 모습이 아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흑···.”
“그리고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약조?”
“평생 함께할 여인을 데려오라고, 그래서 데려왔습니다.”
눈물을 더 펑펑 흘렸다.
“작은어머니가 계셨다면 누구보다 좋아하셨을 거다.”
송연화의 입에서 나온 어머니.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는 사람들은 슬픈 표정으로 송삼현을 바라봤다. 그리고 송삼현은 약간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셨을 겁니다.”
오늘따라 유독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
한 달 후.
금호장 대장원.
남궁세가를 떠나 금호장으로 돌아왔고 나와 사월향의 혼례 준비가 한창이었다.
금호장의 장원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중원 각지에서 온 선물로 들끓었다.
“삼 공자님이 혼례라니!”
“아리따우신 분이랑 혼인한다던데? 천하봉선님의 손녀분.”
“어제 살짝 부인이 되시는 분을 봤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난생처음 봤잖아.”
“아가씨보다도?”
“아가씨께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아가씨보다 더 아름다우셨어.”
그 시각.
손님을 맞이하는 금호장 화의각에선 송우태를 비롯해 금호장 가족들이 중요한 손님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폐하.”
변복을 한 진왕, 아니 이제는 황제의 자리를 이은 진황이었다.
황제가 이곳에 왔다는 게 알려지면 그때는 혼례가 아닌 황제의 행사가 되어버리니, 진황은 은밀하게 측근들만 대동한 채, 송삼현의 혼례를 축하하러 왔다.
그 곁에는 황비와 공주, 황자도 있었다.
“… 그 팔은.”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던 황제는 송삼현의 팔을 가리켰다.
다들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강호의 새로운 세상을 여는 데 바치고 왔습니다.”
“강호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것의 새로운 세상은 연 셈이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다 자네 덕분이 아니겠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폐하께서 그 자리에 앉으신 것도 다 하늘의 뜻이지요.”
폐하는 차를 한 잔 마시고 물었다.
“이제는 어떤 걸 할 생각인가?”
“부인과 함께 천하를 돌아볼 생각입니다.”
“천하를?”
“전쟁이 끝난 세상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동안은 둘러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 좋군. 아직 눈이 살아있어.”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떤가? 모든 여행을 마친 뒤에 황궁으로 들어와 내 곁에 있어 주겠나?”
“황궁에 있다가는 숨 막혀서 죽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지, 나도 지금 아주 숨 막혀 죽을 것 같네.”
“그래도 표정이 좋아지셨습니다.”
“하하하하, 근심이 떨어져 나가서 그런 게 아니겠나? 하지만 이제는 망가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하니, 더 힘들어질 걸세.”
“폐하라면 훌륭히 대업을 완수하실 겁니다.”
“그 대업에 자네가 곁에 있다면 큰 힘이 될 텐데 아쉬워.”
“제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탈이 나서요.”
대화를 마친 뒤에 화의각을 나왔다.
3월이 지나가며 봄이 왔지만, 아직 밤바람이 찼다.
청월각으로 가는데 뒤를 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청월각 안으로 들어가고 뒤를 돌아서자 따라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공주마마.”
군주, 아니 이제는 공주가 된 그녀와 시녀였다.
“혼례를 한다고 해도 너와 나는 여전히 벗임에는 변함이 없지?”
“그럼요. 힘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서신을 보내십시오. 정성을 다해 답해드리겠습니다.”
“고맙구나, 그리고 이걸 받거라.”
공주가 준 것은 작은 목함이었다. 그 안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비녀가 들어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혼례 선물이다. 혼례식 날, 너의 부인이 될 여인의 머리에 꽂아주거라, 잘 어울릴 거다.”
“폐하께서 이미 많은 선물을 주셔서···.”
“그건 아바마마가 주시는 거고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주는 거다. 벗으로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공주는 고개를 들어 청월각의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 여기서 보는 달은 여전히 아름답구나.”
“예.”
“너와 처음 만난 것도 이곳이었지.”
“그렇사옵니다.”
“그런 네가 혼례를 한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네가 강호를 위해, 그리고 아바마마를 위해 한 일을 듣고 눈물이 났지.”
“…..”
“넌 나의 벗이자 영웅이다. 앞으로는 고생하지 말고 부디 너만을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거라.”
“따뜻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공주마마.”
청월각에서 바라보는 달.
공주는 그리움을 눈에 담고 청월각을 떠나갔다.
*
다음 날 아침이 밝아왔다.
송삼현의 혼례는 강호의 모든 사람이 모이는 대행사였다.
구파 일방은 물론 오대 세가, 그리고 강호 곳곳에 퍼진 문파가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쟁 후에 처음 맞는 행사.
그것이 백의검룡 송삼현의 혼례라는 것은 모두에게 뜻깊은 일이었다.
“오.”
강호의 명숙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제히 한 곳을 바라봤다.
붉은 면포를 걸치고 나오는 사월향을 보고 말을 잃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진황이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가히 천하절색(天下絶色 )이로다.”
아름다움을 흘리며 나온 사월향의 맞은편으로 마찬가지로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송삼현이 등장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은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해줬다.
“부인.”
“예, 서방님.”
“… 고맙소.”
“뭐가요?”
“나와 혼인을 해줘서.”
“그 말은 제가 해야지요. 서방님, 저와 혼인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번 삶에서는 인연이 되지 않은 두 사람, 이번 삶에서는 인연이 맺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모든 이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됐다.
전쟁의 상처가 두 사람의 혼례로 인해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어오는 높은 산.
절강성 온주에 있는 아름다운 산이었다.
송삼현은 그곳을 사월향의 손을 잡고 나란히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수록 그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울컥했다.
“….”
사월향은 미세하게 떨려오는 송삼현의 손을 잡은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송삼현이 자신만의 감정에 빠져있는 걸 가만히 뒀고 묵묵히 옆을 지켰다.
그렇게.
한 식경 후.
산 정상에 오르자 작은 묘와 그 옆에 세워진 비석이 보였다.
사월향은 한 발짝 뒤에서 송삼현을 따랐고 송삼현은 묘로 걸어갔다.
한눈에 바다와 산이 보이는 광경은 천하 절경이라는 말로도 부족하지 않았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휘이이이잉.
마치 어머니의 손길이 오른쪽 어깨에 닿는 것 같았다.
“오른팔은 괜찮아요. 그리고 이 소저는 제 부인입니다. 예쁘지요? 하지만 어머니만큼은 아닌 거 같아요.”
“진짜!”
“삐졌소?”
“아니요. 그렇게 예쁘시다는 어머니를 못 봐서 아쉬워서 그래요.”
사월향은 송삼현의 곁으로 와 묘를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서방님과 혼인을 올린 사가 월향이라고 해요. 서방님은 제가 곁에서 잘 보필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보여도 음식은 잘하니까 서방님은 안 굶길 자신은 있어요. 안 다치게 제가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켜볼 터이니, 예쁘게 봐주세요.”
어머니의 묘소 앞에서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근처에 자란 잡초를 뽑았고 아름다운 꽃들로 화관을 만들어 가지런히 뒀다.
“이거 보실래요?”
송삼현의 말에 사월향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큰 바위에 새겨진 글귀가 보였다.
위와 아래에 써진 글의 내용은 같았지만, 글체가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이네요?”
“위에는 어머니가, 그리고 밑에는 제가 썼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 적은 대로 소중한 이와 오게 됐네요.”
어머니는 없었지만, 사월향이 있었다.
사월향은 활짝 웃으며 송삼현의 손을 꽉 잡아줬고 다른 손으로 송삼현이 쓴 글체 아래에 세 번째로 글을 적었다.
그걸 본 송삼현은 의아해했다.
“내가 가장 소중한 이가 아니오?”
“저희 아이요.”
“….”
“아이가 태어나면 꼭 다시 와요. 어머니가 기뻐하실 수 있도록.”
“고맙소.”
“고맙긴요. 당연한걸요?”
큰 바위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사월향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송삼현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그 배려에 송삼현은 살짝 미소를 짓곤 어머니의 묘소를 보며 말했다.
“…. 여기서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약조한 걸 지키려면 아직 더 돌아볼 곳이 많아요. 다시 올 때는 지겨워서 그만하라고 하실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아름 들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평안하세요.”
주르르륵.
눈물이 났다.
그리고 다시 바람이 불어왔고 마치 울지 말라는 듯 따뜻한 손길같이 눈물을 닦아주며 지나갔다.
‘어머니.’
절강성 온주의 이름 없는 산.
‘… 감사해요.’
그 높은 산에는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왔다.
-完-
@koi